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on Watches over Your Day
지난해 10월 29일, <노블레스>가 한국 매체로는 단독으로 스페인 테네리페섬을 찾았다.
2019년 에르메스가 야심 차게 선보이는 ‘아쏘 레흐 드 라 룬(Arceau L’heure de la Lune)’을 한발 먼저
만나보기 위해서다. 더블 문페이즈를 활용해 작은 우주를 손목에 담아낸 시계로 메종의 시간에 대한 철학과 하이엔드 워치 메이킹 기술이 농밀하게 녹아든 걸작. ‘에르메스답다’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든 새로운 타임 오브제의 탄생이다.

Arceau L’heure de la Lune
기능 시·분, 날짜, 더블 문페이즈
케이스 지름 43mm의 화이트 골드 소재 아쏘 케이스
다이얼 어벤추린(화이트 래커 서브 다이얼과 머더오브펄 문페이즈)
무브먼트 레흐 드 라 룬 모듈을 얹은 자체 제작 오토매틱 H1837
스트랩 블루 앨리게이터
버클 화이트 골드 소재 폴딩 버클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라 몽트르 에르메스(에르메스의 시계 부서)’ 홍보 담당자의 말이 떠오른다. 에르메스를 대표하는 컴플리케이션 중 하나인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가 꾸준하게 주인을 찾는다는 것이 골자였다. 9시 방향의 푸시버튼을 누르면 시곗바늘이 현재가 아닌 특정 시간으로 바뀐 채 멈추고 푸시버튼을 다시 눌러야 현재 시각으로 되돌아오는, 출시 당시 시계업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메커니즘을 갖춘 워치가 바로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다. 소중한 사람과 만남을 이어갈 동안에는 잠깐이라도 시간의 흐름을 잊었으면 하는 마음에 제작했고, 이는 결국 시계 본연의 기능에 시적이고 감성적인 이야기를 더해 고객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런 이야기를 서두에 장황하게 풀어놓은 건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시간에 대한 철학이 여타의 시계 매뉴팩처와는 남다르기 때문이다. 에르메스는 베스트셀링 모델인 H-아워, 케이프코드, 슬림 데르메스를 비롯해 올해 런칭 40주년을 맞은 아쏘까지 다채로운 컬렉션으로 남녀 모두에게 아름다운 시간을 선사하지만,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처럼 특별한 기능을 갖춘 컴플리케이션 워치를 통해 기존의 시계가 보여줄 수 없던 재미와 감동까지 선사한다. 특별한 모듈을 통해 푸시버튼을 누를 때에만 현재 시간(듀얼 타임도 동시에!)을 알려주는 외흐 마스케, 초침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여성용 아쏘 타임 서스펜디드, 카운트다운 기능을 더해 소리로 시간을 알리는 슬림 데르메스 레흐 앙파시앙트 역시 시간을 특별한 오브제로 여기며 탄생시킨 매력적인 결과물. 그리고 이번 기사의 주인공이자 SIHH(제네바 국제 고급 시계 박람회) 2019에서 공개하는 아쏘 레흐 드 라 룬 역시 에르메스의 독창적 워치메이킹 노하우를 머금은 모델이다.

1 운석을 메인 다이얼로 사용한 아쏘 레흐 드 라 룬.
Perfect Space for Moon phase
지난가을, 에르메스는 SIHH 2019 개최에 앞서 스페인 테네리페섬에 아쏘 레흐 드 라 룬을 공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tvN 예능 프로그램 < 윤식당 2 >로 유명해진 테네리페. 카나리아제도에서 가장 큰 섬으로 스페인에 속하지만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와 가까운 탓에 유럽인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곳이다. 어떤 특별함이 있길래 이국적인 화산섬으로 기자단을 불러모은 걸까? 현지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 건, 테네리페섬 한가운데 우뚝 솟은 테이데 화산에 산을 지붕 삼아 해와 달, 그리고 별까지 우주의 환상적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테이데 천문 관측소(Teide Observatory)가 자리해 있다는 것. 천문 관측소와 달의 움직임을 담은 워치! 이제야 (한국 기준에서 먼) 그곳이야말로 새 시계를 공개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이자 에르메스다운 프레젠테이션 장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계절 내내 온화한 기후 덕에 테네리페의 해안가는 야자수가 즐비한 휴양지 모습이지만, 천문대로 향하는 여정은 영화 <마션>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할 정도로 기묘하고 낯선 풍경이었다. 취재단은 구름이 발끝에 놓인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 해발 2390m의 테이데 관측소에 도착했다. 자연의 위대함에 경탄하는 사이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다. 관측소 관계자가 설명해주는 지구와 달에 대한 이야기, 지구와 행성, 해와 별, 은하수, 자전과 공전까지 ‘학창 시절 머리를 싸매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올 시점, 새 시계를 목도했다. 흔히 볼 수 없는 얼굴의, 에르메스만의 감각적인 문페이즈 워치를.

