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dies of Horror
김희천 작가가 탐구한 공포는 어떤 모습일까?

김희천 1989년생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2015년 ‘바벨’이란 작품을 통해 본격적으로 현대미술 신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기술과 가상 등이 실제 세상에 준 영향을 탐구하는 그는 두산갤러리, 아트선재센터,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일민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 유수의 미술 기관은 물론 덴마크, 튀르키예, 중국, 필리핀, 독일, 이집트, 루마니아, 프랑스 등에서 열린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공포 영화라니. 오랜 시간 김희천 작가의 작품을 접한 이라면 이번 작품이 얼마나 새로운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잇고, 테크놀로지와 현대사회에 대한 사유를 덧입힌 작품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 작가는 이번에 완연한 영화적 어법을 차용했다. 지금 이 시점에 왜 이러한 방법론을 택한 것일까? 완벽하지 않은, 그래서 발생하는 틈에서 항상 다음을 기약하는 김희천 작가. 그가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시간이다.
이번 작품의 주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왜 ‘공포 영화’라는 장르를 택하신 건가요? 제가 다루는 주제나 작품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체로 제가 평소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사실 굉장히 단순한 거죠. 현재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 살피고, 직관적 · 직감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작품에 엮여 있어요. 공포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요. 어느 날 문득 동료 작가들과 ‘왜 요즘 공포 영화는 무섭지 않을까?’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이어간 적이 있어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모두 공감하는 부분은 너무 깨끗해진 화질이었어요. 불가사의한 일,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시각화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공포 영화의 화질이 너무 좋다 보니 매끈하고 선명한 이미지가 몰입을 방해한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했죠. 저는 이 지점, 즉 화질이 좋아서 공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매우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어요.
어떤 점에서 의미심장했나요? 현대사회의 공포를 생각해보게 됐어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드러난 세상이잖아요. 기술을 통해 우리의 삶과 그 ‘외곽선’을 정밀하게 포착하게 됐어요. 예를 들어 알고리즘은 검색 키워드를 기반으로 이후 내가 검색할 것, 혹은 좋아할 만한 것을 제안하는 역할을 하죠. 기술이 삶의 바운더리를 정확하게 포착해 제안하면서 또 슬며시 제한하기도 하는 듯해요. 이러한 상황에서 공포심이 생길 수 있을까요? 우리가 미지의 무언가,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날 수 있을까요? 이런 관점에서 공포를 느낄 자유 혹은 의지를 박탈당한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결국 공포 영화를 통해 우리 삶에 생기는 균열이나 위기를 다루는 거군요. 그렇다면 전시 제목, 작품 제목은 왜 ‘스터디’라고 하신 건가요? 사실 공포 영화는 사람들을 무섭게 하는 ‘장치’를 많이 사용하는 장르잖아요. 영화의 형식을 차용하는 것도 저에겐 도전이었지만, 공포를 만들어내는 그 장치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했죠. 작가로서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공부하고 또 연구하고 싶은 건 누구나 당연한 욕구예요. 그렇다면 즐겨 보고 또 흥미를 느끼는 공포 영화를 연구하면 재밌게 작업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많은 작품을 보고 또 보고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제목에 담긴 의미의 전부는 아니에요. 2023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받은 후 일주일 정도 파리에서 예술을 경험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로댕 미술관에 갔는데, 오귀스트 로댕의 스터디 모델을 전시장에 펼쳐놨더라고요. 모두가 아는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그 과정에 존재하는 작품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어떤 가능성을 내포한 듯이 느껴졌죠. 그간 작업하면서 너무 완성에만 치중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단순하게 ‘스터디’로서 작업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공포 영화를 많이 봤다고 했는데, 무서움을 안 느끼는 편인가요? 이번 작품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공포는 일종의 답답함이나 좌절감, 무기력함에서 발생하는 감정이에요. 익숙하지 않은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위기감, 불안감, 초조함 등을 느낄 수 있잖아요. 이는 신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인데, 이를 통해 이 시대 공포라는 감정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덧붙여 설명하면, 기술과 데이터는 점점 더 우리를 작은 공간에 속하게 합니다. 기술 덕에 우리 세상이 확장되었지만, 동시에 납작한 화면이나 파일로 집적되면서 ‘플랫’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또 시간은 흐르지만, 그것들이 기술로 인해 분절되기도 하고, 어떤 시점에 우리를 가둬버리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이런 감각이 미디어 시대에 우리가 느끼는 공포이자 불안감 아닐까요? 사실 저는 공포 영화가 만들어내는 무서운 감정을 잘 느끼지 않아 그런 영화를 즐겨 보는데, 이번에 연구의 일환으로 평소보다 많이 보다 보니 악몽을 수없이 꿨어요.(웃음)

위 스터디(스틸 이미지), 2채널 비디오, HD(16:10), 5.1채널 오디오, 40분, 2024, 에르메스 재단 제작 지원. 사진 제공 에르메스 재단. ©김희천.
