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ite of Spring
“오트 쿠튀르는 꿈과 환상이 뒤섞인 아주 작은 섬이며, 패션과 시대를 초월한 최고의 명작이다.” 칼 라거펠트가 언급한 이 시대의 명작을, 분주한 아침의 홍콩 섬에서 반짝이는 봄 햇살과 함께 마주했다.

베이지 컬러의 우아한 변주, 섬세한 우든 엠브로이더리 장식 등에서 좀처럼 시선을 떼기 힘들다
“세상에! 이 장식 하나하나가 나무를 일일이 깎아 완성한 것이라고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이사이 은은한 파스텔 컬러가 반짝이는 베이지 컬러의 비늘 형상 장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연의 향기를 솔솔 풍기는 진짜 나무다. 순간 연필재가 떠올랐다. 색연필을 돌려 깎을 때 나오는 부채 모양의 얇은 연필재 말이다. 연필재를 닮은 이 장식은 실제 나무를 얇은 두께의 부채꼴로 깎아낸 뒤, 끝부분에 붓으로 아름다운 파스텔 컬러를 섬세하게 칠해 완성한 것. 오트 쿠튀르의 진가를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 디테일을 완성하는 데만 800여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은 따로 설명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한 땀 한 땀의 정성이 엿보이는 숙련된 장인의 수작업 장면
이번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주요 장식 요소인 나무 조각들



이번 시즌 오트 쿠튀르 룩



베이지 컬러의 우아한 변주, 섬세한 우든 엠브로이더리 장식 등에서 좀처럼 시선을 떼기 힘들다.
샤넬 오트 쿠튀르, 자연을 꿈꾸다
4월 6일, 갤러리 페로탱 홍콩에 마련한 샤넬 2016년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 프레젠테이션 현장. 갤러리에 들어서자 먼저 이날의 주인공인 샤넬의 최근작 오트 쿠튀르 의상들이 정갈하고 우아한 자태로 일행을 맞이했다. 부드러운 베이지 톤, 섬세한 우든 엠브로이더리 장식, 골드 오너먼트가 어우러진 의상들. 빅토리아 하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갤러리 페로탱 홍콩의 탁 트인 뷰와 함께 만면에 미소를 띠며 여유롭게 인사를 건넸다. 지난 1월, 파리 그랑 팔레에서 푸른 초목에 둘러싸인 목조 주택이 그려내는 목가적인 풍경과 함께 첫선을 보인 후, 소수의 고객과 매체에 좀 더 친밀하게 다가서려는 자리여서일까? 프라이빗 살롱 쇼 형식으로 선보여 한층 편안한 분위기에서 마주한 오트 쿠튀르 작품(정교한 디테일을 보면 작품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은 하나같이 특유의 고급스러움에 서정미를 담아 탁월한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특히 이번 컬렉션은 가브리엘 샤넬이 평소 좋아한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에 대한 찬사로 ‘봄의 제전(Rite of Spring)’을 주제로 탄생, 자연적 소재와 조화를 이룬 우든 엠브로이더리 장식이 단연 돋보였다. 여기에 볼륨을 강조한 둥근 소매의 재킷과 좁다란 펜슬 스커트의 대비로 완성한 주요 실루엣은 오묘한 매력을 한층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며 이목을 끌었다. 이 가운데 이번 컬렉션을 특징짓는 메인 요소인 우든 엠브로이더리 장식은 바로 코앞에서 접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면 감탄사를 자아낼 만한 그 가치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었을 것. 상상을 초월하는 다채로운 방식으로 연출한 우든 엠브로이더리 장식의 눈부신 향연은 오트 쿠튀르가 아니라면 과연 실현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더군다나 100년이 넘는 오트 쿠튀르 노하우를 지닌 샤넬 공방의 전통과 패션에 대한 열정 그리고 창의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이렇듯 보통 슈트 한 벌당 제작 시간만 200시간, 드레스는 300~600시간, 웨딩드레스는 1000시간이 넘게 공을 들여야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 샤넬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남다름은 작품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고, 그 섬세한 디테일이 전한 감동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독창성과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재단은 물론 소재와 디테일에서도 최상의 퀄리티와 완벽함을 추구하는 샤넬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 시간을 초월해 ‘전통과 혁신의 미묘한 조합을 보여주는 최고의 예시’라는 표현은 절대 과장되거나 근거 없는 수식이 아니었다.
5 Key Elements in Chanel 2016 S/S Haute Couture Collection
샤넬 2016년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키워드 5.

1 The Silhouette
반전의 묘미가 돋보이는 볼륨으로 완성한 실루엣은 이번 컬렉션의 출발점. 달걀형 슬리브와 롱 펜슬 스커트, 트위드 소재 쇼트 재킷과 플레어 드레스, 타이트하게 피트되는 톱과 가벼운 케이프 같은 형태가 주를 이루며 여기에 다양한 소재와 디자인을 더했다.
2 Mobile Phone Pouch
전체 컬렉션을 관통하는 대표 액세서리는 바로 세련된 벨트 디테일을 접목한 휴대폰 파우치. 이번 컬렉션이 시대를 뛰어넘는 모던함 또한 놓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3 Honey Bees
커스텀 주얼리와 버튼 장식은 물론 튈과 모슬린 소재 의상 곳곳을 수놓은 꿀벌. 예부터 길조의 상징인 벌 모티브 장식이 봄의 제전을 노래하듯 아름다운 날갯짓을 펼치며 컬렉션에 풍요로움을 더했다.
4 Variations on Beige
브라운의 따뜻함과 화이트의 순수함을 넘나들며 완벽한 균형을 보여주는 컬러, 베이지. 베이지의 여왕 가브리엘 샤넬이 사랑한 자연을 그대로 옮겨온 이 베이지 톤 컬러의 활약이 눈부시다. 에크뤼(ecru, 표백하지 않은 천연 베이지 컬러)를 시작으로 아이보리, 샌드, 퍼티(putty, 진흙), 토프(taupe, 회갈색 베이지), 모카(mocha) 등 샤넬이 즐겨 사용한 베이지의 다양한 변주가 재킷과 스커트, 블라우스와 플로티 드레스, 플로럴 엠브로이더리 장식 등에 녹아들어 컬렉션을 화사하게 물들였다.
5 Wooden Embroideries
시퀸, 조각, 펄, 비즈, 구슬, 깃털…. 이 모든 디테일을 나무로 완성했다고? 사실이다. 독창적인 발상을 통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재료로 제작한, 목재 장식이다. 이번 컬렉션에 특별함을 더하는 데 일조한 일등공신이다. 컬렉션 전반에 흐르는 목가적인 분위기를 컬러뿐 아니라 디테일 각각에 풀어내기 위해 고심한 칼 라거펠트의 천부적 창의력, 여기에 샤넬 아틀리에 장인들의 장인정신과 노련미가 어우러져 완성한 결과물!
에디터 | 유은정 (ejyoo@noblesse.com)
사진 제공 | 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