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밀착적 토크
윤종신 피디를 애초부터 아트 러버로 국한할 마음은 없었다. 그의 말처럼 아트(미술)는 결과물에 의한 분류일 뿐이니. 이제는 크리에이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그에게 미술을 포함한 다양한 현재의 문화 예술 활동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월간 윤종신>이 둥지를 튼, 이태원의 주택을 개조한 공간은 한창 변신 중이었다. 오랜 기간 준비해온 <월간 식당>이 당장 일주일 후 개업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설렘과 흥분이 뒤섞인 공간에 앉아 한참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모두 메모해요.” 그는 자신의 휴대폰에 빼곡히 담긴 메모를 스크롤했다. “주변의 모두에게서, 일상생활의 모든 것에서 정보와 모티브를 얻죠.” 옆 사람과 대화하다가 자녀의 학원을 알아보다가, 슈퍼마켓의 세일 문구를 보다가 떠오르는 단상을 메모하고 작업실에서 이를 정리하는 것은 중요한 그의 일과다.
‘이별톡’이라는 제목이 참 좋다고 윤종신 피디에게 말했다. 2018년 3월에 출시한 음원 제목이다. 세대를 초월한 감정을 내포한 ‘이별’이라는 단어와 ‘톡’이라는 요즘 세대의 단어가 만났다. 그런데 둘의 조합이 꽤 어울린다. “저는 축약하고 줄이는 걸 좋아하지만 1초 동안 떠올린 순간적 생각을 4분으로 늘리기도 하죠. 생각을 다양한 문장으로 옮기는 걸 좋아해요. 원래 언어에 관심이 많았죠.” 그는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고, 그 모티브에 관해 토론하며 발전시킨 생각을 SNS에 표출한다. 성실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일상에서 요즘 윤종신 피디가 끌리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 1~2년간 저에겐 넷플릭스 영화가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했어요.” 세계 최대 OTT(Over the Top) 기업 넷플릭스에서 릴리즈하는 많은 콘텐츠는 문화계에 화두를 몰고 왔다. 셋톱박스 없이 인터넷망을 이용해 취향에 따라 원하는 영상을 볼 수 있는 플랫폼이 특히 그렇다. “시청자가 스스로 큐레이팅한 후 원하는 첫 페이지를 만듭니다. 데이터를 긁어모아 새 소식이라며 알려주는 기존 시스템과는 완전히 다르죠.” 최근 그가 SNS에서 비판한 거대 음원 서비스 플랫폼 이슈도 그렇다. 그곳에 음원을 노출시키고 순위를 올리는 데 전력을 다하는 홍보 방식은 ‘홍보란 절대 다수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기에도 바쁜 세상입니다. 수년간 음악을 해왔고 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직거래를 하면 되는데 모두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공개하려 하죠.” 그의 의견에 따르면 이러한 현상은 고객을 분석하지 않아 나타나는 결과고, 이는 매우 소모적이다. 또한 콘텐츠란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취향이다, 취향이 아니다의 구분이 있을 뿐, 좋고 나쁨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제 노래 중 ‘세로’라는 곡이 있어요. 취향은 수평적으로 존재할 뿐, 그 안에 수직적 평가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가라는 말을 싫어해요.” 취향에 대한 열띤 이야기는 <월간 윤종신>에 대한 화제로 옮겨갔다. “2010년에 제가 트위터를 시작했는데, 거기서 SNS 마케팅 가능성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했어요.”

<월간 윤종신> 2013년 7월호의 <환생> 앨범 커버 작업. 작가는 이에스더.
매월 새로운 음악을 디지털 환경에서 발표하는 프로젝트로 시작한 <월간 윤종신>은 ‘뮤지션’ 윤종신과 ‘크리에이터’ 윤종신의 창작을 기반으로 기능하며 음악과 미술, 문학, 영상을 아우르는 ‘종합예술 브랜드’로 성장한 지 8년째다. 어느덧 2018년 8월호에 100호라는 타이틀을 단 <월간 윤종신>의 활동을 자평한다면? “부지런함이죠.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스스럼없이 알리고 표현해온 저의 일관된 노력을 타인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쉬지 않고 달려왔어요.” 그간 <월간 윤종신>은 미술 분야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매월 발매되는 음원의 앨범 커버를 김한나, 윤미선, 유창창 등의 비주얼 아티스트와 작업, 이를 모아 전시를 개최한 것. 최근에는 장콸, 김시훈, 방상혁, 서원미 작가의 활동을 지원하며 <월간 윤종신>의 미디어적 기능을 십분 활용해 주변 작가들을 알리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팝아티스트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제우스(Zevs), 존원(JonOne), JR, 빌즈(Vhils), 오베이(Obey) 등과 교류하며 전시에 직접 참여하거나 작품을 구입했다. 작년 4월엔 오베이의 첫 내한을 환영하는 웰컴 파티를 기획하기도.
작가들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외부에 있지만”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미술계에 대한 생각을 드러냈다. “저는 미술이 세상의 모든 벽을 책임지면 좋겠어요. 물론 도배 회사들이 싫어하겠지만요. 미술계 외부에서 보면 초고가의 현대미술 작품들이 너무 멀게 느껴집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같은 작가의 작품을 개인이 구입하는 게 과연 옳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미술이라는 넓은 영역을 소수의 사람들이 가져가는 느낌이거든요.” 현대미술이 미술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해온 탓에 오히려 미술의 의미를 고정하고 소수의 활동 영역과 소수의 거래 영역으로 한정시키게 된 것은 아닐까? “이제는 모두가 앤디 워홀과 같은 전략을 구사하잖아요. 원화를 구입하긴 하는데 이 원화 자체가 실크스크린 프린트예요. 앞으로 점점 더 갤러리에서 값비싸고 희귀한 작품을 구입하는 시스템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의문입니다.”
앞서 나눈 취향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면 그가 생각하는 미래는 좀 더 취향 밀착적이다. “그동안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논리적으로 결정한 일보다 취향이나 직관에 따라 결정한 것이 성공 확률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끌리는 것을 믿고 따르라’고 말하고 다녀요. 저 또한 취향이 맞는 많은 이야기꾼과 일하고 싶어요. 미술, 만화, 영화, 음악… 이런 건 모두 아웃풋에 의한 분류잖아요. 그런 구분 없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방향이 옳다면 언제든 한 팀이 되어보고 싶습니다.” 현재 그는 영상물 시리즈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그가 몸담은 미스틱엔터테인먼트는 에이전시에 속한 아티스트들의 스타 파워와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을 콘텐츠의 힘을 기르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주변에 벌여놓은 여러 일로 분주한 삶과의 거리 두기가 과연 가능할까 싶지만 그는 “앞으로 다른 일은 줄여도 미술과 관련된 일은 줄이지 않을 것”이라며 환하게 윤종신표 웃음을 던지고 일어났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글 류정화(전시 기획자) 사진. JK(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