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ing Hawaii
본격적인 가을을 알리는 9월, 국제적 명성을 날리는 스타급 마스터 셰프들이 하와이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여름에 못다 즐긴 휴가를 위해서냐고? 천만의 말씀. 바로 ‘2014 하와이 푸드 & 와인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13명의 셰프와 소믈리에가 참여한 모던 호놀룰루의 파티
모던 호놀룰루에서 펼쳐진 파티 전경
하와이를 다시 찾은 건 1년 만이었다. 완연한 가을에 돌입한 9월의 하와이를 내리쬐는 햇볕은 여전히 기분 좋게 따가웠고 폐까지 깊게 들이마신,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다공기는 온몸을 새로운 에너지로 채워주는 듯했다. ‘멜팅 포트(melting pot)’, 즉 ‘문화의도가니’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하와이는 가을을 맞아 여러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었고, 하와이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이 만들어내는 눈부신 광경과 어우러져 우리네처럼 풍성한 가을의 추수를 완성해가고 있었다.
가을 하와이에선 유독 맛있는 향기가 골목 구석구석을 감싼다. 시내 곳곳의 유명 레스토랑 앞은 테이블이 비길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 중심에는 올해로 4회째를 맞는 하와이 최대 규모의 음식 축제 ‘2014 하와이 푸드 & 와인 페스티벌’이있다. 하와이의 농업과 요리를 부흥시키고자 기획한 이 페스티벌은 각국에서 참여하는 마스터 셰프의 요리 향연과 와인 시음이 펼쳐지는데, 올해는 8월 29일부터 9월 7일까지 10일 동안 빅아일랜드와 마우이 그리고 오아후를 돌며 성대하게 개최했다.
하와이 푸드 & 와인 페스티벌의 모든 식재료는 하와이 현지에서 구한 것들이다.
마우이에서 열린 ‘Under a Maui Moon’에서 선보인 요리
페스티벌의 형식은 이렇다. 하와이를 대표하는 몇 개 호텔에서 열흘간 수 차례 페스티벌이 열리는 데, 각각 10명 내외의 셰프가 참석해 부스를 꾸미고 대표적 음식 하나를 선정해 게스트를 위해 내놓는다. 셰프 외에 전문 바텐더나 주류 회사 등에서도 부스를 설치해 마스터 셰프가 선보이는 요리에 어울리는 칵테일이나 와인, 그리고 각국을 대표하는 주류를 선보이며 홍보에 열을 올린다. 게스트는 그저 입장권을 구입한 후 셰프들이 선보이는 대표 요리와 마리아주를 실컷 맛보기만 하면 되는 것!
세계적 마스터 셰프들의 산해진미를 맛보고 수백 종류의 와인과 칵테일, 디저트까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2014 하와이 푸드 & 와인 페스티벌’이 올해는 빅아일랜드의 와이콜로아 비치 메리어트(8월 29일)에서 그 시작을 알렸다. ‘알로하 아이나, 알로하 카이’라는 제목의 오프닝 행사에는 하와이에서 난 쇠고기와 갓잡은 신선한 해산물, 하와이의 태양 아래서 재배한 야채를 주재료로 선보인 음식이 가득했다.오아후를 비롯해 미국 본토와 세계 각지에서 빅아일랜드로 모여든 미식가뿐 아니라 가족, 연인과 함께 휴가차 빅아일랜드를 찾은 관광객까지 모여들어 빅아일랜드의 낭만적인 밤을 만끽했다.
이틀 뒤인 31일에는 마우이의 하얏트 리젠시 마우이 리조트에서 페스티벌이 이어졌고, 9월 3일에는 오아후로 옮겨 할레쿨라니(9월 3일, 5일)와 모던 호놀룰루(9월 4일), 하와이 컨벤션센터(9월 6일)와 코올리나 리조트(9월 7일)에서 진행했는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총 7000장에 달하는 입장권이 매진되는 기록을 달성했다. 특히 고급 샴페인의 대명사 ‘크루그(Krug)’ 샴페인과 캐비아를 무한 제공한 할레쿨라니 호텔의 파티는 티켓 가격이 무려 1000달러에 달했음에도 티켓 오픈 몇 분 만에 매진되며 페스티벌의 뜨거운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사실 그동안 여행사를 통해 하와이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이드의 “하와이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라는 강권에 포르투갈 도넛인 말라사다, 지오바니 트럭의 새우구이, 파인애플 농장에서 파는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일본인이 회 대신 스팸을 올려 초밥을 만들어 먹었다는 데서 유래한 스팸무스비 등을 맛보았을 것이다. 패스트푸드는 아니지만 딱히 요리라고 부르기 어려운 음식,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하와이의 대표 음식은 딱 거기까지였다. 제임스 비어드상을 수상한 하와이의 로이 야마구치(Roy Yamaguchi)와 하와이 퓨전 요리로 유명한 호놀룰루 레스토랑의 셰프 앨런 웡(Alan Wong)은 하와이 음식 문화가 세계 속에 그렇게 자리매김해가는 게 안타까웠다. 둘은 의기투합해 2011년 하와이식 전통 식자재만 이용한 하와이 최대 규모의 음식 축제를 열었고, 그것이 올해 네 번째를 맞은 ‘하와이 푸드 & 와인 페스티벌’이다. 앞서 말했듯 매년 수천 장의 입장권은 티켓 오픈과 함께 매진된다.
