Soul of K-Beauty
뉴욕과 파리. 전 세계에서 으뜸가는 뷰티 성지로 꼽히는 이 두 도시에서 반가운 메일이 날아들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부터 특수 분장 아티스트, 네일 아티스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등 세기의 뷰티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인들로부터. 창의력이라는 연료로 엔진을 풀가동하고 있는 ‘글로벌 코리안’이 전해준 반가운 소식.

1 그가 메이크업에 참여한 애술린 북
DK Tche / Make-up Consultant
파리와 한국을 넘나드는 톱 메이크업 아티스트이자 글로벌 뷰티 브랜드의 제품 컨셉팅을 하는 메이크업 컨설턴트 최대균.
업계에서 최대균에 대한 평가는 대략 이러하다. 뼛속까지 예술가의 DNA로 들끓으며, 웬만한 여자보다 훨씬 꼼꼼하고 디테일하다고. 국내에 남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흔치 않던 시절, 정확히 2000년. 패션을 전공하다 희소성에 매료되어 메이크업을 배워보고자 한 젊은이, 그가 바로 최대균이다. “메이크업과 화장품으로 유명하다기에 프랑스 유학을 결심했어요. 그러던 중 국내 모 메이크업 브랜드의 아트 디렉터로 초빙된 프랑스의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 다미앙 뒤프렌이 한국에 오는데, 한 달 동안 그의 어시스턴트로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 한 달 동안 전 정말 많은 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죠. 얼마 뒤 다미앙은 제가 프랑스 유학을 준비 중이라는 것을 알고 정식 어시스턴트 자리를 제안했어요. 전 당연히 그 제안을 수락했고, 그건 정말 엄청난 터닝 포인트가 됐죠.” 프랑스 유학을 계기로 디올, 지방시, 카스텔바작 등의 백스테이지 메이크업을 담당하며 해외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한 그는 최근 메이크업 컨설턴트로서 방향성을 한 단계 넓혔다. “국내 유수의 브랜드 컨설팅을 도맡다 현재 그의 사수인 다미앙 뒤프렌과 함께 인터내셔널 브랜드인 버버리 코스메틱이나 캘빈 클라인 뷰티, 끌레드뽀 보떼 등의 컨셉팅, 조색, 제품 품질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다.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국내 진출을 앞둔 유럽발 코스메틱 브랜드 P사의 런칭도 돕고 있다고. “현장에서 발로 뛰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일도 좋지만 지금은 메이크업 컨설팅이 제게 신세계예요. 패션을 공부할 때 메이크업이 그랬던 것처럼 엄청나게 빠르고 열정적으로 습득하고 있죠. 제가 메이크업을 담당한 광고가 광고판을 장식할 때나, 제가 컨설팅한 제품이 시장에서 소위 대박을 칠 때 그 만족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그런 그에게 메이크업 아티스트, 아니 브랜드 컨설턴트로서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세계적 명품 코스메틱 브랜드의 한국인 최초 인터내셔널 아트 디렉터예요. 아니, 꿈이 하나 더 있어요. 후배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라고 하면 대부분 어떤 연예인을 담당하느냐고 물어요. 하지만 우리의 능력이 연예인의 유명세에 의해 판단되어선 안 되죠. 또 한 가지, 제가 다미앙 뒤프렌에게 배운 가장 큰 깨달음은 이거예요. 메이크업은 수학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만일 메이크업이 수학과 같다면 우리는 공식대로 블러셔는 스마일 존에서 시작해야 하고, 눈썹 길이는 코의 끝 점과 눈 끝 점의 연장선을 넘겨선 안 될 거예요.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전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1mm를 넘긴 눈썹 때문에 불안해하는 우물 안 개구리의 모습이었을 거예요. 다미앙은 이미지를 보는 제 관점을 변화시켰고, 주관적인 것이 객관적인 것을 압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습니다. 후배들에게 더 큰 그림을 보는 심미안, 자신의 능력을 정확하게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다미앙이 제게 그런 것처럼요.”
사진 박지홍(인물)

Jane Choi / Special Effects Make-up Artist
미국 최고의 특수 메이크업 아티스트. 가짜도 진짜로 만들어버리는 메이크업계의 마술사.
