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nice_베니스 비엔날레의 친구들
비엔날레의 전시만으로 흥분하면 곤란하다. 올여름엔 베니스 비엔날레 못지않은 수준급 전시들이 주변 미술관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비엔날레 기간에 볼 수 있는 대표 전시를 모았다.

데이미언 허스트의 대규모 컴백전이 열리는 팔라초 그라시.
데이미언 허스트의〈Treasures from the Wreck of the Unbelievable〉전
팔라초 그라시 & 푼타 델라 도가나 / 4월 9일~12월 13일
베니스 비엔날레의 개막을 한 달여 앞두고, 팔라초 그라시(Palazzo Grassi)와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a Dogana)에선 동시대 현대미술의 아이콘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이탈리아에서의 대규모 컴백전〈Treasures from the Wreck of the Unbelievable〉이 오픈했다. 베니스의 대표적 현대미술관 팔라초 그라시와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함께 개최하는 이 전시는 사실 허스트의 오랜 지지자인 프랑수아 피노의 ‘피노 파운데이션’이 2012년부터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동시대 현대미술가의 개인전을 기획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리는 것이다. 현재 이 전시는 여러 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총 5000㎡가 넘는 공간에서 190점의 신작을 소개하는, 지난 10여 년간 열린 허스트의 전시 중 가장 규모가 클 뿐 아니라 무려 5000만 파운드(약 724억 원)를 작품에 쏟아부었기 때문. 2000년 전 침몰한 난파선에서 발견된 보물을 모티브로 마치 허스트의 작품이 실제 유물인 듯 재현해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이집트, 아즈텍 문명 등 다양한 문화와 역사에 기반을 둔 조각이 주를 이루며, 심해에 오래 방치된 흔적을 보여주기 위해 산호와 이끼로 뒤덮인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전시를 통해 허스트는 진실과 환영, 역사적 사실과 신화, 진짜 보물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실제 전시장에선 얼굴 없는 괴물을 묘사한 높이 18m의 청동 조각 ‘Demon with Bowl’과 자식을 잡아먹은 신 크로노스를 묘사한 ‘Cronos Devouring His Children’, 아즈텍 달력을 재현한 듯한 ‘Calendar Stone’이 유독 눈길을 끈다.

카 코르네르 델라 레지나에서 선보이는 독일 작가 토마스 데만트의 ‘Ampel / Stoplight’.
〈The Boat is Leaking. The Captain Lied〉전
프라다 재단 미술관 분관 카 코르네르 델라 레지나 / 5월 13일~11월 26일
프라다 재단 미술관은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베니스 분관인 카 코르네르 델라 레지나(Ca’ Corner della Regina)에서 그룹전〈The Boat is Leaking. The Captain Lied〉를 연다. 카 코르네르 델라 레지나는 18세기에 코르네르 패밀리가 세운 바로크풍 궁전으로, 프라다 재단 미술관의 심도 있는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2011년부터 동시대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제껏 동시대 현대미술을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한 실험적 전시를 여섯 차례 선보였는데, 그중 가장 주목받은 전시는 하랄트 제만(1933~2005년)이 1969년 베른에서 선보인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Form)>라는 전설적 전시를 2013년 버전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들의 일곱 번째 전시는 이제까지와 달리 새롭게 시도하는 전시 형식으로 영화와 순수예술, 무대 디자인, 전시 기획 분야에서 독보적 예술성을 보여주고 있는 독일 출신 예술가 4인(영화감독 알렉산더 크루거, 현대미술가 토마스 데만트, 무대 디자이너 아나 피브로크, 큐레이터 우도 키텔만)의 협업으로 꾸민다. 매체를 초월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들이 전시 공간을 완전히 새로운 은유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페기 구겐하임에서 전시하는 마크 토비의 ‘Threading Light’.
