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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OW

3개의 갤러리가 운영하는, 집처럼 꾸민 프라이빗 공간.

한때 ‘집처럼 꾸민’ 전시 공간이 유행하며 그런 컨셉의 미술관이나 호텔 아트 페어가 각광받은 적이 있다. 그들은 내 집 같은 안락한 장소에 작품을 자연스레 배치한 모습을 보라고 관람객을 불러들였다. 한데 집처럼 꾸몄다지만 창문이 없고 그곳으로 들어오는 빛이 없고 무엇보다 생활의 흔적이 없었다. 그런 곳에서 작품을 사 집에 들였다간 후회하기 십상이다. 우리 집은 인위적 가구와 조명으로 꾸민 모델하우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 소개하는 세 공간은 다르다. 호텔처럼 잠깐 스쳐가는 곳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머무는 공간. 이곳엔 창문이 있고 낮과 밤이 있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그게 내 집에서 어떻게 보일지 가늠할 수도 있다. 아, 한데 이 공간을 아무때나 공개하진 않는다. 미리 약속을 잡거나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만 문을 연다. 따라서 이 글은 언젠가 당신이 이 공간에 들어섰을 때를 위한 사전 안내서쯤 되겠다.

1 얕은 언덕이 있는 주변 자연환경을 건축에 활용한 갤러리소소의 프라이빗 공간 소소헌.
2 창 너머 보이는 작은 숲과 김성수의 ‘Solist’가 함께하는 풍경.

소소헌(Sosohun)
서울에서 자유로를 타고 20여 분 달리면 헤이리예술마을이 나오고 그 안에 갤러리소소(Gallery Soso)가 있다. 그리고 갤러리소소와 키 큰 나무들 사이에 아담한 단층 나무집 소소헌이 있다. 소소헌은 갤러리소소가 2012년에 문을 연 프라이빗 갤러리다. 아니, 차리리 별장이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 애초에 갤러리소소에서 전시를 본 지인들이 자리를 옮겨 또 다른 작품을 볼 수 있게 하거나, 전시를 앞둔 작가들이 며칠 쉬다 갈 수 있게 마련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소소헌을 운영하는 금혜원 대표는 “자연을 생각할 수 있는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작품을 볼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곳은 ‘숲속의 집’을 키워드로 꾸몄다. 가정집처럼 있을 건 다 있다. 다만 사람은 살지 않는다. 한때 갤러리소소에서 운영한 해외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 공간으로 쓰였으며, 이후엔 갤러리에서 전시한 서혜영·박기원·임국 작가 등의 작품을 ‘별관 전시’의 개념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일반 관람객에게도 문을 열었다.
건축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나무’다. 뉴질랜드산 방부목을 들여와 얕은 언덕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데킹해 땅이랑 건물을 완전히 분리시켰다. 건축자재 또한 전부 나무. 어떻게 이런 건축을 하게 되었는지 물으니, 금혜원 대표의 남편이 건축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목조 건축으로 널리 알려진 가와종합건축사사무소의 최삼영 건축가는 소소헌을 우리 삶과 자연을 담은 인위적이지 않은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고, 실제로 그것을 이뤄냈다. 실내는 69m2(약 20평) 정도로 넓지 않지만, 가구를 전부 붙박이로 만들어 거치적거림이 없다. 또 단순한 삶을 보여주고자 가변적 파티션을 뒀다. 직사각형의 실내 중앙에 주방이 있는데, 그 양옆으로 미닫이문을 달아 독립된 방을 하나씩 만들 수 있다. 그럼 그 두 방에 작품이 걸리고, 고요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이다.

김성수의 페인팅 작품 ‘Solist’와 서혜영의 설치 작품 ‘Ectype1’이 자연스레 어우러진 내부 공간.

