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DERNIST
오랜 세월 고수해온 철학과 장인정신을 계승하며 이탈리아 가구 산업의 명성을 드높인 4개의 브랜드를 만난다. 첫 번째 주인공은 이탈리아 모던 가구의 선봉에 있는 알플렉스(Arflex). 혁신적 사고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뛰어난 기술력과 디자인을 융합한 알플렉스 제품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않는 멋과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알플렉스 본사 1층 라운지에 위치한 델피노(Delfino) 체어와 아르컬러(Arcolor) 소파.
밀라노에서 북쪽으로 20km가량 떨어진 주사노(Giussano) 지역으로 향했다. 이탈리아 제조업의 상징인 고급 가구의 생산지와 본사가 모여 있는 작은 마을에서 블랙 & 화이트 색상의 야트막한 건물을 찾았다. 이곳이 이탈리아 모던 소파의 대명사인 알플렉스의 본거지. 10년 전 새롭게 마련한 둥지는 건축가 펠리체 카펠리니(Felice Capellini)와 카를로 콜롬보(Carlo Colombo)가 지은 2개의 건물이 맞닿아 부채꼴 형상을 이룬다. 한 건물은 생산 공장과 창고로, 다른 건물은 쇼룸과 오피스로 사용하고 있다. 방문객이 가장 처음 맞닥뜨리는 1층 라운지에는 1954년에 에르베르토 카르보니(Erberto Carboni)가 디자인한 델피노(Delfino) 체어와 몇 해 전 하이메 아욘(Jaime Hayon)의 손길을 거쳐 탄생한 아르컬러(Arcolor) 소파가 자리한다. 60여 년의 시간 차가 존재하는 두 제품을 함께 세팅했지만, 조화롭고 유기적인 이유는 모던하고 기능적이며 유행을 타지 않는 알플렉스의 철학과 가치가 깃들었기 때문이다. 프레스 담당자 파트리치아 콜롬보(Patrizia Colombo)의 안내로 생산 공장부터 쇼룸까지 모던 가구명가 구석구석을 탐방했다. 생산 공장은 의외로 쾌적하고 조용하다. 드문드문 수치적 데이터로 채운 컴퓨터 모니터가 깜빡이고, 완벽한 분업으로 정교한 작업을 수행하는 직원들의 신중한 손놀림만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한편 지하에 위치한 쇼룸은 1950~1970년대 초기 모델의 리에디션부터 최신작까지 두루 만날 수 있다. 은은한 불빛 아래 전시한 제품을 천천히 탐닉하다 보면 ‘가끔 소파에 앉아 쉬어주세요’라는 알플렉스의 슬로건이 떠오른다.

1 지하에 위치한 쇼룸에서 만날 수 있는 알곤(Algon) 체어와 디바(Diva) 스크린.
2 반복적인 큐브 형태 디자인의 루비콘(Rubycon) 콘솔과 1950년대 디자인의 암체어 줄리에타(Giulietta).
3 3개의 다리 위에 탄성감 있는 시트를 끼워 만든 보톨로(Botolo) 체어.

