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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교수의 반짝이는 뉴스

FASHION

최근 개최된 제71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케이트 미들턴이 ‘블랙’ 대신 ‘녹색’을 선택한 이유.

1 2018년 BAFTA 시상식에서 녹색 드레스에 에메랄드 주얼리를 착용한 케이트 미들턴.
2 2014년 열린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University of St. Andrews) 개교 600주년 파티에 참석한 케이트 미들턴.
3 1994년 <배너티페어> 파티에서 복수의 드레스(revenge dress)에 사파이어를 장식한 진주 초커를 매치해 파격적인 룩을 선보인 다이애나 왕세자비.

케이트와 다이애나의 스테이트먼트 주얼리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미투(Me Too) 캠페인’이 국내외에서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 가운데 지난 2월 18일 런던에서 개최된 제71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 등장한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의 녹색 드레스가 한동안 화제의 중심에 놓였다. 왜 그녀가 블랙 드레스 코드를 지키지 않았는지에 대해 갖가지 추측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블랙 미투 행렬의 본격적인 출발은 지난 1월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검게 물들인 성폭력 근절 캠페인 ‘타임스 업(Time’s Up)’ 운동이었다. 그 바통을 이어받은 BAFTA에서도 모든 참석자가 블랙 의상으로 결속을 다지는 장면을 기대한 것. 그런데 왕세손비는 녹색 드레스에 허리에만 검은 띠를 두른 채 등장했다. 공개 석상에서 정치적 중립을 불문율로 하는 영국 왕실은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발언을 삼간다. 심지어 투표도 하지 못하는 터라 그녀의 선택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침 영국이 올해 여성 참정권 획득 100주년을 맞은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녀가 캠페인을 외면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오히려 그녀가 착용한 주얼리의 힘을 간과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대목. 그날 그녀는 커다란 에메랄드를 중심으로 다이아몬드를 화려하게 장식한 목걸이, 귀고리, 팔찌를 세트로 착용했다. 그중 귓불에 딱 붙는 귀고리는 그녀가 201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행사에 참가할 때 착용한 롱 드롭 귀고리에서 윗부분을 떼고 에메랄드 장식만 꽂은 버전이다(하이 주얼리에서는 이런 컨버터블 주얼리를 종종 만날 수 있다). 팔찌 역시 4년 전과 동일한 제품. 그녀가 기존에 선보인 제품을 다시금 착용하면서까지 ‘녹색’으로 휘감은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8년 2월, 영국 여성은 힘겨운 투쟁과 희생의 시간 끝에 제한적이나마 참정권을 쟁취했다. 그 과정에서 ‘서프러제트(suffragette, 여성 참정권 운동가) 주얼리’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스테이트먼트’를 표출하는 도구로 쓰였다. 보라색, 흰색, 녹색으로 구성된 ‘Votes for Women(여성에게도 투표권을)’ 슬로건은 자수정, 다이아몬드, 진주, 에메랄드, 페리도트 등을 통해 주얼리로 재해석됐다. 녹색은 승리와 희망을, 보라색은 존엄성을, 흰색은 순수함을 상징하는 색이다. 그 때문에 왕세손비가 여성의 참정권 투쟁을 상징하는 녹색으로 존재감을 발휘한 것은 감옥에서 사투를 벌인 100년 전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동시에 현재의 미투 운동에 동참하는 나름의 소통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얼리로 스테이트먼트를 표출한 사례인 미들턴의 시어머니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목걸이에도 평행 이론을 대입할 수 있다. 1994년 ‘복수의 드레스(revenge dress)’와 함께 착용한, 일곱 줄의 진주와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사파이어 초커가 그 주인공이다. ‘복수의 드레스’란 찰스 왕세자가 커밀라와의 불륜을 인정한 직후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배너티페어> 파티에 입고 등장한 과감한 디자인의 오프숄더 드레스를 가리킨다. 그날 모두의 예상을 뒤엎은 당당하고 섹시한 모습은 언론의 1면을 장식했고, 그런 그녀에게 대중은 동정의 시선이 아닌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평소에는 입기 부담스러운 드레스가 빛을 발한 것은 물론, 여기에 힘을 실어준 강렬한 초커는 “나는 이렇게 매력적인 여성이므로 상처받지 않고 당당히 나의 길을 가련다”라는 메시지를 투영한 ‘스테이트먼트 주얼리’가 됐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주얼리를 통해 패션뿐 아니라 가치와 신념, 이상을 표현할 줄 아는 현명한 여성이었다. 사파이어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약혼반지로 시작해 복수의 드레스와 함께 끝맺음을 한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감정 표출을 억제해야 하는 영국 왕실에서 주얼리는 단순한 장신구 그 이상의 울림이 있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케이트 왕세손비의 에메랄드 세트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윤성원(주얼리 칼럼니스트,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
사진 Getty Images
에디터 엄혜린(eomering@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