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 of Pairing
성질이 전혀 다른 어떤 것이 만나도 자연스럽게 교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야말로 예술의 힘이 아닐는지. 술과 음악, 컬렉터와 예술가, 서울 어느 거리에서 목도한 뜻밖의 만남.

‘코리안 아이 2020’ 기자간담회와 참여 작가의 팝업 전시가 KEB하나은행 본사 1층에서 열렸다.
2019년 6월 20일
을지로 / 코리안 아이 2020 아트 프로젝트와 금융
“어찌 보면 굉장히 전통적 후원 방식이죠? 꾸준히 문화 예술을 후원하는 은행이 작가의 성장을 돕는다는 건, 꾸준히 예술가를 위했던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역사와 비슷할 겁니다.” 아침, 을지로에서 열린 ‘코리안 아이 2020’ 프로젝트 간담회. 후원사인 KEB하나은행을 위한 데이비드 시클리티라(David Ciclitira)의 찬사는 이해하기 쉽고 담백했다.

1 세레넬라 & 데이비드 시클리티라 부부.
2 스키라사에서 출판한 < KOREAN EYE-Contemporary Korea Art >는 75명의 한국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사업가 데이비드 시클리티라와 미술사를 전공한 세레넬라 시클리티라(Serenella Ciclitira) 부부는 40년 가까이 각국을 돌아다니며 작가를 발굴하고 후원해왔다. 2009년 한국을 방문할 당시 한국 작가를 탐색하면서 영문 자료가 없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 두 사람은 교류하던 사치 갤러리 런던과 스키라 출판사에 의뢰해 한국 작가 도록을 발행했다. 이를 ‘코리안 아이’ 프로젝트라 이름 붙이고 2012년 런던 사치 갤러리를 한국 작가의 작품으로만 가득 채운 대형 전시를 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비영리재단 PCA(Parallel Contemporary Art)를 설립한 뒤 다시 한국에 돌아와 올해 ‘코리안 아이 2020’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원작 심사는 세레넬라 시클리티라, 사치 갤러리 런던 디렉터 필리 애덤스(Philly Adams), 러시아 예르미타시 박물관 아시아 부문 디렉터 디미트리 오제코프(Dimitri Ozerkov) 세 사람이다. 선정된 작가들은 2020년 4월 29일 서울을 시작으로 영국과 러시아 등 해외 투어 전시와 홍보 부분을 지원받게 된다.

심승욱의 ‘Construction or Deconstruction’(2013).
데이비드 시클리티라는 ‘한류’ 이상의 영향력을 키우는 한국의 변화에 기대가 자못 크다. “어떤 편견이나 한계 없이 공평하게 심사할 것입니다. 작가를 평가할 때 학맥과 인맥에 휘둘리지 않도록 한국인 심사위원을 배제해야죠” 10년 전 후원을 맡은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에 이어 올해 응답한 한국의 새로운 파트너는 KEB하나은행이다. 이들은 오로지 자금만 후원할 뿐 진행 과정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서울 갤러리 시몬에서 랍스터와 포즈를 취한 필립 콜버트. 이 작가의 인스타그램 (@Philipcolbert) 팔로어는 12만3000명이다.
2019년 6월 20일
자하문로 / 필립 콜버트와 한국의 SNS 친구들
후텁지근한 저녁, 갤러리 시몬에서 열린 전시 < Lobster Land in Seoul by Philip Colbert > 오프닝은 하나의 유쾌한 작업으로 보였다. 작가 필립 콜버트(Philip Colbert)는 이날 강렬한 스타일의 SNS 인플루언서 가운데 자신이 즐겨 그리는 가상 세계, ‘랍스터 랜드’의 주인공처럼 빨간 슈트를 입고 있었다.
회화와 조각, 비디오 설치 작업을 넘나드는 작가는 철학을 전공하고 패션과 디자인부터 팝의 세계를 넘나들어 ‘앤디 워홀의 대자(godson)라 불리는 네오팝 초현실주의자다. 런던을 기반으로 사치 갤러리 런던과 LA, 화이트 스톤 홍콩, 상하이 파워롱 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인정받았다. 그가 내게 밝힌 자신의 키워드는 SNS와 유명 인사 그리고 건강하고 쿨한 개인주의다.

