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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갈래?

LIFESTYLE

모두가 잠든 시간, 불 꺼진 뮤지엄이 특별한 밤을 위한 채비에 나선다. 무더위로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 뮤지엄에서 보내는 하룻밤을 추천한다.

다양한 슬립오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자연사박물관.

뮤지엄엔 되도록 혼자 간다. 전시를 보는 속도나 취향은 누구나 다르기 마련이니까.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만 발걸음을 멈추는 에디터는 모든 작품 앞에 서서 캡션을 꼼꼼히 읽는 친구와의 동행이 어렵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세계 어디서든 자연사박물관에 갈 때만 은 꼭 동행인을 구한다. 집채만 한 매머드, 에디터보다 몇십 배나 큰 오징어나 바다표범을 혼자 보기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힘들다. 어찌나 생물과 환경마저 실제와 똑같이 구현했는지, 어두운 공간에 숨은 작은 모형이나 천장에 떠다니는 초대형 박제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에디터에게 친구는 자연사박물관 공포증을 치료할 대안을 제시했다. 바로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슬립오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동물 박제나 모형과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그들과 친숙해질 거라는 이유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문 닫힌 박물관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결국 자연사박물관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다양한 슬립오버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뮤지엄 폐장 시점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이어지는 슬립오버 프로그램은 상상만으로도 마치 금기의 영역에 들어서는 듯했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대표적 슬립오버 프로그램은 ‘공룡이 코를 곤다’는 뜻의 ‘Dino Snores’다. 어린이와 성인용이 따로 있으며, 아이들 대상 프로그램이 전시 작품이나 모형 체험에 집중하는 교육적 성격을 띠는 반면 성인용은 뮤지엄이라는 이색적 장소에서 즐기는 액티비티에 가깝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성인 관람객은 3코스 요리를 먹으며 음악을 곁들일 수 있다. 늦게까지 여는 바, 스탠드업 코미디 쇼, 퀴즈 대결에 밤새도록 상영하는 ‘무비 나이트’까지, 가격은 성인 1인당 180파운드(약 27만 원)로 올해는 9월과 11월에 한 번씩 두 번의 기회가 남았다.

1 온갖 생물 박제와 모형을 전시하는 미국자연사박물관에서 보내는 밤은 꽤 특별하다.
2 워싱턴 내셔널 아카이브 뮤지엄의 슬립오버 참여자들이 이불을 깔고 누워 있다.

