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nice_고르고 고르고 고른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감독 크리스 마셀이 기획한 본전시 참여 작가 120명의 작품과 60여 개국이 미술 올림픽을 벌이는 국가관까지. 올해도 베니스에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작품이 기다린다. 그중 꼭 봐야 할 작품과 국가관을 골라 소개한다.

옛 조선소 건물을 개조한 베니스 비엔날레의 본전시관 아르세날레.

깨진 도자기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Translated Vase’.
이수경(Sookyung Yee, 1963년~)
이수경은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업으로 알려졌다. 깨진 도자기 조각을 이어 붙여 새로운 형태를 만든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가 대표작. 그녀의 이전 전시를 기획한 최은주 큐레이터는 “(이수경의 작품은) 실패나 오류로부터의 재탄생을 의미하고, 시련과 역경을 딛고 더 성숙해지는 아름다운 삶에 대한 메타포”라고 평하기도 했다. 뒤엉킨 도자 조각이 서로 융화되며 독자적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건 융합과 포용에 관한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 이번 베니스 전시에서도 그녀는 ‘번역된 도자기’의 일부 작품을 선보인다. 동양의 도자기 문법을 새로 쓴 그녀에게 쏟아질 유럽 미술계의 다양한 비평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단순한 묘사로 주변인을 그려내는 라이 피렌체의 ‘The Cinema’.
라이 피렌체(Lai Firenze, 1984년~)
홍콩의 젊은 작가 라이 피렌체. 그는 자신이 속한 환경과 사회적 배경에서 서로 다르게 변화하는 개인을 관찰해 그린다. 홍콩의 살인적인 집값과 비좁은 생활공간,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이상적으로 자기 관리를 하며 환경에 반응하는지 탐구한다. 가장 단순한 묘사만으로 정신적 풍경과 내밀한 삶을 끌어내는 그의 페인팅 기법은 이미 중국의 여러 미술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주변의 다양한 인물을 묘사하며 ‘주체성의 재현’이라는 관심사를 드러내는 그의 신작을 기대해보자.

조각의 의미를 새로 규정해온 프란츠 베스트. ⓒ Jens Preusse
프란츠 베스트(Franz West, 1947~2012년)
프란츠 베스트는 조각의 의미를 묻고 그 답을 재규정하는 작업을 해왔다. 한데 이 질문은 다시 예술의 창조 방식 자체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돼 그 자신이 동시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미술가 중 한 명으로 성장하게 했다. “어떤 방식의 예술인지 구분하기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자주 말해온 프란츠 베스트의 작품은 늘 관람객의 참여를 권장했다. 2011년에 이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평생공로황금사자상을 수상하고 그 이듬해에 사망했지만, 올해도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조각의 의미, 더 나아가 예술의 의미를 묻는 대가의 작품을 올해도 베니스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조각과 건축의 경계를 실험하는 에르네스투 네투의 ‘Paxpa’.
에르네스투 네투(Ernesto Neto, 1964년~)
에르네스투 네투는 유기적이고 자유로운 형태 변화가 가능한 소재로 작업한다. 보는 걸 넘어 만지고, 냄새 맡고, 찌르고, 눕고, 심지어 작품 위로 걸어 다닐 수 있게 한 작품까지, 관람객 참여형 작품이 대부분. 네투는 미술의 언어를 확장하는 데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그간 오랫동안 작품으로 증명해왔다. 올해도 그는 비엔날레에서 공간을 점유하는 특유의 3차원적 입체 조형물을 선보인다. SNS에서 유독 ‘좋아요’를 많이 받는 알록달록한 조각을 이번에도 소개하는 것.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브라질관 대표 작가로 활약한 그의 16년 만의 베니스 귀환을 절대 놓치지 말자.

