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ented Journey
코냑의 따뜻함과 얼음의 청량함을 향으로 재현한 킬리안 파리의 엔젤스 셰어 온 더 록스가 출시됐다. 이를 기념해 방한한 킬리안 헤네시와 나눈 향수 여정 스토리.

킬리안 파리의 창립자 킬리안 헤네시.
INTERVIEW with Kilian Hennessy, Founder of KILIAN PARIS
코냑을 만드는 주류 명가에서 태어났어요. 브랜디가 아닌 향수로의 여정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대학 시절 ‘향기의 시맨틱’을 주제로 논문을 쓰면서 향을 제대로 느끼고자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조향사 자크 카발리에를 만났고, 그는 제 멘토가 되어 10년 넘게 이끌어주었습니다. 그 만남이 향수 세계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죠.
브랜드 론칭 전 가장 오래 고민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어느 날 바카라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다 1세기 전에 사용된 바카라병이 전시된 걸 보게 됐어요. 그 시대 하이엔드와 지금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고, ‘이 수준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디테일까지 섬세하게 구현한 그 경험을 고객도 느끼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향수병은 대부분 한 번 쓰고 버려졌어요. 금속 플레이크가 박혀 있고, 글자가 새겨진 아름다운 병도 결국 버려지곤 했죠. 저는 이 병들을 재활용하거나 리필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진정한 하이엔드는 영구적으로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거든요.
킬리안 파리의 향은 개인적 기억과 경험이 스며 있다고 들었습니다. 세계여행이나 예술가와의 만남, 음식과 문화적 체험 등 다양한 영감의 원천 중 특히 가장 큰 영향을 준 경험은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 헤네시 셀러에서 맡은 후각적 기억이 제 DNA에 새겨져 있습니다. 우디, 스파이시, 앰버 같은 아이덴티티가 바로 그곳에서 비롯됐고, 엔젤스 셰어 컬렉션도 모두 그 기억에 기반합니다.
킬리안 파리의 대표적 향수 컬렉션 엔젤스 셰어의 새로운 에디션 ‘엔젤 스 셰어 온 더 록스’는 어떤 향인가요? 엔젤스 셰어 온 더 록스는 제가 즐겨 마시는 코냑에 얼음을 두 조각 넣었을 때 느껴지는 따뜻함과 청량함을 향으로 구현한 향수입니다. 먼저 자연에서 엄선한 시트러스, 베르가모트, 레몬, 만다린 오렌지, 비터 오렌지, 자몽을 사용해 신선한 첫인상을 만들었고, 시트러스가 지나치게 강하지 않도록 알데하이드라는 100 년 이상 사용된 오래된 인공 분자를 활용해 부드럽게 추상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차세대 인공 노트를 더해 얼음의 아이시한 느낌을 구현함으로써 온 더 록스 특유의 상쾌하고 현대적인 감각을 완성했습니다.
특정 남성이나 여성상을 두고 향수를 디자인하나요? 향수를 만들 때 남성이나 여성 이미지를 염두에 두지는 않습니다. 향수 자체가 뮤즈라고 생각하거든요. 모차르트가 “작곡은 결국 잘 어우러지는 음을 찾는 것” 이라고 얘기했다는데, 향수 제조 과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오리지널 코드와 궁합이 맞는 노트를 찾아 조화로움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번 엔젤스 셰어 온 더 록스도 상쾌함을 더하기 위해 적합한 노트를 찾아 레이어링했죠. 이렇게 완성된 향은 누구에게나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기를 바라요.
빠르게 유행이 바뀌는 시대에 킬리안 파리만의 강점이 있다면요? 제 비전 자체는 명료합니다. 예를 들어 피스타치오 향처럼 비슷한 제품이 수십 개 나온다면 돋보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면 자연스럽게 차별화할 수 있죠. 향수 제작에는 보통 2년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 과정에서 트렌드를 좇다 보면 제품이 나올 무렵에는 이미 유행이 지나버립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원하는 비전과 방향을 따르는 것이 더 돋보일 수 있는 것 같아요.
‘향수는 유혹의 무기이자 동시에 우리를 보호하는 갑옷’이라고 정의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본인에게 그런 향이 있다면요? 킬리안 파리의 모든 향수가 그렇습니다. 특히 여행할 때는 뱀부 하모니와 쉴드 오브 프로텍션을 즐겨 사용하는 편입니다.
리쿼 라인은 밤과 좀 더 잘 어울리는 향 같아요. 이번 신제품에 레이어 링한다면 아침엔 어떤 향을 뿌리는 게 좋을까요? 아침엔 머스키하면서 살냄새 같은 머스크 버터플라이로 시작해보세요. 그 위에 레이어링하면 두 번째 레이어의 향이 굉장히 볼륨감 있게 살아납니다. 또는 오전엔 엔젤스 셰어 온 더 록스를, 시간이 지나 향이 날아갔다 싶을 때 엔젤스 셰어 오 드 퍼퓸을, 밤에는 엔젤스 셰어 파라디로 이어지는 조합을 추천합니다.
킬리안 파리가 내후년에 20주년을 맞습니다. 다음 프로젝트에 대해 힌트를 주신다면요? 리쿼 라인 등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홈 카테고리를 확장할 예정입니다. 집은 내가 선택해 꾸미고 시간을 보내는, 가장 사적이면서도 우아한 공간이니까요.
에디터 주효빈(hb@noblesse.com)
사진 킬리안 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