하얏트 리젠시 마우이 리조트 & 스파에서 진행된 ‘Under a Maui Moon’ 페스티벌에 참여한 셰프들이 진지한 모습으로 요리 중이다.
한남동 비채나의 김병진 총괄 셰프가 선보인 물회
모던 호놀룰루에서 맛본 새콤한 맛의 하와이안 샐러드
“하와이의 발달한 농업과 요리를 널리 알리고자 기획한 만큼 페스티벌의 수익금은 하와이 전통 식자재의 지속적 조달을 위해 하와이농업재단 등 8개에 달하는 하와이 요리 관련 협회에 기탁하고 있습니다.” 앨런 웡의 말이다. 그는 올해도 각 섬에서 펼친 페스티벌 행사장을 종횡무진하며 멀리 한국에서 온 기자단까지 손수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올해 페스티벌에 참여한 스타 셰프는 60여 명. 기쁘게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 셰프가 이름을 올렸다. 한남동 한식당 ‘비채나’의 김병진 총괄 셰프다. 하와이의 전통 식자재만 사용해 다채로운 세계 각국의 요리를 선보이는 이 페스티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김병진 총괄 셰프는 9월 4일 저녁 모던 호놀룰루(The Modern Honolulu)의 ‘A Lucky Modern Buddha Belly’ 페스티벌에서 물회를 선보였다. 그가 페스티벌에 초대받을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비채나를 이끌고 있는 조희경 대표와 이 페스티벌을 설립한 앨런 웡의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깊었기 때문.
“앨런 웡은 저에게 멘토 같은 분이에요. 스팸무스비가 대표적 전통 음식으로 회자되는 하와이에서 셰프가 얼마나 성장하기 어려운지 알고 계신 분이죠. 지난 10년간 하와이의 정치인과 셰프, 농부들까지 모여 포럼을 열고 하와이 요식업과 음식문화의 미래에 대해 오랜 고민을 하셨대요. 그래서 이 페스티벌을 시작한 거고요. 앨런 웡은 늘 저에게 말합니다. 이런 행사에 참여해 한국 셰프와 한국의 전통 음식을 세계에 알리는 건 아주 뜻깊은 일이라고요.”
김병진 총괄 셰프는 이미 미국 나파밸리, 브라질 상파울루,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등 해외 만찬에서 한식을 선보인 실력파. 그가 지난해에 선보인 고추장목살찜에 이어 올해 물회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든 일관성 있게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해에 고추장으로 따뜻한 음식을 만들었으니 이번에는 고추장의 가벼운 맛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일반 회는 간장에 찍어 먹는데, 물회는 섞고 비벼서 먹잖아요.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하와이의 문화와 딱 어울리는 메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국물까지 후루룩 다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감칠맛 나는 물회를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의도였고, 이것은 모던 호놀룰루를 찾은 게스트들의 입맛에 딱 맞았다. 무엇보다 물회는 소스, 즉 육수가 중요한데, 감초와 계피를 넣은 덕분인지 쌉싸래한 계피 향과 감초의 은은한 단맛, 그리고 사과와 배를 통째로 넣어 숙성시킨 육수의 맛은 동서양의 게스트 입맛을 모두 사로잡은 최고의 비밀병기였다. 접시가 손바닥만 하긴 했으나 무려 세 접시를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운 뒤 비채나에서 마리아주로 선보인 ‘화요25’를 한잔 곁들이자 고추장으로 인해 자칫 텁텁할 수 있는 뒷맛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시애틀에서 온 스타 셰프 톰 더글러스
하와이의 유명 파티시에 미셸 카르-우에오카
모던 호놀룰루는 김병진 셰프 외에도 행복과 풍요 등을 상징하는 러키 부다(Lucky Buddha)를 모티브로 13명의 유명 셰프와 소믈리에가 동서양을 접목한 태평양 요리의 진수를 선보였다. 샌프란시스코 블루버드 레스토랑을 이끌고 있는 미슐랭 스타 셰프 낸시 오크스는 전복에 고수를 뿌리고 그릴에 구운 전복 요리를 선보여 인기를 얻었고, 미국 요식업계의 큰손으로 시애틀을 비롯해 많은 지역에서 이름을 걸고 다수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스타 셰프 톰 더글러스(Tom Douglas)도 파파야를 활용한 새로운 맛의 전복 요리를 선보이며 미국 스타 셰프의 자존심을 세웠다.
