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8 : Art÷☐ = ∞
예술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또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 하나 마나 한 이 이야기를 쓴 이유? 우리의 삶이 갈수록 ‘예술화(artistic)’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트나우>는 올겨울 일상을 예술로 바꾸는 아트라이프 51가지를 소개한다. 카페에서, 거실에서, 전시장에서, 공원에서, 사무실에서, 화장실에서, 침대 위에서 무료한 삶을 아름답게 바꾸는 가구와 디자이너, 쇼윈도, 상점, 굿즈, 작품, 옥션, 도록, 조명, 여행, 심지어 당신의 삶을 지배하는 인스타그램까지 대거 끌어왔다. 이 특집을 준비하며 우리는 느꼈다. 예술은 작품의 재료나 창작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상 그것에 속한다고 알고 있는 어떤 ‘집합적 의미’에 의해 정의된다는 사실. 뭐든지 예술로 바꿔 좀 더 나은 삶을 살아보자고 시작한 기획. 지금 시작한다.
아트 퍼니처에 관한 존재론적 질문
작품과 가구 둘 중 하나로 규정짓기엔 애매모호한 아트 퍼니처가 일상의 예술이 될 수 있을까?

1 Ettore Sottsass, Ashoka, Table Lamp with Structure in Painted Metal, 85×74cm, 1981 Photo by Aldo Ballo, Guido Cegani, Peter Ogilvie ⓒ Memphis srl
2 서울 용산구에 있는 갤러리 카페 마다가스카르.
‘예술을 입은 가구’, ‘이 가구, 완전히 작품이다’라는 표현은 낯설지 않다. 균형이 맞지 않는 테이블, 앉을 수 없는 의자처럼 가구의 기능에 의문을 품게 하지만 화이트 큐브에 놓이면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개념 면에서도 곱씹어볼 만한 주제를 지닌 ‘아트 퍼니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라는 식상한 표현 외에 아트 퍼니처가 놓일 합당한 자리는 어디일까? 요즘 미술관은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라벨을 붙인 가구를 전시하고 있으며 소더비, 크리스티 등 옥션 역시 컬렉션 차원에서 가구를 다루고 있다. 일상의 물건에서 심미성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은 그 역사가 짧지 않다. 19세기 미술공예운동이나 아르누보는 공예를 예술로 격상시키려 했고, 20세기로 넘어오면서 공예라는 단어 대신 ‘디자인’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가령 ‘어떤 오브제가 예술성을 획득할 수 없는가?’, ‘예술품은 장식품과 무엇이 다른가?’, ‘예술가와 디자이너는 구분 지어야 하는가?’ 따위의 물음 말이다. 내게도 마땅한 대답이 없다는 고백부터 하겠다. 그래도 명쾌함을 원한다면, 슬쩍 ‘포스트모더니즘’ 핑계를 대겠다. 1970~1990년에 걸쳐 예술과 디자인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 운동인 포스트모더니즘 덕분에 많은 것이 분명하고 단순하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 포스트모더니즘 디자인의 대부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를 중심으로 한 멤피스 그룹(Memphis Group)을 떠올려보자. 그들은 상업성을 넘어 예술성과 실험성을 갖춘 디자인을 내세우며 디자이너의 정신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동시대의 순수예술가들도 자신의 예술관을 표출할 수 있는 자유로운 창작물의 일환으로 아트 퍼니처를 제작했다. 덕분에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영역 간의 뚜렷한 경계를 가르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 론 아라드(Ron Arad), 마크 뉴슨(Marc Newson) 등의 개성 강한 이름을 등에 업은 아트 퍼니처는 이제 ‘작가의 창조적 사고와 미적 감성을 통해 완성한 조형 가구’로서 독자적 존재감을 과시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평범한 물건에서 ‘미’적인 것과 ‘실용’적인 것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면 물건의 미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듀이의 말처럼 미적 가치를 담은 대상은 형태와 기능, 컨셉과 실천이 일치할 때 완성된다. 그 대상이 예술 작품이든 가구든.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는 창작 다음의 일이다. 글 이가진(미술 칼럼니스트)
커피, 디저트 그리고 아트
때로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커피 한잔과 예술이 주는 여유를 즐기고 싶다. 그러나 아쉽게도 미술관은 음식물 반입 금지. 그렇다면 이 모두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카페는 어떨까? 사진작가 신미식이 운영하는 ‘갤러리 카페 마다가스카르’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인 아프리카의 외딴섬 마다가스카르를 닮았다. 작은 소품 하나에서도 그 섬의 흔적이 묻어나며, 갤러리 카페답게 신미식과 신진 사진작가의 작품을 언제나 즐길 수 있다. “이 공간에서 누구든 편히 쉬다 가길 바란다”고 말하는 신미식. 그가 추천하는 메뉴는? “카페에서 직접 만든 브라우니와 자몽에이드.”

3 쉬빙의 <지서>에는 글자가 단 한 자도 없다. 4 자오이첸의 브랜드 Huxi에서 출시한 쿠션.
글이 필요 없는 책
살바로드 달리는 영화, 앤디 워홀은 사진. 영감이 솟구치는 예술가들은 다른 장르에 눈독을 들이곤 하는데 그중 쉬빙의 책 <지서>는 ‘진짜’ 독특하다. <지서>에는 글자가 없다. 한자를 예술로 시각화하는 쉬빙이 글자 없는 책을 냈다는 게 의아하겠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되레 감탄사가 쏟아진다. 글로 쓴 책은 다른 나라로 건너갈 때 번역이 필수지만 <지서>는 그 과정이 필요 없다. 쉬빙이 세계 공용어를 창조한 것. 그가 전 세계를 돌며 수집한 기호 2500여 개만으로 지은 소설은 아무나 읽을 수 있지만 누구도 똑같은 결과를 낼 순 없다. 게다가 글자가 없기에 펼칠 때마다 달리 읽혀 매번 신간 같은 느낌을 준다. 여기서 에디터의 마음에 쏙 들어온 한 구절을 공유하려 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은 센트럴 파크와 함께 있다.” 몇 페이지냐고? 그건 비밀이다. 알려주면 재미없으니 쉬빙이 창조한 세계 공용어를 직접 해석해보길!
작가가 런칭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1982년생으로 젊은 작가로 분류되는 중국의 자오이첸(Zhao Yiqian)은 자신을 사로잡은 오브제와 인간의 감정을 그린다. 그는 마치 만화경을 통해 관찰한 듯 이성적 분석을 통해 만물의 질서에 접근한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업을 “미니멀리즘의 신고전주의적 재해석”이라고 평한다. 그런가 하면 그는 자신의 작업을 토대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런칭한 작가이기도 하다. 쿠션부터 그릇, 커피잔, 쟁반, 머그잔, 안대, 휴대폰 케이스, 파우치, 지갑, 백팩, 티셔츠 등에 ‘Huxi’라는 이름을 붙여 제작·판매한다. 현대미술 작품의 완성도를 그대로 생활용품에 적용해 퀄리티는 높고 가격대는 합리적인 아트 상품을 선보이는 것. 그간 알려진 중국의 기성 작가들과는 너무 다르다고? 모르는 소리. 이게 중국 3세대 바링허우 작가들의 대표적 문화다. 자오이첸의 브랜드가 궁금한 이는 웨이보에서 ‘HUXISHOP’을 검색해보자.
에디터 김이신, 이영균, 이효정, 백아영, 최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