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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가도를 따라

LIFESTYLE

첨단 음향 시설을 갖춘 콘서트홀은 물론 거대한 샹들리에를 드리운 궁전, 꽃 내음이 만발한 정원, 야외 광장 등 걸음걸음마다 클래식 음악을 만나는 독일 바이에른주로 떠났다.

1 화려한 로코코 양식이 돋보이는 퀴빌리에 극장.   2 뮌헨 근교의 헤렌킴제 성.

여름이 다가오면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은 마음이 설렌다. 유럽 전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클래식 음악 축제가 ‘한여름 밤의 꿈’을 고대하게 하는 까닭이다. 유럽 지도를 펼쳐 찬찬히 살펴보면 유럽 중부, 그중에서도 독일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문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쓴 음악가들의 이름만 나열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베토벤, 바로크 음악을 완성한 바흐와 헨델,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을 이끈 브람스와 슈만, 멘델스존, 바그너 등이 모두 독일 출신이다. 이들이 남긴 위대한 음악은 전 세계의 훌륭한 지휘자, 연주자를 통해 어디서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음악가들의 삶의 자취가 깃든 도시, 그들이 활동한 장소에서 듣는 연주는 특별한 경험을 안겨준다. 이왕 여름에 떠날 계획이라면 음악 축제 기간에 찾는 것이 좋다. 그래서 주목해야 할 곳은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주다. 특히 바그너의 팬이라면 더욱 반가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랜 전통과 명성을 자랑하는 뮌헨의 오페라 페스티벌이 7월 말부터 8월까지 열릴 예정이다.

3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   4 레지덴츠 음악의 방.   5 레지덴츠 안티콰리움.

