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ghlight in Manufacturing
최고 품질의 무브먼트와 이를 담아낼 자격이 있는 아름다운 케이스를 만드는 것. 이것은 시계 매뉴팩처가 추구해야 할 기본적 가치이자 덕목이다. 1860년 루이 율리스 쇼파드(Louis-Ulysse Chopard)에 의해 탄생한 쇼파드는 이 가치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과거에도 현재에도 시계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노블레스>는 지난 1월, 스위스 제네바와 플뢰리에 두 곳에 자리한 쇼파드의 매뉴팩처를 찾아 ‘진짜 시계 제조’가 무엇인지 경험하고 왔다.

매뉴팩처 설립 20주년을 기념하는 L.U.C 풀 스트라이크 모델. 브랜드 최초의 미니트리피터 모델로 사파이어 크리스털로 만든 해머와 공 덕분에 투명하고 큰 소리를 낸다.
‘매뉴팩처(manufacture).’ 시계와 관련한 기사를 접할 때 자주 발견하는 단어로, 원래는 ‘생산·만듦’을 뜻하지만 시계 분야에서는 생산하는 곳, 즉 공장을 지칭한다. 그런데 왜 ‘팩토리’나 ‘아틀리에’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어원에서 찾을 수 있는데, 매뉴팩처라는 단어가 ‘manu(손)’와 ‘factura(일)’를 합성한 고대 라틴어 ‘manufactura’에서 파생했기 때문이다. 손맛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작업! 바꿔 말하면 워치메이커와 장인들이 절대적 힘을 발휘하는 곳이 바로 매뉴팩처다.

1 제네바 매뉴팩처에서 완성한 페어마인드 골드바 2 플뢰리에 지역에 위치한 쇼파드 L.U.C 매뉴팩처 3 헤어스프링을 조정하는 워치메이커
쇼파드의 매뉴팩처는 지난 1996년에 탄생했다. 긴 역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뉴팩처의 존립 시기가 짧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거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이들의 역사와 한 인물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칼-프리드리히 슈펠레(Karl-Friedrich Scheufele)는 1960년대 쇼파드 가문에서 브랜드를 인수해 그 명맥을 이어간 인물로 지금의 쇼파드를 있게 한 주인공이다. 유서 깊은 브랜드를 손에 넣은 것도 잠시, 그에게 큰 시련이 찾아오는데 1970년대에 불어닥친 쿼츠 시계 파동으로 기계식 시계 제조업이 쇠락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불황은 1990년대 초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시계를 향한 그의 열정은 쉽사리 꺾이지 않고 결국 매뉴팩처 설립까지 이어지는데, 그 첫 결과물이 1996년에 발표한 인하우스 무브먼트 L.U.C 1.96이다. 크기가 작은 마이크로 로터를 탑재해 동력을 공급하고(2개의 배럴을 탑재해 65시간 파워리저브 기능을 갖춘 셀프와인딩 방식), 정교한 마감 장식이 일품인 첫 번째 칼리버다. 참고로 인하우스 무브먼트는 매뉴팩처의 존립에 중요한 요소다. 아무리 케이스에 멋진 장식을 더하고, 예술이라 불릴 법한 다이얼을 만들어내도 시계의 심장인 무브먼트를 생산할 수 없다면 진정한 매뉴팩처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종의 불문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슈펠레의 기치 덕에 쇼파드는 이후 탄탄대로를 걷는다. 총 11개의 베이스 무브먼트를 선보였고, 투르비용과 퍼페추얼 캘린더 같은 하이 컴플리케이션은 물론 첫 무브먼트 탄생 2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에 선보인 브랜드 최초의 미니트리피터 L.U.C 풀 스트라이크 모델까지! 앞서 말한 매뉴팩처의 정신을 고스란히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L.U.C 풀 스트라이크의 미니트 해머를 세팅하는 장면
쇼파드 매뉴팩처만의 특별함
SIHH 2017 취재 일정을 마무리하고 제네바에서 30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쇼파드 매뉴팩처를 찾았다. 헤드쿼터이자 케이스, 브레이슬릿, 다이얼 등의 부품을 생산하고 조립하는 곳이며, 브랜드를 이끄는 큰 줄기 중 하나인 주얼리 공방 역시 여기에 자리한다. 본사 직원의 친절한 인사와 함께 투어가 시작됐다. 여담이지만, 에디터는 운 좋게도 시계와 주얼리 분야를 다년간 취재하며 유서 깊은 브랜드의 매뉴팩처를 견학(!)할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 이번 취재를 통해 ‘무언가 새로운 걸 배울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은 채 공장을 찾았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바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세스, 즉 부품을 가공하고 조립해 무브먼트를 완성하고 이를 케이스에 탑재하는 일련의 과정이 브랜드마다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에서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는 것. 각각의 시계에 들어간 부품 수가 다르고 그에 따라 기능이 다르듯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매뉴팩처의 환경도, 워치메이커의 특성도 달라진다는 기본 사실을 간과한 탓이다. 첫 방문 부서부터 남달랐다. 바로 시계와 주얼리에 사용하는 금괴를 만드는 부서! 금은 시계 제작에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라 보관 장소를 자랑하듯 보여주는 매뉴팩처가 더러 있었지만, 합금 과정을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스위스 소재 매뉴팩처 중 골드바를 직접 제작(순금 자체의 무른 성질 때문에 시계 제작에는 18K 같은 합금을 사용한다)하는 곳은 두 곳뿐이에요. 정부 허가 아래 금을 제련하죠.” 안내를 맡은 본사 직원의 자신에 찬 발언이다.