마크 토비의〈Threading Light〉전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 페기 구겐하임 / 5월 6일~9월 10일
구겐하임 미술관의 베니스 분관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에선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추상회화 거장 마크 토비(Mark Tobey)의 개인전을 준비했다. 베니스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미술관 중 한 곳인 페기 구겐하임은 미국의 전설적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이 세상을 떠나기 전 30년간 생활한, 18세기에 지은 팔라초 베니에르 데이 레오니 궁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 현재 구겐하임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그녀의 방대한 20세기 현대미술 컬렉션을 바탕으로 미국과 유럽의 20세기 현대미술을 재조명하는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는 동양의 사상과 예술에 매료돼 가는 필선(筆線)을 겹치는 방식의 ‘화이트 라이팅(white writing)’ 추상회화로 잘 알려진 토비의 독창적 작품 세계를 되짚는 데 중점을 둔다. 특히 토비의 1920년대 초기작부터 독특한 화풍이 돋보이는 1970년대 주요 작품까지 70여 점을 소개해 작품 스타일의 변천 과정 또한 살필 수 있다. 지난 20년간 페기 구겐하임에서 열린 전시 중 가장 깊이 있게 미국 작가를 다룬 회고전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전시하는 필립 거스턴의 1973년 작 ‘Pittore’.
필립 거스턴의〈Philip Guston and the Poets〉전
아카데미아 미술관 / 5월 10일~9월 3일
베니스를 대표하는 세계적 미술관인 아카데미아 미술관(Galerie del’Accademia)에선 또 다른 미국 출신 현대미술 거장 필립 거스턴의 개인전을 연다. 베니스 화파 거장들의 주요 작품을 영구 전시하는 곳으로 잘 알려진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애초 예술학교로 설립됐으나 1879년부터 독립된 미술관으로 운영하기 시작, 현재는 13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는 최고의 걸작을 소장한 독보적 미술관으로 위상을 떨치고 있다. 이번에 이들은 필립 거스턴의 작업에 영감을 준 20세기 시인 D. H. 로런스, W. B. 예이츠, 월리스 스티븐스, 에우제니오 몬탈레, T. S. 엘리엇의 작품을 바탕으로 거스턴의 예술 세계를 보여준다.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프레스코화에서 영향을 받은 초기작부터 1960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전시 참여 작품, 1970년 뉴욕 개인전에 대한 혹평 이후 로마에 머물며 이탈리아의 예술적 유산에 매료된 시기의 작품까지 두루 선보인다. 재미있는 점은 이탈리아 문화의 영향을 받은 거스턴의 작품을 이탈리아 미술의 메카인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전시한다는 것. 거스턴의 50년간 예술적 변천사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을 총망라하는 이번 전시에선 50점의 주요 회화와 25점의 드로잉을 볼 수 있으며, 시인들의 작품과 거스턴의 작품에 나타난 특징이 연결되는 지점 또한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다.

산조르조마조레 대성당에서 소개하는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Suspended Perimeter – Love Difference’.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One and One Makes Three〉
산조르조마조레 대성당 / 5월 10일~11월 26일
베니스 남부의 산조르조마조레 섬에 위치한 동명의 대성당에서 비엔날레 기간에 이탈리아 아르테포베라 운동을 이끈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의 전시를 연다. 1610년 당시 최고의 건축가인 안드레아 팔라디오에 의해 탄생한 산조르조마조레 대성당(Basilica di San Giorgio Maggiore)은 최근 비영리 목적의 예술과 문화 활동 지원을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1층을 전시장으로 개조해 동시대 현대미술 작가의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2011년 애니시 커푸어의 전시를 시작으로 지금껏 노트 피탈, 하우메 플렌사 등의 실험적 현대미술 작품을 이 공간에서 소개해 주목받았다. 거울을 주재료로 삶과 예술, 인류와 역사 등에 대한 사색과 성찰을 담은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선보여온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는 이번에 인류의 운명과 급진적으로 변화하는 사회를 위해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특히 대표작 ‘Suspended Perimeter – Love Difference’는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여러 개의 거울을 원형으로 배치한 것으로, 시야와 정신의 범위를 확장하는 거울을 통해 동시대 현대사회에서 인류가 직면한 미묘한 문제를 상기시킨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린 코미디언 배리 험프리스의 초상화와 그의 전시가 열리는 카 페사로.