이토록 클래식한 도시, 뮌헨
독일을 찾는 대부분의 여행자가 수도 베를린을 건너뛰고 뮌헨부터 찾는다. 한국과 독일을 연결하는 직항편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유럽의 판타지’를 충족해주기 때문이다. 매시 정각 인형들이 나와 빙글빙글 도는 네오고딕 양식의 신시청사, 웅장한 왕가의 궁전 레지덴츠, 르네상스 양식 정원인 호프가르텐, 슈퍼카가 늘어선 막시밀리안 거리. 독일에서 가장 클래식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도시는 단연 뮌헨이다. 겉모습만이 아니다. 내게 뮌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상점이 문을 닫아 고요한 구시가의 밤거리다. 마리엔광장 동쪽 빅투알리엔 마켓으로 향하는 길목에서였다. 어슴푸레한 구시청사의 조명 아래 초급 레슨을 갓 뗀 유년의 바이올리니스트, 용돈벌이에 나선 음대생, 자신의 음반을 널리 알리고 싶은 신진 연주자, 과거의 행적이 사뭇 궁금해지는 노년 신사를 만났다. 그들은 제각각 자신의 악기와 목소리로 클래식 음악을 들려줬다. 독일의 도시가 이렇게 낭만적일 수 있다니. 무뚝뚝하고 투박한 독일, 독일인의 이미지와는 판이해 깜짝 놀라고 말았다.
뮌헨은 독일의 16개 연방 주 중 최대 면적을 뽐내는 바이에른주 주도다. 베를린, 함부르크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큰 도시지만 경제적으로는 가장 부유하다. 지멘스, 알리안츠, BMW 등 독일 굴지의 기업과 글로벌 회사, 주요 미디어가 이곳에 본부를 두고 독일의 정치와 경제, 문화를 이끌고 있다. 비단 현재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뮌헨은 1506년 바이에른 왕국의 통일 수도가 된 이래 크게 성장하며 독일 최고의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그 찬란한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곳이 뮌헨 레지덴츠(Munchner Residenz)다. 레지덴츠는 바이에른 왕국을 세운 비텔스바흐 가문의 본궁이었다. 비텔스바흐 가문에 대해 잠시 설명하면,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프로이센의 호엔촐레른 가문과 함께 황제와 왕을 여럿 배출한 유럽 중부의 명문가다. 1385년에 처음 세운 레지덴츠는 수세기에 걸쳐 증축, 확장을 거듭해 총 7개의 안뜰을 둔 거대한 궁전 단지가 됐다. 그러다 보니 르네상스 시대부터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에 이르는 건축과 실내장식, 보석과 예술품을 모두 품고 있다.
레지덴츠를 둘러보면 알겠지만, 이곳은 바이에른 왕국의 문화 예술중심지였다.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의 역사도 이곳에서 시작된다. 레지덴츠 맞은편 막스요제프 광장에 위치한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Bayerische Staatsoper)이 그 주인공이다. 1818년 파리의 오데옹극장을 본떠 지은 왕립 극장으로 처음엔 수준 높은 모차르트 공연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다 1864년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가 즉위한 후 바그너 악극으로 채워졌다. 잠시 바이에른의 역사에서 꼭 기억해야 할 루트비히 2세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는 바이에른의 문화 예술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천재적 인물이다. 자신의 예술적 감각과 열망을 ‘성 건축’에 쏟아부었는데, 디즈니랜드의 실제 모델로 유명한 노이슈반슈타인 성(Neuschwanstein Castle)을 비롯해 린더호프 성(Linderhof Castle), 헤렌킴제 성(Herrenchiemsee Castle) 등은 현재 독일의 관광 수입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엔 혈세를 낭비하는 미치광이 왕으로 불려 왕위를 뺏기고 정신병원 근처의 호숫가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그의 또 다른 기행으로 꼽히는 것이 바그너에 대한 광적 ‘애착’이었다. 열렬한 팬심을 넘어 애정을 품은 건 아닌지 의심할 만큼, 루트비히 2세는 바그너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덕분에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뉘른베르크의 명가수(Die Meistersinger von Nurnberg)>를 이곳에서 초연할 수 있었다.
18세기 중엽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은 유럽의 중요한 오페라극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런 가운데 카를 폰 페르팔이라는 궁정 음악감독에 의해 1857년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이 시작됐다.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은 1·2차 세계대전 당시를 제외하곤 매년 꾸준히 열렸다. 큰위기를 맞은 것은 1943년. 오페라 페스티벌이 열리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외벽만 남기고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문을 연 것은 1963년이다.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2100석 규모의 오페라극장은 주빈 메타와 같은 세계 최고 음악감독, 오페라 가수와 연주자들을 뮌헨으로 불러모으고 있다.
올해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은 6월 24일부터 7월 31일까지,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을 비롯해 국립극장, 프린츠레겐텐 극장, 라이스홀, 퀴빌리에 극장 등에서 열린다. 이 중 퀴빌리에 극장(Cuvillies Theater)은 축제를 빌미로 꼭 한번 방문해볼 만한 곳이다. 레지덴츠안에 위치한 과거 왕실 전용 극장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역시 폭격으로 파괴됐다가 1963년에 재개장했다. 500여 석의 작은 규모지만 프렌치 로코코 양식의 실내장식은 왕실의 품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총 6주 동안 9개의 오페라 대작을 만날 수 있는데, 이미 매진을 기록한 화제의 작품은 네덜란드 국립오페라단 감독 피에르 아우디가 선보이는 바그너의 오페라 <파르지팔(Parsifal)>. 베를린 출신의 젊은 감독 악셀 라니슈가 연출한 하이든의 오페라 <기사 오를란도(Orlando Paladino)>도 신선한 해석과 접근 방식을 기대하게 한다. 티켓 구입은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의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웹사이트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축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티켓을 구입하기 어렵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막스요제프 광장과 마르스탈 광장에서 ‘모두를 위한 오페라’라는 무료 야외 오페라 공연도 준비되어 있다. 7월 8일에는 국립극장에서 펼치는 <파르지팔>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고 7월 21일에는 독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바이에른 국립 오케스트라가 드보르자크, 베르디, 브람스의 곡을 연주한다.

6 에르미타게 공원의 신궁전.   7 바이로이트 구시가.