4 베르나르드트 & 벨라(Bernhardt & Vella)가 디자인한 알플렉스 최초의 조명 파필론(Papillon).
5 2019년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를 통해 선보인 글로리아(Gloria) 암체어는 재활용 신소재를 적용했다.
혁신을 향한 실험정신
알플렉스는 초창기부터 외형뿐 아니라 구조까지 완벽한 소파를 만들어온 브랜드다. 그 시작은 1947년 타이어 제조업체 피렐리(Pirelli)의 기술자 카를로 바라시(Carlo Barassi)와 레나토 테아니(Renato Teani), 알도 바이(Aldo Bai), 피오 레자니(Pio Reggiani)의 만남에서 비롯했다. 이들은 신축성 있는 고무 폼과 밴딩 테이프로 어떤 가구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1951년 5년의 연구 끝에 폴리우레탄 폼을 적용하고 스프링 장치에 탄성있는 밴드를 사용한 암체어를 개발했고, 그 후 폴리우레탄 폼은 알플렉스의 상징적 소재가 되었다. 1967년에는 프레임 없이 폴리우레탄 폼으로만 구성한 보보(Bobo) 시리즈를 선보였다. 폴리우레탄 폼은 스펀지, 고무, 우레탄 등을 섞은 복합 소재로 푹신하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공장에서 목도한 이 소재는 단순한 스펀지의 일종이 아니라 하나의 조각품에 가까웠다. 강도가 다른 폼을 일일이 조각하고 이어 붙여 제품마다 최적의 착석감을 살리는 섬세한 기술력과 노력에 감탄했다.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두 달 동안 어떤 폼을 넣었을 때 가장 편안한지 실험합니다. 예를 들어, 마렌코 소파의 경우 동글동글하고 부드러워야 하기 때문에 강성이 높은 폴리우레탄 폼 위에 부드러운 폼을 덧씌우는 방식이죠.” 알플렉스는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소재, 형태, 방법 등을 제시하며 동종업계에 창조적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자처해왔다. 그리고 올해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를 통해 또 한번 혁신성을 드러냈다. 몇 해 전부터 연구 중이던 재활용 신소재를 적용한 글로리아(Gloria) 암체어를 선보인 것. “이를 폴리멕스(Polimexⓡ)라 부릅니다. 구조용 폴리우레탄 비율이 낮은 발포 폴리스티렌(EPS)으로 구현한 새로운 합성 소재로, 100% 재활용할 수 있죠.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 자원을 절약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입니다.”

6 1층에 위치한 생산 공장에서는 직원들이 완벽한 분업으로 정교한 작업을 수행한다.
7 공장 한켠에 놓인 각양각색의 패브릭.
8 본사 1층에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알플렉스 박물관.

9 관절 쿠션을 적용해 등받이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리(Lee) 소파와 하이메 아욘이 디자인한 아르컬러 테이블.
10 나무 프레임에 양면 패브릭을 조화시킨 KNP 소파.
디자인 용병술
공장에서 사무실로 연결된 복도에는 1970년대 치니 보에리(Cini Boeri)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점이 발길을 붙든다. “여자의 사무실 출입도 흔치 않던 시절이에요. 그런데 보세요. 치니 보에리는 사무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어요.” 대범한 성향의 그녀는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인 디자인을 전개하며 알플렉스의 혁신과 철학을 이어온 인물 중 한 사람이다. 특히 그녀가 1968년에 선보인 스트립스는 지퍼 달린 누빔 커버를 더해 침대로도 사용 가능한 분리형 소파로, 1979년 이탈리아 최고 디자인상인 황금 컴퍼스를 수상했다. 치니 보에리뿐 아니라 프란코 알비니(Franco Albini), 마리오 마렌코(Mario Marenco), BBPR 등 실력이 출중한 건축가, 디자이너와 협업했다. 또 현대에 이르러서는 세계적 디자이너와 교류하며 이탈리아 디자인의 영역을 ‘이탈리아 디자이너가 만든 디자인’이 아닌 ‘이탈리아가 만들어낸 디자인’으로 확장했다. 스페인의 스타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 스웨덴의 건축가 겸 디자인 트리오 클라에손 코이비스토 루네(Claesson Koivisto Rune), 중국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네리 & 후(Neri & Hu)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알플렉스가 추구하는 모던 스타일을 지키면서도 혁신적 도전을 받아들여 이탈리아 디자인을 재정의했다고 평가받는다.
알플렉스가 최고 파트너와 이룬 과업 중 하나는 시대를 앞서가는 디자인이다. 앞서 설명한 스트립스뿐 아니라 사람처럼 옷을 갈아입힐 수 있는 탈착식 커버를 최초로 도입한 마르틴갈라(Martingala) 암체어는 가구에 대한 통념을 전복시켰다. 최근에는 소파의 원형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무 프레임에 양면 패브릭을 조화시킨 KNP 소파, 관절 쿠션을 적용해 등받이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리(Lee) 소파 등을 선보이며 꾸준한 도전과 실험이 혁신적 변화를 이끌어냄을 증명하고 있다.
소파와 체어로 독보적 입지에 오른 알플렉스는 제품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여러 객원 디자이너 중 이탈리아 여성 디자이너 듀오 베르나르드트 & 벨라(Bernhardt & Vella)가 이를 잘 구현한다. 투명한 물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들은 알플렉스 최초의 조명 파필론(Papillon)을 선보이는가 하면, 폐쇄성에 대항해 열린 공간을 연출해주는 유리 소재 벨라(Vela) 파티션과 알바(Alba) 책장을 출시했다. 이렇게 고도로 미니멀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알플렉스의 든든한 기술력 덕분이다. “많은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영혼이 깃든 작품을 연대순으로 전시하는 박물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픈 일정은 아직 미정이지만 브랜드의 역사와 스토리가 담긴 공간이 될 거예요. 이를 통해 아름답고 편안하고 내구성 있는 가구가 삶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이 바로 알플렉스가 추구하는 가치니까요.”
알플렉스 제품은 에이스 에비뉴(02-541-1001)를 통해 만날 수 있다.
Arflex’s Icons
알플렉스가 추천하는 다섯 가지 아이코닉 제품.

