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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 Rookies

LIFESTYLE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다르지만 부산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같았다. 부산의 문화계를 이끌어갈 주역들을 만났다.

청년, 춤으로 꿈꾸다 창작 무용단 온 Dance Lab
2월 어느 날 밤, 부산문화재단 공연 연습실 5층. 남들은 다 퇴근할 시각인 오후 7시부터 시작된 춤 연습. 북청사자놀음의 반주곡인 ‘사자’의 장단에 맞춰 동갑내기 춤꾼 이연정과 권수정, 강경희가 춤사위를 주고받는다. 익살맞고 장난스러운 듯해도 동선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다시금 자세를 잡고 동작을 맞춘다. 이들의 대표작 <온(蘊)>은 2013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함께 떠들고 고민하고 장난치고 웃으며 함께한 시간이 쌓여 춤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3년, 한 공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인생을 청소에 비유한 춤을 만들게 되었다. 천명관의 소설 <고래>에 등장하는 한 구절인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에서 모티브를 얻어 끝없이 쌓이는 지나온 시간과 자신의 흔적을 밟고, 지우고, 닦아내며 나아가는 과정을 경쾌한 몸짓의 군무로 표현한 것이다. 부산민주공원 별별춤한마당,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 우리가락우리마당 신인춤제전 20주년 기념 공연 등 3년여의 시간 동안 <온>을 통해 부산의 청년 춤꾼 이연정, 권수정, 강경희가 어떻게 우리 춤의 멋과 정신을 표현하고 연구하는 춤 단체로 활동해왔는지 보여주고 있다.

왼쪽부터_ 이연정, 권수정, 강경희

이연정과 강경희는 초등학교 때부터, 권수정은 부산대학교 무용학과 동기로 만나 지금까지 적게는 13년에서 많게는 20년 넘게 몸을 맞춰온 사이다. 그렇기에 청년 춤꾼으로 살아가기에 척박한 환경 속에서 서로를 다독이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춤을 추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연정은 “행복해지고 싶다. 춤을 출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어떡하든 계속 춤을 추고 있다”고 답했다. 작년, 부산문화재단이 부산시와 함께 청년 예술인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기획한 ‘청년 문화 활성화 프로젝트’에 선정된 온 Dance Lab이 주축이 되어 부산의 젊은 춤꾼들을 모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들과 함께 부산에서 춤추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부산시민공원에서 팀별로 창작 춤을 선보이며 거리 춤 네트워킹을 벌인 것도 춤을 통해 꿈을 꾸고 행복해지고 싶어서였다. 강경희는 보다 많은 사람이 춤을 그 자체로 느끼고 받아들이길 바란다. 사람들은 춤의 동작마다 의미가 있다고 여기며 일일이 그것을 찾으려고 합니다. 춤을 보면서 그냥 좋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을요.”
한창 춤으로 꿈을 꾸는 청춘이라고, 거창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춤을 얘기해야 할까? 아니다. 권수정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춤’이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저희는 함께 춤을 추면서 큰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호흡이 잘 맞기를, 조금 더 재미있기를, 조금 더 성장할 수 있기를, 그러면서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라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경계 밖의 미술가 아티스트 강목
시원하게 민 머리에 검은 베레모를 쓰고 물감이 튄 워커를 신은 남자는 자신을 강목이라고 밝혔다. 그를 따라 막스 켄넬로 들어갔다.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난 벽과 그로테스크한 개의 이미지, 게다가 한편에 자리한 다양한 맥주까지… 에디터가 상상한 ‘작가’와 ‘아틀리에’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막스 켄넬은 아트, 패션, 음악과 요리를 만날 수 있는 복합 공간이자 제 작업실입니다. 막스(MACS)는 ‘Major Art Club Standard’를 의미하고 켄넬은 단어 그대로 사육장이란 뜻입니다. 인간이 개를 개량해 판매하듯이 저희는 작품과 디자인을 개량해 판매하는 사육자라고 생각합니다.”
막스는 도쿄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석가와 강목 작가가 함께하는 창작 그룹이다. 동아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강목 작가는 인간에게 판매하기 위해 개량된 개를 키우는 인간이야말로 체제와 문화, 계층에 의해 사육되는 존재라 생각하고 개를 통해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그간 EW갤러리, 메르씨엘비스, 갤러리봄, 바마 등 개인전과 그룹전, 아트 페어를 통해 부산과 서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젊은 부산 작가로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강목이다. 그의 작품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찾는 컬렉터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 그가 광안리 바다 인근에 아틀리에를 마련한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 활동만으로는 대중과 소통하고 싶은 제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어요. 막스 켄넬에서 강목이라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만나는 많은 사람이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막스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따로 또 같이’ 활동을 이어간다. 강목 작가가 그린 작품을 도쿄의 석가 디자이너에게 보내면 그는 그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옷을 디자인한다. 석가 디자이너가 다시 부산으로 옷을 보내면 강목 작가는 옷을 보며 떠오른 영감을 그 위에 그린다. 이렇게 작업한 결과물은 막스 켄넬에 전시된다. 도쿄에선 석가 디자이너의 옷과 강목 작가의 작품이 걸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방문하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이들의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는 ‘막스 켄넬 식’ 쇼룸을 선보였다. 작품은 머물러 있고 문화는 움직인다. 막스 켄넬을 찾는 이들이 하나둘 늘면서 이곳을 지키는 강목 작가 역시 예술을 다각도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라이브 페인팅도 그중 하나. 한 디자인 행사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라이브 페인팅을 막스 켄넬에서 선보이기로 한 것이다. 요리와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강목 작가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그렇게 완성한 그림을 사람들에게 찢어 나눠줬다. “라이브 페인팅 후 남는 건 작품 한 점뿐이에요. 그 그림의 조각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 그것이 막스 켄넬의 공기와 제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 그리고 관람객이 작품을 보며 느낀 감정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라이브 페인팅이 생소한 작업이라 익숙하지 않겠지만 꾸준히 이어간다면 많은 분들이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2월 말에는 석가 디자이너와 함께 도쿄에서 쇼를 진행하고 부산에서 막스의 레디투웨어 의류 일부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와 함께 부산에서 활동하는 음악 그룹 botr의 앨범 런칭 파티와 스페인 레스토랑 ‘문웨이브’와 함께 요리를 테마로 한 파티를 계획하고 있다. 물론 새로운 행사가 열릴 때마다 그의 신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요리, 음악, 패션의 접점에 선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예술이 있고 젊음의 열기가 꿈틀댄다. 서른 살의 젊은 작가는 그렇게 예술을 즐기고 있었다.