역사와 일상, 감성이 얽힌 영상 작품 ‘Temper Clay’. Courtesy of the Artist and Wilkinson Gallery
김성환(Sunghwan Kim, 1975년~)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작가 김성환. 그는 한국 근·현대사에 얽힌 상처와 깊은 통찰에 자신의 개인적 역사를 덧대어 기묘한 이야기를 만든다. 쉽게 말해 사실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되 곳곳에 허구를 덧대어 사실도, 거짓말도 아닌 것 같은 이상한 스토리텔링을 짜는 것. 이번 전시를 위해 그는 지난해부터 미국 흑인 문학의 대가 제임스 볼드윈의 글을 집중적으로 읽었다고 한다. 제임스 볼드윈에게 모티브를 얻은 영상 작품, 더 정확히 말하면 흑인의 인권과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선보이기 위해. 국제적이고 동시대적인 감각을 작품에 잘 구현해온 그가 올해도 주목받길 바란다.

중국 전통화 기법에 젊은 감각을 더한 ‘Eight Views of Xiaoxiang’. Courtesy of the Artist
하오량(Hao Liang, 1983년~)
어릴 적부터 전통 중국화에 깊은 관심을 보인 하오량. 실크 위에 먹과 과슈로 작업하는 그는 현재 중국의 전통화 기법을 유지하는 동시에 동시대의 젊은 감각을 드러내는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재미있는 건 손과 눈, 마음이 서로 하나가 되어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믿어 매번 작업에 앞서 스스로 만족하는 상태에 이를 때까지 붓을 잡지 않는다는 점. 그의 작품에서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藝)에 노닐면서 도(道)에 합치하는 정신적 경지에 이르기 위해 그림을 그린 옛 선인의 정취가 느껴진다.

빛과 그림자를 극대화해 작업한 로즈 레이철의 ‘Lake Valley’. Courtesy of the Artist
로즈 레이철(Rose Rachel, 1986년~)
로즈 레이철은 20대 후반부터 이미 미국 미술계의 총아로 주목받으며 승승장구해온 천재 작가다. 뉴욕을 본거지로 활동하며 휘트니 뮤지엄과 아스펜 아트 뮤지엄, 런던의 서펜타인 새클러 갤러리 등에서 전시를 열었고, 2015년엔 ‘프리즈 아티스트 어워드’의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2014년에 선보인 ‘A Minute Ago’와 ‘Palisades in Palisades’. 동작과 사운드, 컬러를 통해 새로운 환경을 창조한 이 영상 작품은 지금도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야외든 실내든, 설치든 영상이든 그림자와 빛을 독창적으로 활용해 개성 넘치는 구성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젊은 감각이 올해 베니스에선 어떻게 드러날지 주목해보자.

비엔날레에 선보일 신작 ‘Green Light’를 위한 워크숍 현장. Photo by Sandro E.E Zanzinger ⓒ Olafur Eliasson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 1967년~)
한국인에게 올라푸르 엘리아손은 본전시에 초대된 한국인 작가 김성환과 이수경만큼이나 친근할 것 같다. 최근 리움에서 성황리에 개인전을 열기도 했거니와 지금도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공존을 위한 모델들>(4월 19일~6월 20일)이란 전시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비엔날레 전시에서 ‘난민’을 주제로 대형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자연과 기후, 빛의 효과 등 주로 시각적 주제에 천착해온 엘리아손이 정치와 사회적 주제에 관심을 돌리면 대체 어떤 작품이 나올까? 직접 보기 전까진 절대 상상 불가다.

한국관 외관에 설치한 코디 최의 ‘Venetian Rhapsody-The Power of bluff’ Courtesy of the Artist and PKM Gallery
한국 / 코디 최와 이완(Cody Choi 1961년~, Wan Lee 1979년~)
“국가 대표로 뽑혀 가는 거니 ‘게임의 룰’을 알고 가야죠.” 베니스 비엔날레를 분석하며 전시를 준비한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기획자 이대형과 작가 코디 최 그리고 이완. 한데 비엔날레의 관람객은 지금 컬처 쇼크를 겪고 있다. 한국관의 외관을 호랑이, 용, 공작새 등의 조악하면서도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꾸민 코디 최의 작품 앞에서 말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실내에 들어서면 관람객은 또 한 번 놀란다. 이완은 갤러리 전시장 한 칸을 온통 다른 시간이 흐르는 하얀 시계로 채웠다. 마치 편집증 환자의 방처럼 말이다. 한국관의 드림팀 3명. 올해 세계가 이들의 작품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보자.

