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키워드에게 쓰는 편지
올해는 또 어떤 ‘1990년대’ 키워드가 대중문화계에서 주목받게 될까? 지금 대중문화계를 관통하고 있는 1990년 열풍을 향해 무심코 써보는 편지.
노래라는 매개체가 환기시키는 기억은 강렬하다. 특히 10대 때 들은 노래라면 더더욱. 1995년, 아직 ‘10대’라고 부르기도 뭐한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나는 당시 또래와는 조금 다른 음악에 빠져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집 나간 비행 청소년들을 소환해 낸 ‘컴백홈’을 부르던 시절, 나는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은 누나들이 즐겨 듣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에 심취해 있었고, 듀스가 한국형 뉴 잭 스윙 ‘굴레를 벗어나’로 국내 가요계를 주름잡던 시기에도 015B의 ‘슬픈 인연’을 들으며 아직 맞닥뜨리지도 않은 미래의 이별을 미리 준비하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당시의 기억이 내 정서의 발원이 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데 이상한 일이다. 수년 전 영화 <건축학개론>을 통해 1995년 늦봄 내 영혼을 후벼 판 ‘기억의 습작’이 다시금 인기를 끌더니, 지난 몇 년간 드라마와 예능, 가요, 뮤지컬 등 장르를 불문하고 ‘1990년대’라는 키워드가 대중문화계에 아예 판을 깔고 누워버린 것이다. 지난해 가장 성공한 드라마 중 하나인 <고백부부>가 하루아침에 1999년으로 돌아가 스무 살을 다시 살게 된 부부의 이야기를 그려낸데 이어, 인기 가수의 노래를 일반인들이 새롭게 부른다는 컨셉의 예능 <판타스틱 듀오 2>에는 1990년대 가요계의 주역 중 하나인 룰라가 출연해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뿐일까? 공연계에선 김광석과 그가 몸담았던 그룹 동물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과 원작 드라마를 각색한 뮤지컬 <모래시계>가 무대에 올랐다. 심지어 지난해 한 방송국의 연예대상 시상식에선 1990년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노총각과 돌싱’ 스타들의 어머니들이 대거 대상을 수상하며 화제 아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1 1990년대 열풍의 근원 중 하나였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
2 20대들의 엇갈린 첫사랑을 현재와 1990년대 배경에 그려낸 영화 <건축학개론>.

3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은 지금도 국내 가요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4 1990년대에 활동한 듀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가수들은 지금도 많다.
5 1990년대 국내 영화산업을 선도했던 종로의 한 대형 극장의 풍경.
최근에 나는 TV에서 1990년대 음악이 나오면 자주 흥얼거린다. 하지만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 또한 몇 가지 끌어안게 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흔히 1990년대를 ‘대중문화계의 황금기’라고 하지만 어떻게 고작 20여 년 만에 당시의 것을 이렇게 무더기로 불러내게 된 것인가 하는 의문. 또 1990년대의 대중문화를 현재의 10~20대는 어떻게 이렇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 마지막으로 지금의 문화 제작자들은 왜 10~20대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 것인가 하는 의문.
