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ia ‘Magic Shoes’
올해로 창립 120주년이다. 1895년부터 최고급 수제화를 제작해온 벨루티가 새롭게 오픈한 레디투웨어 워크숍을 둘러보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의 소도시 페라라를 찾았다. 그곳에서 들려온, 벨루티 장인들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연주하는 아주 특별한 오페라 이야기.


페라라 워크숍 로비
벨루티 슈즈, 남자들의 로망이다. 제품의 스타일과 품질 그리고 ‘벨루티’라는 이름이 풍기는 오라는 온몸이 전율할 만큼 품고 싶은 소리가 아닌가. 이를 소장하는 것은 근사하고 고급스러운 취향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일 터. 벨루티의 슈즈는 크게 3가지 타입이 있다. 기성화, 기성화보다 편안한 피팅감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3가지 너비의 디메저 라스트로 제작하는 스페셜 오더,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로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맞춤 생산하는 비스포크다. 사실 벨루티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슈즈 공방을 지난 십수 년간 단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 브랜드의 다양한 컬렉션 중에서도 특히 슈즈 공방은 성소로 꼽혀 취재를 엄격히 제한했기 때문. 심지어 브랜드 담당자에게도 여간해선 출입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은밀한 장소다. 한데 올해 창립 120주년을 맞아 특별히 그 문을 열었다. 전 세계 극소수의 취재진에게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벨루티의 워크숍을 방문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던 새벽,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프렐류드를 듣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최근 들어 클래식 음악을 조금씩 듣는 설익은 취미가 생겼고, 랜덤 모드로 맞춰둔 오디오가 마침 이 곡을 재생한 것뿐이었다. 어쨌든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치고는 절묘한 선곡이라고 생각했다. 바흐가 남긴 가장 대중적 작품으로 통하는 이 우아한 선율은 벨루티의 수제화가 떠올리게 하는 중후한 이미지와 더없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았으니까. 볼로냐 공항에서 남쪽으로 1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페라라(Ferrara)는 상상한 것보다 훨씬 아담하고 고요한 곳이었다. 이 도시 어딘가에서 품격 있는 하이엔드 남성 수제화의 대명사 벨루티의 제품을 생산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1895년 파리에서 시작된 벨루티의 헤리티지 속에서 이탈리아와의 깊은 인연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창립자 알레산드로 벨루티(Alessandro Berluti)는 이탈리아 태생이며, 4대손 올가 벨루티의 뒤를 이어 아트 디렉터로 선임된 알레산드로 사르토리(Alessandro Sartori) 역시 이탈리아 출신이다. 현재 디자인 스튜디오와 생산 라인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두고 있는 벨루티가 페라라에서 워크숍을 직접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 2012년 초 파리 패션 위크의 런웨이에 처음 등장한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과 함께 패션 하우스로 거듭난 브랜드의 눈부신 성장에 발맞춰 이번에 신축한 레디투웨어 워크숍은 8000㎡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지금까지 눈앞에 펼쳐진 한적한 시골 풍경과 대조되는 모던한 외관이 눈길을 끄는 이곳은 바르텔레미 그리뇨 아키텍츠(Barth´elemy Grin~o Architectes)의 작품. 제작 공정이 각기 다른 샌들이나 부츠를 포함한 모든 타입의 슈즈를 생산해낼 수 있는 세상에 몇 안 되는 워크숍인 동시에 에밀리아로마냐(Emilia Romagna) 지방과 파트너십을 맺어 운영, 미래의 슈즈 장인을 배출해내는 벨루티 아카데미도 함께 자리해 있다.
옥스포드 스칼스 슈즈
메종 고유의 염색 기법 파티나(Patina)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러운 깊이를 얻어갈 것이라는 천연 측백나무로 꾸민 외관을 뒤로하고, 신발끈을 연상시키는 구조물로 장식한 거대한 유리 천장을 통과한 햇살이 로비 중앙에 자리한 벨루티의 스테디셀러들이 놓인 목조 조각품을 비추는 내부로 들어섰다. 페라라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꽤나 멋진 비유라고 생각한 벨루티와 무반주 첼로곡의 조합이 사실은 그리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 건 작업실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 너머 각자 업무에 열중한 장인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 순간이다. 이곳에서 연주하는 선율은 솔리스트의 작품이 아니라, 클래식 음악 중에서 가장 복합적이면서 완벽한 장르로 통하는 오페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도 그때다.
파리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완성한 크로키가 완연한 슈즈로 태어나기 위해 거치는 첫 번째 관문은 라스트 작업이다. 남성 발의 평균적 형태를 분석해 개발한 나무 라스트는 필요에 따라 조각하거나 매스틱(회반죽의 일종)을 더해 각 모델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은 모형으로 거듭난다. 벨루티 고유의 스타일과 편안한 피팅감을 동시에 얻기 위한 일종의 ‘초석’ 역할을 하는 라스트가 완성되면 그 위에 종이 스티커를 붙여 디자인을 그린 후 이 스티커를 패턴으로 사용하는 것. 빠른 시간 안에 패턴을 얻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도 고객의 발 모양에 맞춘 라스트를 따로 만드는 비스포 크 슈즈는 물론 기성화의 프로토타입 제작에도 핸드메이드 패턴을 고집하는 까닭은 컴퓨터가 잡아내지 못하는 소소한 디테일에서도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섬세한 장인의 손길로 라스트 위에 옮긴 알레산드로 사르토리의 스케치가 벨루티가 연주하는 오페라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라면, 본격적 이야기가 전개되는 1막은 가죽 커팅 공방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브랜드 특유의 독특한 컬러감을 빚어내는 독창적 염색 기법 파티나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올가 벨루티가 직접 고안한 베네치아(Venezia) 같은 최고급 가죽만 엄선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장의 베네치아 가죽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슈즈 네 켤레뿐인 탓에 커팅 과정엔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된다고 했다. 이어 가죽과 밑창을 포함한 모든 부분을 결합해 형태를 갖춘 후 스티치나 수공으로 완성하는 밑창의 컬러 처리 같은 섬세한 공정을 거친 슈즈가 다다르는 곳은 벨루티의 가장 아름다운 아리아가 울려 퍼지는 파티나 공방. 천상의 목소리를 내는 소프라노처럼 아틀리에를 이끄는 엘레나를 필두로, 예술가라 불러도 손색없는 파티나 장인들은 손놀림의 강도와 붓질의 횟수를 조절해 오직 벨루티 슈즈에서만 볼 수 있는 깊이 있는 컬러감을 얻어내고 있었다. 스페셜 오더를 통해 원하는 모티브를 문신처럼 새길 수 있는 타투아주(Tatouage) 역시 이곳에서 작업한다고. 파티나 공방에서 클라이맥스를 맞은 벨루티의 오페라는 자연스레 스며든 오묘한 컬러에 윤기를 더하는 글레이징(glazing) 작업으로 일단락되지만, 그렇다고 음악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벨루티의 슈즈는 중후한 남성의 발걸음에 동반하며 특유의 아름다운 선율을 끊임없이 연주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페라라 워크숍 모습

