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Science Meets Cooking
과학책 같은 요리책, 실험실 같은 주방. 그 안에서 탄생한 21세기 미식 이야기.

1 땅속에서 채소가 자라는 모습을 사실적이고 감각적으로 보여주는 <모더니스트 퀴진>의 사진.
2 토스터의 단면도. 빵을 굽는 원리 또한 과학의 일부다.
과학과 요리의 상호작용 역사는 과학 그 자체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프랑스 물리학자 드니 파팽(Dennis Papin)은 1679년 압력솥을 발명, 과학과 요리에 대한 최초의 현대 문서로 간주될 수 있는 책에 설명했다. 하지만 20세기가 끝날 무렵까지 요리는 줄곧 과학자에게 중요하지 않은 주제로 인식됐고, 과학 또한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분리되어왔다. 그럼에도 근래에 이룩한 생화학과 연질물리학의 진보가 요리 과정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니 이는 이전에는 과학자도, 요리사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다.
요리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첫 번째 증거는 해럴드 맥기(Harold McGee)의 저서 <음식과 요리(On Food and Cooking: the Science and Lore of the Kitchen)>다. 1984년에 초판을 찍었고, 2004년 개정판(20년이 지나 전부 새로 쓰다시피 했다)이 나왔으며 2017년 한국어판을 출시한 이 책은 아마존에서 ‘요리사의 성경’으로 소개한다. 해럴드 맥기는 미국 칼텍과 예일 대학교에서 문학과 천문학,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 저술가 겸 요리사. <타임> ‘2008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될 만큼 세계 요리계의 주목을 받는 그는 2011년 이 책을 통해 요리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의 미디어 부문을 수상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거의 모든 식자재의 특성을 과학적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레시피와 요리를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이 지닌 최고의 미덕이다. 예를 들어 “달걀 프라이는 아래쪽에서만 열을 받기 때문에 흰자의 흘러내림 현상이 수란의 경우보다 심하며, 응고도 더 늦다. 달걀 프라이를 만드는 이상적인 팬 온도는 120℃ 안팎이다. 육류 조리법에서 결정적 온도는 60℃로, 이 온도에서 각각의 근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결합조직의 콜라겐 피복이 붕괴되고 오그라들면서 고기 내부에 압력을 가해 육즙을 쥐어짜내게 된다”라고 말하는 것. 발효 양배추 항목으로 분류한 김치의 경우 갖은 재료와 양념, 보존 방법뿐 아니라 간혹 생기는 거품은 14℃ 이하의 온도에서 가스를 생성하는 박테리아의 영향이라는 것도 빼놓지 않고 기술했다. 미국 유명 TV 요리 쇼 진행자이자 저자로 활동하는 올턴 브라운(Alton Brown)은 이 전대미문의 역작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해럴드 맥기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어떤 과학 학위도 필요하지 않죠. 읽기 쉬우며 실용적이에요. 강력 접착 테이프만큼 유용합니다.” 스페인의 셰프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a´)가 선도한 21세기 요리 혁명은 요리사와 과학자의 만남이 가져온 ‘나비효과’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문을 닫은 전설적 레스토랑 엘불리를 이끌던 그는 본래 휘핑크림을 만드는 용도의 사이펀을 사용해 예상 밖의 재료인 채소, 생선, 육류 등의 무스와 거품을 만들기 시작하며 주방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페란 아드리아의 연구팀은 셰프를 비롯해 화학자, 물리학자, 영양사, 컨설턴트가 포함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요리 과학 파트를 담당한 페레 카스텔(Pere Castells)은 한 구어메이 잡지 인터뷰에서 “남들은 과학을 상위에 두고 요리를 진행할 때 페란 아드리아는 과학과 함께, 요리를 위한 과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리사와 과학자의 진정한 협업 사례로는 페란 아드리아와 페레 카스텔 외에도 프랑스의 피에르 가니에르와 에르베 티스(Herve´ This), 영국의 헤스턴 블루먼솔과 피터 바럼(Peter Barham), 스페인의 안도니 아두리츠와 라이문도 가르시아 델 모랄(Raimundo Garcia del Moral) 등이 있다.
