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sion? No, Compassion!
“재즈는 열정만 가지고 하는 음악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리움, 연민, 동정에 가깝죠. 항상 뭔가 부족하고 비어 있어요. 이걸 완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고민하죠. 그래서 죽을 때까지 그 숙제가 끝나지 않는, 정년퇴직이 없는 음악이 바로 재즈입니다.”

“재즈를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열아홉 살에 가요계에 데뷔, 이후 가스펠 무대를 거쳐 한국 최고의 재즈 디바가 된 윤희정에게 “올해가 벌써 데뷔 47주년”이라는 첫인사를 건네자 돌아온 답이다. 지금이야 ‘한국의 빌리 홀리데이’라 불리며 재즈계의 대모로 등극한 그녀지만 사실 첫 데뷔는 1971년,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KBS배 쟁탈전 전국노래자랑’이라는 방송사의 가요 경연 대회였다. 한 해 동안 1500명의 가수 지망생이 겨뤄 최종 우승자를 신인 가수로 데뷔시킨 <전국노래자랑>은 쉽게 말해 요즘의 <슈퍼스타K>,
나이에 맞지 않게 서정적이면서 구슬픈 솔 블루스적 음색이 가득 담긴 데뷔 앨범 <세노야 세노야> 발매에 이어 1973년에 2집 <지다 남은 잎새>, 그리고 애보니스와 스플릿 앨범을 발표하면서 가요계를 평정했지만 결혼과 출산 이후 방향을 돌려 국내외 가스펠 무대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던 그녀가 재즈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한 재즈 기획자의 추천으로 한국 재즈계의 선구자인 이판근 선생의 제자가 되면서다. 이판근 선생은 그녀에게 대중가요 잘 부르는데 왜 이 힘든 재즈를 하려고 하냐. 그냥 하던 거 계속해라”라고 만류했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재즈가 그렇게 힘든가? 그럼 한번 제대로 파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죠.” “판소리를 모르고 어떻게 재즈를 하려고 하느냐”는 스승의 질타가 이어지자 그녀는 우리 소리를 배우고 꽹과리까지 손에 익히며 한국적 정서의 재즈 스피릿을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해 고군분투했다.
남의 재즈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서와 소리를 함께 담아내고자 하는 그녀의 노력은 재즈 대중화를 위한 다양한 공연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1997년 정동극장 첫 무대를 시작으로 2011년까지 오랜 시간 동안 꾸려온 프로그램 ‘윤희정 & 프렌즈’가 그것. 유명 연예인과 대표적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재즈를 가르쳐 재즈 무대에 세우는 것으로 남경주, 송일국, 신애라, 박상원, 김건모, 김효진, 박경림, 옥주현, 이하늬를 비롯해 김영혜 전 부장판사, 송인준 전 헌법재판관,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 그 수만 200명이 넘는다. 2013년부터는 다시 ‘재즈 프렌즈 파티 with 윤희정(이하 재즈 프렌즈 파티)’이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해 재즈를 통해 주변 사람들과 정을 나누고 마음을 교감하며 음악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런 다양한 노력으로 지난 5월 6일 코엑스에서 열린 ‘2018 아시아모델페스티벌 어워드’에서 아시아 특별상 재즈 아티스트상을 수상한 윤희정을 만나 그녀가 늘 부르짖는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으로 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1 ‘재즈 크리스마스 with 윤희정’ 공연에 함께 한 윤희정의 딸 김수연.
2 ‘2018 아시아 모델페스티벌 어워드’에서 아시아특별상 재즈 아티스트상을 수상한 윤희정.
몇 년 후면 어느덧 데뷔 50주년을 맞게 됩니다. 한국 음악계에서 보면 과연 원로라고 할 수 있는데, 어제도 선생님의 SNS를 보니 공연과 행사 사진이 잔뜩 해시태그되어 있더군요. 20~30대보다 더 에너지가 넘쳐 보이세요. 첫 앨범을 1972년에 냈으니 참 오래되긴 했네요. ‘윤희정 & 프렌즈’를 2011년 5월에 끝내고 잠시 쉬다가 2013년에 ‘재즈 프렌즈 파티’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금껏 하고 있어요. 재즈를 통해 주변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면서 삶의 질을 높이고 싶다는 의미의 힐링 콘서트 같은 거죠. 재즈라는 공통의 대화 속에서 셰프와 변호사, 기업 대표, 큐레이터, 교수, 의사, 수능 강사, 장군 등 각기 다른 사람들이 직업 이야기를 나누며 재즈를 부르는 겁니다.