우아함이라는 디테일 까이에 디자이너 김아영
2001년에 파리 제8대학교 미술학 학사 과정을 밟고, 석사 과정을 이어가다 돌연 파리국립의상조합 패션 석사 과정으로 편입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우아함과 자유분방함을 넘나드는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 ‘바바라 부이’에서 3년간 일하면서 언젠가 파리 한복판에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 할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나 부득이 남편의 직장을 따라 부산으로 오게 되었다. 2012년 패션과 관련해서는 아무 연고도 없던 부산으로 오면서 디자이너로서 김아영의 삶은 그야말로 ‘리셋’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리 유학 경력과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현장 경험을 인정받아 2013년부터 F.I.C. 패션전문학원 일러스트 강의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부산과학기술대학교 패션연출디자인과와 부산 신라대학교 패션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원체 부지런하고, 의욕이 넘치는 성격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들의 패션 공모전을 함께 준비하며 선생님이 아닌 디자이너 김아영으로서 옷을 만지고 싶은 열망이 다시금 커져갔다. 결국 2014년 30~4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여성복 브랜드 ‘까이에(Cahiers)’를 런칭하게 되었다.
프랑스어로 ‘메모장, 작업 노트’를 뜻하는 까이에. 말 그대로 그녀의 아이디어를 종이 대신 원단에 새긴 옷. 우아하고 세련된 감성을 옷에 담고 싶었다는 김아영은 플라워 스팽글, 프린지 작업 등의 오트 쿠튀르적 디테일, 곡선을 강조한 입체 패턴을 통해 우아한 실루엣을 살리면서도 실생활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었다. 어떤 시즌에는 90착장, 대략 150여 개의 옷을 만들었을 정도로 열정을 쏟아부은 덕분일까. 2014년 부산패션위크에서 지역 산업 발전 및 경제 활성화 감사패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16년 대구패션페어넥스트젠 디자이너 온라인 어워즈 여성복 부문 1위, 서울패션위크 제너레이션 넥스트 디자이너 선정, 코리아패션대상 루키상 수상 등 브랜드 런칭 이후 지금까지 점점 더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작년에는 까이에란 브랜드를 패션업계 종사자에게 가급적 많이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저도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정보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부산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가장 큰 어려운 점이 정보를 나눌 패션 종사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올해는 까이에란 브랜드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고 싶어요.”
대구패션페어, 서울걸즈컬렉션, 인디브랜드페어 등 올해도 그녀의 스케줄은 컬렉션과 박람회 참가로 꽉 차 있다. 중국, 미국, 유럽 등 해외 진출도 모색하고자 올해는 중국 광저우 패션위크와 상하이 국제 의류 및 액세서리박람회(CHIC), 뉴욕 캡슐 쇼 등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여전히 강의도 하고 있다. 패션을 공부했고 그것을 가르치다 직접 현장에 뛰어들기까지 10여년이 훌쩍 지났지만, 마음만은 늘 신인의 자세, 몸은 당장이라도 컬렉션 무대로 뛰어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그녀다.
“늘 제가 만든 옷을 입고 다니고 있고, 앞으로도 제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 거예요. 브랜드는 디자이너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까이에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줄 디자인은 곧 제가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상적인 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습이 우아하고 세련된 여성미를 풍겼으면 좋겠어요.”