뉴욕, 특수 분장의 길로 들어서다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금융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남편을 따라 한국에서 뉴욕으로 온 새댁. 여기까진 많은 여성이 꿈꾸는 스토리의 주인공일지 모른다. 하지만 ‘뉴욕댁’의 삶에 익숙해질 무렵 남편이 거짓말처럼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이들과 홀로 남겨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제인 최는 나이 서른 줄에 생계형으로 난생처음 특수 메이크업의 길로 뛰어들었다. 이 분야의 희소성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이 땅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엄마로서 당당히 제 몫을 해내고 있다.
특수 메이크업의 일인자 일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인디아나 존스>와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매만지다 그녀는 특수 메이크업 외에 보통의 인물 메이크업도 겸하고 있다. 초창기 NBC 방송국에서 인물의 일반적인 메이크업을 담당했던 경험은 그녀에게 큰 자양분이 되었다. 누가 알았을까. 그녀가 대통령의 메이크업까지 하게 될 줄! “긴장은 됐지만 떨리진 않았어요. 그 당시엔 집중해서 그런지 떨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나 오바마 대통령이나 모두 위트 있고 좋은 분이었죠. 하지만 하고 나서 긴장이 풀리자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더군요. 아, 그런데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의 촬영날엔 정말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다른 촬영 때문에 서부에서 워싱턴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잇따른 비행기의 연착으로 제가 지각을 한 거예요. 바로 국무장관의 인터뷰에요! 땀범벅이 되어 촬영장에 도착해서는 정신없이 메이크업에 매달렸습니다. 정말 아찔한 순간으로 기억에 남아 있죠.”
잊지 못할 촬영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특수 메이크업에 머무르지 않은 제인 최. “한 광고 촬영장에서 제게 모노폴리를 손바닥에 똑같이 재현해 그릴 것을 요구했어요. 하지만 손바닥의 굴곡과 주름, 땀에 의한 번짐 등을 이유로 광고주도 의뢰는 했지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 작업이었죠. 하지만 며칠 밤을 새워 연구한 끝에 스스로 만족스러울 만큼 완벽하게 재현해냈고, 클라이언트에게 기립박수를 받았어요. 메디컬 광고 역시 제 전문 분야예요. 제가 작업한 가짜 피부는 제가 봐도 정말 감쪽같죠. 실제로 메디컬 광고 촬영을 위한 시안 미팅에 갔는데, 제가 메이크업한 사진을 샘플로 갖고 와 ‘이것이 실제 상처’라며 이 상처를 메이크업으로 표현해달라고 하더군요. 내가 메이크업한 것이라고 하자 다들 뒤집어졌죠.”
새로운 꿈을 꾸다 “일단은 손이 떨리지 않을 때까지 특수 메이크업 일을 더 하고 싶어요. 열정이 있고, 체력 관리만 잘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손이 떨리기 시작하면 후배를 양성하는 메이크업 스쿨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에요. 하지만 메이크업만 잘 가르친다고 해서 그들이 실전에서 살아남는다는 보장은 없어요. 그래서 메이크업 에이전시도 함께 운영해보고 싶습니다. 진짜 사수는 메이크업을 가르치는 것 외에 그들이 실전에 뛰어들 수 있는 발판도 함께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사진 박현진(인물) 현지 취재 박명진
1 Giorgio Armani 프리베 향수와 YSL Beauty 베르니 아 레브르. 그녀가 평소 애용하는 제품들이다.
2 그녀의 화장대 위는 늘 테스트를 앞둔 수많은 제품으로 가득하다.
3 이제 파리는 이수정에게 따뜻하고 편안한 보금자리 같은 곳이다. 파리 집 곳곳에 장식한 향초와 향수들.
Lee Sue Jong / L‘oréal Asia Pacific Regional Marketing Director
로레알 파리 본사에서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입생로랑 뷰티 브랜드의 아시아 퍼시픽 마케팅 디렉팅을 맡고 있는 이수정. 제품의 개발 단계부터 브랜드 포지셔닝, 비즈니스 전략 등 하나의 뷰티 제품을 만들어 팔리기까지 모든 과정에 아시아 국가의 의견을 취합해 반영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다.
