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ENEST CITY
회색 도시. 그 분명한 명제는 머지않아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도시의 일렁임 속에서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그린 시티 여섯 곳.

초록이 지배하는 도시, 싱가포르
최근 MIT의 센서블 시티 랩(Senseable City Lab)에서 흥미로운 알고리즘을 만들어냈다. 도시가 얼마나 ‘녹색’으로 물들어 있는지 다방면에서 정량화·수치화해 서열을 매긴 것. 공원과 나무 수를 세고 녹지와 산림 전용 지역을 정량화한 결과, 압도적으로 초록으로 물든 도시는 싱가포르였다. 그린 시티의 새로운 지표가 될 ‘그린 뷰 인덱스(GVI)’의 싱가포르 지수는 29.3%(GVI 8.8%인 파리와 비교하면 놀랄 만한 수치다). 싱가포르가 이토록 초록으로 물든 배경에는 1990년부터 시작된 싱가포르 정부의 공이 숨어 있다.

싱가포르 녹색 계획이라는 거창한 기치 아래 펼친 환경 운동 ‘클린 앤 그린 싱가포르’는 국민에게 환경 의식을 뿌리 깊이 장전시켰다. 무분별한 개발을 지양하고 지속적으로 녹지를 조성하는 등 보편적 정책 가운데 반드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건축 규제다. 2008년부터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그린 빌딩 산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는데, 규정에 따르면 연면적 2000m2 이상 건축물을 건설할 경우 그린 마크 인증을 받아야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싱가포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랜드마크, 이를테면 마리나베이 샌즈,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등 대부분이 까다로운 인증을 통과한 친환경 건축물이라는 점.

건축가가 지은 그린 시티, 쿠리치바
도시를 변혁하는 주요한 키는 시장이 쥐고 있지만, 그 뒤에는 늘 변혁을 그리는 건축가가 있다. 시장과 건축가, 시민이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비로소 도시는 멋진 변혁을 맞이한다. 브라질의 쿠리치바가 좋은 예다. 건축가 출신 시장 자이미 레르네르(Jaime Lerner)가 새롭게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생태 도시 쿠리치바는 늘 성공적 그린 시티로 회자된다. 그린 시티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1970년, 도시를 지휘하는 건축가는 녹색 정책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가 시장을 지낸 22년 동안 꾸준히 점진적으로 그 실험을 이어온 덕에 이 땅은 희망을 맞이했다. 그린 시티의 초석은 쿠리치바 중심가의 자동차전용도로를 보행자 도로로 바꾸는 일로 시작, 지하철 없이 버스가 땅 위로 오가는 독특한 교통 체계로 불을 지폈다. 도시의 이동 수단 대부분을 소화하는 교통 체계를 따라 수십만 그루의 나무가 나란히 줄을 섰다. 단 하나의 공원만이 존재하던 도시에 30개의 공원과 숲이 탄생했고, 건물과 도로 사이에는 나무로 기분 좋은 칸막이를 마련했다.

도시라는 이름의 공원, 시애틀
시애틀은 축복받은 그린 시티다. 카킥 파크와 슈어드 파크를 비롯한 483개의 공원이 숨 쉬는 시애틀은 도시라기보다 차라리 도시라는 이름의 공원에 가깝다. 오죽하면 도시 인구의 95%가 도보 10분 만에 공원에 닿을 수 있는 정도일까. 시애틀이 그린 시티라는 명성을 지키고 성장하는 방법은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것이다. 이들의 녹색 성장 정책 중심에 ‘공원’이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시민에게 밀착된 공원부터 지역을 대표하는 공원, 자연 지역을 그 나름의 특징을 살려 성장시키고 공공장소가 시민을 품게 한다.

민간 벤처기업 ‘그린 시애틀 파트너십’은 공공 자원과 민간 자금, 자원봉사자의 노력에 힘입어 숲이 우거진 공원을 복원한다. 2025년까지 2500에이커의 도시 숲 복원을 목표로 성장 중이다. 물 위에 새로운 녹지 공간을 조성하는가 하면, 기존 그린벨트를 통해 새로운 길을 건설하고 더 많은 이들을 맞이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새로운 접근법은 시애틀을 더욱 매혹적인 도시로 단장한다.