하와이를 대표하는 미식 페스티벌에 하와이안 셰프가 빠질 수 없다. ‘A Lucky Modern Buddha Belly’ 페스티벌에서 하와이안 디저트 요리를 선보인 하와이의 유명 파티시에 미셸 카르-우에오카(Michelle Karr-Ueoka)는 현재 호놀룰루에서 남편과 함께 MW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데, 그녀의 주종목인 디저트뿐 아니라 하와이에서 자란 유기농 작물로 건강한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여러 나라의 문화가 아름답게 뒤섞인 하와이안 컬처를 살린 음식을 만들자는 것이 우리 부부의 모토예요. 현지에서 재배한 작물로 디저트를 만들지만 거기에는 애초에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서 가져와 심은 채소도 많이 들어가 있죠.” 파티시에로서 늘 단것과 싸워야 하는 그녀가 추구하는 이상적 디저트는 디저트를 먹는 이들이 ‘fat’이 아니라 ‘fit’되게 하는 디저트. “모든 디저트는 하와이에서 나는 망고, 파인애플 등 신선한 과일을 주재료로 사용합니다. 알레르기의 여부도 레시피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특히 글루텐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많아 모든 음식을 글루텐프리로 만들어요. 그리고 디저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양’이에요. 저는 정확히 한 사람만 먹을 수 있는 양으로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지 ‘뚱뚱’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마우이에서 펼쳐진 페스티벌에서는 ‘케이키 인 더 키친’이라는 가족 단위 행사가 추가되었다
요리에 사용된 육류와 채소들은 모두 하와이 현지에서 난 것들이다.
MW 레스토랑은 페스티벌 기간 중 열린 ‘파머스 쇼’에도 참가했다. 하와이 대표 파머들이 모여 직접 재배하고 키운 유기농 작물과 해산물 등을 소개하는 ‘파머스 쇼’는 하와이의 대표 참치 맛집 ‘니코스 피어 38’이 위치한 38번 부두 ‘Pier 38’에서 진행했다. 특히 38번 부두는 관광객은 모르는 현지인이 즐겨 찾는 숨은 맛집이 즐비한 곳이니 하와이를 여행할 계획이라면 꼭 한번 방문해보는 것이 좋을 듯. 이 페스티벌에서는 몰로카이 섬에서 온 싱싱한 꿀부터 이름 모를 다양한 생선, 하와이에서 직접 기른 쇠고기와 돼지고기 등을 구경할 수 있었다. 미셸 카르-우에오카가 운영하는 MW 레스토랑에서는 롤을 선보였는데 롤을 살짝 튀긴 후 아래에 김을 깔고 위에는 우니를 얹어 강한 바다 향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마우이 섬의 하얏트 리젠시 마우이 리조트 & 스파에서 6명의 마스터 셰프가 6단계의 코스 메뉴를 선보였다. ‘케이키 인 더 키친(Keiki in the Kitchen)’이라는 새로운 가족 단위 행사도 추가했는데, 이곳을 찾은 가족이 한데 모여 하와이의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보는 체험 이벤트와 더불어 휴가를 즐기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페스티벌이 열린 힐튼 와이콜로아 빌리지, 모던 호놀룰루 등의 호텔 또한 행사와 연계한 특별 숙박 패키지를 선보이며 이번 페스티벌에 큰 힘을 보탰다.
페스티벌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호텔들도 각 시그너처 레스토랑에서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이영애와 한지혜, 김윤진 등이 결혼식을 올려 더욱 유명해진 카할라(Kahala) 호텔의 레스토랑 베란다 라운지(The Veranda Lounge)에서는 ‘푸드 앤 와인 테이스팅(Friday Night Flight Celebrates Canary Island Food And Wines)’ 프로모션을 펼쳤다. 전 세계 와인 애호가를 위해 마련한 이 행사는 9월 5일 카할라 호텔의 대표 레스토랑 베란다 라운지에서 진행했다. 500년 전통의 와인 생산지이자 최근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카나리아 제도에서 생산, 공수한 와인과 4코스 요리를 제공했다. 요리에 맞춰 와인도 네 종류를 준비했는 데, 요리와 와인의 환상적인 마리아주도 일품이었지만 이 훌륭한 디너가 단돈 50달러였다는 점 또한 카할라 호텔을 찾은 손님에겐 꽤나 매력적인 요소였을 터. 그 때문에 레스토랑 곳곳에서 호텔에 묵는 관광객뿐 아니라 데이트를 즐기러 나온 연인과 생일 파티를 위해 모인 가족까지 페스티벌의 긴 여정을 즐겼다.
‘2014 하와이 푸드 & 와인 페스티벌’을 둘러보며 그동안 우리가 하와이를 지극히 단순하고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봤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퍼의 나라, 쇼핑의 천국 정도로만 알고 있던 하와이는 우리가 모르는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문화가 곳곳에 숨어 있는 보석 같은 곳이다. 무엇보다 하와이를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건 하와이 특유의 다국적 문화를 앞으로 30년, 50년 후 어떻게 발전시킬지 도모하고 모색하는 사람들이다. 늘 새로운 것에 마음을 활짝 열어, 그래서 상대 또한 마음을 열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하는 하와이의 힘과 매력은 이토록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곳에 있다.
페스티벌 기간에 호놀룰루 헤에이아(He’eia)에서는 ‘라우리마’라는 친자연주의 요리 행사가 펼쳐졌다. 바다 또는 농지에 직접 들어가 진행하는 것으로 하와이의 땅과 바다, 자연을 찬미하며, 좋은 음식을 재배하고 만들기 위한 노동의 신성함에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제공 하와이 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