투르비용과 퍼페추얼 캘린더를 결합한 하이 컴플리케이션 모델, L.U.C 퍼페추얼 T. 크노로미터와 제네바 실 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복잡한 기능을 탑재했음에도 가독성이 뛰어나다.
그러고 보니 쇼파드는 페어마인드(fairminded, 공정 채굴) 골드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좀 더 덧붙이자면 금은 책임 있는 형태로 채굴해야 하며, 그 책임에는 환경을 해치지 않을 것, 광부에게 공정한 임금뿐 아니라 교육과 복지 등의 혜택을 제공할 것을 포함한다. 이렇게 세상의 빛을 본 페어마인드 골드는 쇼파드를 대표하는 L.U.C 컬렉션은 물론 이들의 하이 주얼리, 1998년부터 스폰서로 활약하고 있는 칸 국제영화제 트로피의 중요한 소재가 된다. 이곳을 지나 케이스 제작 과정을 지켜봤다. 금속 고유의 거친 표면이 깎여나가고, 입력한 수치에 따라 형태를 잡아가는 모습은 언제나 신기하다. ‘손’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을 뜻하는 매뉴팩처라지만 현재 시계 제작 공정에선 기계의 힘이 절대적이다. 제품수도 많아졌고, 사람의 손보다 능률적이고 정확도 면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이곳의 직원들은 최첨단 기계의 도움을 받으면서 작은 부품 하나 다루는 데에도 옛 장인이상의 전문성과 책임감을 갖고 작업에 임하고 있었다. 물론 사람의 두 손만이 할 수 있는 공정은 여전히 많다. 적게는 수십 개, 많게는 100개가 훨씬 넘는 링크를 이어가는 브레이슬릿 조립에는 숙련된 손기술이 단연 최고다. 거친 금속의 표면을 윤이 나게 하는 폴리싱, 시계의 각 부분을 꾸미는 페를라주, 기요셰 등의 패턴을 만드는 데에도 사람의 손은 절대적이다.

드롭 장식에 40캐럿의 브릴리언트 컷, 26캐럿의 하트 셰이프 컷, 25캐럿의 페어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퀸 오브 칼라하리 하이 주얼리 네크리스
원석에 광채를 더하는 주얼리 공방
쇼파드는 시계 이상으로 주얼리 분야에서도 탁월한 솜씨를 뽐내고 있다. 레드 카펫 위 셀레브러티를 더욱 빛내주는 하이 주얼리 컬렉션과 해피 다이아몬드, 임페리얼 등의 주얼리 워치만 봐도 주얼 스톤과 골드를 다루는 이들의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3층에 위치한 하이 주얼리 공방을 찾았을 땐 주얼러 장인 모두 5월에 있을 칸 국제영화제를 위한 레드 카펫 컬렉션 제작에 몰두하고 있었다. 세상에 공개하지도 않은 작품을 먼저 눈에 담다니! 특히 엄지손톱보다 큰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를 목도한 그 순간, 정교하게 채색한 밑그림(구아슈)을 고스란히 재현한 작품을 보는 순간에는 입을 다물기 힘들었다. 아쉽게도 보도 제한 시점이라 그 어떤 사진이나 정보도 공개할 수 없지만 ‘칸’이 쇼파드를 선택한 이유를 직접 확인한,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이곳 공방에서는 주얼리 제품뿐 아니라 앞서 말한 워치 컬렉션의 주얼리 세팅까지 함께 이뤄진다.
쇼파드의 심장 L.U.C
에디터를 포함한 취재단이 둘째 날 찾은 곳은 플뢰리에 매뉴팩처다. 플뢰리에는 파르미지아니, 보셰, 보베 같은 하이엔드 시계 명가가 모여 있는 도시로 제네바에서 2시간을 달려야(옛 대관령 고개를 넘듯 산을 넘어야 한다) 도착할 수 있다. 비교적 규모가 큰 제네바 매뉴팩처와 달리 아담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쇼파드의 최상급 워치 컬렉션 L.U.C의 심장만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L.U.C 이외의 무브먼트는 쇼파드가 수년 전 세운, 로봇·기계 중심의 플뢰리에 에보슈에서 생산한다). 6층 건물이지만 매뉴팩처 설립 초기에는 한 층만 사용했고, 점차 규모를 키워 나가 건물 전체를 쇼파드의 아틀리에로 만들 수 있었다고. 그래서인지 슈펠레 가문의 애정이 건물 곳곳에서 묻어난다. 이곳에선 160명의 직원과 워치메이커가 한 해에 4000개 정도의 L.U.C 무브먼트를 생산하는데, 재미있는 건 40명의 직원이 상주하는 플뢰리에 에보슈의 무브먼트 생산량은 2만 개에 이른다는 사실! 이를 통해 L.U.C가 장인의 손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하이엔드 무브먼트’임을 깨닫게 된다.

