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불어오는 클래식 바람
올해 국내 클래식 음악계는 세계적 스타의 연이은 내한으로 어느 때보다 뜨겁다. 그중 주요 무대의 관전 포인트를 짚었다.

1 막달레나 코제나와 협연하는 라 체트라 바로크 오케스트라.
2 쾰른 방송교향악단을 이끄는 유카 페카 사라스테.
연초만 되면 클래식 기획사에는 올해 어떤 해외 유명 연주자가 내한하는지 묻는 전화가 이어진다. 이들 공연의 경우 단시간에 매진되는 경우가 많아 미리 정보를 아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유난히 세계적인 클래식 단체와 연주자의 내한 공연이 눈에 띈다. 그 이유에 대해 공연 기획자들은 이들이 한국 팬의 뜨거운 열정에 깊은 인상을 느끼고 돌아가 다시 한국을 찾는 것이라고 귀띔한다. 이미 국내 클래식 음악계는 1월 18일 바르샤바 필하모닉과 피아니스트 잉골프 분더의 협연, 3월 15일 소프라노 대니엘 드 니스와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의 공연 등으로 뜨겁게 달궈진 상황. 이어 4월의 봄을 여는 주인공은 소프라노 막달레나 코제나다. 4월 17일 LG아트센터에서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 거장 안드레아 마르콘과 그가 이끄는 바로크 앙상블 라 체트라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한다. 코제나는 안네 조피 폰 오터,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더불어 세계 최정상 메조소프라노로 평가받는다. 또 가을에 내한하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의 아내이기도 하다. ‘위기의 여인들’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로 꾸밀 이번 공연에선 2016년 발매한 음반 <몬테베르디>의 수록곡을 중심으로 사랑이 주는 고통과 배신, 절망과 슬픔으로 괴로워하는 여인을 표현할 예정. 음악 칼럼니스트 송주호는 코제나의 음악에 대해 “빠르고 자극적인 걸 선호하는 이 시대에 느림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고 평했다. 그런 만큼 이 공연은 조용히 내면을 성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5월에는 서독일 음악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쾰른 방송교향악단과 ‘무결점 바이올린 연주의 정석’으로 평가받는 아라벨라 슈타인바허의 무대를 주목해야 한다. 유연성과 순발력을 갖춘 쾰른 방송교향악단의 이번 내한 공연은 지휘 강국 핀란드의 명장 유카 페카 사라스테가 지휘봉을 잡는다. 유카 페카 사라스테는 2010~2011년 시즌 쾰른 방송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해 지금껏 특유의 음악적 깊이와 성실함으로 호평받고 있는 인물. 이 공연은 5월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3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냥의 여신’ 이름을 차용한 아르테미스 콰르텟. Nikolaj Lund
4 체코 레퍼토리에 있어서 독보적이라 평가받는 파벨 하스 콰르텟.
6월에는 전통과 실력을 갖춘 세계적 실내악 연주자를 만날 수 있다.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과 아르테미스 콰르텟, 파벨 하스 콰르텟이 그 주인공. 실내악은 꽃을 피우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그래서 감동의 깊이도 남다르다. 관록의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이 창단 40주년을 맞아 제작한 음악극 <쇼스타코비치와 검은 수사>를 6월 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아시아 초연으로 만날 수 있다. 이 공연은 이미 작년 6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처음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6월 5일 LG아트센터에서 처음 내한 공연을 하는 아르테미스 콰르텟은 오늘날 클래식 음악계에 젊고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현악 4중주단이다. 시그너처 레퍼토리인 베토벤 현악 4중주 중 Op.18 No.3, 야나체크의 현악 4중주 ‘크로이처 소나타’, 슈만의 현악 4중주를 연주한다. 6월 8일에는 실내악 강국 체코가 낳은 파벨 하스 콰르텟의 공연이 이어진다. 2002년 세계 실내악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등장한 이들은 특히 체코 레퍼토리에 관한 한 독보적이다. 공연에선 체코 국민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메타나의 현악 4중주 제1번 ‘나의 생애로부터’와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4중주 제2번을 들려줄 예정. 실내악의 명레퍼토리를 듣고 싶다면 아르테미스 콰르텟과 파벨 하스 콰르텟을, 특별하고 신선한 앙상블의 묘미를 느끼고 싶다면 에머슨 스트링 콰르텟의 연주를 추천한다.
클래식 음악을 듣기 가장 좋은 계절인 가을에는 명실상부한 최정상 오케스트라인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그리고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무대가 기다린다. 작년 9월,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후 처음 내한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10월 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라벨의 ‘어미 거위’를 비롯해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제5번을 연주하고, 바이올리니스트 야니너 얀선과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협연한다. 영국 클래식 음악의 심장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10월 18일과 1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하며, 현존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과 협연해 화제를 모은다. 특히 지메르만은 15년 만에 내한하는 것으로 클래식 팬에겐 놓칠 수 없는 무대가 될 것이다. 창립 당시부터 오케스트라 단원들에 의해 운영될 만큼 자율성이 높고 어느 지휘자와도 융통성 있게 적응해온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그리고 음반사 EMI의 음반 녹음을 위해 창단한 만큼 섬세한 앙상블과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차이를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2011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우승자인 다닐 트리포노프.
겨울의 초입엔 풍성한 피아노 무대가 기다리고 있다. 10월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의 리사이틀은 서둘러 예매해야 한다. 키신은 앞선 내한 공연에서 30회의 커튼콜과 기립박수, 1시간에 걸친 10곡의 앙코르 연주와 자정을 넘긴 팬 사인회 등 놀랄 만한 기록을 남긴 피아니스트다. 키신은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지만 “음악은 들을수록 어렵고, 연주장에서도 늘 더 높은 목표가 생겨 연주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어렵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그는 지금까지도 하루 6~8시간 이상 연습에 몰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공연에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29번 ‘하머클라비어’,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 Op.23의 7곡과 Op.32의 3곡을 들려준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바쁜 음악가’로 꼽히는 다닐 트리포노프의 무대도 주목할 만하다. 2011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우승자인 그는 영국의 유명 음악 칼럼니스트 노먼 러브렉트에게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칭송을 받을 만큼 뛰어난 연주 실력을 자랑한다. 10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그는 130여 년 전통의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협연, 러시아 피아니즘의 진수를 들려준다. 세계 피아노 계보를 잇는 동시대 피아니스트를 만나고 싶다면, 예브게니 키신과 다닐 트리포노프의 연주는 꼭 들어봐야 한다.
11월 29일과 3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마리스 얀손스가 이끄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공연이 열린다. 얀손스는 평생의 숙원이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위한 전용 홀 건립이 확정된 후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29일에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7번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30일에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를 연주하며, 30일에는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예브게니 키신과 협연한다.
사계절 풍성한 공연이 예정된 2018년은 클래식 팬에겐 운명 같은 해다. 특히 지메르만을 위시한 피아노 거장의 내한 무대는 평생 만나기 힘든 기회인 만큼 놓치지 말기를 권한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내가 자주 가는 곳, 내가 읽는 책이 나를 말해준다고 했다. 시대와 함께하는 클래식 공연을 통해 내 안의 아름다움과 행복의 조각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글 국지연(<객석>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