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ge
규범을 깨고 경계를 넘을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종합예술’이기에 더 단단해 보이던 벽이 허물어진 올여름의 공연.

뉴욕 매키트릭 호텔에서 열린 〈슬립 노 모어〉 공연. 히치콕의 〈레베카〉 분위기를 차용한 호텔 공간에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속 등장인물들이 존재하는 세계를 경험하는 이머시브 시어터 작품이다. Photo: Robin Roemer.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는 한때 뉴욕에 가면 꼭 봐야 할 공연 1순위로 꼽혔다. 화려한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공연장부터 근사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도 아닌 이 공연이 그리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기존 공연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복합적 특성과 함께, 매키트릭 호텔(McKittrick Hotel)이라는 특정 공간에서만 이뤄진다는 희소성이 뉴욕을 찾는 이들의 구미를 당겼다. 게다가 뮤지컬과 달리 대사도 없으니 언어의 장벽 없이 공연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었을 터. ‘극장’이라는 간판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어느 건물 앞, 시간에 맞춰 호텔 1층으로 입장한 이들은 짐을 맡기고 분신과도 같은 휴대전화를 봉인당한 후 자신에게 주어진 번호가 불리면 배우를 따라 이동한다. 정해진 무대도, 객석도 없다. 그리고 움직여야 한다! 〈슬립 노 모어〉는 2000년대에 들어 부상한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re)’의 대표작이다. 공연은 전통적으로 무대라는 공간과 관객이라는 수용자가 관계를 맺으며 완성되는 특성이 있다. 관객의 수준이 높아지고, 공연이 더 이상 대중을 매료하지 못하는 현시대에 등장한 이머시브 시어터는 무대 공간의 개념을 해체하고 시공간과 감각이 확장된 형태로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유도한다. 앉은자리에서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공연 현장에 참여함으로써 작품에 ‘몰입하게(immersive)’ 하는 것. 이머시브 시어터는 다양한 콘텐츠가 등장하며 기존 공연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지던 때에 공연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스위치〉 공연 2부를 장식하는 국립국악관현악단. ⓒ 국립극장.
엄숙하기보다는 좀 이색적인 공간, 확장된 극장 공간인 매키트릭 호텔에서 공연을 마주한 관객은 우선 그간 익숙해진 관람 방식을 깨야 한다. 무엇을 볼지, 어떻게 할지, 어디서 경험할지…. 모든 선택지가 관객의 손에 쥐여진다. 공연은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매체가 되고, 관객은 감상자에서 공연을 이루는 주체로 전환한다. 2003년 영국 런던에서 첫선을 보인 이래 공연은 2009년 미국 브루클린, 2011년 뉴욕에 자리 잡았다. 특히 뉴욕에선 개막한 이래 오픈런으로 연일 화제를 모았다. 현재는 폐막한 상태지만, 2016년부터 중국 상하이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오는 8월, 이곳 서울에서 소문으로만 듣던 그 공연을 만나게 된다. 〈슬립 노 모어〉는 극장으로 상정하는 하나의 건물을 무대이자 객석으로 삼는 것이 특징인데, 서울에서는 충무로의 상징과도 같은 옛 대한극장 건물에서 그 명맥을 이어간다. 1958년 단관 극장으로 개관해 2000년대에 멀티플렉스로 전환한 이곳은 한국 영화사에서도 꽤 의미 있는 공간이다. 근대의 상징적 공간이 오늘날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뉴욕 매키트릭 호텔에서 열린 〈슬립 노 모어〉 공연. 히치콕의 〈레베카〉 분위기를 차용한 호텔 공간에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속 등장인물들이 존재하는 세계를 경험하는 이머시브 시어터 작품이다. Photo: Matthew Craig.
그렇다면 공연은 대체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 것일까? 1930년대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셰익스피어의 고전 〈맥베스〉의 텍스트를 토대로 재구성하고, 히치콕 영화 〈레베카〉의 분위기를 차용했다. 대사는 모두 소거했지만, 각자 서사를 간직한 〈맥베스〉의 캐릭터와 호텔 공간이라는 콘셉트를 살린 인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곳에 입장한 관객도 하얀 가면을 쓰는 순간, 극의 일부를 구성하는 존재가 된다. 총 3시간에 걸친 공연은 1시간씩 세 차례 반복되며, 관객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제각기 다른 장면을 보게 된다. 각 층을 서로 다른 테마로 꾸미고, 침실, 욕실, 병실, 연회장, 클럽, 사무실, 서재, 바 그리고 자연 공간에 이르기까지 미로처럼 이어진 방을 누비게 된다. 어떤 순서로 보느냐, 누구를 따라가느냐, 얼마나 오랫동안 관찰하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되며, 직접 만지고 들여다볼 수 있는 다양한 소품을 통해 배우의 연기와 춤 외에 극이 전개되는 단서를 얻을 수도 있다.

뉴욕 매키트릭 호텔에서 열린 〈슬립 노 모어〉 공연. 히치콕의 〈레베카〉 분위기를 차용한 호텔 공간에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속 등장인물들이 존재하는 세계를 경험하는 이머시브 시어터 작품이다. Photo: Stephanie Crousillat.
한편, 전통적 공연 체제의 전복을 꾀하는 독특한 연주회도 열린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 KBS교향악단이 한 무대에 오르는 〈스위치〉(6월 21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가 그 주인공. 1부에선 KBS교향악단이 국악관현악 레퍼토리를 들려주고, 2부에선 이를 전환해(switch) 같은 레퍼토리를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한다는 기획이다. 양악과 국악을 모두 즐기는 관객, 오케스트라 혹은 국악관현악에 관심 있는 관객에게 물음표와 느낌표가 교차하는 무대를 선보이겠다는 발상이다. 우리 국악기를 토대로 서양 오케스트라의 편성을 차용해 하나의 장르로 거듭난 국악관현악은 이제 환갑을 맞이한, 여전히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장르다. 창작 국악의 태동과 함께한 국악관현악만큼 우리 전통의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예술이 있을까? 〈스위치〉는 장르가 탄생한 시점으로 돌아가 그 본질을 짚는 동시에, 이후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하는 전복의 시도가 아닐까 싶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을 국악관현악 편성에 맞게 편곡해 연주하는 시도는 자주 있었지만, 반대로 국악관현악곡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은 쉽사리 예측할 수 없는 그림이니 말이다. 두 악단이 공통으로 들려주는 국악관현악 ‘무늬(Moo Nee)’(최지혜 작곡)와 더불어 굿 음악을 깊이 탐구해온 이고운의 ‘무당의 춤’, 가야금 카덴차가 돋보이는 최지혜의 25현 가야금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어린 꽃’을 오케스트라 선율로 감상할 수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또한 최지혜의 첼로 협주곡 ‘미소(微笑)’와 대표 레퍼토리인 박범훈의 ‘신내림’을 들려준다. 가야금 연주자 문양숙, 첼리스트 주연선 등 협연자의 면면 또한 기대를 모은다.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이루는 가야금, 국악관현악과 호흡하는 첼로의 선율은 어떠할까.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과 상임 지휘자를 지낸 우리 시대의 지휘자 정치용이 포디엄에 선다.
글 김태희(무용 평론가)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