당연한 얘기지만 이곳에 걸린 작품은 일반 갤러리에서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거짓말 조금 보태, 나무가 우거진 지리산 대숲에서 작품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실제로도 에디터는 소소헌의 벽에 걸린 김성수 작가의 초록색 페인팅을 들여다보다 공간의 힘에 이끌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딴세상을 경험했다.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었고, 나무 그림자가 방 안에 스미는 걸 봤고, 테라스 기둥을 타고 내려온 청설모 두 마리와 잠시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작품은 그 안에 집의 일부로서,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했다. “나무는 태생적 재료예요. 인간이 태어나 가장 가까이 느낀 재료고, 원초적으로 집을 지어온 재료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그 속에서 고요하게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바로 이 공간의 목적이죠.”
현재 소소헌엔 김성수 작가의 페인팅 서너 점과 박규원 작가의 드로잉, 서혜영의 설치 작품이 걸려 있다. 6월 9일부터 7월 8일까진 김을 작가의 개인전이 갤러리소소에서 열리는데, 일부 작품을 소소헌에 전시해 일반 관람객에게도 공개한다고 한다. 숲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작은 공간. 아침, 점심, 저녁 각각 다른 빛을 받아 변화하는 작품. 그곳에 며칠 묵으며 자연 그리고 작품과 함께하는 시간. 미술을 보는 방법은 이렇게도 바뀔 수 있다.

3 현관에서 바라본 누마루의 거실. 김영언의 페인팅 ‘p1650-Electronic Nostalgia-Noise’와 이정배의 조명과 테이블, 박경률의 ‘More Complex World’가 조화를 이룬다.
4 백아트와 초이앤라거갤러리의 프라이빗 공간 누마루.

누마루(Numaru)
서울 삼청동 가장 깊숙한 골목에 자리한 누마루. 이곳은 LA와 삼청동에서 백아트를 운영하는 수잔 백 대표, 쾰른과 삼청동에서 초이앤라거갤러리를 운영하는 최선희 대표가 함께 문을 연 프라이빗 공간이다. 오래전 한국을 떠나 각각 미국과 독일에서 생활해온 두 사람은 그간 전시 오프닝이 있는 짧은 며칠 동안만 한국에 머무르는 것을 아쉬워하다 지난 4월 갤러리가 있는 삼청동에 이 공간을 마련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아주 한국적이다. 이름도 한옥의 처마 아래 뻥 뚫린 공간을 일컫는 ‘누마루’다. 한옥과 양옥을 결합한 내부엔 실제로 손님을 접대하는 작은 사랑방이 존재하며, 본채로 들어가는 중앙엔 옛 중정의 느낌을 살린 정원을 두었다. 시골집에나 볼 수 있는 ‘노란 장판’과 한지 창호로 꾸민 ‘한국방’도 있다. 또 나무로 짠 찬장을 열면 도예가가 만든 컵과 도마, 소반 등이 보인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방은 2개지만, 각 공간마다 한옥의 미닫이문을 설치해 언제든 3~4개까지 방을 늘릴 수 있다. 쉽게 말해 해외에서 생활하는 두 갤러리스트가 진득하게 한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주방 한쪽에 걸려 있는 로즈 와일리의 ‘Spider’와 멜라 야르스마의 ‘Your Flag 1’.

하지만 앞으로 이 공간이 단순히 두 대표의 ‘한국 생활 체험’만을 위해 쓰이진 않을 것이다. 백아트의 수잔 백 대표는 “갤러리에서 고객이 작품을 보고 구매하면서 생기는 특별한 관계가 일회성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이 공간을 활용하겠다”며 “해외 작가들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운영이나 한국에 초청한 해외 큐레이터의 숙박 공간, 젊은 컬렉터들의 모임 장소 등으로도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그리고 LA와 쾰른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이들이 만든 공간답게 이곳엔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아니 ‘전시’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특정인을 위해 작품을 선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하튼 내부엔 두 대표의 취향을 알 수 있는 작품이 여럿 보이는데, 영국 작가 로즈 와일리부터 프랑스 작가 다니엘 퓌르망, 독일 작가 안드레아 블랑크, 박경률, 이정배 등 그 면면이 화려하다. 그중 이정배 작가는 이 공간을 위해 좌식 테이블까지 직접 만들어 선물했다고.
사랑방이 있고, 그 방 창문을 열면 작은 정원이 보이고, 그곳에 장미꽃 두어 송이가 수줍게 피어 있는, 심지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아무렇지 않게 곳곳에 걸려 있는 이곳 누마루는 결코 서울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수잔 백 대표의 표현을 잠시 빌리면 ‘비가 올 때 처마 아래서 잠시 쉬던 공간’ 또는 ‘편하게 발을 내놓고 앉아 지인과 담소를 나누던 공간’인 누마루는 미술 작품이 있는 공간의 또 다른 변형이다.

