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남동
카페와 맛집만 즐비한 줄 알았던 한남동에 미술관과 갤러리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말쑥한 모습으로.

활기 넘치는 한남동에서 관람객과 편하게 소통하길 원하는 P21.
전시 오프닝, 기자간담회 등 여러 행사에 참여하는 에디터가 최근 자주 찾은 지역을 꼽으라면 단연 한남동이다. 새 공간을 오픈하거나 자리를 옮기거나, 미술관과 갤러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한남동에 둥지를 틀었다. 인사동, 삼청동, 청담동을 지나 한남동 시대가 개막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행렬은 끊임이 없다. 왜 지금 미술계는 한남동을 주목할까?

갤러리바톤에서 열린 마르친 마치에요프스키의 < Rephrase It Positively >전 전경.
어떤 게 있어요?
우선 지금 한남동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을 간단히 살펴보자. 한강진역을 중심으로 삼성미술관 리움, 현대카드 스토리지, 아마도예술공간, 그 위로 올라가면 P21이 모습을 드러낸다. 반대편에선 주로 신생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세계적 갤러리로 자리매김한 페이스갤러리의 국내 첫 지점, 일러스트 중심의 전시를 꾸리는 알부스갤러리, 힙스터의 성지 디뮤지엄과 디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당구장, 지난 <아트나우> 여름호에 소개한 갤러리비선재, 여기에 갤러리스케이프, 더컬럼스갤러리까지. 이렇게 한남동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미술관과 갤러리가 즐비하다. 길 건너 미술관이다. 그 수가 많아 지면상 전부 소개하기 어려운 게 아쉽지만 그중 신생 공간을 중심으로 한남동 아트 신을 훑어보려 한다.

가나아트 한남은 8월 5일까지 <오수환 드로잉전>을 개최했다.
아티스트와 힙스터 사이에서 가장 핫한 공간으로 떠오른 ‘사운즈 한남’은 올해 초 문을 연 복합 문화 공간이다. 편집숍, 카페, 레스토랑, 정원 등 볼거리가 넘치는 와중에 유독 눈길이 가는 건 ‘가나아트 한남’과 ‘필립스 한국사무소’. 왜? 두 예술 공간이 한 건물에 자리 잡은 것도 이례적인데 자아내는 느낌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문을 연 가나아트 한남은 기존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와는 차별화한 방침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면적이 넓은 평창동 공간은 신진 작가들이 부담을 느꼈는데, 가나아트 한남은 이를 완화하고자 아담하게 꾸려 보다 자유롭고 편하게 전시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중적 지역의 특성에 맞춰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작가와 작품으로 다가갈 예정이라고. 필립스 한국사무소도 마찬가지다. 세계 3대 경매 회사 중 하나인 필립스는 소수만을 위한 옥션 하우스란 편견에서 벗어나고자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오가는 한남동을 택했다. 왠지 모르게 높은 진입 장벽으로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다면 가나아트 한남과 필립스 한국사무소는 젊은 분위기를 추구해 그 문턱을 낮추려는 공통점을 공유한다니 이제 막 입문한 컬렉터부터 안목 높은 사람들 그리고 학생까지 누구든 부담 없이 방문해도 좋을 것이다.
압구정을 지켜온 갤러리바톤의 한남동 이사도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압구정 전시장을 운영하며 제한적 공간과 접근성에 아쉬움을 느껴 결국 이전을 결정했다는 갤러리바톤. 지난 6월 재개관전을 마친 이들의 각오는 남다르다. 현대미술의 동시대성과 다양성을 대변하고 작가의 잠재적 역량을 끌어내는 역할을 자처하는 등 기존 갤러리의 철학을 고수하되, 한남동의 접근성과 젊은 감각이란 장점을 취해 국내외의 중견 작가, 신진 작가, 컬렉터, 미술 관계자들이 활발히 어울릴 수 있는 장을 꾸릴 예정이다. 비록 한남동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지만 아모레퍼시픽미술관도 놓쳐선 안 된다. 지난 5월, 용인에서 용산으로 이전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신생 공간 중 가장 압도적인 규모와 컬렉션을 자랑해 한남 아트밸리를 용산구로 확장하니 말이다.

필립스 한국사무소 오프닝 현장.
그 자체로도 매력적인
예술 공간이 이사하고 새로 문을 여는 등 여러모로 분주한 한남동. 이제야 그 위상이 폭발한 것 같지만 한남동은 이미 아트 신의 중심이 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한남동을 거점 삼아 오랫동안 현대미술을 전파해왔으며 여기에 현대카드 스토리지와 아마도예술공간이 힘을 보태 한남동 아트 신의 기반을 다졌다. 그러던 2015년, 감각적인 전시로 무장한 디뮤지엄이 그간 국내 미술관에서 보기 힘들던 ‘입장 줄’을 만드는 인기를 누리며 한남 아트밸리 탄생에 기폭제 역할을 한 것.
한남동은 지역 자체도 매력적이다. 국내 최고 부촌이라 불릴 만큼 많은 컬렉터층을 보유한 것은 물론, 요즘 SNS에서 가장 잘나가는 트렌디한 지역으로 떠오른 덕에 젊은이들까지 이곳에 모여든다. 여기에 이태원에 근접한 지리적 요건으로 외국인 컬렉터까지 아울러 서울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지역. 즉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바라 마지않던 ‘관람객의 다양화’를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가나아트 한남과 필립스 한국사무소가 자리한 사운즈 한남.
갤러리들도 이런 한남동의 특징에 공감한다. 지난해에 한남동에 개관한 P21은 “다양한 대중과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곳에 진출하려던 참에 각계각층의 사람이 모이는 한남동을 발견했다”고 밝혔고, 필립스도 “한국 내 첫 오픈인 만큼 지역 선정 문제로 본사 측과 함께 오랜 시간 고민했는데 여러 사람이 모이는 한남동의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에 반했고 필립스의 브랜드 이미지와도 어울려 이곳에 오픈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철저한 준비에 실력까지 겸비한 한남동, 이만하면 떠오를 만하다. 한편, 많은 미술관과 갤러리가 하나같이 말한 한남동의 장점이 있다. 바로 ‘접근성’이다. 가나아트 한남이 “가나아트센터가 평창동에 있다 보니 접근성이 떨어져 전시장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라고 밝혔듯 미술관과 갤러리는 기존 화랑 중심지인 평창동, 청담동은 접근하기 어려워 대중을 만나기 불편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의 중심에 있어 강남과 강북을 잇고, 교통까지 편리한 한남동이 그런 점에서 단연 눈에 들어올 수밖에.
모두의 사랑을 받는 한남동은 동시대 가장 현대적인 미술을 만날 수 있는 지역으로 급부상했다. 새로운 컬렉팅 대상을 찾거나 컬렉팅에 입문하려면 두말할 것 없이 한남동으로 가자. 미술계를 이끌 젊은 작가를 가장 먼저 차지할 수 있는 기회는 한남동에 있으니 말이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