아래 〈스터디〉전 설치 전경, 2채널 비디오, HD(16:10), 5.1채널 오디오, 40분, 2024, 에르메스 재단 제작 지원. 사진 제공 에르메스 재단. ©김희천.
이번 작품의 또 하나 주요한 주제가 레슬링이잖아요. 실제 레슬링 경기 장면에서 선수들의 몸이 사라져 ‘실종’되는 순간을 표현하셨어요. 이러한 주제를 작품에 끌어온 이유가 궁금합니다. 꽤 오랫동안 레슬링을 했어요. 손을 통해 경험하는 신체에 관심이 많았어요. 레슬링의 경우 손과 손이 밀접하게 맞닿고 부딪치면서 상대의 신체를 감각하죠. 동시에 내 신체가 움직일 수 있는 무게중심을 만들기도 하고, 그 공간을 그리기도 합니다. 절대로 혼자 할 수 없는 매력적인 운동이에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대가 없는 레슬링을 생각하게 됐어요. 첨단 기술로 상대방을 지워보자고 마음먹었죠. 아직 완전하지 않아 그 과정에서 지워진 신체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신체와 맞닿은 상대 레슬러의 외곽선도 흐려지는 거예요. 완벽하지 않은 기술 덕에 어떤 틈이 발생했죠.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을 사용하다 보면 항상 아직은 부족해요. 그런데 그 부족함이 균열을 내고 틈을 만들면서 답답하고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이미지라도 희망을 느낄 가능성 역시 내비치는 거죠.
영화의 문법을 차용했어요. 그 와중에 오래된 비디오 같은 화면 효과를 내거나 아무 이미지도 입히지 않고 사운드만 남기는 방식 등 다양한 시도를 하셨더군요. 기왕 스터디를 할 거면 제가 잘 못하는 걸 시도해야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더 재밌잖아요. 일하면서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작업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영화는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건지 아무것도 모를 때 결말부터 찍었어요. 배우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서 연출해보고자 했죠. 사실 어떻게 보면 연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한 거예요. 서툴기 때문에 망할 수도 있지만, 도전하는 입장에서 그럼에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솔직히 털어놓으면 시작하고 후회 많이 했어요. 정말 힘들었거든요.
온통 깜깜한 화면에 사운드만 나오는 부분이 정말 독특했어요. 새로운 시도라는 말에도 공감합니다. 사실 공포 영화에서 사운드는 정말 중요한 요소잖아요. 이번에 어떤 방식으로 사운드 작업을 했나요? 모두 같은 얘기를 하죠. 공포 영화는 소리가 정말 중요하다고 말이에요. 많은 공포 영화에 소리가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재밌는 사실이죠? 소리는 거리를 두고 다가오잖아요. 실제로 우리는 많은 소리를 듣는데, 그 정체를 모를 때 공포를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포 영화 제작자는 이 부분에 주목하고, 이를 중요한 장치로 활용합니다. 이런 발상을 전환해서 소리 자체를 전면화하고자 했어요. 실제 상업 영화라면 화면을 끄고 목소리, 사운드만 내보낼 순 없겠죠. 깜깜할 때 들리는 소리가 시각화될 때 상상하던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거죠. 그러면 그 시간 차이가 간극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레슬링이죠. 어떤 간격을 만들어내고, 그 틈을 파고들 수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어요.