일상적 오브제에 건축적 요소를 더한 ‘Out of Disorder(Complex)’. ⓒ Takahiro Iwasaki Courtesy of the Arataniurano
일본 / 이와사키 다카히로(Takahiro Iwasaki, 1975년~)
이와사키 다카히로는 히로시마 현에서 태어나 줄곧 그곳에서 활동해왔다. 교토에 있는 금각사 등 옛 신사를 모델로 그 건축물이 수면에 비친 모습을 나무 모형으로 정교하게 재현한 ‘Reflection Model’이 대표작.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에서 그가 소개할 작품은 ‘뒤집힌 숲(Upside-down Forest)’이다. 일본의 건축과 공업지대를 참고해 독창적으로 창조한 4점의 설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양의 역사적 건축물이나 철탑 등의 일상적 구조물을 정교한 조각으로 재해석하는 그의 작품이 서양인의 눈엔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다.

멀티미디어 예술가 안네 임호프의 ‘Angst II’. Photo by Nadine Fraczkowski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Buchholz
독일 / 안네 임호프(Anne Imhof, 1978년~)
안네 임호프는 조각과 회화,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멀티미디어 예술가다. 베를린이 젊은 예술가들의 거점으로 자리 잡으며 동시대 미술계의 ‘활력’을 담당하게 된 현재 독일에서 대표로 내세우는 작가답다. 이번 국가관 전시에서 그는 긴장감 넘치는 퍼포먼스를 통해 현장에서 관람객에게 ‘이미지’를 전달하는 방식, 확장된 공연의 개념으로 펼치는 설치와 페인팅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특유의 ‘움직임’을 선보일 예정이다. 여담이지만 비엔날레 공식 개막에 앞서 공개한 심플하고 이해하기 쉬운 드로잉은 그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같다.

기존 역사에 허구를 섞어 만든 작업 ‘A Typical House, Rumah Laut’. Courtesy of the Artist
싱가포르 / 자이 쿠닝(Zai Kuning, 1964년~)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자이 쿠닝. 그는 영상 연출과 안무 작업을 주로 한다. 인도네시아 빈탄 섬 인근의 해협 리아우(Riau)에서 바다 유목민으로 생활하는 원주민 오랑라우트(Orang Laut)족의 삶을 3년간 찍은 비디오 필름이 그의 대표작. 이번 싱가포르관에선 거대한 배 모양의 신작 ‘Dapunta Hyang: Transmission of Knowledge’를 선보인다. 인도네시아의 스리비자야왕국을 세운 다푼타 향을 추적하는 작품인 동시에 다푼타 향을 오랑라우트족의 선조로 보고 작업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이전 작품의 오랑라우트족 이야기가 필름 밖으로 나와 확장된 설치 작품이라 생각해도 좋다. 한 민족의 역사에 오랜 시간을 들이고 거기에 상상력까지 더한 결과물은 놀랍기만 하다.

사회적 이슈를 비트는 에르카 니시넨의 ‘The Object(Our House)’. Photo by Fredrik Nilsen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Box, LA
핀란드 / 너대니얼 멜러스와 에르카 니시넨(Nathaniel Mellors 1974년~, Erkka Nissinen 1975년~)
핀란드는 사실상 2개의 국가관을 운영한다. 바로 카스텔로 공원 내에 위치한 핀란드 국가관과 알바르 알토(Alvar Aalto)가 디자인한 노르웨이 그리고 스웨덴과 함께 꾸리는 노르딕관이다. 우선 핀란드관에서는 건물을 디자인한 알토에게 아이디어를 얻어 ‘Aalto Natives’라는 이름으로 미디어 아티스트 너대니얼 멜러스와 에르카 니시넨이 참여한 작품을 소개한다. 건축과 제품 디자인으로 유명한 알토를 통해 ‘핀란드스러운 것’에서 다양한 클리셰에 대한 논의를 끌어내 핀란드의 역사와 국가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 한편 노르딕관에선 미카 타닐라(Mika Taanila)와 니나 카넬(Nina Canell), 주마나 마나(Jumana Manna) 등 젊은 작가 3인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들은 도시 문제에 관한 관심을 매체 변환을 통해 비디오와 소리, 설치 등으로 풀어낸다.