1 L.U.C 08-01-L 무브먼트를 조립하는 마스터 워치메이커 2 무브먼트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헤어스프링 3 섬세한 수작업을 수반하는 L.U.C 무브먼트 조립 과정 4 플라워 패턴이 인상적인 플러뤼잔 수공 인그레이빙 5 쇼파드의 첫 번째 무브먼트 L.U.C 1.96을 고스란히 계승한 L.U.C 96.01.L 무브먼트. 22K 골드 소재 마이크로 로터가 동력을 공급한다(L.U.C XPS 1860 모델에 탑재).
연구·개발 부서를 시작으로 투어가 시작됐다. 이 부서의 엔지니어들은 과학적 방식을 통해 무브먼트의 개발 및 상용화 가능성을 타진하며, 컴플리케이션 설계도 여기서 이뤄진다. 젊고 혈기 넘치는 브레인들의 집결지! 이곳을 넘어서면 이들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실제로 부품을 제조하는 공간이 나온다. “툴(tool)을 가지고 부품을 만드는 곳이지만 저희는 부품을 만들기 위한 툴까지 만듭니다. 통합 매뉴팩처가 지향하는 바죠.” 본사 직원의 설명이다. 여러 파트로 나뉜 곳에서는 흰 가운을 입은 워치메이커들이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를테면 무브먼트 중에서도 심장인 헤어스프링을 조정하거나 고대 세공 기법인 플러뤼잔(fleurisanne) 인그레이빙 기법을 플레이트에 세공하기도 하고, 핀셋으로도 집기 어려운 부품의 모서리를 다듬는 작업을 한다. 오랜 인내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숙련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그야말로 장인의 본보기다. 여러 과정을 거친 부품은 마침내 경험이 풍부한 워치메이커의 손에 의해 본격적인 무브먼트의 모습을 갖춘다. 그런데 쇼파드 L.U.C 컬렉션 중 하이 컴플리케이션을 포함한 많은 제품이 제네바 실 인증을 받는다. “제네바 주에서 조립한 시계만 제네바 실 인증을 받을 수 있어요. 인증을 획득하기 위해 여기서 만든 부품이 제네바 매뉴팩처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그곳의 마스터 워치메이커에 의해 생명을 부여받죠.” 제네바의 조용한 아틀리에에서 하이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 조립에 열중하는 워치메이커를 발견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인증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쇼파드는 현재 제네바 실 외에 무브먼트의 정확성을 가리는 COSC크로노미터, 플뢰리에 지역의 인증 제도인 퀄리테 플뢰리에(Qualit´e Fleurier)까지 거치며 L.U.C 무브먼트의 정확성을 평가한다. 무브먼트 자체의 성능뿐 아니라 미학적 피니싱까지 평가 대상인 까다로운 절차. 2011년 3개의 인증을 모두 획득한 투르비용 모델은 발표 당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쇼파드가 이토록 인증에 열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루이 율리스 쇼파드와 슈펠레 가문이 함께 추구해 온 품질에 대한 쉼 없는 도전정신 그리고 ‘완벽한 시계 매뉴팩처링’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1 제품명과 같이 까다로운 인증 2개를 획득한 로즈 골드 소재의 L.U.C 퀄리테 플뢰리에 크로노미터 모델. 오트 오를로주리의 본질을 구현한 걸작이다. 2 지난해에 매뉴팩처 설립 20주년을 맞아 1996년 L.U.C 컬렉션의 초기 모델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L.U.C XPS 1860 모델. 로즈 골드 버전도 함께 선보인다.
에디터 이현상(ryan.lee@noblesse.com)
사진 제공 쇼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