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ret Garden
미술품을 보고 나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자연을 만나는 일.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쉼표 같은 공간, 미술관 속 정원으로 떠나는 여행.

1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블루리본 가든의 장미 분수. 2 올리브나무가 쉼터를 만들어주는 더 브로드 옆 작은 공원
도심 속 아름다운 안식처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는 예술적 감성이 넘쳐흐른다.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노키아 극장, 그래미 박물관 그리고 지난해에 오픈한 현대미술관 더 브로드(The Broad)가 모여 있으니 말이다. 더 브로드의 상징적인 벌집 모양 외관을 완성한 딜러 스코피디오 + 렌프로(Diller Scofidio + Renfro) 건축 사무소는 조경을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월터 후드(Walter Hood)에게 맡겼다. 그는 잘 가꾼 정원 대신 곳곳에 흥미로운 요소를 더한 조경을 생각해냈다. 그래서 잔디가 콘크리트를 뚫고 봉긋하게 올라온 것처럼 예술적 화단을 만들고, 건물 옆쪽 빌딩 숲 사이에 작은 공원을 두었다. 100년 된 올리브나무 아래 통으로 자른 나무 기둥을 무심하게 배치해 벤치처럼 이용하게 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커다란 나무는 그늘을 드리워 쉼터를 마련하고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느끼게 해준다. 더 브로드에서 길만 건너면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이 있다. 여기 2층에는 꼭 들러야 할 빼어난 정원이 있다. 블루 리본 가든(Blue Ribbon Garden)이라고 이름 붙인 옥상정원은 월트 디즈니의 미망인 릴리언 디즈니가 남편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곳.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공동 설계한 동료 그레이그 웹의 부인인 멜린다 테일러에게 조경을 맡겼다. 그녀는 사계절 꽃을 피우도록 6개 대륙의 열대 나무를 심었고, 계절별로 색상이 달라지는 풀을 심었다. 나비, 새, 벌이 찾아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꽃향기를 맡으며 걷다 보면 대형 장미를 만나게 된다. 프랭크 게리가 이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한 릴리언 부인에게 바친 장미 분수다. 그녀가 평소 좋아한 흰색과 푸른색이 섞인 도자기로 모자이크 처리해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www.thebroad.org, http://wdch10.laphil.com

3 바이엘러 미술관 내부, 클레드 모네의 ‘수련’이 걸린 방. 4 드넓은 잔디밭과 크고 작은 수목을 심어 미술관 자체가 정원이자 공원 같다.
시골 풍경을 담은 정원
아트바젤이 막을 내린 후 스위스 바젤을 다시 찾는 이유를 꼽으라면 바이엘러 미술관(Beyeler Foundation Museum)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바젤 시 외곽의 리헨(Riehen)이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널리 알려진 대로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의 작품이다. 바이엘러 재단의 설립자 에른스트 바이엘러는 1991년 렌초 피아노에게 미술관 설계를 의뢰할 때 미국 휴스턴에 있는 메닐 컬렉션 미술관 같은 고요함 그리고 기쁨을 느끼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일까. 미술관은 주변에 펼쳐진 자연환경을 담은 점잖은 그릇처럼 보인다. 드넓은 잔디밭 크고 작은 수목, 갖가지 색을 뽐내며 피고 지는 꽃. 미술관 자체가 아름다운 정원이자 공원 같다. 이곳의 백미는 클레드 모네의 ‘수련’이 걸린 방이다. 이 방은 거대한 통유리 너머에 작은 연못이 있다. 모네의 작품을 감상하다 바깥의 연못에 핀 수련을 보며 휴식을 취한 시간은 잊지 못할 감동이다. 미술관 북서쪽으로 가면 ‘윈터 가든’이라 이름 붙인 회랑이 있다. 전면을 유리로 만들어 미술관 주변의 목가적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인다. 창밖으로 열대식물과 콜더의 모빌 조각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정원이 보이고, 그 뒤로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와 초록빛으로 우거진 포도밭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푸른 밭을 어디에나 있는 시골 풍경으로 생각했다면 렌초 피아노는 이 넓은 유리창을 내지 않았을 터. 편안한 소파에 앉아 유리창 너머 바라보는 정원이 너무 아름다워 폐관 시간이 다 되도록 발길을 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www.fondationbeyeler.ch

5 구마 겐고의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 네즈 미술관. 6 조각배를 띄운 낭만적인 연못.
소담한 일본식 정원
도쿄 오모테산도 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비밀스러운 쉼터가 있다. 도부 철도회사 사장 네즈 가이치로가 수집한 동양의 고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는 네즈 미술관(Nezu Museum). 일본식 가옥을 연상시키는 큰 지붕이 인상적인 이 건물은 일본을 대표하는 현대건축가 구마 겐고의 손을 거쳤다. 그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중시하는 건축가다. 건물은 직선적이고 다소 엄숙한 느낌을 주는 사선 구조지만, 화려한 색상을 배제하고 대나무, 돌 같은 천연 소재를 사용해 구마 겐고의 건축임을 드러낸다. 미술관 뒤쪽에는 1만7000m²에 달하는 일본 최고의 정원을 가꿔놓았다. 정원 사이에 난 산책로를 걷다 보면 곳곳에 숨어 있는 석등과 불상, 일본식 티하우스를 지나치고, 조각배 위에 작은 집을 올려 둥둥 띄운 낭만적인 연못도 만나게 된다. 밖은 화려한 도심인데 고요한 자연 속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바이엘러 미술관의 수련처럼, 네즈 미술관은 국보로 지정된 오가타 고린의 아이리스 작품을 매해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전시한다. 이 시기에 정원에는 푸른 이파리 끝에 보랏빛 꽃망울이 맺힌 아이리스가 활짝 핀다. 전시관에 들어가 커다란 병풍에 그린 아이리스를 보면 정원에서 본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정원에는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카페도 있다. 여느 미술관과 달리 이곳은 입장권을 산 방문객만 이용할 수 있다.
www.nezu-muse.or.jp

식물 벽이라 불리는 케 브랑리 박물관의 수직 정원.
식물과 건축의 만남
에펠탑 근처에 위치한 케 브랑리 박물관(Le Musee du Quai Branly)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가 장 누벨과 조경 디자이너 질 클레망, 식물학자 파트리크 블랑의 긴밀한 협조로 탄생했다. 건축과 식물이 조화로운 이곳 정원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예술작품이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센 강변을 향해 서 있는 5층 규모의 행정동을 장식한 ‘식물벽’이다. 파트리크 블랑은 건물 벽을 식물이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의 땅으로 완벽히 탈바꿈시켰다. 관수와 식물 이탈 등의 문제로 초기의 푸릇함을 잃은 건 조금 아쉽다. 꼭 수직 정원이 아니더라도 케 브랑리 박물관의 정원은 주변의 주민이 즐겨 찾는 쉼터다. 질 클레망이 정성 들여 가꾼 169그루의 성목과 키 큰 풀 사이로 얕은 언덕과 작은 공연장이 자리한다. 1999년 완성 당시에는 평평한 잔디 형태였으나 지금은 다양한 식물이 높낮이를 달리하며 현대적 생태 설계를 보여준다. 사실 정원은 센 강의 범람에서 지하 수장고의 소장품을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다고 한다. 다양한 실험을 거쳐 식물의 성장에 알맞은 수분을 유지하고 적절한 배수 능력을 갖춘 지금의 정원이 완성되었다. 북쪽은 단풍나무와 참나무, 남쪽은 목련과 벚나무로 구성해 사계절 내내 나무에 꽃이 피고 지는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www.quaibranly.fr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글 강의숙(조경 디자이너, 클럽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