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의 오해
요 근래 설탕은 ‘21세기 담배’로 불린다. 그런데 정말 설탕이 나쁘기만 한 걸까?

지난 4월부터 영국은 설탕이 들어간 음료에 ‘설탕세(sugar tax)’를 도입했다. 100ml당 설탕 5g 이상이 함유된 음료엔 1리터당 18펜스(약 300원), 8g이 넘는 음료엔 1리터당 24펜스(약 400원)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 특별한 일이 아니다. 멕시코,헝가리, 핀란드 같은 나라에선 이미 수년 전부터 설탕세를 부과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도 2년 전 ‘당류 저감 종합 계획’을 발표한 이후 설탕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2020년까지 가공식품을 통한 당류 섭취량을 하루 열량의 10% 이내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하는 정책이다.
이렇듯 설탕은 최근 ‘공공의 적’으로 규정되는 모양새다. 충치와 비만은 물론 당뇨병, 고혈압, 우울증, 심장 질환, 심지어 암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쯤이면 거의 독(毒)에 버금가는 취급이다. 한편으로 설탕 입장에선 억울할 만도 하다. 특유의 단맛으로 인류를 사로잡으며 오랜 시간 귀한 대접을 받다가 갑자기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설탕이 인류 역사에 등장한 건 4세기경이다. 이전에도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를 재배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인도 굽타 왕조에서 설탕의 결정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한다. 7세기 들어 아라비아 상인이 설탕을 지중해로 전파했고, 서유럽엔 11세기에 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전해졌다. 15세기 중엽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설탕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 서해안 섬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했다. 단, 18세기 산업혁명 초기까지만 해도 설탕은 왕족이나 귀족 등 극소수의 상류층만 누릴 수 있는 사치품에 해당했다. 지금 시각으로 보면 낯설지만,단맛을 갈구한 당시 서민은 설탕 대신 저렴한 꿀을 먹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가속화되고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늘며 상황이 바뀌었다. 카리브해를 중심으로 사탕수수 농장이 증가하고, 미국이 당시엔 합법적이던 노예제도를 활용해 사탕수수를 대량 재배하면서 가격이 싸진 것이다. 마침 서민의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고기와 채소가 주식이 되면서 설탕은 음식에 맛을 더하는 감미료로 쓰이기 시작했다. 같은 맥락으로 홍차나 커피 등 설탕을 첨가해 먹는 기호품의 소비량이 폭증한 것도 이때부터다. 설탕은 곧 서민의 식생활을 상징하는 식품이 됐다.
그러나 설탕이 인류의 사랑을 받은 건 단순히 ‘맛’ 때문은 아니었다.18세기 이전까지 설탕은 유럽 의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기침, 열, 설사, 위장병 환자는 물론 흑사병에도 설탕을 처방했다. 설탕이 만병통치약처럼 쓰인 이유는 그것의 당 성분이 신체 에너지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육체 활동을 할 때 당은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단백질 생성을 돕는다. 간은 쓰고 남은 당을 글리코겐으로 저장한다. 많은 에너지 소비로 글리코겐이 거의 바닥나 몸에 당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상태를 우린 ‘피로’라고 부른다. 즉 설탕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생명과 활력을 유지하는 필수 물질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설탕이 최근 비난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설탕에 대한 몇 가지 오해에서 비롯됐다. 이 오해를 제대로 풀기 위해선 우선 설탕의 성분부터 따져봐야 한다. 설탕은 당의 일종인 자당에 속한다. 단당류인 포도당과 과당의 중합체로, 체내에 소화되면서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리된다. 설탕이 유해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주로 과당을 문제 삼는다. 과당의 강한 단맛이 식욕 절제 신호를 차단해 과식을 부르고 비만을 유발한다는 것. 하지만 엄밀히 말해 비만은 설탕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만은 몸에서 에너지로 쓰고 남은 여분의 칼로리가 지방의 형태로 몸에 축적된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이 여분의 칼로리는 설탕의 당 성분만이 아니라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 등 모든 영양분에 의해 만들어진다. 비만의 주범은 엄밀히 말해 설탕이 아니라 초과된 칼로리, 그리고 적은 칼로리 소비량 그 자체다.