작품은 2채널로 선보입니다. 시각적 모호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일까요? 그간 항상 싱글 채널 작품을 만들어왔어요. 싱글 채널의 장점은 한 화면에 모든 것을 구현할 수 있고, 모두가 익숙한 방식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영화를 싱글 채널로 만들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 명확하게 보였어요. 틈을 만들고 거기서 발생하는 공포를 다루고자 했는데, 채널 하나로 마무리하면 저 스스로 높은 완성도를 기대할 것 같았어요. 주변의 많은 사람이 그랬어요. 매체가 달라져도 결국 진실한 작업에서는 자기 자신이 드러나기 마련이라고요. 그래서 어떤 형식이든 ‘김희천’이 묻어날 수밖에 없는 거죠. 상업 영화는 원래 시나리오 준비 과정부터 예산 확보, 제작까지 몇 년에 걸쳐 준비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과정을 거칠 수 없었어요. 의외성이 신의 한 수인 거죠. 제가 의도한 것이 안 나오더라도 재밌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제가 그간 포착해온 것, 잘 모르지만 일단 찍은 장면을 보다 보면 ‘a아, 이래서 내가 이걸 담아냈구나’ 싶은 부분이 있어요. 시간이 지나 그런 것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고요.

스터디(스틸 이미지), 2채널 비디오, HD(16:10), 5.1채널 오디오, 40분, 2024, 에르메스 재단 제작 지원. 사진 제공 에르메스 재단. ©김희천.
그렇다면 이번에 제일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어요. 촬영하며 배워나갔죠. 그러다 보니 스스로 생각했을 때 이 장면은 이렇게 찍는 게 맞는 것 같았는데, 막상 그 장면을 담고 보니 정말 이상한 거예요. 영화는 여러 환경에서 찍어도 그걸 이어 붙이면 하나의 이야기 줄기를 만들잖아요. 그런데 분명 줄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어보니 안 어울리는 거예요. 그 흐름은 이미지로 이뤄진 구조라고 생각했을 때, 이미지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 구조만 있다면 나만의 서사로 만들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었는데 충격이었죠. 아무리 연출한다고 해도 능숙하지 않으니 만들어서 찍은 장면이라고 생각한 모든 것이 엉터리처럼 보였죠. 유명한 영화감독도 모든 걸 정하고 할 수는 없겠다 싶었어요. 그들 역시 자기가 찍은 것을 보고 순간순간 판단을 내리며, 처음에 계획한 것과 다른 요소를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없는 부분, 힘들일 수 없는 부분을 일부러 블랙으로 처리했어요. 사운드만 나오게 한 거죠. 그 역시 저만의 영화이자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새로운 시도죠.
도전을 즐기는 편인가요? 최근에는 팀 작업을 많이 했어요. 올해는 영화지만 작년엔 게임 엔진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었거든요. 그것도 혼자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완전한 도전이었어요.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니 영화보다 게임 엔진이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미지가 필요하면 힘들더라도 직접 만들 수 있으니까요. 직접 모든 신을 촬영해야 하는 영화는 물리적 상황이 필요하다 보니 만만치 않았죠. 솔직하게 말하면 익숙해지면 바로 다음 것을 찾고 싶어져요.
이런 작품을 통해 극복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스스로에게 너무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어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실제로 잘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잘 안다고 여기며 살까요? 지금 시대 기술은 나의 외곽선을 포착하고, 그 안과 밖을 정확하게 구분하죠. 기술은 3년 전 내가 뭘 했는지, 작년 같은 날 무엇을 먹었는지 절대 잊을 수 없도록 지속적으로 리마인드하죠. 이런 부분이 좌절감을 불러와요. 답답하고 우울하고 무기력해집니다. 과연 무엇이 ‘나’인 걸까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어렵기도 하죠.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고 싶습니다.
벌써 10여 년 동안 작가로 활동해왔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가겠죠. 커리어의 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5년 전에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작품을 지금은 정말 편안하게 받아들이기도 해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몰라주면 답답하고 슬프기도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면서 ‘이 작품은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그 메시지가 굉장히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가 닿더라고요. 그래서 직감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다 싶으면 확 뛰어들어 작업하고, 당장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는 것이 중요해요. 내용은 시대가 변하면 낡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방식이나 태도는 남습니다. 그것이 다른 세대 작가와 대화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거예요. 시간이 지나도 재밌는 거 하고 싶어요. 이전에 안 해본 것에 도전하면서요.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