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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위의 남자

ARTNOW

수천 년 전, 인류는 바퀴를 발견한 덕에 전쟁과 정치, 경제, 산업, 기술 등 모든 면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이원우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작품 ‘A Biscuit is the Moon’에 앉아 있는 이원우 작가. 애초에 실용적 이유로 작품에 바퀴를 달았던 그는 최근 생각의 확장으로 아예 작품의 일부로 바퀴를 사용하고 있다.

이원우
조각과 설치, 페인팅, 영상, 퍼포먼스 등 매체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과 아트선재센터,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쑹좡 미술관(베이징)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관람객과의 소통을 추구해왔다. 해가 갈수록 유머와 아이러니의 미학이 담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몇 번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보며 좋은 의미에서 아주 ‘웃기는’ 작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머와 위트’. 제가 잘 봤나요?
그런 부분이 있죠. 유머는 제 작업에서 중요한 도구로 작용해요. 얼마 전엔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작업이 ‘글’이라면 내 글의 장르는 뭘까? 제 글은 ‘수필’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수필을 베이스로 때론 시도 되고 소설도 되는…. 전 보통 삶의 경험에서 작업을 떠올리거든요. 거기에 유머를 장치로 섞죠. 궁극적으론 삶의 모습을 환기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러는 거죠.

우리 삶에 유머가 끼어들 자리가 그렇게 많나요?
유머는 뭔가 늘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발생하잖아요. 현실을 뒤집어놓거나, 뭔가를 실패했을 때도 발생하죠.

여하튼 지루한 삶에 의도적으로 그걸 섞는단 얘기죠?
네. 우리 삶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포착해낼 때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그걸 뒤집어 아이러니하게 만들어놓을 때도 있죠.

오늘은 바퀴에 대해 얘기하기로 했잖아요. 그런데 얼마 전 이전 작품을 찾아봤는데, 이미 몇몇 작품에 바퀴가 ‘작품으로서’ 쓰였더라고요. 전 우리가 꽤 즉흥적으로 주제를 정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 않나요? 일상의 한 물건에서 기인한 어떤 생각을 얘기하려 했지, 이미 작품에서 바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어서 ‘해명’ 좀 해주시죠.
저도 좀 놀랐어요. 2013년 ‘If you’re happy and you know it then your face will surely show it’이라는 제목의 커다란 가벽 작품에 바퀴를 단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전에도 사용했다는 건 잊고 있었죠. 10여 년 전인 2009년의 ‘Light Box’라는 작품에도 바퀴가 달려 있더라고요.

그걸 왜 모르고 있었죠?
생각해보니 그땐 아주 실용적인 이유로 바퀴를 달아서 그런 것 같아요. 당시 대형 작업이 좀 있었는데 그걸 완성하고 혼자 옮길 수 없어 이동을 수월하게 하자는 생각에 바퀴를 달았죠. 사실 ‘If you’re happy and you know it then your face will surely show it’도 비슷해요. 사이즈가 큰 가벽을 만드는 작업이었는데, 작업실에서 그걸 옆으로 옮길 때마다 누굴 불러 도움을 청할 순 없으니 아예 바퀴를 달고 제가 쓱쓱 밀며 움직였죠. 연극 무대의 가벽처럼 쉽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야겠단 생각도 있었지만요.

그러니까 애초에 순수하게 실용성을 위해 부착한 바퀴가 이후 작품에 온전히 융화된 거네요? 현재 디프로젝트 스페이스 구슬모아당구장에서 열리는 < EXIT, 또 다른 시작 >전에 소개한 몇몇 작품처럼요.
그런 셈이죠. 10여 년 전 당시의 바퀴는 순전히 학교 선배들의 작업을 도와주러 다니던 때의 경험에서 비롯된 거예요. 그 무렵 어떤 선배의 작품은 남자 2~3명이 달라붙어도 못 들 만큼 무거워서 참 힘들었거든요. 제 작업에선 그걸 혼자 해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요?
지금은 다르죠. 의도적으로 바퀴를 달았어요. 요 근래 바퀴를 단 작품들은 이동 장치의 개념이죠. 이를테면 구슬모아당구장에서 열리는 전시 키워드가 ‘여행’이잖아요. 공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사람들이 뭔가를 타고 자신만의 여행지로 떠난다는 설정에서 비롯한 거예요. 실제로 전시장에서도 작품을 타고 돌아다닐 수 있죠. 그걸 끌고 다니다가 그들만이 아는 어떤 곳으로 보낸다는 설정이죠.

9월 2일까지 구슬모아당구장의 < EXIT, 또 다른 시작 >전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작품 ‘UFO’.

얼마 전 통화했을 땐 바퀴를 통해 몸이 이동할 수도 있지만, 생각 또한 이동한다고 하셨죠? 그건 무얼 뜻하나요?
바퀴가 ‘이동’의 메타포가 된다고 여겼거든요. 바퀴는 뭔가를 움직이기도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어딘가로 이동할 수 있게 하잖아요. 그것이 넓게는 생각 그 자체도 유연하게 이동시키는 어떤 은유적 요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 거죠. 저는 평소에 자주 걸어 다녀요. 하지만 이따금 자전거를 타며 물리적 거리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죠. 그만큼 생각의 범위도 넓어지고요.