한국 로레알에서 남성 향수 브랜드로만 알려져 있던 조르지오 아르마니 뷰티를 메이크업과 스킨케어까지 확장, 한국에 성공적으로 런칭시킨 이수정. 그녀는 랑콤과 메이블린 브랜드에 몸담고 있을 때, 그룹 내 처음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팔리는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 개발에 앞장선 주인공이기도 하다. 10년간 한국 로레알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던 그녀가 2009년 돌연 파리 본사로 떠났다. “제가 파리 본사를 너무 들들 볶았나 봐요. 차라리 직접 와서 해보는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답니다.” 그렇게 파리로 떠난 그녀의 소식을 간간이 페이스북으로 접할 때면, 정작 파리보다 전 세계 도시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1년에 적어도 여섯 번, 3개월 정도는 출장 중이에요. 중국과 홍콩, 일본 그리고 때로는 한국을 오가며 아시아 퍼시픽 국가의 의견을 들어야 하죠.” <노블레스>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순간에도 상하이와 베이징 출장 중이던 그녀가 다시 파리로 복귀하는 비행기 안에서 한 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이제야 한숨 돌리네요. 매번 가는 출장이지만, 늘 스케줄이 타이트해요. 한번 출장을 가면 최소 두 나라 이상을 방문합니다. 이동 시간을 아끼고자 밤 비행기를 타고, 호텔 체크인도 새벽 2~3시에 하곤 하죠. 시차로 잠을 설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줄이 잡힌 미팅에 각종 샘플을 담은 무거운 가방을 끌고 다니다 밤늦게 호텔 방에 들어서면, 눈 밑에 거무튀튀하게 다크서클이 자리 잡은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여대생들이 환상을 가지고 있는 뷰티 브랜드 종사자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멀죠? 하지만 아침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본능적으로 완벽하게 메이크업을 하고 나선답니다. 이렇게 정신없이 바쁘고 피곤하지만, 만족스러운 새 제품을 출시할 때면 다시 에너지가 샘솟아요. 화장품 하나 개발하기까지 많게는 100개의 샘플을 제작하곤 하는데, 주요 전략국인 한국과 일본, 중국 등으로 이를 보내서 질감과 흡수력, 유수분 밸런스, 향의 적합도 등을 테스트하죠. 이 과정에서 아시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뷰티 제품이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마에스트로 파운데이션’과 ‘디자이너 리프트 파운데이션’이랍니다. ‘루즈 아르마니 쉬어’는 특히 한국 팀의 입김이 톡톡히 작용했지요. 입생로랑의 ‘베르니 아 레브르’도 한국에서 돌풍을 일으킨 제품이죠. 한국 내 매장이 5개뿐인데 이 제품의 매출이 프랑스에 이어 2위라니까요. 저 역시 제품의 포뮬러 테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답니다. 많은 제품을 사용해볼 수 있어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때도 있는데, 웬걸요.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제품의 수많은 샘플을 다 사용해보려면 얼굴이 하나인 것이 아쉬울 정도라니까요. 그래서 요즘에는 얼굴을 반반씩 나누어 샘플 테스트를 하곤 하는데, 어느 날 회사에 가니 파운데이션 샘플 컬러가 달라 한쪽은 너무 밝고 한쪽은 어두운 것이 아니겠어요! 이러한 에피소드는 끝도 없답니다. 이렇게 몸바쳐 일한 덕분일까요? 아마도 이 인터뷰 기사가 나올 때쯤이면, 회사에서 포지션이 바뀌어 있을 것 같아요. 아직 정확한 자리가 정해지진 않았지만, 앞으로 10년 뒤엔 아시아 비즈니스 개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으면 해요. 이젠 프랑스어가 익숙하니 중국어에 도전하려 하는데, 참 발음이 어렵네요. 뭔가 새로운 일, 특히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매력적인 것 같아요. 이러한 제 모습이 한국의 후배들에게도 귀감이 되었으면 해요.
1 비욘세와 함꼐 한 진순최 2 모델 코코 로샤와 진순최 3 진순최의 네일 라인
Jin Soon Choi / Nail Artist
스티븐 마이젤, 패트릭 드마쉘리에 같은 포토그래퍼가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는, 뉴욕에서 가장 잘나가는 네일 아티스트. 그녀의 이름을 내건 진순 최 네일 라인은 국내 상륙을 앞두고 있다.