대표 컬렉션 4
피어싱(Piercing)
부드러운 가죽 위에 사람의 피부처럼 정교하게 피어싱을 한 예술적 모델. 윈저 공이 최초로 주문한 이래 유럽 왕족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아왔다.

올가 Ⅱ(Olga Ⅱ)
벨루티 고객이라는 남다른 자긍심과 유대감으로 모인 ‘클럽 스완(Club Swann)’을 위해 디자인했다. 특별한 명성과 자부심을 표현한다.
워리어(Warrior)
현대 남성에게 내재되어 있는 전사적 기질을 표현한 라인으로 이 시대 최후의 갑옷을 상징하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성공한 남성의 치열한 투쟁과 진취적 기상을 담았다.
댄디(Dandy)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거침없이 발을 내딛어 성공을 이어가는 현대 남성의 감성을 담았다. 대담하면서도 우아한 커팅과 독창적 디자인을 갖추었다.
▶ 벨루티 비스포크는 본사 최고의 장인이 전 세계를 순회하며 맞춤 주문을 받는 ‘비스포크 데이’를 통해 전개한다. 국내에서는 4월, 수석 슈메이커 장 미셸(Jean Michel)이 방한해 갤러리아 명품관 이스트와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에디터 서재희 (jay@noblesse.com)
현지 취재 배우리(파리 통신원) 사진 제공 벨루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