저도 여기 오기 전 바퀴에 대해 좀 찾아봤어요. 한 오픈 사전에 “인류가 만든 가장 역사적이고 위대하고 수학적이고 과학적이며 엄청난 업적을 이룬 중요한 발명품”이라고 나오더군요. 기원전 4000년경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에서 발명했고, 당시엔 ‘탈것’이 아닌 물레에 붙어 있었다고요. 또 바퀴는 자연을 모방한 게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몇 안 되는 물건이라고도 쓰여 있었어요. 이런 설명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전 사실 과거에 탄생한 어떤 물건에 대해 깊이 상상해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따지고 보면 바퀴도 인류의 긴 역사를 거쳐 여기까지 온 것일 텐데, 알고 보면 오래전 어떤 사람, 이를테면 다빈치 같은 천재 한 명이 세상에 뿌린 어떤 ‘씨앗’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방금 문득 들었어요. 또 미리 보내주신 질문지를 보며 떠올린 건 드릴이었어요. 바퀴가 원래 이동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물레의 부속이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드릴도 비슷한 원리인 것 같아요. 바퀴처럼 회전하는 원리인 데다, 누군가의 손의 능력을 확장해주는 또 다른 바퀴 같은 개념이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 수도 있군요.
제가 하는 일은 생각하는 거잖아요. 생각으로 끝까지 가는 거죠.

그런가 하면 바퀴는 흔적을 남기죠. 바퀴를 통해 새로운 곳에 가고 생각도 이동하지만, 거기엔 늘 족쇄처럼 ‘바큇자국’이 따라붙어요. 거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직 그것까진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한데 그 또한 말이 되네요.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을까요? 뭔가를 하면 흔적이 남죠. 미술가로서 작업도 그런 것 같아요. 삶의 흔적을 남기는 작업.

그런데 ‘바퀴’, ’바퀴’, ‘바퀴’, ‘바퀴’, ‘바퀴’라고 계속 발음하다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나요? 이전에 알고 있던 단어 같지 않고 뭔가 낯선 느낌. 이런 경험 해보신 적 있죠?
당연히 있죠. 뭔가 하나를 계속 생각하다 보면 익숙하던 것도 색다르게 인식되죠. 저는 하늘을 보다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자주 보던 하늘인데 바람이나 구름의 속도가 그날따라 낯설거나, 내가 걷는 방향이 미세하게 달라질 때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거죠. 그런데 오늘 계속 바퀴 얘기만 하다 보니 제가 정말 바퀴가 되는 것 같네요.

그러게요. 오늘 쓰고 오신 모자도 타이어처럼 시커멓고.
(웃음)

이원우 작가가 평소 타는 자전거에서 떼어 온 바퀴. 그에게 바퀴는 이동의 메타포이자 생각을 유연하게 하는 무엇이다.

바퀴
어디든 갈 수 있게 하고 그만큼 생각도 이동 또는 확장할 수 있게 돕는다.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명했고, 당시엔 물레의 한 부속으로 쓰였다. 이원우 작가는 이를 10여 년 전 순전히 실용적 목적으로 사용했지만, 최근엔 생각이 확장되어 아예 작품의 일부로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는 작업에 어떤 식으로 쓰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평소 작품을 구상하며 이렇게 바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없어요. 전 의도적으로 뭔가를 하려 하면 오히려 더 안 풀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니, 그럼 다음부터는 작업에서 바퀴를 아예 빼시는 거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어요.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영영 그걸 안 쓰게 될 수도.(웃음)

그런 인터뷰를 바란 적은 없는데요.
아니,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계속 바퀴에 대해 생각하게 되니 뇌리에 박혀 나중엔 작업에서 그것이 조금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단 얘기예요.

그러게요. 아예 바퀴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작가가 될 수도 있겠죠.
(웃음)

궁극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길 원하세요?
작업을 통해 가고자 하는 방향은 분명히 있어요. 많은 사람이 와서 즐길 수 있는 작업이죠. 그건 조각이나 설치, 건축, 퍼포먼스가 될 수도 있고 한시적인 공간의 간섭이 될 수도 있죠. 어쨌든 많은 사람이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단 생각은 있어요. 저는 작품을 설명할 때 ‘환기’라는 단어를 자주 쓰는데, 그건 누군가의 삶을 잠깐 환기시킨다거나, 아니면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 그러는 거죠.

조만간 언제 어디서 신작을 볼 수 있나요?
내년 상반기에 미국에서 전시가 하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날짜라든지 구체적인 정보는 나오지 않았지만요.

혹시 바퀴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이 있는지요?
글쎄요. 이 인터뷰를 계기로 바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려고요. 계속 생각하다 보면 그 끝에서 전혀 다른 연결 고리를 가진 작업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간 작업을 바퀴가 달리거나 달리지 않은 걸로 분류해본 적도 없거든요.

다음 신작으로 만약 바퀴가 달린 작품이 나오지 않으면 우린 다신 못 만날 것 같아요.
그렇진 않을 거예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순전히 실용적인 이유로 바퀴를 사용한 적도 있으니까요.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