뉴욕 이스트빌리지와 웨스트빌리지,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자그마하게 자리 잡은 진순 핸드 & 풋 스파. 그렇다. 이름에서 눈치챘겠지만 이곳의 운영자는 한국 여성이다. 하지만 단순히 네일 살롱 오너로만 그녀를 소개하기엔 성에 차지 않는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랑방과 프라다, 디올, 발렌시아가, 루이 비통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많은 글로벌 패션·뷰티의 커머셜 광고에서 네일 스타일링을 도맡고 있으며, 미국 <보그>와 이탈리아 <보그>,
어떻게 미국에서 네일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미국에 온 지 이제 20년 됐다. 처음엔 동양인이 미국 땅에서 일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어려서부터 손재주 하나는 좋았기 때문에 바로 네일 살롱에 취직하게 되었다.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가장 큰 터닝 포인트로 기억하는 사건이 있다면? <뉴욕타임스>에 실린 것이다. <뉴욕타임스> 역사상 처음으로 7페이지에 걸쳐 7가지 네일 아트를 비주얼로 풀어내는 화보 작업에서 네일 스타일링을 담당했다. 이를 통해 프로페셔널 네일 아티스트로 인정받았고, 많은 이들이 나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
인생엔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나머지 기회 둘은 무엇이었나? 처음엔 한인 네일 살롱에서 일하다 영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미국인이 운영하는 네일 살롱으로 옮겼는데, 그곳에서 많은 고객과 친분을 쌓게 되었다. 그중 한 분이 잡지 촬영을 해보라고 조언해 당시 <코스모폴리탄> 매거진에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때 잡지의 뷰티 디렉터가 내 실력을 인정해줬고 에이전시도 소개해줬다. 또 한 가지는 내 이름을 내건 네일 살롱 오픈을 준비하며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이다. 건축설계사인 남편이 살롱의 설계와 인테리어에 많은 도움을 줬다. 특히 맨해튼 73번가에 있는 살롱은 남편이 디자인한 곳으로 가장 애착이 간다.
스티븐 마이젤, 패트릭 드마쉘리에, 레이먼드 마이어 등 쟁쟁한 포토그래퍼와 함께 일하는 것은 어떤가? 멋진 경험이다. 특히 가장 존경하는 스티븐 마이젤은 거의 모든 작업을 나와 함께한다. 우리는 정말 멋진 팀이다. 그는 재주가 많고 똑 부러지지만 개인적으로 따뜻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그와 촬영할 때 많은 것을 배운다. 특히 프라다의 광고 촬영은 7일에서 9일 정도 촬영하기 때문에 에피소드가 많다. 촬영 기간이 길다 보니 촬영장 분위기를 위해 프라다에선 클래식 연주자를 초빙해 촬영 스태프들에게 라이브 연주도 들려준다.
최근 당신의 이름을 내건 네일 라인을 런칭했다. 어떤 부분을 차별화 했나? 나는 하이패션의 심플하고 모던한 스타일을 제안한다. 그래서 좀 더 세련된 컬러 베리에이션과 별다른 기교 없이도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광택을 강화했다. 또 다른 제품에 비해 화학 성분의 함유량이 훨씬 적은 것도 진순 네일의 특징이다.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모던아트다. 또 패션 액세서리, 옷의 컬러와 텍스처의 트렌드에서도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 패션과 네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니까.
당신의 시그너처 스타일이자 가장 자신 있는 기술은 무엇인가? 아트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프리핸드로 하는 네일 디자인이다. 도구를 사용할 때보다 더 정교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당신의 살롱엔 어떤 셀레브러티가 찾는가? 배우 앤 해서웨이와 미셸 윌리엄스, 모델 린다 에반젤리스타, 카렌 엘슨,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 프라발 구룽 등이다. 일일이 다 열거하기 힘들다.
당신에게 직접 케어를 받으려면 얼마 전에 예약을 해야 하나? 나는 살롱에서 직접 케어를 하지 않는다. 굳이 나에게 케어를 받길 원한다면 살롱이 아닌 에이전시를 통해 연락해 스케줄을 잡아야 한다. 나는 주로 촬영장에서 일한다.
한국에도 당신의 손맛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 한국 시장을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가? 진순 최의 네일 라인을 6개월 전후로 한국 시장에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더 나아가 고객을 직접 만나는 이벤트도 계획하고 있다. 한국의 네일 아티스트에게도 진순의 네일 라인을 소개하고 싶다.
