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들 바다로 갈까
요즘 힙한 30~40대 남자들은 바다에 간다. 거기엔 자연과 미식, 낚시가 있다.

내게 낚시는 꽤나 고리타분한 취미였다. 고리짝 어른들이 남루한 옷을 입고 속세를 피해 즐기는 마니아적 활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요즘 세상에 자연산 횟감을 구할 수 있다는 걸 제외하면 매력을 느낄 요소가 단 1도 없었다. “그렇게 고루한 거 아니에요. 나름 다이내믹하고 중독성 있어요. 눈 딱 감고 한 번만 나가봐요.” 강태공으로 유명한 후배 A는 틈날 때마다 낚시를 권했다. 어류도감 수준인 그의 SNS와 새로 마련한 장비들을 보여주며 꼬셔댔지만 난 입질도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엔 도미와 광어, 가자미가 같아 보였고 긴 꼬리, 두 줄무늬 등의 수식어는 이공계 석사과정에서나 배울 법한 용어처럼 들렸다. 그러니까 낚시의 모든 과정 중 갓 잡은 생선을 떠 먹는 두툼한 회나 문어를 듬뿍 넣은 라면에만 마음이 약간 동했을 뿐이다. 이리도 즐길 것 많은 세상에 낚시라니, 이번 생에는 인연이 없는 것 같았다.
사실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 많은 세상이지만 수컷이 할 만한 것은 딱히 없다. 기억을 더듬어도 중・고등학생 때 노래방과 PC방, 대학생 때 당구장과 PC방 말곤 정기적으로 찾은 취미가 없다(소주가 취미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몇몇을 제외하곤 주위의 선후배도 사정은 마찬가지.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30~40대 남자들은 제대로 된 취미 하나 갖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다 채널A의 예능 프로그램 <도시어부>를 봤다. 20대부터 60대까지 연예계의 유명한 낚시 마니아와 게스트들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낚시 방송은 생각보다 몸을 움찔거리게 했다. 현란한 편집과 인터넷 용어가 넘실대는 자막의 힘이 재미를 더했겠지만 출연자들의 실없는 웃음과 농담, 거기서 나오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마음이 당겼다. 저건 진짜다, 정말 좋고 즐거워서 웃는 거다. 시청을 권한 A의 말처럼 ‘그냥 친한 아저씨들끼리 웃고 떠드는’ 것 같은 담백함에 호기심이 동했다. 낚시가 정말 그렇게 즐거워?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물었다. “낚시 가자. 지금 뭐 낚으면 좋아?” 답은 “끝물이지만 재미를 붙이기엔 문어 낚시만 한 것이 없지”. 그래서 A와 선배 B, 나까지 3명은 저녁 느지막이 경기도 양주로 모였다.
방송의 여파인지 근래 낚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배낚시를 선호하는 인구가 많아 공동 구매 형식으로 인원을 모집한다. 적정 인원이 모이면 서울에서 관광버스로 참가자를 싣고 항구까지 나른다. 낚시를 마치면 귀갓길 교통편까지 제공한다. 이른바 논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비용도 차비와 뱃삯, 식비를 포함해 1인당 20만 원 미만의 합리적 수준으로 부담이 적다. 필드 한 번 나갈 돈으로 일용할 양식까지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밤 12시에 경기도 양주에서 출발한 버스는 여수항에 새벽 5시 30분에 닿았다. 간단한 채비에 이어 설명을 듣고 선상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탄 배는 약 25명을 태울 수 있는 중형 선박으로, 문어 낚시를 전문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배에 오른 참가자들은 나를 제외하곤 모두 고수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퍼가 곳곳에 달린 베스트와 선글라스, 장갑, 팬츠, 신발은 모두 (알 수 없는) 낚시 전문 브랜드 제품 같았고,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온 내 행색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장비를 한 짐씩 배 위로 올렸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다. 나뿐 아니라 배에 오른 낚시꾼들은 서로의 행색과 주섬주섬 꺼내는 장비를 곁눈질하며 안도의 한숨과 감탄, 반가움을 조금씩 표하고 있었다. “시보그 200 어떤가요? 사려고 고민 중입니다”, “포스마스터 400도 쓸 만해요. 가볍고 정비도 간편하고요” 같은 외계어가 남발했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사회인 야구에서 서로의 글러브와 배트를 논하는 것이나 신형 자동차 주위로 모여든 남자들의 대화와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낚시는 어종과 장소, 환경(파도 높이나 온도 등)에 따라 채비가 달라진다고 한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몇만 원부터 수백만 원에 이르기까지 구색 맞추기 나름인 것이다.