바그너의 성지, 바이로이트
유럽의 3대 음악 축제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그리고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꼽는다. 그중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두 페스티벌과 달리 한 명의 음악가에게 집중하기 때문이다. 바로 리하르트 바그너다. 바그너는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유별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그를 설명하는 타이틀부터 화려하다. 그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무대감독, 음악 이론가, 서정시인, 수필가였다. 바그너는 19세기 서양 음악에 혁신을 일으킨 인물이다.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를 완성했고 시와 음악, 연극, 무대예술이 하나 된 ‘악극’이란 장르를 창조했으며 관현악의 새로운 음계와 기법을 만들었다. 비범한 그의 행보에 따르는 팬도 많았다. 대표적 인물이 앞서 언급한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 그는 마법에 걸려 백조가 된 왕자의 이야기를 담은 오페라 <로엔그린(Lohengrin)>을 본 후 그의 광팬이 되었다. 즉위 후엔 바그너를 뮌헨이나 새로 지은 성에 불러 공연을 열어주고 바이로이트에 오페라극장을 짓는 데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스물네 살의 니체도 바그너에게 빠져들었다. 그리스의 비극과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좋아한 두사람은 서로 영감을 주고받았고, 니체는 첫 저서 <비극의 탄생>을 바그너에게 헌정했다. 독일 흑역사의 주역인 아돌프 히틀러도 바그너를 사랑했다. 그 역시 바그너의 오페라극장과 그의 오페라 축제가 열리는 바이로이트를 후원했다. 그런 탓에 바이로이트는 나치의 본거지라는 낙인이 찍혀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을 맞고 도시의 80%가 붕괴되었다.
그런데 왜 바그너는 고향인 라이프치히도, 든든한 조력자와 팬이 있는 뮌헨도 아닌 바이로이트에 정착했을까? 바이로이트는 바이에른주 북부 프랑켄 지역에서 예술과 문화로 가장 앞선 도시였다. 여러 교역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해 일찍이 발달한 바이로이트는 18세기 호엔촐레른가의 후작 프리드리히 2세와 누이인 후작부인 마르그라피네 빌헬미네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신궁전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르그라비알 오페라하우스(Margravial Opera House) 등 바로크풍 건축물도 이때 세웠다. 1748년에 완공한 마르그라비알 오페라하우스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바로크극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후작부인 빌헬미네가 구상해 이탈리아의 건축가 주세페 갈리 비비에나와 아들 카를로가 설계한 역작이다. 물론 바그너도 이곳을 찾아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긴 했지만 호화로운 장식보다는 오페라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공연장을 원했다. 또한 귀족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오페라를 즐기길 바랐다. 그래서 루트비히 2세의 도움을 받아 1876년 리하르트 바그너 축제 극장을 개관했고, 첫 무대로 <니벨룽겐의 반지(Ring of the Nibelungs)> 전곡을 선보였다.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독일 황제 빌헬름 1세,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 철학자 니체 같은 명사와 차이콥스키, 그리그 같은 음악가가 몰려와 성황을 이뤘다. 그 인기에 힘입어 바그너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기획했고, 1882년 이후 4대에 걸쳐 더욱 크고 명성 높은 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8 핸드메이드 피아노 슈타인그래버의 쇼룸.   9 에르미타게 구궁전의 실내. 10 마르그라비알 오페라하우스.

올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7월 25일부터 8월 29일까지 열린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르지팔>, <로엔그린>,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등의 대표작을 공연한다.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올해부터 온라인으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워낙 팬덤이 높은 데다 우편으로만 신청이 가능해 가장 티켓을 구하기 어려운 축제 중 하나로 꼽혔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홈페이지에서 신청과 구입 모두 가능하다.
공연은 보통 오후 4시, 6시에 시작한다. 그 전에 바이로이트의 명소들을 둘러볼 수 있다. 바그너의 팬이라면 바그너 박물관엔 꼭 들른다. 과거 바그너가 두 번째 부인 코지마와 함께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몄다. 바그너의 삶과 음악은 물론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대한 기록이 보관되어 있으며 뒤뜰에선 바그너 부부의 합장 무덤도 볼 수 있다. 또 6년 만의 레노베이션을 마치고 지난 4월 재개장한 마르그라비알 오페라하우스도 놓쳐선 안 된다. 오페라하우스에 대한 가이드 투어는 물론 공연도 즐길 수 있다. 하루쯤 시간을 내어 근교에 위치한 에르미타게(Ermitage) 공원도 찾아야 한다. 1715년에 조성한 공원이자 별궁으로 영주였던 프리드리히 대공이 아내 빌헬미네를 위해 지었다. 당시 화려한 영주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구궁전, 우아한 분수대와 오랑주리를 조성한 신궁전, 18세기 정원 문화의 표본으로 꼽히는 로코코 양식 정원 등 하루를 몽땅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곳이다. 여름밤 축제가 열리는 7월 28일에 찾는다면 더욱 행운일 것이다. 푸르른 녹음과 아기자기하게 꾸민 정원, 곳곳에 위치한 파빌리온, 신궁전 앞에서 펼치는 야외 라이브 콘서트까지 로맨틱한 여름밤을 만끽할 수 있다. 
참고 서적 <유럽 음악 축제 순례기>(박종호 지음, 시공사 펴냄), <유럽 음악 도시 기행>(황영관 지음, 시공사 펴냄)

 

에디터 김윤영(snob@noblesse.com)
글·사진 서다희(베를린 통신원)   취재 협조 뮌헨 관광청(www.muenchen.de), 바이로이트 관광청(www.bayreuth.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