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rm is the Menu
모든 것은 농장에서 이뤄진다. 맛있고 건강에 이로운 음식을 만드는 건 전적으로 땅의 힘이다. 땅의 소중함을 알아야 미래의 식탁을 지킬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음식’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 선 블루힐 레스토랑의 댄 바버 셰프를 만났다.
블루힐 앳 스톤 반스ⓒ Jen Munkvold
ⓒ Jen Munkvold
뉴욕 도심에서 북쪽으로 30마일 정도 떨어진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포칸티코힐스에 위치한 스톤 반스 센터(Stone Barns Center for Food & Agriculture)를 찾았다. 풍요로운 녹색의 굴곡진 언덕과 아름다운 집과 정원, 저 멀리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이는 풍경에 둘러싸여 있었다. 툴루즈 거위가 한가로이 쏘다니고, 숲 속에서 도토리를 찾다 낮잠을 자는 돼지가 보인다. 갓 태어난 어린양들이 나무 늘에서 함께 뒹굴며 노는 동안 로드아일랜드 암탉들도 이동식 닭장 안에서 오붓한 한때를 보내는 평화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최종 목적지는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농장 건축의 멋을 드러내는 트러스 구조의 지붕을 얹은 건물에 자리한 블루힐 앳 스톤 반스 레스토랑. 1930년대 록펠러 가문의 낙농 농장, 소젖을 짜는 헛간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이 현대적 레스토랑이 최근 화제다(지난 5월, 미국의 음식 및 식당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제임스비어드 어워드 ‘우수 레스토랑’상을 수상했다).
중성색과 자연광을 이용한 심플한 인테리어로 꾸민 블루힐 앳 스톤 반스의 다이닝 홀은 농장의 아름다운 풍광을 그대로 실내로 끌어들이면서 동시에 음식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레스토랑 한가운데 큰 나무 테이블을 두고 요리에 사용하는 각종 곡물과 콩, 칠면조알과 달걀, 메추라기알, 신선한 채소, 동물의 뼈와 탄화된 숯 등을 진열해놓았는데 그 모습이 신선했다. 이곳의 오너 셰프 댄 바버(Dan Barber)는 그날 수확했거나 막 구입한 식자재를 이용해 블루힐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음식을 선보인다. 손님의 취향, 알레르기와 과민증을 조사한 후 그들을 위한 20~40코스 메뉴를 짜주는데 최소 3시간부터 5시간까지 식사를 즐길 수 있다. 그날 나는 평생 먹은 당근 중 가장 맛있는 모쿰(mokum) 당근(아삭한 식감에 개운하고 매우 달기까지!)을 비롯해 바다 소금을 뿌린 누에콩, 첨채당을 넣은 비트 요구르트, 잣 퓌레와 구운 적색 치커리, 마스카르포네 치즈를 곁들인 아스파라거스 카넬로니, 돼지 심장 파스트라미, 버크셔 돼지 허릿살 구이와 팔각형 유리 접시에 담긴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20여 가지 음식을 맛보았다.
각종 채소의 향연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참 흥미로웠다. 채식이 흔히 범하기 쉬운 지나치게 지루하고 담백한 맛이 아니라 풍부하고 다양한 맛이 입안 곳곳에서 매력을 발산한다. 평소 익숙한 고기 위주의 식단을 그리워하지 않은 것을 깨달은 순간, 댄 바버의 저서 <제3의 접시(The Third Plate)>가 떠올랐다. 채소의 재발견, 땅의 위대함, 지속 가능한 미래 식량에 관한 이야기.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은 댄 바버는 매우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셰프뿐 아니라 교육자나 지도자로서의 소양도 갖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식탁에 새로운 영감을 주는 사람, 창조적이고 의식 있는 한 명의 혁신가.
댄 바버 셰프ⓒ Daniel Krieger
왜 셰프가 되었나? 솔직히 부모님의 요리 실력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멋지게 먹을 줄 알았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나만의 방식으로 가족과 친구를 위해 요리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꽤 재미있었다.