또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는 ‘착한 당’과 ‘나쁜 당’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여기서 착한 당은 꿀이나 쌀, 감자와 같은 비가공식품의 천연당을, 나쁜 당은 식품에 인위적으로 넣은 첨가당을 지칭하는 것이겠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과일 외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는 프리미엄 착즙 주스에도 탄산음료에 버금가는 양의 당이 함유되어 있다. 과일에 들어 있는 당과 탄산음료에 함유된 당이 영양학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몇몇 가공식품은 칼로리가 없는 인공감미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같은 단맛이라면 천연식품보다 가공식품의 당 함량이 적을 때도 있다. 또 단당, 이당,올리고당, 탄수화물 등 여러 종류의 당을 섭취할 경우 이들이 즉각적으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시간이 경과하고 대사 능력이 탁월해 모두 단당으로 전환된다면 결국 비슷하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당 섭취를 염려한다면 설탕뿐 아니라 다른 음식에도 신경 써야 한다.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하루 평균 당 섭취량의 33%는 과일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유(14.5%), 탄산음료(8.3%), 쿠키·크래커·케이크(8%), 캔디·젤리·꿀·엿·초콜릿(7.7%)이 뒤를 잇는다. 보통 한국은 하루 평균당 섭취량의 절반을 과일과 우유를 통해 얻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하루 총 섭취 열량 대비 총 당류 섭취량을 10~20% 이내로 조절한다면, 일반 성인에게 설탕은 별로 문제될 게 없다. 다만 이미 당뇨에 걸린 환자에겐 설탕이 위험할 수 있다. 설탕은 다당류인 곡물과 달리 체내에 빠르게 흡수되고, 혈당을 급격하게 상승시켜 당뇨를 악화시킬 수 있다. 또 설탕은 충치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충치 세균은 설탕과 같은 당류를 먹고 자라며, 대사 작용을 통해 당을 산과 에너지로 전환한다. 이때 생성된 산이 치아의 에나멜을 녹여 구멍을 뚫는 것이다.
설탕세 도입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움직임에는 비만을 비롯한 각종 건강 문제를 억제하겠다는 좋은 취지가 담겼다. 하지만 영양 불균형은 궁극적으로 개인이 식습관으로 조절해야 할 문제다. 정부가 단순히 공급을 억제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설탕에 대한 불평등한 세금 부과는 오히려 설탕에 대한 푸드 패디즘(food faddism, 먹거리가 건강과 병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유발하고, 설탕을 대체하는 인공감미료의 무분별한 사용을 조장할 수 있다. 정부가 나선다면, 국민 스스로 당 섭취를 줄이는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치는 게 적절하다.
태생부터 나쁜 음식은 없다. 설탕도 마찬가지다. 사실 모든 음식은 그 양에 따라 독이 될 수 있다. 물론 지나친 당 섭취와 이로 인한 건강 문제를 경계해야겠지만, 잘못된 논리로 설탕을 ‘마녀사냥’ 하는 건 무의미하다. 당 섭취를 줄이고 싶은 이라면 착한 당과 나쁜 당이 따로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식품을 구매할 때 항상 당 함량 표시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길 권한다.
Profile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근무했고, 한국식품위생안전성학회 부회장, 한국식품안전협회 부회장, 소비자시민모임 이사 등을 역임하며 식품 안전 정책 발전과 올바른 식품 정보 확산에 힘썼다. 저서로 <과학과 역사로 풀어본 진짜 식품 이야기>, <하상도의 식품 안전 길라잡이>, <음식의 발견> 등이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다.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글 하상도(중앙대학교 식품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