1 피오렌차(Fiorenza by Franco Albini) 2 마렌코(Marenco by Mario Marenco) 3 엘레트라(Elettra by BBPR) 4 마레키아로 XIII(Marechiaro XIII by Centro Ricerca Arflex) 5 스트립스(Strips by Cini Boeri)
피오렌차 (Fiorenza by Franco Albini)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 프란코 알비니가 1952년에 디자인했다. 아름다운 실루엣은 물론 등받이 아랫부분이 살짝 튀어나와 허리를 안정적으로 지지하는 완벽한 조형미를 갖췄다. 높은 등받이를 채택해 고전적 디자인을 따르는 듯하지만, 전체적 라인은 현대적 스타일이다.
마렌코 (Marenco by Mario Marenco)
이탈리아 영화배우 겸 디자이너로 유명한 마리오 마렌코가 1970년에 디자인했다. 등받이와 시트, 팔걸이는 개별적으로 구성, 밀도가 다른 폴리우레탄 폼을 채웠다. 다른 제품에 비해 폼이 두툼해 동글동글한 모양새를 갖췄고, 가죽 버전을 제외하고 모두 커버를 탈착할 수 있다.
엘레트라 (Elettra by BBPR)
알플렉스가 1950년대 사무실과 공공장소를 위해 개발한 첫 번째 작품. 처음엔 암체어로 출시했으나 의자 형태로 확장했고, 올해부터는 바스툴로도 만날 수 있다. 발렌티노, 막스마라, 스텔라 매카트니 등 패션 디자이너가 사랑하는 체어로 손꼽힌다. 벨벳 소재를 선택하면 더욱 패셔너블해 보인다.
마레키아로 XIII (Marechiaro XIII by Centro Ricerca Arflex)
1976년 알플렉스 연구 센터에서 디자인해 선보인 제품으로 기본 소파형에서 시작해 최근 모듈 형태로 확장했다. 사무실이나 로비 같은 공공장소에서 사용하기에도 적합하다.
스트립스 (Strips by Cini Boeri)
1979년 여성 건축가 치니 보에리가 디자인한 알플렉스 대표 모델. 모듈형 소파로 크고 작은 공간 어디에도 잘 어울린다. 지퍼를 더해 탈착 가능한 누빔커버가 핵심으로 지퍼를 열면 손쉽게 소파에서 침대로 변형 가능하며, 커버는 자연스럽게 담요로 활용할 수 있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사진 심윤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