가정에서 배운 것은 없지만 사회에서 만난 귀한 스승은 있지 않은가? 뉴욕 FCI 졸업 후 파리에 있는 미셸 로스탕(Michel Rostang) 레스토랑에서 1년간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내게 영원히 가장 뛰어난 셰프로 기억될 것이다. 막 요리를 시작한 젊은 셰프에게 내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일단 프랑스로 가라. 그곳에서 프렌치 키친의 전통을 배우는 것이 요리의 시작이다.”
블루힐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레스토랑의 자연주의 성격을 잘 드러내면서 문학적으로 들린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뉴욕의 어퍼이스트사이드지만 매사추세츠 주 그레이트배링턴에 위치한 조부모의 블루힐 농장에서 밭을 가꾸며 여름을 보내곤 했다. 그 경험을 통해 농사가 우리가 먹는 음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고 땅에 감사하는 마음, 이 땅을 지켜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생긴 것 같다. 2000년 그리니치빌리지 안에 ‘식자재에 집중한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 컨셉의 첫 레스토랑을 열었을 때,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블루힐, 발음도 부드럽고 달콤하지 않은가.
당신의 셰프 인생에 영향을 준 인물로 미셸 로스탕을 첫손에 꼽았지만 존 D. 록펠러와의 인연도 각별하지 않은가? 내가 운영하는 두 번째 블루힐 레스토랑, 블루힐 앳 스톤 반스가 속한 스톤 반스 센터는 그의 통 큰 기부로 탄생했다. 지역 영농 산업을 지원하는데 열정적이던 아내를 기리기 위해 3000만 달러와 함께 웨스트 체스터 카운티의 3500에이커 규모 사유지를 내어준 것. 2004년에 설립한 스톤 반스 센터는 비영리 농장이자 교육기관으로, ‘모든 인간에게 유익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식품 체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신의 요리 철학을 설명한다면? 그것을 대표하는 음식을 예로 들어주겠나? 훌륭한 요리는 훌륭한 식자재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훌륭한 식자재가 훌륭한 농부의 손끝에서 나온다. 땅과 농부의 힘을 믿으며 그것을 오롯이 음식에 담아내고자 한다. 블루힐 레스토랑은 스톤 반스 센터(2000㎡ 크기의 비닐하우스를 포함한 80에이커 규모의 농장에서 200종의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다)에서 생산한 채소의 50% 이상을 사용하며 나머지 식자재는 주변의 40여 개 농장에서 공급받는다. 내 고객이 식사할 때 단지 접시 위에 놓인 음식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너머, 자연을 떠올리길 바란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난 식자재인지. 오늘의 메뉴에서 한 가지 예를 들면, 매년 3월이면 스톤 반스 센터에선 파스닙(Parsnip, 설탕당근)을 수확한다. 꼬박 1년간 땅의 기운을 흡수하며 자란 것으로 수확철이 되면 공룡의 뼈 같은 형상이 된다. 겨울 서리를 이겨낸 파스닙은 기막히게 달고 맛있다. 우리는 파스닙을 스테이크처럼 구운 후 소고기 사태와 뼈를 우려 만든 보르들레즈 소스를 뿌려 테이블에 올린다. 웬만한 고기보다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이 파스닙 스테이크가 블루힐의 상징적 메뉴 중 하나다.
캐롤라이나의 황금 쌀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숯처럼 그을린 사과 요리ⓒ Thomas Delhemmes
블루힐 앳 스톤 반스의 메인 다이닝룸ⓒ Andre Baranowski
온실에서 수확한 모둠 채소 요리ⓒ Andre Baranowski
파스닙 스테이크라, 신선하다. 이처럼 블루힐의 요리는 대부분 채소 중심인데 채소를 선호하는 특별한 연유가 있나? 사실 허드슨밸리의 목초지에서 가장 풍부하게 나는 것이 채소다. 내 음식에 지역 문화를 반영하고, 또 내가 지역사회와 환경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원하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었다. 더불어 내게 채소는 언제나 가장 흥미로운 식자재다. 채소 본연의 상태를 보존하기 위해 가능한 한 적게 조리해야 하는 것과 풍미를 최대한 이끌어내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꽤 까다롭다.
