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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OW

한국에서 그간 접하기 힘들었던 세계적 작가들의 판화와 사진 등의 소품을 소개하는 노블레스 컬렉션을 <아트나우>에서 좀 더 가까이 만나보자. 이번에 소개할 주인공은 예술의 다원주의적 가치를 옹호한 20세기의 회화 거장 안토니오 부에노와 일상 속 풍경과 인물을 몽환적으로 그려낸 루이 토폴리다.

미학의 개혁을 주장한 안토니오 부에노
안토니오 부에노(Antonio Bueno, 1918~1984년)는 1918년 7월 21일 스페인의 신문기자인 아버지가 파견된 독일 베를린에서 출생했다. 스페인과 스위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제네바의 예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1937년 파리의 청년 회화전(Salon des Jeunes)에 루이 페르디낭 셀린(L. F. Celine)의 소설 <밤의 종말에의 여행(Le Voyage au Bout de la Nuit)>에 그린 삽화를 전시하며 데뷔전을 치렀다. 1940년에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로 이주한 이후, 1941년과 1942년에 각각 개인전을 열면서 본격적인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탈리아 초현실주의 대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와 교류했으며 프레스코 화가 피에트로 아니고니(Pietro Anigoni)와 ‘현실 속 근대 화가들(I Pittori Moderni della Realta)’이라는 예술 그룹에 몸담기도 했다. 1948년 로마 콰드리엔날레(Roma Quadriennale)를 포함해 1956년과 1968년, 1984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초청을 받기도 했다. 생애 첫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에서 그는 점토 파이프와 달걀 껍데기, 노끈으로 구성한 신형이상학(neo-metaphysical) 작품을 소개했다. 이외에도 신구상과 오디오 회화(audio-painting), 다양한 주제의 구상 작품, 심지어 발레 코스튬과 인형극을 위한 작품 제작까지 넘나들며 평생에 걸쳐 다원주의에 기초한 새로운 미학적 시도를 전개해나갔다.
1960년대 말부터 그는 여자아이(little women)를 소재로 한 구상 회화 제작에 주력했다. 이는 그가 1984년에 사망할 때까지 다양한 변형을 통해 꾸준히 선보인 소재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아울러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안토니오 부에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형태와 색채, 음유시인이 구현한 듯한 음악적 구도와 몽환적인 터치가 주는 고전적 친근감은 그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미학적 다양성을 표현한 결과물이다. 긍정적이며 철학적인 메시지를 함축한 그의 회화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고, 더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 속 인물의 순수함과 진실함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다.

달걀을 든 여인(Donna con Guscio d’Uovo), 종이에 채색 석판화, 70×50cm

젤다(Zelda), 종이에 채색 석판화, 70×50cm

소녀(Ragazza), 종이에 채색 석판화, 35×25cm

인간과 노동의 가치를 그린 루이 토폴리
루이 토폴리(Louis Toffoli, 1907~1999년)는 1907년 10월 16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항구도시 트리에스테(Trieste)에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슬로베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되던 해인 1915년, 이탈리아의 오스트리아 침공을 계기로 유년기를 이탈리아에서 보내게 된 루이 토폴리는 수년간 파도바와 피렌체 등지에서 다양한 종교화와 세속화를 접하며 경험을 쌓는다. 그의 예술 활동은 1928년 트리에스테 비엔날레에 출품한 두 작품이 입상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예술가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파시스트를 피해 1930년 파리로 망명길에 오른 그는 개인 의상실의 직공으로 일하며 생활이 안정되자 다시 1935년에 그림을 그리며 자신만의 미술 양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루이 토폴리는 작품의 주제를 평범한 사람의 일상, 즉 가족과 연인, 시장의 상인이나 논밭의 농부, 바다의 어부와 같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에서 찾아냈고 그것은 단골 소재가 됐다. 이렇듯 사실적인 그의 회화 세계는 찰나적 요소와 상황 그리고 빛으로 가득 차 있다. 형식적으로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운율을 느끼게 하는 공간 구성이 특히 돋보이는데, 이는 네덜란드 거장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투명한 빛의 색조라 할 수 있다. 훗날 ‘빛의 기하학자’라는 애칭을 얻게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또한 소재를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단순하지만 조형미 넘치는 구조를 사용해 큐비즘과 유사한 형식을 보이기도 한다.
루이 토폴리는 살아생전 눈부신 영광과 명성을 얻었다. 1985년 파리 인근의 샤랑통르퐁(Charenton-le-Pont) 시에 그의 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며, 프랑스 정부와 공영 TV에서는 그의 작품을 우표로 발행하고 영상 작품을 방영했다. 프랑스 최고 영예 훈장인 레종도뇌르까지 받은 그는 1999년 2월 18일 아흔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인간과 노동 그리고 그 노동을 통해 인간이 이룩해놓은 모든 것에 대한 그의 열정과 경외심이 창조해낸 회화는, 평범한 사람에 대한 인간애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그가 떠난 뒤에도 지금껏 많은 이들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멕시코의 산맥(Montagnes Mexicaines), 종이에 채색 석판화, 56×76cm

동양의 아침(Matin d’Orient), 종이에 채색 석판화, 56×76cm

노 젓는 남자(La Rameur), 종이에 채색 석판화, 50×65cm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및 자료 제공 노블레스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