‘윤희정 & 프렌즈’와 ‘재즈 프렌즈 파티’는 어떻게 다른가요? 형식이 반대죠. ‘윤희정 & 프렌즈’는 제가 15곡을 부르고 초청한 스타가 3~4곡을 부르는 거였고, 지금은 7명 정도의 참가자가 14곡을, 제가 3~4곡을 부릅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 재즈의 대중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공로상도 수상하셨죠. 지금도 여전히 재즈에 대한 사명감을 생각하시나요?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좀 달라요.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이 삭막한 환경을 잠시 벗어나 정서적 힐링을 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합니다. 사실 제 별명이 탱크인데, 생각해보면 저도 과거에 휴식 시간이 없었어요. ‘땅’ 하고 달려서 지금까지 왔죠. 이제는 재즈를 좀 즐기며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벌써 9기가 되었습니다. 한 기수당 7명씩 공연하니까 벌써 63명이 무대에서 데뷔했네요. 공연을 마치고 나면 서로 무척 돈독해질 것 같아요.같은 기수끼리는 그들만의 소사이어티가 확고해지죠. 각자 다른사람이 모여 재즈라는 키워드로 하나 되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매우 즐거워요.
‘윤희정 & 프렌즈’부터 지금까지 300명 가까운 분이 선생님의 무대에 함께 섰는데, 그걸 보고 누군가는 선생님이 인맥의 왕이라고 하더군요.사실 인맥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소확행, 재즈를 통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에요. 인맥을 넓히거나, 인맥으로 뭘 해보려는 생각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을 트레이닝하다 보면 여러 해프닝도 있을 것 같아요. 참여한 분들과 인연이 돈독해진 경우도 있을 것 같고요.스타들은 갑자기 무대에 못 서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빨리 다시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가끔 그렇게 급하게 찾은 스타가 놀라운 실력자인 경우가 있어요. 소유진 씨가 그랬죠. 아주 똑똑한 친구더라고요. 노래도 잘할뿐더러 재즈를 정말 빨리 흡수했어요. 김효진 씨도 비슷해요. 그 인연으로 유지태 씨와 결혼할 때 제가 축가를 불러줬죠. 앙드레 김 선생님도 늘 제 공연을 찾아준 분이세요. 그 옛날에 일곱 살 된 아들 손을 잡고 맨 앞자리에 앉아 2시간 20분동안 공연을 얼마나 집중해서 보시던지. 그때 일곱 살이던 아들 중도가 지금 서른이 훌쩍 넘었어요. 2016년에 ‘재즈 프렌즈 파티’ 무대에함께 섰는데, 정말 감개무량하더군요.
잠시 데뷔 당시 이야기로 돌아가볼게요. 지금으로 말하면 <슈퍼스타K>와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KBS배 쟁탈전 전국노래자랑’ 연말 결선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가요계에 데뷔하셨는데,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했다고요. 네, 지금만큼 치열했어요. 토너먼트식으로 계속 붙어서 승자가 올라가는 건데, 제가 10월 주자였어요. 그런데 11월, 12월 계속이긴 거죠. 최우수상을 탔을 때 제 기사가 신문 가판대에 쫙 깔렸어요.
선생님 집안은 매우 학구적인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선생님의 큰오빠는 일찌감치 고등고시를 패스했으니 중학교 때부터 통기타 치고 노래하신 선생님과는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부모님은 선생님의 행보를 지지해주신 편인가요? 네, 각자의 개성을 인정해주셨어요. 제가 1971년에 최우수상을 탔을 때 오빠도 고등고시를 통과했어요. 어떻게 보면 고등고시가 더 큰 영광이었지만 제가 받은 최우수상 부상, 21인치 컬러TV와 냉장고, 전축이 집으로 배달된 데다 전속 가수가 되면서 2년 동안 월급까지 받았으니, 당시엔 고등고시 붙은 오빠보다 제가 훨씬 요란했죠.