유럽 그린 시티의 수도, 코펜하겐
코펜하겐은 유럽을 대표하는 그린 시티다. 물과 공원으로 둘러싸인 이 녹색 도시를 두고 유러피언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같은 뻔한 비유를 들먹인다. 클리셰만큼 명쾌하게 설명할 말이 없는 탓이다. 살인적 물가를 상쇄할 만한 코펜하겐의 친환경적 환경은 곧장 삶의 질 향상과 연결되는데, 도시를 채운 숱한 공원과 초록 숲을 관통하는 자전거가 이 도시의 그린 키워드다. 덴마크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 얀 겔(Jan Gehl)이 설계한 자전거도로는 자전거 이용자와 보행자를 도시의 주인으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

국제사이클연맹이 수년 동안 세계 최고의 자전거 시티로 코펜하겐을 선정할 정도로 자전거를 위한 도시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으며, 세계의 많은 도시가 ‘제2의 코펜하겐’을 꿈꾸며 자전거 도시 흉내에 나섰다. 코펜하겐에서 자동차를 소유한 가구는 단 29%뿐이라니, 자전거가 그린 시티에 기여한 바가 얼마나 큰지 대충 짐작이 된다. 2025년, 코펜하겐은 세계 최초의 탄소 중립 도시가 되기 위해 또 한번 발돋움을 하는 중이다.

사막 위의 자그마한 희망, 두바이
맹렬하고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에 그린 시티의 미래가 있다. 두바이 이야기다. 1년 전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그린 시티로 두바이를 조명했다. 그린 시티가 단순히 ‘초록색’을 말하는 색깔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쯤은 누구나 알지만, 왜 하필 이 메마른 사막 도시에서? 두바이에서 그린 시티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일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공원이나 숲처럼 눈에 뻔히 드러나는 장면 너머에 힌트가 있다. 그중 하나는 종이가 없는 두바이. 두바이 정부는 2020년까지 모든 서류와 문서를 암호화된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로 처리할 예정이다.

이미 그 작업은 맹렬히 진행 중이다. 종이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나무의 생존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린 시티의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다. 두 번째는 불모지에 빌딩이 올라갈 땐 늘 그보다 많은 수의 나무와 숲이 함께 탄생한다는 것. 하늘에서 바라본 두바이가 의외로 초록색으로 빼곡한 이유다. 세 번째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태양 공원. 그 광활한 태양 공원에서 650만 톤의 태양에너지가 잉태된다. 에너지 생산을 위해 도시가 상당 부분 회색 콘크리트에 자리를 내준 것을 감안하면 두바이의 미래는 꽤 푸릇푸릇하다. 그린 시티 두바이는 멈추지 않는 현재진행형이다.

녹색 대도시, 밴쿠버
<이코노미스트>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세 번째 그린 시티, 캐나다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밴쿠버. 밴쿠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202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도시가 되겠다는 포부로 ‘Greenest City Vancouver 2020’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까닭이다. 공원 200여 개, 그린 뷰 인덱스 25.9%라는 높은 수치에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초록을 향해 나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 더 나은 삶을 꿈꾸기 때문이다.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그린 시티와는 거리가 멀어지기 마련인데, 그린 시티치고는 비교적 인구밀도가 높은 밴쿠버는 녹색 성장을 위해 한 뼘 더 노력을 기울인다.

삶의 다양한 면면에서 발견되는 이들의 녹색 성장 정책은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하다. 그 증거는 ‘Greenest City Vancouver 2020’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2020년을 목표로 2만 개의 새로운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고 녹색 비즈니스의 중심지가 되겠다는 포부, 그리고 15만 그루의 나무를 추가로 심어 밴쿠버의 모든 시민이 공원이나 녹지에 5분 만에 닿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는 명료하고 적확하다. 다양한 녹색 정책이 위에서 내려오면 그 정책에 합의하는 시민의 노력이 위로 올라가 조화롭게 만난다. 근면하고 성실하며 꾸준한 이들의 정책은 오래된 나무와 닮았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글 전희란(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