2, 3 어벤추린 다이얼 버전의 시계 제작 과정
The Moon for Fantasy
라 몽트르 에르메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필리프 델로탈(Philippe Delhotal)의 소개로 아쏘 레흐 드 라 룬의 빼어난 모습을 확인했다. 지름 43mm의 큼지막한 화이트 골드 소재 아쏘 케이스는 1978년 디자이너 앙리 도리니(Henri d’Origny)가 디자인한 매혹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말등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케이스와 스트랩을 연결하는 비대칭 러그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획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케이스 안에는 시침과 분침이 있는 서브 다이얼과 날짜를 알리는 서브 다이얼 2개가 자리했고, 실제 달 표면을 옮겨온 듯 정교하게 묘사한 문페이즈 디스플레이 한 쌍도 있다. 즉 2개의 서브 다이얼과 2개의 문페이즈가 큼직한 다이얼 위에 장착된 모습. 12시와 6시 방향에 자리한 달 모티브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2개의 서브 다이얼은 59일에 한 번 다이얼을 회전하며 달 모티브를 초승달 형태부터 보름달 형태까지 만든다(달의 주기는 29.5일이고, 2개의 달이 다이얼에 있는 터라 회전 주기가 59일인 셈). 날짜를 더해감에 따라 작은 다이얼이 회전하며 자연스레 달의 모습까지 바꾸는데, 생경하면서도 재미있다. 다시 말해 이 시계는 시곗바늘을 얹은 작은 다이얼이 공전 형태로 회전하며 밤하늘 달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전례 없는 방식의 문페이즈 워치인 것. 이를 위해 매뉴팩처 엔지니어들은 117개의 부품으로 조립한 특별한 모듈을 수년의 연구 개발 기간을 거쳐 완성했다. 그리고 시간당 2만8800회 진동하는 에르메스 자체 제작 오토매틱 무브먼트인 H1837 위에 이 모듈을 얹는다(하나의 크라운으로 시계의 모든 기능을 조정한다).

4, 5 1978년 앙리 도리니가 디자인한 아쏘 케이스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매력적이다.
6 프레스 갈라 디너 현장.
한편 케이스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에르메스의 예술적 감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데, 바로 문페이즈와 여러 다이얼에 사용한 마감 기법 덕분이다. 아쏘 레흐 드 라 룬을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어벤추린 다이얼과 실제 운석을 얇은 두께로 잘라낸 다이얼 등 2개의 버전으로 선보이며(메인 다이얼) 아쏘 컬렉션 특유의 기울어진 아라비아숫자 인덱스를 얹은 화이트 또는 그레이 컬러 다이얼(서브 다이얼)은 래커로 마감해 시인성이 빼어날 뿐 아니라 깊이감 있는 색을 구현한다. 무엇보다 눈여겨볼 것은 문페이즈 역할을 하는 2개의 달 모티브! 달 모티브에 사용한 소재는 놀랍게도 전사 기법으로 완성한 화이트 머더오브펄로, 그 정교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머더오브펄은 깨지기 쉬운 소재라 기계 작업조차 쉽지 않다). 12시 방향에 위치한 달은 ‘몽상 화가’라 불리는 디미트리 리발첸코(Dimitri Rybaltchenko)가 그린 페가수스를 장식했고, 6시 방향의 달에는 실제 달 표면을 그대로 묘사했다. 재미있는 것은 12시 방향의 달에는 남쪽을 뜻하는 ‘Sud’를, 6시 방향의 달에는 북쪽을 뜻하는 ‘Nord’를 새겼다는 점이다. 이는 남반구와 북반구에서 보이는 달의 모양을 가리키는 것으로, 위아래가 뒤섞이고 방향을 잃게 만들어 시계를 착용하는 이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깊은 우주로 빠져들게 하려는 에르메스의 위트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 결국 에르메스는 달에 새긴 매력적인 페가수스, 남과 북의 위치 반전, 회전하는 다이얼 등을 통해 환상과 현실, 지구와 우주를 잇는 오묘한 분위기를 간직한 시간을 선사하고 싶었던 것이다.

7 프레젠테이션 장소인 테네리페섬의 테이데 천문 관측소.
8 테네리페의 테이데 국립공원.
이윽고 밤이 찾아왔다. 행사를 준비한 라 몽트르 에르메스 관계자와 취재단은 시계를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북두칠성을 포함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이 밤하늘을 수놓은 가운데 화성, 목성 등 거대 행성이 지구를 향해 찬란한 빛을 쏟아냈다. 손목 위 작은 우주와 머리 위 거대 별무리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한참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에디터 이현상(ryan.lee@noblesse.com) 사진 제공 에르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