이들이 이룬 혁신적 연구 결과를 우리는 일반적으로 ‘분자 요리’라 부른다. 다른 어떤 역사적 시기보다 많은 신기술이 탄생했으며 새로운 재료, 도구, 장치 등이 도입되었다. 일시적 유행의 가능성이 있지만 길게 역사를 놓고 본다면 분자 요리도 전통의 일부가 될 것이다. 분자 요리의 유행을 통해 등장한 가장 흥미로운 새로운 조리법은 수비드와 액체 질소의 초고속 냉각 기술이다. 전자는 1974년 프랑스의 조르주 프랄뤼(Georges Pralus)가 처음 사용했지만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레스토랑 주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식자재를 진공포장한 후 미지근한 물속에 장시간 조리해 맛, 향, 수분, 질감, 영양소 등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수비드의 가장 큰 장점이다. 최근에는 가정용 수비드 기계를 선보이며 푸드 테크의 대중화를 시사하고 있다.


3 국내에 시판 중인 가정용 수비드 기기, 수반트.
4 과학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네이선 미어볼드의 음식 연구소 전경.
5 모더니스트 퀴진의 요리 과학을 연구하는 셰프 군단과 페란 아드리아. 검은색 슈트를 입은 사람이 페란 아드리아, 그 옆 금발 남성이 네이선 미어볼드다.
6 해럴드 맥기의 저서 <음식과 요리>.
요리를 통해 과학을 가르치는 페란 아드리아의 접근법은 이제 하버드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하버드 교수진과 함께 그가 직접 참여, 2010년 가을 학기부터 운영해온 ‘과학과 요리: 최고급 요리에서 재료과학에 이르기까지(Science & Cooking: From Haute Cuisine to Soft Matter Science)’라는 이름의 코스 강좌는 하버드 학부생이 가장 선호하는 수업 중 하나. 물리학, 화학, 생물학, 공학 분야의 과학 원리가 어떻게 일상의 요리 그리고 레스토랑의 고급 요리에 발현되는지 연구한다. 과학자, 교수, 요리사, 음식 전문가가 공동으로 강의를 진행하는데 학생들은 하나의 요리가 창조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주방의 마술’을 통해 ‘과학을 발굴’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해럴드 맥기의 영향력은 네이선 미어볼드(Nathan Myhrvold)와 J. 켄지 로페즈 알트(J. Kenji Lopez-Alt)로 이어진다. 마이크로소프트 CTO 출신인 네이선 미어볼드는 <모더니스트 퀴진(Modernist Cuisine)>을 통해 과학과 기술이 요리를 만나 하나의 예술이 되는 경지를 보여준다. 총 6권으로 구성한 일종의 요리 백과사전(총2438페이지)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열에 노출되었을 때 조리 도구 안쪽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 일종의 과학적 현상을 시각화해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MIT 출신 요리사 J. 켄지 로페즈 알트는 가정 요리의 과학을 연구해 2015년 첫 번째 저서 <더 푸드 랩(The Food Lab: Better Home Cooking Through Science)>을 출간했다. 이 책은 곧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를 수상했으며 국제요리전문가협회가 선정한 2015년 올해의 요리책에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완벽한 토마토소스부터 가장 맛있는 양파 수프, 집에서 리코타 치즈 만들기 등 수백 가지 레시피와 최고의 조리 도구 세트를 모으기 위한 지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과학적 팁이 포함돼 있다.
미래에는 음식과 과학이 어떠한 상호작용을 주고받게 될까? 훌륭한 농산물이 훌륭한 식탁을 만든다고 말하는 블루힐의 오너 셰프 댄 바버는 한층 진보한 유전자 기술이 더욱 풍미 좋고 영양이 풍부한 곡류와 채소를 생산할 수 있게 해줄 것을 기대한다. 페란 아드리아는 기존의 분자 요리가 다분히 실험적이며 즐거움을 동반한 일종의 향유적 장치인 것에 비해 향후의 요리 과학은 ‘건강’ 측면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도 이를 활용하면 가정에서 건강하고 맛있는 식탁을 차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음식 과학은 결코 어려운 실험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음식에 대한 보편적이고 친숙한 요소, 이를테면 식자재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조리 도구가 음식의 과학을 만든다. 그리고 이를 이해함으로써 평범한 우리도 요리의 맛과 영양, 예술적 감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 물론 건강도 함께.
에디터 이재연(jyeon@noblesse.com)
사진 제공 Modernist Cuisine LLC, 이데아 글 손희란(미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