“처음이신 분 손 드세요.” 선장의 질문에 쭈뼛쭈뼛 손을 들었다. 다행히 나를 포함해 초보자는 모두 3명이었다(그러나 나머지는 여자였다). 선장은 구명조끼를 건네고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다. “멀미가 심하면 말해라(약을 주겠다)”, “천천히 걸어 다녀야 한다(뛰다 바다로 빠지는 수가 있다)”, “베테랑을 흉내 내지 마라(건방 떨다 바다에 빠진다)” 등등 기본적인 것부터 문어 낚시에 필요한 기초 사항을 설명했다. “문어 낚시는 수심 20m 미만에서 합니다. 문어는 바닥을 기어 다니는데 미끼를 바닥에 끌어 유인합니다. 채비는 루어(lure, 인조 미끼) 낚시로 20~25호 봉돌(미끼를 바닥에 가라앉게 하는 역할)과 에기(인조 미끼의 일종으로 형광빛에 바늘이 여러 개 달렸다)를 사용해 고패질(인조 미끼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행위)로 문어를 꼬시는 겁니다. 문어의 빨판이 에기에 닿으면 챔질(hook-set, 어종이 미끼를 물었을 때 낚싯대를 들어 올리는 동작)로 낚아 올리면 됩니다.” 역시 외계어가 한 무더기 쏟아졌지만 1시간가량 고수들의 동태를 살피니 감이 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낚시는 체계가 있고 과학적이었다.
배에 오른 지 1시간 남짓, 여기저기서 입질이 시작됐다. “킬로 단위인데? 크다, 커”, “여수 출신이신가, 혼자 다 낚으시네”, “에기 어떤 거 쓰세요?” 등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신경전도 벌어졌다. 문어는 손바닥만 한 작은 것부터 2kg에 가까운 중형까지 다양하게 낚였다. 제철인 봄에 오면 4~5kg에 육박하는 대형 문어도 낚을 수 있다고 한다. 오후가 되자 포인트를 옮길 겸 점심시간을 가졌다. 식단은 미리 준비한 도시락과 갓 잡은 문어를 넣어 끓인 라면이었다. 간단히 손질한 통문어를 듬뿍 넣어 끓인 라면이 양은 접시에 담겨 돌았다. <도시어부>에서처럼 초대형 광어회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꿀맛이었다. 선장은 “선상에서 먹는 라면이 군대에서 먹는 라면 다음으로 맛있다”고 했다. 그 말에 격하게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우리 셋은 도합 여덟 마리의 문어를 잡았다. 손바닥에 미치지 못하거나 살짝 가리는 고만고만한 사이즈였지만 손에 느껴지던 입질의 감촉, 낚싯대가 크게 휘던 광경, 문어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흥분은 꽤 오랜만에 느껴본 호기심 가득한 설렘이었다. 우리는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지인들을 모아 문어를 자랑했다. 셋이 가서 잡은 것이 고작 이거냐며 핀잔도 들었지만 문어 여덟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라면에 밤새 소주병이 돌았다. 직접 잡은 문어는 사 먹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다. 이후 서해 방어머리선착장 방파제에서 광어와 볼락 낚시에 도전했지만 바닥에 바늘이 자꾸 걸려 애꿎은 낚싯줄만 수십 번 잘라냈다. 두 번째 도전은 입질조차 경험하지 못한 꽝이었다. 아무것도 낚지 못했지만 방파제에서 수십 번 캐스팅하며 바라본 서해 바다의 노을은 오래 기억될 만큼 아름다웠다. 두 번의 체험 이후 나와 선배는 숍으로 달려가 기본 장비를 마련했다. A의 조언에 따라 30만~40만 원대에 맞춰 원투대와 다용도대, 알루미늄 스피닝릴과 릴스풀, 여러 종류의 바늘과 인조 미끼 등을 샀다. 아직 무슨 용도인지 분간도 안 가는 모양새지만 틈틈이 유튜브를 뒤지며 매듭과 채비에 대해 익히고 있는 중이다.
이제 갓 시작한 초보 낚시꾼이지만 꽤 훌륭한 취미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낚시엔 현재 대한민국 30~40대 남자들에게 필요한 여럿이 담겼다. 자연과 만나는 야외 활동, 또래와 어울릴 수 있는 놀이, 미식의 묘미와 장비를 갖춰나가는 보람까지. 이렇게 건전하면서 숨은 재미가 가득한 활동은 드물다. 주말마다 멍하니 스마트폰 화면으로 SNS를 보거나 TV 앞에 앉아 있다면 바다로 향하라. 산해진미와 잊고 있던 즐거움이 거기에 있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