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만이 내 세상
박은선이 이탈리아에 정착한 지도 어느덧 25년이 지났다. 자기 작업이 하고 싶었던 청년은 이제 유럽 미술계가 인정하는 조각가가 됐다. 묵묵하고 우직하게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동양적 추상 조각’을 만드는 박은선 조각가.
박은선
1965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1993년 이탈리아로 유학, 카라라 국립예술원(Accademia di Belle Arti di Carrara)을 졸업하고 인근의 조각 도시 피에트라산타에 정착해 25년째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중.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취리히 대학교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조각가 박은선은 두 가지 색의 대리석 혹은 화강석을 얇게 잘라 일부러 균열을 내고, 이들을 번갈아 쌓아 올려 기하학적 형태의 작품을 만든다. 유럽 미술계는 그의 작품을 서양 모더니즘의 추상 조각과는 차별화되는 동양적 추상 조각이라 말한다. 5월 16일부터 6월 30일까지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 Park Eun Sun >에 앞서 그를 만났다.

1 적색과 흑색의 화강암을 번갈아 쌓아 올린 ‘Accrescimento–Colonna Infinita II’.
2 박은선의 작품은 매끈한 표면과 거친 균열의 대비가 돋보인다.
우선 축하드립니다. 9년 만의 한국 개인전이죠? 어떤 전시일지 궁금합니다.갤러리 공간이 넓고 천장도 높아서 대형 작품 위주로 선보일 생각입니다. 개중엔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작품도 있을 거예요. 대리석 조각은 무겁고 중후할 것이란 편견을 깨는 작품이죠. 작품은 제가 살면서 보고 느낀 것을 반영한 분신 같은 존재인데,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는 박은선이란 작가를 총체적으로 보여드릴 수 있는 자리가 될 겁니다.
그간 한국 활동이 뜸했던 건 아무래도 이탈리아에서 생활하고 작업하시기 때문이겠죠.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그곳으로 떠난 계기부터 여쭤야 할 것 같습니다.대학을 졸업하고 온전히 제 작업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국내 대학원 진학도 염두에 뒀지만, 당시만 해도 요즘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뭔가 결단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우연히 이탈리아 카라라(Carrara)에 대한 기사를 접했습니다. 세계적 대리석 산지이자 최고 수준의 조각가들이 활동하는 무대더군요. 그곳이야말로 제가 있어야 할 곳이란 생각이 들었고, 돌아오지 않을 각오로 떠났어요. 직접 가보니 정말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1시간 안에 구할 수 있더군요. 딴생각 하지 않고 작업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고요. 특히 카라라 인근의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는 작은 도시지만 미켈란젤로, 호안 미로, 헨리 무어가 작업한 조각의 성지입니다. 그곳에 정착해 작업한 게 어느덧 25년째입니다.