1972년 첫 앨범 <세노야 세노야>를 발매하고 3집 앨범을 끝으로 휴식기를 가진 이유는 뭔가요? 결혼과 동시에 그만두게 됐어요. 첫째와 둘째를 3년 간격으로 낳다 보니 쉬는 기간이 길어졌고, 아이를 낳고 쉬는 동안 연예인교회에 출석하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가스펠 해외 선교를 다녔어요. 그러다 1990년대 초에 한 기획자의 눈에 띄어 재즈에 입문하게 됐죠.
기획자가 선생님을 이판근 선생님에게 데려갔다고 들었습니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으신 건데, 그 일이 없었다면 계속 가스펠 가수로 사셨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그리고 만약 제가 당시 잘나가는 대중 가수였다면 재즈를 못했을 것 같아요. 잘나가는 가수들은 방송이나 행사 등 스케줄이 빠듯할 테니까. 반면 나는 시간이 많아 다시 새롭게 재즈라는 장르를 공부할 엄두를 낼 수 있었던 거죠.
이판근 선생님 앞에서 재즈를 처음 부른 순간을 기억하세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선생님 앞에서 재즈를 딱 들었는데, ‘어? 이거 장난 아니네. 이 사운드가 뭐지?’싶었어요. 블러 사운드에 쇼크를 받은 거예요. 도도 아니고 레도 아닌 그런 음악이었죠. 선생님께 수년을 배워도 잘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재즈 공부를 하면서 제가 머리 나쁘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이판근 선생님이 “노래를 잘하는데 그냥 가요를 부르지 왜 재즈를 배우려 하느냐”며 재즈 공부를 만류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왜 재즈를 하려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저에게 “가요를 해도 잘할 거고, 아니면 장사를 해도 잘할 텐데 왜 재즈같이 힘든 걸 하냐”고 계속 그러셨어요. 그 말을 듣는데 분해 죽겠더라고요 ‘어디 끝까지 한번 해보자. 그래 봤자 도레미파솔라시도 안에 있겠지’ 싶었죠.
가요로 시작해 가스펠을 거쳐 재즈를 다시 배우면서 선생님 스스로 정립한 음악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전 음악은 항상 두 가지밖에 없고 생각해요. 듣기 싫거나, 듣기 좋거나. 그 중간 지점은 없죠. 설득력이 있으면 듣기 좋은 거고, 설득력을 잃고 듣는 사람을 졸게 만들면 그 음악은 듣기 싫은 음악인 거예요. 재즈든 힙합이든 모든 음악이 그렇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재즈를 배우면서도 나만의 재즈를 한번 개발해보자 했어요. 그래서 공연마다 편곡도 해보고, 재즈 안에 애드리브도 넣으면서 관객의 반응을 살폈죠. 노래 순서를 정할 때도 블루스 다음에는 펑키, 펑키 다음에는 라틴을 넣는 등 지루하지 않게 프로그램을 꾸몄어요. ‘윤희정 & 프렌즈’에서 스타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것도 그런 변주의 일환이었죠. 스타들이 하는 재즈는 어떨까, 저도 무척 궁금했거든요.
1997년부터 2011년까지 이어진 ‘윤희정 & 프렌즈’가 그렇게 시작된 프로그램이군요. 남경주, 박상원, 소유진, 김건모, 이소라, 옥주현, 이현우, 이은결 그리고 송인준 전 헌법재판관 등 스타와 유명인사들이 선생님의 무대에 섰습니다. 그분들이 재즈를 대하는 자세나 연습 과정을 보면서 선생님도 배우는 계기가 됐을 것 같아요.제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에요. 재즈를 가르치기도 하고 가르친 제자들과 함께 공연을 끌어가는 건 공연계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거잖아요. 재즈를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한 거죠.
지난 5월 6일에 코엑스에서 열린 ‘아시아모델페스티벌 어워드’ 시상식에서 아시아특별상 재즈 아티스트상을 수상하셨어요. 아티스트들이 뽑은 상이라 더 행복하셨겠어요. 감각적인 아티스트들이 뽑은 상이라 더 감동이었죠. 무엇보다 그날 오프닝 무대로 2017년 뉴욕 패션위크 공식 초청으로 화제가 된 패션 디자이너 그레이스 문의 패션쇼가 열렸는데, 거기서 모델들이 런웨이를 활보하는 동안 패션쇼의 배경음악으로 저와 딸 수연(쏘머즈)이 함께 15분 정도 라이브를 했어요.