프라이빗 갤러리를 추구해 집처럼 편안한 환경에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비선재의 내부. 윤영호의 작품들이 벽에 걸려있다.

비선재(Bisunjae)
‘아트부산 2018’ 당시 유독 눈에 띄는 갤러리 부스가 하나 있었다. 직사각형의 긴 바닥 한쪽에 큰 기둥을 세우고 중앙의 통로를 임의로 막아 관람객의 자연스러운 동선을 유도한 비선재의 부스였다. 이곳에 들어온 관람객은 중앙의 기둥을 지나 한쪽 출구로 나갈 때까지 그곳에 걸린 작품을 두루 살필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런 공간을 만들었을까?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 가장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미리 건축 모형을 제작했기 때문이죠.”
2015년에 개관한 비선재는 ‘도시환경종합건축사사무소’라는 이름의 건축설계 사무소가 운영하는 프라이빗 갤러리다. 건축회사가 운영하는 공간답게 아트부산 2018 당시에도 몇 주 전부터 미리 건축 모형을 준비하며 전시를 시뮬레이션했다. 물론 이들이 운영하는 실제 갤러리 또한 평범하다곤 못하겠다. 뭐가 평범하지 않느냐면 내부가 그렇다. 또 그것이 자리한 위치가 그렇고, 작품을 관람하는 과정도 유별나다. 우선 이곳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해 그냥 지나가다 쑥 들어가 작품을 볼 수 있는 갤러리가 아니다. 예약을 하고 찾아간다 해도 한남동 UN빌리지 구석에 자리해 초행길이라면 100% 길을 헤매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찌어찌해서 안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실내는 별천지다. 그 거대한 규모와 쥐 죽은 듯 고요한 환경, 프라이빗한 작품 관람을 최우선으로 하는 운영 방침 때문이다. “건축물과 미술 작품을 한 몸으로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했습니다. 공간감을 주기 위해 중앙에 중정을 두었고, 벽면에 커다란 창문을 여럿 만들어 자연광이 들어오게 했죠. 전시장은 사전 예약한 팀만 방문할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관람객은 작품과 오롯이 하나가 될 수 있죠. 한쪽엔 주방도 마련했습니다. 소규모 미술 강좌와 아티스트 토크, 금융회사 PB들이 운영하는 컬렉터 모임 등이 이곳에서 열립니다.” 이렇게 말한 건 권영태 대표다. 그는 2003년에 설립한 도시환경종합건축사사무소와 비선재를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장낙순 회장과 함께 10여 년간 이 공간을 살핀 인물이다.
커다란 창문으로 동호대교와 그 위의 희뿌연 하늘이 안드레아스 구르스키의 사진 작품처럼 보이는 비선재는 ‘집처럼 편안한’ 공간을 추구한다. 이곳은 실제로 사람이 살던 단독주택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다. 지상 1층에 입구가 있고, 지하 1층부터 지하 3층까지가 전시 공간인데(지하 3층이라곤 하지만 상당이 높은 언덕에 위치해 일반 건물의 5층 높이다), 곳곳에 놓인 고가구와 자연스러운 공간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철거하지 않은 기둥 그리고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실내 조경까지 갖춰 일반 갤러리라기보단 유럽 어딘가의 ‘컬렉터스 룸’을 떠올리게 한다.
윤양호, 김성호, 변숙경, 김성태, 하비에르 발마세다 등 전속 작가의 전시만 고집하는 이곳에선 보통 1년에 네 차례 개인전이 열린다. 5월 현재 권도현 작가의 개인전(7월 17일까지)이 진행 중이며, 이 전시가 끝나면 장낙순 회장이 수십 년간 모은 소장품으로 내부를 채울 예정이다.

5, 6 전시 공간뿐 아니라, 주방과 테이블을 따로 두어 다양한 모임을 할 수 있는 것이 비선재의 특징이다.
7 곳곳에 뚫린 창문을 통해 갤러리 내부에서 한강을 조망할 수 있다. 창문 위의 작품은 윤양호의 ‘Zen Geist’.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박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