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오래된 신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우리에게 여전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신화, 그것을 색다르게 소개하는 책 세 권.

요즘 신화란 말이 유독 멀게 느껴진다. 냉엄한 현실과는 거리가 먼, 꿈같은 이야기라 그런 듯하다. 하지만 <신화에게 길을 묻다>의 저자 송정림은 신화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쉰다고 말한다.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며 후회하는 신들의 모습은 인간의 삶을 반영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유효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 이 책은 지혜와 희망, 사랑과 이별 등 사람의 감정에 따라 총 5부로 나누어 구성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거기에 어떤 메시지가 담겼는지 친절하게 풀어내는 것이 특징. 책을 살피면, 인류 최초의 여성 판도라는 최고신 제우스에게 상자를 선물 받는다. 그녀는 상자를 절대 열면 안 된다는 말을 듣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연다. 거기서 슬픔, 미움, 시기, 질투 등 온갖 나쁜 것이 튀어나왔지만 단 한 가지, ‘희망’이 남는다. 판도라는 인류에게 대재앙을 가져온 여자로 경멸받았지만, 저자는 판도라 덕분에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가치, 불행 속에서 피어나는 행복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고 역설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책을 아직 못 읽어봤다면, 이 책으로 신화 속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음미해보자.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이미 잘 아는 이라면, 그에 못지않게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 찬<북유럽 신화>를 추천한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한쪽 눈을 내준 오딘부터 도둑맞은 망치를 되찾기 위해 여자로 변장한 토르, 권모술수의 대가 로키까지, 개성 넘치는 북유럽 신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재미’. 그래픽노블의 걸작 <샌드맨> 시리즈를 집필하고, 장편 소설 <신들의 전쟁>으로 SF 문학상을 휩쓴 저자 닐 게이먼(Neil Gaiman)의 탁월한 필력 덕분이다. 그는 신화 속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풀어냈는데, 그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 책의 일부분을 짧게 옮긴다. 토르가 밤사이 부인 시프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직후의 장면이다. 토르는 대답 없이 자신의 엄청난 힘을 두 배로 강하게 만들어주는 허리띠 메긴교르드를 맸다. 그러고는 겨우 입을 뗐다. “로키 말이야. 로키가 한 짓이라고.” “그걸 어떻게 알아?” 시프는 머리를 계속 만지면 머리카락이 다시 돌아오기라도 할 것처럼 정신 나간 듯한 손놀림으로 민머리를 매만지면서 물었다. “왜냐하면, 뭔가 일이 잘못될 때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하는 생각은 이게 다 로키 짓이라는 거잖아. 그러면 시간이 엄청 절약된다고.” 이 몇 문장만으로도 장난기 넘치는 로키, 단순하고 과격한 토르의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는가?
또 한국 사람이라면 우리 신화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터. 그런 의미에서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신동흔이 지은 <살아있는 한국 신화>는 더할 나위 없는 우리 신화 입문서다. 저자는 서문에서 사람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나 이집트 신화에 대해선 잘 알면서도, 우리 신화는 잘 모르는 상황을 아쉬워한다. 이어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바리공주, 사랑을 찾아 하늘까지 올라가는 자청비, 땀 내음만으로 남편을 가려내는 막막부인 등 우리 신화의 소박하고 친근한 매력을 전한다. 100여 명의 신 이야기를 충실하게 소개하고, 그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까지 곁들인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 그림 한 점 없는 빽빽한 텍스트가 당신을 주눅 들게 할 수 있으나, 조금만 용기를 내서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우리 신화 속 생동하는 상상력, 마음을 흔드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될 테니 말이다.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사진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