나는 응칠세대(1980년생 고교생)도 응사세대(94학번)도 아니다. ‘응칠’의 고2 여주인공 성시원이 H.O.T 토니의 ‘빠순이’로 활동하던 시기엔 이불 속에 콕 박혀 지금 들어도 오컬트적인 패닉의 2집 앨범 중 한 곡인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에 빠져 있었으니, 굳이 따지자면 응칠세대에 가까운 편이라 하겠다. 하지만 단언컨대 나는 단 한 번도 2012년에 방영한 <응답하라 1997>을 챙겨 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내가 20대를 끝내고 막 30대 초반에 들어선 무렵 벌써부터 10대 시절을 환기하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30대가 된 지금도 부모 돈으로 문화생활을 한 1990년대가 가장 행복했다고 떠올릴 수밖에 없는 어떤 측은함. 또 내 또래들은 결국 행복하지 않다는 상념을 떠올리게 하는 슬프고 당황스럽기도 한 감정. 고백하건대 당시 나는 가까운 과거를 돌아보는 건 삶이 팍팍해졌다는 것의 방증이란 믿음으로,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는 핑계들을 대가며 <응답하라> 시리즈를 단 한 편도 마주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계속되는 1990년대 키워드를 이렇게 생각해볼 순 있을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한 군데로 몰리면 그게 무엇이든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되어버리는 국내 문화 산업 구조의 특성상 1990년대 키워드는 필수불가결이었다고. 사실 이에 대한 근거는 명확하다. 원래 사람들은 삶이 팍팍해지면 현실을 잊을 수 있는 판타지를 찾는다. 이는 드라마, 공연, 가요 등 대중문화 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데 이것이 자본과 엮이면 결국 ‘과거에 성공한’ 결과물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문화적 황금기에 성공한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낸다는 것. 정리하면 ‘자본’에 엮여 ‘실패’를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앞으로도 몇 년간은 1990년대 키워드가 우리 문화계에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1990년대의 대중문화를 지금의 10~20대가 찰떡처럼 받아들이는 현상에 대해선 사실 명확한 이유를 못 찾겠다. 이는 가까운 문화 평론가 몇몇에게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유추는 가능하다. 1990년대 당시 10대가 누린 대중문화와 현재의 10~20대가 누리는 대중문화엔 연속성이 있다는 주장. 무슨 말인가 하면 1990년대 키워드는 요 근래의 문화 상품에 비해 엉성하긴 하지만 과거 7080 문화에 비하면 요즘 문화와 더 닮았다. 대표적인 예? 1990년대 키워드는 결코 여럿이 모여도 정치 얘길 꺼내지 않는다는 것. 7080만 해도 ‘민주화’나 ‘전두환’ 등등이 연결되지만 1990년대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떠올리며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연결하진 않는 걸 떠올리면 쉽다.

6 1990년대 초반의 정서를 담은 2010년대 가수 기린의 데뷔 앨범 <그대여 이제>.
7 1996년에 발매해 지금까지 명반이라 평가받는 전람회의 두 번째 앨범 < Exhibition 2 >.
마지막으로 지금의 문화 제작자들은 왜 20대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 것인가 하는 의문. 한데 이는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주장인지도 모른다. 하루가 멀다 하고 1990년대 키워드를 끼워 넣은 드라마나 영화, 공연이 탄생하는 걸 보면 틀린 주장은 아니지만, SNS나 실시간 채팅 플랫폼을 방송으로 끌어온 <마이 리틀 텔레비전>류의 프로그램 또한 여전히 활발히 제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문화 제작자들이 좀 더 분발하라는 의미에서 전자에 힘을 실어주자면, 최근에 방영한 드라마 <고백부부>나 <20세기 소년소녀>, 1990년대의 히트곡이 자주 나오는 예능 <불후의 명곡>, 젝스키스나 터보 등을 만든 이들 대부분이 1990년대 학번이라는 ‘팩트’ 또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게 무슨 문제냐고? 문제다. 1990년대 당시 문화적으로 융성한 혜택을 누린 문화계 생산자들이 지금의 10~20대 이야기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자신의 1990년대 이야기를 또다시 내놓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하다. 옛날 것은 다시 포장해도 옛날 것이기 때문이다.
요 근래의 대중문화가 1990년대를 좇는 건 그럼에도 손사래 칠만큼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인지해야 할 사실도 있다. 과거에 머무는 건 현재가 행복하지 않다는 퇴행적 신호라는 것. 그럼에도 굳이 과거를 좇고 싶다면 과거에 현재의 정서를 결합한 모습, 달리 말해 1990년대를 바라보는 현재적 시점이 들어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속는 셈치고라도’ 다시 한번 그걸 봐줄 것이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