사진 박현진(인물) 현지 취재 박명진
1 ‘껍질을 벗는다’는 의미의 MUE를 주제로 작업한 타투 전시회 작품 2 아모르 아모르 by 릴리 최 3 유튜브에서 ‘Lili Choi’를 검색하면 향수 컬래버레이션 작업 과정 및 광고 캠페인 스케치 등의 동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Lili Choi / Make-up & Tattoo Artist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이자 타투이스트. 에스티 로더의 크리에이티브 메이크업 디렉터 톰 페슈의 퍼스트 어시스턴트로 활동하다 독립, 현재 Artlist 에이전시에 소속되어 매거진과 광고, 패션쇼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녀의 작업을 감상하고 싶다면, 웹사이트(www.lilichoi.com)를 방문해보도록.
내 인생의 선물, 파리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나는 문득 메이크업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무작정 찾아간 파리는 내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을 선사했다. 진정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게 된 것. 파리, 그곳은 나에게 선물과도 같은 도시다.
파리에서 만난 인연 파리에서 메이크업 스쿨을 졸업했지만, 바로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계 3대 패션쇼 중 하나로 손꼽히는 파리 컬렉션에서 직접 메이크업을 진두지휘해보는 것이 꿈이었지만, 메이크업 팀에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던 2001년 어느 날 나에게 행운과도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톰 페슈의 팀에 급작스럽게 결원이 생겨 들어갈 수 있게 된 것. 어렵게 얻은 기회인 만큼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 나에게 톰 페슈가 퍼스트 어시스턴트 자리를 제안해 그와 4년간 함께했다. 그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파리와 뉴욕, 런던, 밀라노를 오가며 발렌티노와 에르메스, 셀린, 지방시, 마르니, 끌로에 등 수많은 패션쇼의 메이크업뿐 아니라, 구찌와 에스티 로더 같은 빅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톰 페슈와 함께 일하며 만난 또 다른 소중한 인연은 전 파리 <보그> 편집장 카린 로이펠트다. 카린 로이펠트는 패션 아이콘인 만큼 본인의 스타일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자신의 메이크업에 변화를 주고 싶다며 조언을 청해왔다. 평소 어두운 색을 고수해온 카린에게 화사한 메이크업을 해주었는데, 그녀는 이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 지금도 종종 나에게 메이크업을 부탁한다.
또 다른 메이크업, 타투 2009년, 우연히 촬영장에서 한 스타일리스트의 피닉스 타투를 보게 되었다. 이는 전에 내가 알던 타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특이하고 섬세하며 아름다웠다. 여기에 완전히 매료되어, 그 타투를 그려준 파리 중심가의 유명한 타투숍 Migoii의 주인인 타투이스트 루안을 무작정 찾아가 배움을 청했다. 루안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쌓아온 내 커리어를 좋게 평가해주었고, ‘피부 위 예술’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강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촬영이 없는 날엔 타투숍에서 작업을 하곤 했다. 메이크업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피부와 골격을 접한 나에게 타투는 그리 낯설지 않았다. 어느 위치에 어떻게 조화시키면 좋을지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서예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동양화 기법을 즐겨 사용하기도 했다. 패션계에 있다 보니, 다양한 형식으로 접목이 가능한 점도 좋았다. 에밀리오 푸치의 드레스에 타투 패턴을 그린 적도 있고, 디젤 러버도즈 향수와 장 폴 고티에 르 부말 향수 캠페인의 모델에게 타투를 작업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까사렐 향수와 함께 크리스마스 컬래버레이션을 진행, 타투를 입힌 향수 보틀에 담긴 ‘아모르 아모르 by 릴리 최’라는 스페셜 에디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는 정말 신나는 작업이었다. 20대에 처음 구입한 향수가 바로 까사렐이었단 사실! 젊음과 신선함, 자유분방함…. 내 나름대로 간직한 느낌을 살려 새와 깃털, 장미꽃 등을 표현했다.