셰더칭의 대표작 중 하나인 ‘One Year Performances’.
타이완 / 셰더칭(Tehching Hsieh, 1950년~)
퍼포먼스 아트의 대모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마스터’라고 부르는 셰더칭. 그는 그동안 ‘시간성과 삶’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다양한 퍼포먼스 작업을 벌여왔다. 이 전시는 2000년에 은퇴를 선언하고 미술계의 전설이 된 그의 컴백전. 올해 그는 타이완관에서 이전에 발표한 적 없는 초기작과 뉴욕에서 작업한 ‘1년간의 퍼포먼스(One Year Performances)’를 새롭게 발전시킨 작품을 선보인다. 미술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 전시를 놓치지 말자.

에르빈 부름을 세상에 각인시킨 ‘One Minute Sculptures’.
오스트리아 / 에르빈 부름(Erwin Wurm, 1954년~)
에르빈 부름만큼 ‘조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온 작가도 드물 것이다. 그를 세계적 작가로 각인시킨 ‘One Minute Sculptures’는 단순한 지시 사항을 그린 그림과 관람객이 작품을 구성하는 유일한 요소다. 관람객은 지시 사항을 보고 그 의미를 추정해 기묘한 동작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행위를 통해 그들 스스로 조각 작품이 된다. 올해도 베니스 무대에서 그는 ‘무엇을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조각과 건축 사이에 있는 ‘어떤 지점’을 작품으로 소개할 예정. 발상 하나로 엉뚱한 상황을 연출하는 대가의 신작을 눈여겨보자.

추상 조각의 대가 필리다 발로의 ‘Demo’. Photo by Annik Wetter
영국 / 필리다 발로(Phyllida Barlow, 1944년~)
필리다 발로는 석고와 합판, 시멘트처럼 강하고 거친 건축자재와 합성수지, 섬유 같은 부드러운 재료를 함께 사용해 추상적 형태의 설치 작품을 만들어온 작가다. 그녀가 선보인 작품은 늘 관람객을 압도하고 공간을 장악해왔다. 여성성과 남성성, 조각과 회화, 건축과 미술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종잡을 수 없는 상상력을 펼친 것. 그녀는 이번에 ‘folly’라는 신작을 선보인다. 이는 건물 안팎을 모두 에워싸는 대형 설치작품으로 언제나처럼 조각에 대한 가능성을 실험한다. 특히 실내에선 관람객들에게 탐험가의 역할을 상정해 미로 체험을 유도하는 것. ‘어리석음’과 ‘불길한 예감’이란 뜻을 함께 가진 이 작품은 그 이름처럼 이상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움과 채움의 공간감을 표현한 디르크 브라크만의 ‘27.1 / 21.7 / 045’. ⓒ Dirk Braeckman
벨기에 / 디르크 브라크만(Dirk Braeckman, 1958년~)
디르크 브라크만은 소재를 찾아 어디론가 떠나거나 작품의 주제를 나타내기 위해 의도적인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가 아니다. 철저히 현재 생활 속에서 발견한 오브제를 담는다. 수년 전 서울의 갤러리바톤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도 그랬고, 이번 전시에서도 마찬가지. 그는 이번 비엔날레 전시에서 이전보다 심플한 신작을 선보인다. 말끔한 공간에 설치한 흑백사진 20여 점이 전시의 전부. 특유의 회색 톤 이미지로 비움과 채움의 공간감을 선사하는 그의 신작이 기다려진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글 이나연(독립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