데이비드 호크니 <82 Portraits and 1 Still-life>전
카 페사로 / 6월 24일~10월 22일
영국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개인전. 전시가 열리는 카 페사로(Ca’ Pesaro)는 베니스의 부호였던 페사로 가문의 저택이었으나 현재 근대미술과 동양 미술을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 25년간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일상의 풍경과 주변 인물을 독특한 화법으로 묘사해온 호크니는 이번 전시에서 지인의 모습을 담은 82점의 인물화를 선보인다. 특이한 건 이번 인물화 시리즈를 위해 그가 똑같은 의자와 특색 없는 배경 앞에 모델들을 앉히고, 동일한 사이즈의 캔버스를 사용해 모든 작품을 3일 안에 완성한다는 규칙을 세우고 작업에 임했다는 것.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이런 조건에서 완성한 그의 작품이 각 모델의 성격에 대한 대단한 통찰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중엔 우리가 잘 아는 배리 험프리스와 래리 가고시안, 프랭크 게리, 존 발데사리, 제이컴 로스차일드 등의 유명인도 포함되어 있다고. 이번 전시를 통해 호크니는 현대미술사 속 인물화의 가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피에르 위그의〈Untilled Host〉전이 열리는 에스파스 루이 비통 베니스.
피에르 위그의〈Untilled Host〉전
에스파스 루이 비통 베니스 / 5월 13일~11월 26일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은 프랑스의 대표적 개념미술가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의 개인전을 에스파스 루이 비통 베니스(Espace Louis Vuitton Venice)에서 선보인다. 현재 파리와 도쿄, 베이징, 뮌헨, 베니스에서 운영하고 있는 에스파스 루이 비통은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이 추진하는 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통적 전시 공간이 아닌 세계 곳곳에 위치한 루이 비통 스토어의 연장 선상에서 동시대 현대미술을 보여주는 전시 공간이다. 이곳에선 다양한 매체를 결합해 현실과 허구의 관념에 대해 탐구한 독창적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피에르 위그의 전시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2005년에 발표한 남극대륙 탐험을 기록한 영화〈A Journey That wasn’t〉와 이 작품의 연장 선상에 있는 또 다른 작품 ‘Creature’, ‘Silence Score’와 함께 신작을 선보인다. 전시 출품작을 통해 관람객이 반대되는 두 세상(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대자연과 화려한 도시)을 동시에 마주하게 함으로써, 현실의 경계를 흐리고 세상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계획이다.

타향살이의 경험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린 네샤트의 ‘Roja’.
시린 네샤트의〈The Home of My Eyes〉전
코레르 미술관 / 5월 13일~11월 26일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산마르코 광장에 위치한 코레르 미술관(Museo Correr)에선 이란 출신 영화감독이자 현대미술가인 시린 네샤트(Shirin Neshat)의 최신작을 소개한다. 코레르 미술관은 18~19세기의 열정적인 컬렉터 테오도로 코레르의 이름을 따 설립한 미술관으로, 그가 자신의 컬렉션과 궁전을 시에 기증하면서 1836년경에 문을 열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The Home of My Eyes’ 시리즈는 시린 네샤트의 기존 작품과 달리 이란이 아닌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에게 집중한다. 단, 작품을 촬영하는 동안 그녀는 예의 작업과 마찬가지로 모델들과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그 내용을 촬영한 인물 사진 위에 옮기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한국에서도 한 차례 대규모 전시를 연 그녀가 베니스에서 또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기대된다. 이번 전시에선 한국 전시에서도 소개한, 이란인 여성으로서 미국이란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가는 그녀의 개인적 경험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영상 작품 ‘Roja’도 함께 선보인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글 채민진(Perspectrum Art Advisory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