필립 콜버트의 ‘Lobster Land’(2019).
“SNS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경험을 한꺼번에 바꿨어요. 이런 현상을 작품에 반영하고 잡아두고(capture) 싶었죠. 대부분 사회가 요구하는 이미지와 인식에 신경 쓰는데, 그보다는 자신의 가능성과 자유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의 작품에서는 프랜시스 베이컨, 피카소 등 유명인사로 분한 자신의 유머러스한 캐릭터를 발견할 수 있다. 필립 콜버트는 작품이 풍기는 그대로 긍정적이고 유머러스한 에너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제가 철학에서 배운 건 세상의 모든 게 다 말이 안 되고 의미 없다는 거예요. 유머는 기존 인식의 기반을 흔들어 더 좋고, 그 점을 일상에서 지키려 합니다.” 작가는 인스타그램 업로드를 원하는 ‘랜선 친구’를 만날 때마다 스마트폰 앞에서 재미있는 포즈를 취했고, 그들은 태그(#)했다. 그의 모습은 ‘팝’할지라도,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3 벨기에 출신 뮤지션 오자크 헨리.
4 그는 오디오메이커 드비알레와도 글로벌 파트너십을 맺고 있어 이번 행사 오디오 세팅에 함께 했다.
2019년 7월 9일
도산대로 / 크루그 샴페인과 오자크 헨리의 음악
지난 7월, 드물게도 밤바람이 시원하게 불던 날, 크루그 하우스는 ‘크루그와의 조우(Krug Encounters)’라는 타이틀로 작은 주택 앞마당에서 파티를 열었다. 그들을 대표하는 그랑퀴베 160 에디션과 로제 23 에디션을 음식과 만나는 자리. 샴페인을 선보이는 데는 익숙한 룰이지만 지금 내가 주목한 것은 정찬에 앞서 음악을 음미했다는 점이다.
크루그의 초청으로 내한한 벨기에 아티스트 오자크 헨리(Ozark Henry)는 샴페인을 즐겨 마신다. 그는 1990년대 데이비드 보위가 인정한 톱스타다. “친구를 통해 이 샴페인을 처음 접했어요. 그 후 우리 우정을 상징하게 됐고, 중요한 자리에 빠지지 않죠.” 오자크가 샴페인 한 병에 담긴 심상을 입체적 음악으로 표현하게 된 계기다. ‘3D 뮤직’, ‘앰비소닉’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업은 관람객을 적절한 공간에 두고 오디오 시스템을 설치한 다음, 음악이 감싸 안은 듯 드라마틱한 효과를 낸다. “저는 뉴욕에 들를 때면 주로 워싱턴 파크 쪽으로 가는데, 그곳을 오가는 학생들의 소리를 모았어요. 여기에 평탄하거나 날카로운 멜로디로 선을 긋는 거죠.” 곧장 8개의 하이엔드 스피커로 귓전에 공간을 만들었다.
이날 크루그 하우스 대표 올리비에 크루그(Olivier Krug)는 에디션마다 특별해지는 풍미를 클래식 교향곡에 비유했고, 이에 공감한 오자크는 그랑퀴베 167 에디션과 입안에 느껴지는 맛의 스토리를 소리로 표현했다. 그들의 묘사대로라면 샤도네이는 플루트나 바이올린처럼 높은 음이고, 피노 누아는 색소폰 같은 낮은 음을 이룬다. 크루그 가문 6대에 걸친 너른 이야기가 작은 아이폰 속 음악 파일 하나에 다 들어 있었다. 술에 대한 어떤 설명보다 이해하기 쉬웠던 건, 그 방법이 아트이기 때문이리라.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