뉴욕의 미국자연사박물관에도 마찬가지로 성인용 슬립오버 프로그램이 있다. 런던이 다양한 활동에 집중한다면, 이 프로그램은 맥주와 와인을 마시면서 라이브 밴드의 음악을 듣고 서로 모여 대화를 나누는 네트워킹이 주를 이룬다. 1인당 350달러(약 39만 원)로, 근사한 뷔페 식사를 먹은 다음 전시장에 누워 밤늦게까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슬립오버를 즐기려면 꼭 자연사박물관에 가야 할까? 아니다. 해마다 핼러윈 기간이면 런던 대영박물관은 ‘Night Owls Halloween Sleepover’로 들썩인다. 7~11세 어린이 관람객을 위한 슬립오버 프로그램으로, 어린이 3명당 보호자 1명이 반드시 동참해야 한다. 1년에 단 한 번 핼러윈데이 전 금요일 밤에 열리며, 가격은 1인당 60파운드(약 9만 원)다. 뮤지엄에서 핼러윈 의상을 입고 돌아다니며 사탕을 모으고, 오직 손전등 하나만 들고 빅토리아 시대를 재현한 갤러리를 탐험하고 나면, 셜록홈스가 되어 범죄 수수께끼 풀기와 특별전 관람 등 촘촘한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참여자가 수백 년 전인 1666년, 빵 공장에서 발생한 불이 시내로 번진 런던 대화재 당시로 돌아가 런던 시민의 일상을 직접 경험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또 8~15세를 위한 ‘Young Friends Sleepover’에 참여하면 이집트의 조각품이나 메소포타미아 섹션에서 취침할 수 있다. 어린이 5명당 1명의 보호자가 필요하므로, 성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어 아쉽다면 보호자로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번엔 공룡이다. 시카고 필드 뮤지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슬립오버 프로그램 ‘Dozin’ with the Dinos’도 찾는 이가 많다. ‘공룡과 함께 잠을 잔다’는 뜻의 이 프로그램은 가족 패키지와 그룹 패키지가 있다. 그룹 패키지는 단체의 최소 인원이 15명이어야 하고, 그 이하라면 가족 패키지를 구매해야 한다. 작품과 아이 모두의 안전을 위해 어린이 3명마다 1명 이상의 성인 보호자가 필요하다. 하루 동안 박물관의 과학자가 되어 올빼미 박제를 해부하고 전 세계의 악기 연주를 듣고 시카고 필드 뮤지엄의 상징인 티라노사우루스 ‘Sue’의 이야기를 담은 3D 아이맥스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더흥미로운 체험을 원한다면 공룡 홀에서 잠을 잘 수 있는 프리미엄 패키지를 추천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몇 달 전부터 예약을 서둘러야 할 만큼 사랑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밤이 깊어 뮤지엄에 어둠이 찾아오면, 오직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공룡과 행성 전시를 관람할 수 있어서다. 오는 8월부터 내년 상반기 티켓 예매를 시작하며, 보통 예매 직후 매진되니 일정을 메모해둘 것. 워싱턴에 자리한 내셔널 아카이브 뮤지엄의 ‘Archives Sleepover’도 빼놓을 수 없다. 오후 6시 30분부터 다음 날 아침 8시 30분까지 다양한 워크숍과 프로그램이 이어지며, 현재 10월 13일 회차의 예약을 받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인 뮤지엄의 대규모 원형 홀에서 참가자 전원이 함께 취침하는 광경은 보기 드문 장관이다. 8~12세 대상으로 성인 참여자는 반드시 아이와 동행해야 참가할 수 있고, 가격은 성인과 아이가 동일한 125달러(약 14만 원)다.
밤에 즐기는 뮤지엄 액티비티를 넘어 작품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다면, 뉴욕 루빈 미술관으로 향하자.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 침대를 놓고 자는 ‘Dream-Over’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는 원하는 작품 근처에서 밤이 깊도록 명상을 즐길 수 있다. 여느 활동과 달리 작품과 함께하는 휴식이 목적이기에 잠들기 전, 꿈과 삶에 대한 질문지에 답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불교 연구자나 심리학자 등이 함께하며 참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작년에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관람객은 “살면서 이만큼 예술 작품과 친밀감을 느낀 적이 없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올해는 9월 29일 단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으며, 8월 14일 오전 11시부터 예매가 시작된다. 표가 순식간에 사라지니 서둘러야 한다. 1인용 침대는 140달러(약 15만5000원), 2인용 침대는 280달러(약 31만 원)다.
아쉽게도 한국은 아직 뮤지엄에서 잠을 잘 수 없지만 대신 늦은 시간까지 즐길 만한 이벤트가 많다. 디뮤지엄은 < Weather: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전이 열리는 10월 28일까지 금요일 저녁마다 격주로 전시도 보고 요가 등을 배우는 ‘ART & FIT’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만 17세부터 참여 가능하다. 7월 28일 저녁은 그룹사운드 잔나비의 공연 ‘7월 한남 살롱: 썸머나잇피버’를 진행한다. 성인 대상이며 늦게까지 전시도 관람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롯데뮤지엄은 현재 열리고 있는 <알렉스 카츠, 모델 & 댄서>전을 위해 다양한 심야 프로그램으로 6월엔 플라멩코 공연을, 7월엔 프라이빗 전시 투어와 래퍼 마니악의 공연을 선보였다. 서울시립미술관도 매월 둘째 주와 마지막 주 수요일 밤 10시까지 야간 개장할 때면 음악, 영화, 퍼포먼스 등 ‘뮤지엄 나이트’를 선보이니 홈페이지를 주시할 것.
뮤지엄이 점점 복합 문화 공간이자 교육 시설로 진화하는 걸로 모자라, 이제 작품 앞에 이불을 깔고 하룻밤을 보내고, 술을 마시면서 밤새도록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다. 뮤지엄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일까? 불 꺼진 뮤지엄의 밤은 어쩌면 그 어떤 밤보다 화려할지 모른다. 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