블루힐 메뉴의 특징 중 하나는 계절성이다. 물론 채소만큼 계절에 민감한 것이 없을 듯한데…. 프로방스 지역에서 일을 마치고 알랭 뒤카스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TGV를 타고 모나코에 간 적이 있다. 1994년이었는데 그때 이미 알랭 뒤카스는 미슐랭 3스타 셰프로 인정받았지만 지금처럼 국제적으로 돌풍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4시간에 걸쳐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 인상적이다 못해 감동적인 토마토 콩피를 곁들인 토마토소스 파스타를 맛봤다. 음식은 맛있었지만, 최고급 파인다이닝에서 토마토소스 파스타를 선보인다? 그 대담한 선택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알랭 뒤카스는 너무나 당당히 여름철에 토마토보다 좋은 식자재는 없다고 말했는데, 그가 옳았다.
채소는 보통 다이어트나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이 선호한다. 음식의 맛과 영양 중 영양 쪽에 더 가치를 두는 것은 아닌가? 이 둘을 분리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 채소가 맛있다. 물론 건강에도 좋다. 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장 맛있는 음식이 곧 가장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다.
당신은 식량의 지속 가능성을 연구하고, 식량 산업의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행동하는 셰프로도 유명하다. 건강과 지구 환경을 위한 하버드 의대 연구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켈로그 재단, 뉴욕의 청과물 시장, 미국 슬로푸드협회와 함께 일하며 다양한 프로젝트 에도 참여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받는 것이 당신의 저서 <제3의 접시>다. 제3의 접시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 전통적으로 미국인은 육식 위주의 ‘첫 번째 접시’로 식사를 해왔다. 하지만 건강과 지역사회, 환경을 고려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이른바 웰빙에 초점을 둔 ‘두 번째 접시’가 태동했다. 유기농법을 실천하고, 사료를 주는 대신 자연 방목을 하는 등의 방법론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미래의 식량을 준비하는 지속 가능한 식품 체계를 이루기에 충분치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생태계의 올바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단백질이 각광받는 전형적 미국식 식단에서 채소 위주로 변해야 한다. 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영양분이 땅에 있다. 건강한 땅에서 난 식자재가 우리의 건강을 책임지며, 따라서 미래를 위해 땅을 건강하게 가꿔야 할 의무가 생긴다. ‘농장에서 식탁으로(farm to table)’라는 말에서 농장의 의미는 농장에서 난 식자재에 국한된다. 농장의 근간인 땅에 대한 관심은 배제되었다. 제3의 접시를 위한 새로운 슬로건으로 이건 어떤가. ‘씨앗에서 식탁으로(seed to table)’.
당신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는가? 아내, 딸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집을 나서면 근처 유니언 스퀘어 그린 마켓부터 들르는데 장이 서지 않는 날에는 웨스트체스터의 블루힐 앳 스톤 반스로 출근한다. 요리사, 농부들과 함께 그날 어떤 식자재가 들어오는지 살피고 서비스를 점검한 이후 내가 하루 일과를 마치는 장소인 뉴욕에 있는 또 다른 블루힐로 보낼 식자재를 포장한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이렇게 스토브와 운전대 앞에서 보내고 있다. 이것 또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숙명 아니겠는가. 글 손희란(미식 칼럼니스트)
Restaurant Info
Blue HillADD 75 Washington Place, New York, USA Tel +1 212 539 1776
Blue Hill at Stone BarnsADD 630 Bedford Rd. Pocantico Hills, New York, USA Tel +1 914 366 9600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사진 제공 Blue Hill at Stone Bar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