새로운 도전 어떻게 보면 처음 파리에 와서 지금까지 매 순간이 나에게는 새로운 모험이었던 것 같다. 항상 나 자신의 가능성을 실험하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파리에서의 삶은 늘 바쁘고 치열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많은 인연을 만날 수 있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 바라는 최대의 욕심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한 메이크업 브랜드의 이미지를 그려나가는 일. 또 한국에서도 다양한 작업을 해보고 싶다. 이를 위해 앞으로도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릴리 최가 추천하는 뷰티 아이템
왼쪽부터_ Nars 보디 글로우 여름철 태닝 피부를 표현하기 좋은 제품이에요. 촬영할 때도 유용하지만 여름휴가를 떠날 때 가장 먼저 챙기는 제품이랍니다. Nars 벨벳 매트 립펜슬 영화감독 뤼크 베송의 첫 번째 부인인 마이웬 르 베스코에게 이 제품으로 메이크업해준 적이 있는데, 그 후 이 제품이 파리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사이에서 핫한 아이템이 되기도 했죠. 크루엘라 색상은 블랙이 살짝 감도는 레드 컬러로 고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그만이에요. M.A.C 플루이드 라인 거의 모든 촬영에 함께하는 제품 중 하나예요. 지속력도 훌륭하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 애용하게 되죠.
사진 Fabrice Laroche 현지 취재 천진영

Ye Jin Kim / Bliss Creative Director
뉴욕발 스파 브랜드 블리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컨셉추얼한 브랜드의 모든 비주얼이 그녀의 창의력으로부터 시작된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말 그대로 크리에이티브의 종착점이다. 누가 그 자리에 앉느냐에 따라 죽어가던 브랜드가 기적처럼 살아나기도 하고 잘나가던 브랜드가 추락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영역에서 한국인의 이름이 감지됐다. 뉴욕 베이스의 스파 브랜드 블리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예진이다. “열다섯 살에 한국을 떠나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의 파슨스 스쿨에서 1년, 로스앤젤레스의 아트 센터에서 디자인을 공부했어요. 배운 게 디자인이다 보니 자연스레 광고 회사에 취직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러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시세이도 본사에서 주니어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 게 인연이 되어 14년째 화장품 회사에 몸담고 있네요.” 시세이도를 거친 그녀는 라프레리 본사에서 무려 9년 동안 디자인 디렉터로 일했다. 물론 그사이 틈틈이 뉴욕의 패션 브랜드 유나 양과 상아의 브랜드 컨설팅을 돕기도 했다. 현재 블리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이름을 올린 그녀는 브랜드의 작은 로고부터 포토그래피, 스타일링, 프로덕션, 웹 디자인까지 거의 모든 회사의 디자인 살림에 관여하고 있다. 보통은 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이지만 창의력 싸움이다 보니 미국 회사답지 않게 야근도 많은 편이라고. “그래도 블리스에서 일하는 것은 정말 즐거워요. 블리스는 마스코트인 블리스 걸처럼 장난기 많고 명랑하고 위트 넘치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다들 재미난 사람만 모여 있죠. 야근을 해도 즐겁게 다같이 으샤으샤해요. 제일 재미있는 분은 물론 저희 사장님이시고요.” 이런 회사 분위기는 블리스의 기업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꼭 진지하고 무게를 잡아야 진짜 하이엔드가 아니라는 것을 블리스가 증명해나가고 있듯 말이다. “우리는 귀엽고 발랄하고 장난스럽지만, 6성급 W 호텔과 독점 스파 파트너십을 맺고 호텔의 어메니티로 채택될 만큼 브랜드의 가치를 인정받았어요. 아직도 호화찬란한 것이 하이엔드라고 믿는 이들에게는 의아할지 모르지만 이미 세계시장의 판도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하이엔드 스킨케어의 대명사 라프레리에서 9년 넘게 일했지만 그녀는 지금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도전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수장을 맡은 블리스의 미래는 어떠할까? “재미있고 행복한 컨셉의 브랜드지만 블리스는 본격적인 스킨케어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제품력에서 최고를 자부하죠. 앞으로는 이런 스킨케어 쪽 이미지를 본격적으로 어필하려 합니다. 좀 더 진지한 스킨케어 브랜드로서 블리스도 기대해주세요.”
1 그녀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오피스 데스크 2 습관적으로 메모하는 그녀가 언제나 함께하는 다이어리
에디터 서혜원 박세미(프리랜서)
사진 이상천 스타일링 이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