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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정세랑

LIFESTYLE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고 소설가가 궁금해졌다. <피프티 피플>을 읽고 나선 글쓴이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이렇게 따뜻하고 유쾌한 글을 쓰는 사람을 꼭 만나고 싶었다.

작년 한 해 굵직한 문학상은 1980년대에 태어난 여자 소설가가 휩쓸 다시피 했다. 동인문학상의 김애란, 대산문학상의 손보미, 현대문학상의 김금희까지, 그중에서도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정세랑이 보여준 참신한 상상력과 심리묘사는 유독 눈길을 끈다. “저는 20대에 제가 예민하고 우울한 사람인 줄 알았거든요. 막상 소설가가 되고 보니 이 분야에선 제가 밝은 사람이더라고요. 다른 소설가들도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할 정도예요. 하지만 다른 작가들은 제가 갖지 못한 면모를 갖췄죠. 저는 작가의 예민함이 스스로 힘들 수는 있어도 사회에선 좋은 역할을 한다고 봐요. 뛰어난 감수성으로 주변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관찰하는 소설가와 저처럼 감수성보다는 밝고 유머 있는 소설가 둘 다 필요해요.”
2010년 장르 소설 매거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등단, 2014년 창비장편소설상을 탄 정세랑은 책 애호가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책에 둘러싸여 자랐다. 대학에선 역사와 국문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출판사와 광고 마케팅 기업에서 일했다. 하지만 독서가였던 그녀가 본격적으로 창작자의 길로 접어든 건 문학잡지에서 일한 경험 때문이다.
“지금은 폐간된 민음사의 문학 전문지에서 일했어요. <릿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죠. 잡지를 만들면서 젊은 한국 문학가의 책을 현장감 있게 접했고, 직접 쓰고 싶은 욕구가 점점 커졌어요. 잡지사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당시 경험을 통해 제가 쓰는 책에 다양한 소재거리를 입힐 수 있었거든요. 잡지는 사람한테 정말 큰 영향을 미쳐요. 잡지사에서 일해본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걸요.”

많은 과정을 거쳤지만 지금 정세랑은 전업 소설가다. 처음엔 다른 일을 겸업했지만 점점 일이 몰려 글 쓰는 데만 시간을 쏟고 있다. 1년에 2000~3000매 이상씩 꼭 글을 쓰는 그녀는 그 많은 소재를 어디서 찾을까? “엉뚱한 데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제 소설은 뜬금없이 떠오른 단어에서 출발하기도 하고, 버스를 타고 가다 본 풍경에서도 시작해요. 하지만 아무리 아이디어가 자주 떠올라도 글로 발전시키는 과정이 오래 걸리죠. 몇 년이 지나도 풀 수 없는 생각도 있고, 아이디어를 얻자마자 글이 술술 풀릴 때도 있어요.”
주위에서 ‘정보 집합형 소설가’라고 부른다는 정세랑은 그만큼 여기저기서 온갖 정보를 수집해 소설에 쏟아붓는다. 흡수하는 정보의 양만큼 관심사도 다양하다. “옷이나 가구를 직접 만들고, 여행도 종종 다녀요. 최근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라는 전시를 봤어요. 아시아의 예술가를 모은 전시인데 좋은 작품이 많더라고요. 전시가 소설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제 감성이나 생각을 자극해요. 전시를 보고 아시아 각 도시 특유의 정서, 그 차이를 느꼈어요. 다른 공동체에서 자란 사람은 성격이나 특징도 다르고, 고민의 지점도 각각 다르다는 점이 와 닿았죠.”
정세랑은 자신을 대중소설가라고 칭한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블로그 등을 통해 독자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에 작품을 연재하기도 한다. 더 많은 독자에게 퍼질수록 이야기가 힘을 얻는다는 것이 정세랑의 지론. “전 독자와의 거리가 가까운 소설가예요. 동세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소설가가 되고 싶죠. 하지만 모든 소설가가 독자와 가까울 필요는 없어요. 전위적으로 극한을 넘나드는 문학도 있잖아요. 두 역할 다 중요하죠.”
대표작 <피프티 피플>(2016년)도 인터넷 연재로 출발했다. 병원을 배경으로 인물 50명의 각기 다른 이야기를 모은 책은 삶의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일상을 대부분 담아냈다. 별의별 직업, 생각, 사람의 50가지 일화다. 모두가 주인공이면서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고 어느 누구도 혼자가 아닌 세상을 종이 위에 펼쳐냈다. “살면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흥겨워서 몸을 들썩이기도 하잖아요. 그처럼 다양한 사람이 춤을 추는 이야기를 쓰려 했는데 실패했죠. 모두가 춤을 추니까 어색하더라고요. 컨셉을 바꿨어요. ‘나 그런 사람 50명쯤 알아. 그런 거 50번쯤 봤어’라는 표현 있잖아요. 50이라는 숫자가 평소 자주 인용하는 숫자 같아서 50명의 인물이 모인 공동체의 모델하우스를 만들었어요.”
그 많은 주인공의 이름은 남편의 동창회 명부를 참고해 성과 이름을 재조합했다. 이름은 물론이고 실제 사례도 소설로 많이 가져온다. 학교를 배경으로 평범하지만 비범한 보건교사의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2015년)도 친구의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가 간호사였어요. 일하면서 겪는 고충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보건교사에 대해 꼭 한번 쓰고 싶었죠. 또 당시 제가 겸업을 하면서 투잡에 대한 고민이 있었거든요. 주인공 안은영은 보건교사면서 동시에 퇴마사예요. 결국 제 상황을 반영한 책이라 할 수 있죠. 등단 무렵에 쓴 단편인데, 장편으로 읽고 싶다는 독자들의 성원에 에피소드 식 글을 모았어요.” 이 책은 영상화가 결정돼, 대본 작업이 한창이다. 아쉽게도 아직 구체적인 정보를 밝힐수는 없지만 곧 화면에서 살아 움직일 ‘안은영’의 모습을 기대해도 좋다.
현재 정세랑은 할머니에 관한 기억을 지닌 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꿈꿔온 코믹 역사 탐정 소설도 쓰고 싶다. “곧 책 두 권을 출판해요. 젊은 작가의 단편소설과 일러스트레이터를 일대일로 매치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거든요. 또 창비청소년에서 번역한 해외 청소년 페미니즘 에세이에 한국 작가로 글을 덧붙였어요. 두 권 다 조만간 나올 거예요.”
글을 쓴 시기의 상황과 심리가 글에 고스란히 담긴다는 정세랑이기에, 올해 나올 그녀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된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난이 시점에 정세랑은 2018년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녀의 2018년을 담아낼 책이 너무도 궁금하다. 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사진 정태호(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