2017년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의 두오모 광장에 설치한 조각 작품.
그런데 왜 대리석이었습니까? 흙이나 나무, 금속 등 다른 재료도 많은데 말이죠.돌을 다루려면 부지런해야 해요. 온종일 쪼아대도 작업량이 많지 않죠. 비교적 쉽게 덩어리를 붙이거나 이을 수 있는 흙, 금속 같은 재료와 비교하면 답답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작업할 자신이 있었고, 오히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돌을 다룰 때 마음이 제일 편했어요. 저는 돌이야말로 자연에 가장 가까운 재료라고 생각해요. 돌을 깨다 보면 거기서 어떤 숨소리가 들리는데, 돌과 대화를 나누는 느낌입니다.
첫 개인전은 1995년 이탈리아의 두엠메(Duemme) 갤러리에서 열렸습니다. 이때부터 두 가지 색상의 대리석(혹은 화강석)을 켜켜이 쌓는 현재의 시그너처 작품을 만드셨더라고요. 흔히 ‘조각’ 하면 떠오르는 형태의 작품은 아닌데, 작업의 시작점이 궁금합니다. 저는 ‘조각은 덩어리’란 말을 들으며 조각을 배웠습니다. 돌 안에서 형태를 찾는 게 가장 이상적인 조각 방식이라 생각하는 거죠. 저도 처음에는 정과 망치를 가지고 그런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계가 느껴지더군요. 미켈란젤로, 로댕 등 이미 수많은 조각가가 해온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했죠. 그러던 어느 날 돌을 부순 조각을 다시 덩어리로 조립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직접 해보니 그제야 어떤 해답을 구한 느낌이 들더군요. 오히려 돌로 할 수 있는 작업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작품을 직접 보니, 무엇보다 거기에 새겨진 균열이 인상적입니다. 그 틈에서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져요.균열은 제가 대리석에 열어준 ‘숨통’입니다.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다듬었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일부 남긴 것이죠. 관람객이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건 작품에 이러한 요소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균열에는 제 숨통을 틔운다는 의미도 담겼습니다. 저는 돌판을 쌓기 전 그것을 하나씩 깨는데, 그때마다 굉장히 후련해요. 이는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고독감, 그리고 혼자 묵묵히 작업하는 데서 오는 외로움을 달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2017년 피에트라산타의 산타고스티노 교회에서 선보인 ‘Sfere’. 관람객에게 공간의 여백을 인지하게 한다.
매끈한 표면과 거친 균열의 괴리, 두 가지 색상의 대비에서 이중적 면모가 드러납니다. 이 ‘이중성’을 키워드로 작가님의 작업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에게 이중적인 면모가 존재합니다. 다 욕심 때문이죠. 무언가 과시하고, 성공한 듯 보이고 싶어서 남과 자신을 속이는 겁니다. 저도 작업을 하면서 끊임없이 이중성을 발견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더 값어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 스스로 거짓말을 하죠. 하지만 이러한 이중적 면모를 발견하고 반성할 때마다, 저 자신이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느낍니다. 이런 측면에서 작업은 저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일전에 “조각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조각이 놓일 공간의 여백을 중시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여백’은 무엇을 의미하나요?저는 되도록 공간 한가운데에 작품을 놓습니다. 즉 여백을 인지하게 되죠. 조각이 공간에서 힘을 발휘하고, 그 힘이 공간을 더 확장하는 식으로 상호작용합니다. 서방 국가에는 ‘여백’에 정확히 대치되는 단어가 없어요. 공간을 인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거죠. 몇몇 서양 평론가가 제 작품을 ‘한국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작품이 ‘한국적’이라는 평은 작가님의 정체성과도 연관됩니다. 한국적 코드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시는 편인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한때 맷돌이나 한옥의 문살 같은 전통 요소를 반영한 작품이 유행한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그게 진짜 한국적인 걸까요?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28년을 보냈어요. 이탈리아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그곳의 재료로 작업하지만, 제가 한국인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수십 년째 작업하고 있으니 알게 모르게 그들의 문화에서 영향을 받았겠지만, 결국 그것을 체화해 작품으로 만드는 건 접니다. 한국적이란 정체성은 의도해서 만들어낸 게 아닙니다.

2016년 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에 설치한 ‘Colonna Infinita Accrescimento’.
지금까지 갤러리는 물론 피사 공항, 로마의 고대 유적지 메르카티 디 트라이아노,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광장 등 다양한 장소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무엇인가요?2017년 파도바(Padova)에서 진행한 야외 조각전을 꼽고 싶습니다. 전시 제의를 받고 처음 파도바에 갔을 때 실망한 기억이 나네요. 파도바는 작은 도시입니다. 피렌체나 로마처럼 그 자체로 예술 작품 같은 도시와 비교하면 많이 부족하죠. 하지만 작품을 설치한 후엔 가장 좋아하는 전시가 됐습니다. 사실 로마나 피렌체에서 제 작품의 역할은 기존의 훌륭한 건축물이나 작품과 잘 어우러지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파도바에선 제 작품이 도시를 완성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작품 설치를 완료했을 때 동네 사람들이 나와 구경하며 손뼉을 쳐주었는데, 그때가 작업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제 작품을 관리하고 홍보할 재단을 만들고 있습니다. 생존 작가 중에 자기 재단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은데,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아준 덕분에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어요. 한편으론 더 꾸준히 작업해야겠다는 책임감도 생기고요. 더불어 앞으로 좀 더 많은 나라에 제 작품을 소개하려 합니다. 작품의 특성상 많이 만들 수 없고, 운송 등 현실적 문제가 있어서 그간 유럽 위주로 전시를 해왔어요. 앞으로 남미나 미국은 물론 아시아에도 포커스를 맞출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선배 작가로서 예술에 매진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자신을 믿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남들이 하는 것을 따를 필요는 없어요. 작가는 자신의 세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자신을 믿어야 노력할 수 있고, 더 큰 열정을 가지고 작업에 임할 수 있으니까요.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으면 어느덧 많은 사람이 당신을 따르고 있을 겁니다.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