왼쪽부터_ 손지민, 전아란, 이보영 공동 대표

문화를 기획하다 문화 컨설팅 그룹 ‘쎄엣’
쎄엣, 영어로는 ‘Ss3tt’라고 했다. 발음도 힘들고 기억하기 쉽지 않은 이 단어가 그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독특한 이름을 지은 연유를 손지민 대표에게 물었다. “셋이 뭉쳐서 만든 그룹이기도 하고 저희가 하는 일이 다양한 일을 세팅(setting)하는 거잖아요. 많은 분이 종종 틀리지만 쎄엣에 부여한 이중적 의미가 좋아서 계속 쓰고 있어요.”
쎄엣은 손지민, 전아란, 이보영 공동 대표가 의기투합해 만든 문화 컨설팅 그룹으로 행사 기획과 공간 연출, 브랜딩을 진행한다. 지난해엔 부산디자인페스티벌을 진행하고 F1963에서 열린 한성모터스의 연말 파티 공간을 연출했다. 손지민 대표는 전체 컨셉을 기획하고 전아란 대표가 공간을 연출한다. 이후 이보영 대표가 소품과 인쇄물 등 컨셉을 더욱 탄탄히 하는 디자인 작업을 진행한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일이지만 이들의 작업에 ‘문화’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이유는 손지민 대표가 운영하는 창곶의 ‘마켓움’ 덕분이다. 2년 전 손지민 대표의 지인과 함께 셀러 10팀으로 시작한 작은 마켓은 현재 아트, 리빙, 푸드를 아우르는 100팀이 참여하는 부산의 대표 마켓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제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입소문을 타고 점점 참여하는 이들이 늘어나 제대로 운영하려면 도움이 필요했어요. 그때 도움을 청한 분이 전아란, 이보영 대표입니다.” 현재 마켓움은 창곶의 손지민 대표를 필두로 전아란, 이보영 대표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마켓움은 오롯이 창곶에서 진행하는 일이지만 마켓움을 통해 인연을 맺은 작가들이 도약할 수 있도록 브랜딩하는 일은 쎄엣의 몫이다. 이들은 지난해에 부산의 젊은 작가를 찾던 중 부부인 김민수 도예가와 천연 염색사인 구희진 작가를 만났다. 정적이고 단아한 도기와 아름다운 색감의 염색 작품이 좀 더 프로페셔널한 브랜드로 보이기 위해선 마케팅이 필요했다. 브랜드를 재정비한 후 새로 얻은 이름은 ‘구김’. 이후 마켓움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브랜드를 알리게 되었다. 전아란 대표는 쎄엣의 브랜딩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라 좋은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할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산과 경남에는 정말 재능 있는 작가가 많아요. 작지만 프로페셔널한 브랜드도 많고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제품과 작가를 소개할 수 있는 터를 만들어주는 곳이 마켓움이나 디자인 페스티벌이었어요. 행사가 끝난 후에도 작가나 브랜드를 찾는 이들이 꾸준하다면 부산의 문화가 좀 더 풍성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쎄엣 스튜디오에 전시한 Wave 작가의 도자 작품

마켓움에서 인연을 맺은 이들이 쎄엣이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한 지 이제 1년. 세 사람은 서로의 강점을 더욱 잘 활용하는 법을 배웠다. 작년 12월, F1963에서 열린 마켓움 이후 쎄엣은 또 하나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F1963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것. 아직은 정확히 밝힐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이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때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행사 기획자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시각디자이너로 활동하지만 부산의 젊은 작가나 브랜드와 함께하는 자리라면 이들은 언제든 뭉칠 것이다. 사실 문화라는 거창한 명목보다는 부산 시민이 좋은 브랜드와 작가를 즐겁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게 저희 일인 것 같아요. 많은 이들이 모이고 함께 즐기다 보면 언젠가 문화가 되지 않을까요?”

 

에디터 박현정(hjpark@noblesse.com), 손지혜(프리랜서)
사진 여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