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 of Ballantine’s
위대한 것을 완성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스코틀랜드 자연이 선사한 축복이자 마스터 블렌더의 기술과 정성으로 빚어낸 발렌타인 위스키, 우리 조상의 탁월한 심미안과 장인정신을 오롯이 담은 전통 건축과 고가구는 이 ‘시간의 가치’ 안에서 서로 소통한다.
Great Things Take Time
스카치위스키는 맥아와 물, 효모의 화학작용으로 탄생한 증류주다. 처음에는 무색무취의 진한 알코올 용액이지만 이것이 오크통에서 잠을 자고 나면 ‘금빛 생명수’로 바뀌는 것이 스카치위스키의 신비. 위스키 원액과 나무가 서로 소통하는 동안 꽃, 벌꿀, 바닐라, 과일, 향신료 등 다채롭고 강렬한 향미를 입게 된다. 12년, 17년, 21년, 30년… 스카치위스키 라벨에 표기한 ‘연산’이 바로 ‘오크통 숙성 시간’을 의미한다. 최소 3년이 지나야 스카치위스키라는 명패를 달 수 있는데, 발렌타인 같은 프리미엄 스카치위스키는 10년을 훌쩍 넘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흥미로운 건 이 숫자가 병에 든 위스키 원액 중 가장 숙성 연도가 짧은 위스키의 연산이라는 점이다. 21년산 발렌타인은 최소 21년 이상 숙성한 위스키로 만들었다는 얘기. 시작은 분명하지만 끝은 명확히 가늠할 수 없다. 마스터 블렌더의 선택에 따라 40년, 50년, 때론 한 세기를 넘어 증류소의 기원과 함께하는 올드 캐스크가 섞였을 수도 있다. 분명 더 오래 숙성한 위스키일수록 가치가 높다. 해마다 2%의 원액이 공기 중으로 증발해 양이 점점 줄어드는데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이를 숙성 창고를 지키는 천사들이 그 대가로 마시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이른바 ‘천사의 몫’. 발렌타인 30년은 내용물의 60%를 이미 천사가 마신 셈으로 그 덕분에 우리는 ‘희소성’의 가치를 지불해야 한다.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는 기다림의 미학은 비단 스카치위스키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스카치위스키처럼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 완성한 선조의 유산을 찾아볼 수 있다. 국보로 지정된 경주의 불국사와 석굴암은 20여 년에 걸쳐 장인의 손길과 숨결이 깃든 완성체로 그 기품과 아름다움, 문화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설립부터 개관까지 십수 년의 땀과 열정이 스며든 한국가구박물관은 문화재는 아니지만 유례없는 방대한 소장품을 통해 한국 전통 가구와 생활공간을 국내외에 소개하며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프리미엄 스카치위스키의 대명사 발렌타인 그리고 대한민국의 전통 건축물과 고가구의 이색적인 만남. 나라도, 기원도, 형태와 기능도 다르지만 그 안에 흐르는 시간의 가치가 우리에게 진한 감동과 여운을 전한다.
발렌타인 17년과 한국가구박물관
성북동에 위치한 한국가구박물관은 한국의 전통 목가구를 재료별, 용도별, 출처별로 분류해 전시한 특수 박물관이다. 궁집, 사대부집, 곳간채와 부엌채 등 한국의 옛 가옥 10여 채를 옮겨놓고 그 안에서 고가구가 어떻게 쓰이는지 실감 나게 보여주는 체험형 공간. 창경궁의 기둥과 기와, 명성황후 사촌오라비 집의 곳간채 일부를 가져왔으며 특히 사대부집은 순종의 두 번째 왕비 순정효황후 사가를 옮겨 지어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의 백미는 궁집의 지하층에 자리한 상설 전시장으로 정미숙 관장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2000여 점의 조선 후기 목가구 중 500여 점의 컬렉션이 전시돼 있다. 한국가구박물관은 1993년 명칭 등록을 시작으로, 한옥을 옮겨 짓고 조경과 실내장식을 마무리하기까지 약 17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는 발렌타인 17년의 풍부한 향과 매혹적인 맛을 만들어내는 데 걸리는 최소 시간과 비슷하다. 발렌타인 17년은 스코틀랜드 전 지역에서 공수한 40여 가지 최상급 원액을 발렌타인만의 블렌딩으로 재탄생시킨 것. 위스키 숙성에 버번 오크통을 사용하는데 이것이 위스키의 품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맛인 바닐라와 단맛에 기여해 세련된 풍미를 가져다준다. 황금 호박색으로 오크 향의 달콤함과 감미로운 보디감을 지닌 발렌타인 17년은 우아하고 균형 잡힌 맛으로 위스키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비례와 균형, 절제미가 어우러진 한국 전통 가구의 아름다움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한국가구박물관은 2010년 G20 정상 배우자의 공식 오찬 장소로 선정돼 화제가 되었으며, CNN 웹사이트에서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꼭 가봐야 할 곳 1순위’로 언급했을 정도로 한국의 전통 주생활 문화를 빼어나게 재현한 역사적 공간이다. 2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발렌타인 역시 스코틀랜드의 상징적 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다.
발렌타인 21년과 석굴암 & 불국사
토함산 중턱에 인공으로 석굴을 조성하고 그 안에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보살상과 제자상, 금강역사상 등 총 39체의 불상을 조각해 넣은 석굴암은 통일신라시대의 최고 걸작이다. 천원지방(天 圓地方) 원리를 구현해 전실은 사각형, 주실은 원을 형상화했는데 각각의 크기와 비례가 완벽하며 자연 속에서 100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습도 조절과 통풍에 얽힌 과학은 지금도 풀지 못한 신비로 남아 있다. 불국사는 신라인이 그린 불국, 이상적 피안의 세계를 지상에 옮겨놓은 것으로 심오한 불교 사상과 건축 예술이 어우러진 기념비적 사찰 건축물이다. 정문 돌계단인 청운교와 백운교는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루며, 정교한 축대는 자연과 만난 인공미의 절정을 보여준다.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은 간결하면서도 장중한 멋이 있고, 다보탑은 복잡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꿀의 달콤함에 사과와 꽃 향을 더한 풍부한 아로마, 스모키한 맛과 셰리 오크통의 여운으로 완숙미까지 느낄 수 있는 발렌타인 21년을 만들기 위해서는 21년 이상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석굴암과 불국사를 짓는 데 걸린 시간과 맞먹는다. 석굴암과 불국사는 한국의 국보를 넘어 1995년 12월 나란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발렌타인 역시 스코틀랜드를 넘어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스카치위스키로 위상을 높였다. 지속적으로 권위 있는 주류 품평회의 상을 휩쓸며 그 명성을 확고히 하고 있다. 이는 발렌타인의 5대째 마스터 블렌더 샌디 히슬롭(Sandy Hyslop)의 숭고한 역할에서 기인한다. 발렌타인 마스터 블렌더는 시대를 초월해 발렌타인 위스키 고유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블렌딩 비법을 전수받은 유일한 사람으로, 그 전통과 역사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발렌타인의 살아 있는 수호자다.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사진 제공 한국가구박물관,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