패션쇼장에 울리는 라이브 재즈는 보기 힘든 무대인 것 같습니다. 그날 행사의 영상을 유튜브로 봤는데, 특히 한복을 재해석한 동양적 느낌의 옷과 재즈의 조합이 아주 매력적이더라고요. 선생님과 수연 씨의 드레스도 쇼와 매우 잘 어울렸고요. 저는 Bride MERCI 드레스를, 수연이는 Style Code D.H.K.의 드레스를 입었는데 그날 분위기에 잘 맞은 것 같아요.
선생님과 수연 씨는 지난해에 Mnet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 <더 마스터>에도 함께 나와 파워풀한 무대를 선보여 ‘실검 1위’에 올랐습니다. 알 재로의 원곡 ‘스페인’을 세계적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이 재편곡한 곡을 부르셨죠. 재즈계에서도 다루기 어려운 현란한 스케일의 곡을 선정하셨는데, 정말 숨 돌릴 틈 없는 무대였어요. 처음에는 담당 PD가 곡이 너무 길어서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중간에 1분을 잘라냈죠. 함께 연습하는데 딸은 저에게 “엄마는 왜 거기서 그렇게 불러”,저는 딸에게 “너는 왜 그렇게 부르니” 이러면서 다투다 “이렇게 멋진 음악 프로그램에 엄마와 딸이 함께 서는 게 쉽지 않으니 우리 싸우지 말고 잘하자” 화해하고 다시 연습하고 그랬어요.
특히 그날 수연 씨의 스캣을 보고 많은 사람이 혀를 내둘렀습니다. 빠른 속도의 스캣을, 그것도 한국어로 부른 건 정말 놀라웠어요. 실력이 그렇게 뛰어난데도 유명 재즈 가수인 엄마의 그늘에 가려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는 일도 자주 있을 것 같아요. 네, 그날 수연이 파트에서 <더 마스터>가 실검 1위를 했더라고요. 수연인 여덟아홉 살 때부터 작곡을 한 아이예요. 리듬감도 좋죠. 실력에 비해 제 딸이라 손해를 많이 봐요. 기획자 입장에서 컨트롤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음악은 어렵고 쉽고의 문제가 아니라 듣는 순간에 감동이 없다면 죽은 음악”이라고 하셨습니다. 딸에게도 선배 뮤지션으로서 그런 조언을 해주시는 편인가요? 그렇죠. 감동이 없는 음악은 설득력이 없어요. 내 마음도 안 움직이는데, 어떻게 남을 감동시켜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제 무대를 보고 감동하는지 안 하는지 노래하면서 다 알아요.
사람들이 흔히 재즈는 리드미컬하고 흥겹지만 어려운 음악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왜냐, 재즈는 즉흥적 음악이라 그래요. 이 연주자 다르고 저 연주자 달라요. 예를 들면 대중가요는 예쁘게만들어 사람들한테 파는 거예요. 근데 재즈는 대중이 우리 비위를 맞추는 거죠. 가요와는 반대 개념이죠. 그런 면에서 재즈는 비주류예요. 근데 저는 재즈가 비주류라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대중화 해보자 해서 앞서 설명한 그런 다양한 프로그램을 해왔죠.
여름은 재즈의 계절이라고 하잖아요. 추천해주실 만한 페스티벌이 있나요?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에 후지마운틴 재즈 페스티벌이 무척 좋았어요. 지금은 요코하마 재즈 페스티벌이나 자라섬페스티벌을 자주보러 다녀요. 제가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페스티벌이 있는데, 재즈는 스윙이잖아요. 그래서 올림픽공원이나 넓은 공원에서 그네도 설치하고 전 세계 음식을 팔면서 재즈 공연을 하는 거예요. 해외 페스티벌가면 얼마나 먹고 즐길 게 많은데, 그런 거 한국에서 꼭 해보고 싶어요.
선생님을 보면 재즈 뮤지션으로 살아가시는 게 정말 행복해 보여요. 더 일찍 시작하지 않은 걸 후회해요. 재즈와 친구가 된 것, 그리고 평생 이렇게 동행하는 건 저에게 가장 큰 행운이에요.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