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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죽거든 우주로

LIFESTYLE

시신의 유골을 우주로 쏘는 것, 납골당을 현대미술가의 작품처럼 새로운 공간으로 꾸미는 것. 지금 죽음의 ‘축제적 성격’이 깃든 장례 문화가 세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수천 개의 불상과 LED 조명 등으로 꾸민 일본 신주쿠의 ‘루리덴’.

이청준의 소설 <축제>는 죽음의 ‘축제적 성격’을 예술 미학으로 풀어냈다. 작품은 우리의 전통 장례 의식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어머니와 죽음을 밑바닥부터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소설가 이청준은 실제로 1994년에 모친을 잃었다. 그는 이듬해에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 촬영장에서 노모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의 제목이 ‘축제’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치매로 주위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던 노인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호상이라는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고 노인을 돌본 주변인들의 정성을 기린다는 뜻도 있다.” 그리고 덧붙였다.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삶의 영속성을 강조하고 죽음이 또 다른 시작을 상징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즉 삶과 죽음은 연결돼 있으며 그 축제성은 생사를 초월한다는 이야기. 실제로도 이 소설은 슬프지 않다. 아니,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야 할 초상집을 되레 잔칫집처럼 묘사했다.
그간 에디터가 경험한 몇몇 장례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 머리 위로 돼지머리고기와 육개장이 정신없이 오가고,술로 얼굴이 벌게진 먼 친척들이 밤새 고인을 추억하며 목소리를 키웠다. 살아 있는 이와 살아 있는 이, 살아 있는 이와 죽은 이가 다시 만나 용서하고 화해하는 자리. 역설적이지만, 그것은 삶과 죽음이 어우러진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장례 방법에 대해 말하자면, 아직까지 한국에선 땅이 부족해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없다. 티베트의 산악 지대에서 시신을 산에 펼쳐 독수리의 먹이가 되게 ‘하늘장’을 치르는 것, 인도 뭄바이의 파르시교 신도들이 ‘침묵의 탑’이라는 구조물 안에 시신을 보관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예부터 땅에 시신을 묻는 매장이나 불에 태우는 화장으로 고인을 저세상에 보냈다.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1990년대만 해도 20% 안팎이던 화장 비율이 최근 80%대까지 치솟았다는 점. 한국인이 화장을 선호하게 된 데엔 사후 관리가 편하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얘기. 해외 국가에선 우리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장례 문화가 이미 일상화되어 있다.
일본 신주쿠 쇼핑 거리 한편엔 LED 조명과 벨트컨베이어로 무장한 납골당 ‘루리덴’이 등장했다. 이곳은 겉보기엔 전통적 불교식 납골당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작은 불상 2000여 개가 LED 조명을 밝혀 색색으로 빛난다. 참배객이 인식기에 카드를 대면 자동으로 지하 보관소에 있던 유해가 벨트컨베이어를 통해 지상으로 올라온다. 루리덴을 운영하는 사찰 고고쿠지의 주지 야지마 다이준 스님은 공식 웹(www.ruriden.jp)을 통해 “출산율 하락으로 일본의 인구가 줄고 있으며 가족묘를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하지만 망자에 대한 전통이나 감정은 변하지 않았기에 이 납골당은 그 같은 필요에 맞춘 것”이라고 말한다. 루리덴은 가격 면에서도 이 점이 많다. 750만 원 정도만 내면 최장 33년간 유해를 보관해준다. 도쿄 시내 중심가의 아오야마 공동묘지에 안장하는 비용이 약 1억 원, 지역 사찰의 작은 사물함 형태로 납골당을 쓰는 게 보통 2000만~4000만 원쯤 하기 때문이다.

홍콩의 건축 회사가 디자인한 선상 묘지 ‘부유하는 영원’.

세계에서 부동산 가격이 높기로 손꼽히는 홍콩에선 아예 묘지를 땅이 아닌 바다 위에 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현재 홍콩인 90%는 화장을 선호하지만 공공 납골당에 들어가는 건 ‘로또’에 당첨되는 수준. 홍콩 뉴스 기사를 뒤져보면 2023년엔 납골당 40만 개가 부족할 거란 전망까지 나온다. 이 때문인지 수년전, 현지 건축 회사 브래드 스튜디오는 ‘부유하는 영원(Floating Eternity)’이라는 이름의 선상 묘지를 디자인했다. 평소엔 홍콩섬 인근을 떠돌다 청명절 같은 대표 명절에만 항구에 정박해 유족을 맞는다는 구상이다. 이 선상 묘지 형태의 배엔 유해 37만구를 실을 수 있다고 한다.

1 영국 버밍엄시에서 곧 도입하는 ‘알칼리 분해법’ 장례.
2 미국의 우주 장례식 기업 셀레스티스의 위성 발사 장면.

영혼이 빠진 유체는 한낱 물체에 불과하다고 믿는 영국에서도 최근 독특한 장례법이 등장했다. ‘알칼리 분해법(water cremation)’이다. 웨스트미들랜즈의 버밍엄시에서 도입 예정인이 장례법은 쇠로 된 관에 시신을 넣고 95%의 물과 5%의 수산화칼륨으로 구성된 알칼리성 용액으로 세포와 조직은 액체화하고 뼈는 재로 만든다. 액체가 된 부분은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재로 변한 유골만 가족에게 안겨준다고. 버밍엄시는 이 장례법이 차로 800km를 달릴 수 있는 천연가스를 소비하는 화장보다 훨씬 친환경적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아예 지구 밖으로 유해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 본사가 있는 우주 장례식 기업 셀레스티스(Celestis)에선 4995달러(약 527만 원)를 내면 민간 위성을 이용해 화장 유해의 일부를 캡슐에 담아 지구 밖으로 쏴준다. 달까지 운반하거나 태양계를 벗어나는 옵션을 선택하면 1만2500달러(약 1320만 원)까지 비용이 늘어나기도 한다. 이 회사가 우주에 쏜 유해캡슐은 2016년 기준 총 1200여 개. 공식 웹(www.celestis.com)에 따르면 1960년대 인기 드라마 <스타트랙>의 기관장인 스콧역의 배우 제임스 두언과 배우 메이절 배럿, 전 미국 우주비행사 윌리엄 포그너 같은 유명인의 유해가 지금껏 이들의 위성에 실려 약 1년 동안 지구 궤도를 돌다 대기권으로 빨려 들어가 연소됐다. 쉽게 말해 아주 잠깐 동안 우주의 ‘빛’이 된 것.
해외에서 이런 기상천외한 장례 문화가 등장한 데엔 이유가 있다. 도심에 더는 묘지를 만들 땅이 없는 것. 그리고 가족이나 친척, 친구 등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장례를 간소히 하려는 의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에선 아직까지 이 같은 장례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의 정혁인 정책기획부장은 그 이유를 “(장례 문화에서만큼은 한국인이) 전통에서 벗어난 방법을 받아들이는 것이 느리고, 아직까진 성대하게 고인을 추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믿기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고인의 개성을 연출하는 이벤트성 강한 장례나 LED로 무장한 납골당 같은 공간이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라는 추측이다.
사회가 아무리 바뀌어도 유족의 슬픔이나 지인들이 고인과 마지막 이별을 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인 한국도 언젠가는 묘지나 납골당을 만들 땅부족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것이 분명하다. 그럴 때 위에 언급한 장례 문화를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장례 의식이 간소화되고 변형된다 해도 그 슬픔의 깊이가 달라지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죽음이 또 다른 시작을 상징하는 ‘축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믿는 이라면 더더욱. 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