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ng Art to Life
노블레스 컬렉션은 폭넓은 시각으로 다양한 장르의 예술적 가치를 제안하고, 소장 기회를 제공하는 새로운 개념의 아트 플랫폼입니다. 9월 28일 오픈하는 'Who likes Blue?'전에서 수많은 선과 레이어로 평면에서 공간을 창조하는 김현식 작가를 소개합니다.

김현식
김현식은 레이어를 겹겹이 쌓아 깊이 있는 화면을 연출한다. 그렇기에 회화와 입체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힘들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층 깊은 화면을 창조했다는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Who likes Orange,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122.5×70×8cm, 2018, 20,000,000
지난 개인전이 끝난 지 6개월 만의 전시입니다. 출품작 대다수가 신작이라는 것이 놀라워요. 지난 전시를 마쳤을 때 아쉬운 점이 눈에 보였어요. 이를 보완하고 싶어 신작으로 채우기로 결심했죠.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지난 개인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기에 만족스럽습니다.
켜켜이 층을 쌓는 작업이니 한 점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꽤나 걸리겠어요. 일정한 과정이 꼭 필요하기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죠. 작업 과정을 짧게 설명하면, 우선 투명판 위에 일정한 방향으로 계속 선을 긋고 홈이 생기면 그 위에 물감을 바릅니다. 그것을 천으로 닦아내면 홈에 물감이 상감되죠. 이렇게 첫 번째 판이 탄생하면 그 위에 레진을 부어 굳히고 다시 앞선 과정을 반복합니다. 일곱개의 층이 쌓일 때까지요. 노동집약적 작업이죠. 매일 선을 긋고 물감을 바르고 말려야 제때에 완성할 수 있기에 일주일 중 6일은 작업실에 나가요.

울산 작업실 전경.
그렇지 않아도 신작의 레이어가 일곱 겹에서 열 겹으로 늘었다고 들었습니다. 스케일에 대한 욕심이 생겼어요. 아무래도 현대미술에서 스케일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죠. 한데 제 작품은 크기가 커지면 물리적으로 무거워져요. 저만의 스케일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는 많은 고민을 했고, ‘깊이’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레이어를 쌓을수록 더 깊은 공간감이 생기기에 늘리기로 결정했죠.
색은 덧칠하면 탁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작가님 작품은 탁하긴커녕 되레 맑습니다. 색 배합에 신경을 많이 쓰시죠? 맞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작업 과정에서 색 차이를 주는 게 가장 힘듭니다.(웃음)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각 레이어의 색이 미세하게 달라요. 레이어가 늘어날수록 색의 순도도 함께 높아져야 맑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색으로 칠하면 화면이 쉽게 뭉개지거든요. 빨강과 주황, 이렇게 완연히 다른 색으로 칠하는 쉬운 방법도 있지만 오직 한 가지 색 베리에이션만 사용하는 게 깊이감을 내기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좋은 결과를 위해 이 정도의 노력은 당연한 것 아닐까요?

1Who likes Yellow?,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60×21.5×7cm, 2018, 5,000,000
2Who likes Green?,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60×21.5×7cm, 2018, 5,000,000
3Who likes Magenta?,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60×21.5×7cm, 2018, 5,000,000
4Who likes Blue?,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60×21.5×7cm, 2018, 5,000,000
5Who likes Violet?,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60×21.5×7cm, 2018, 5,000,000
6Who likes Blue?,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60×21.5×7cm, 2018, 5,000,000
여인의 뒷모습을 담은 ‘비욘드’ 시리즈로 큰 인기를 끌었어요. 그런데 최근 작품은 구체적 형상이 없는 추상화에 가까워요. 그것도 빨강, 파랑, 노랑 원색을 전면에 내세웠죠. 표현 방식만 달라졌지, 큰 주제는 변함없습니다. 초기부터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해왔어요. 여인의 뒷모습, 폭포 그리고 컬러는 관람객을 그림 앞으로 불러오는 하나의 장치에 불과할 뿐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요즘 들어 추상화에 가까워진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일례로 ‘비욘드’ 시리즈에서 관람객이 여성의 뒷모습에 얽매여 다양한 해석을 하지 않는 모습을 발견했죠. 그래서 형태를 점차 줄이고 기본 조형 요소인 선과 색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색도 관람객의 시선을 잡는 도구일 뿐인데, 색을 강조한 탓인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들어요.
좋아하는 색을 물으려 했는데 우문을 던지기 전에 현답을 내주셨네요. 따뜻한 블루를 좋아하지만 작업에 영향을 미치진 않습니다. 절대색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요. 빨강, 파랑, 노랑 같은 단어는 구분하기 쉽게 명명한 것일 뿐, 색깔은 보는 이의 감정에 따라 달리 보이죠. 제가 따스한 블루로 화면을 채웠다 해도 어떤 관람객은 차가운 블루로 느낄 수 있는 것처럼요.

7Who likes Magenta,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114×114×6cm, 2018, 31,000,000
8Who likes Green,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70×70×8cm, 2018, 12,000,000
9Who likes Blue,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70×70×8cm, 2018, 12,000,000
10Who likes Red,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70×70×8cm, 2018, 12,000,000
한 가지 색으로 가득 채워서 그런지 단색화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실제 21세기 단색화가라는 평을 듣지 않았나요? 고민이 많아지는 질문이네요. ‘단색화처럼 보인다’는 평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미학적으로 단색화다’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단색화와는 다른 방향인 ‘깊이’로 평면을 탐구했기에 접근 방법 자체가 다릅니다.
‘레진’을 활용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보니 재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회화 작가로서 레진을 선택한 구체적인 이유를 직접 듣고 싶습니다. 제가 레진을 사용한 게 이례적이라 하는데, 사실 있는 재료를 쓴 거지 특별한 건 없어요. 특이한 게 있다면 조각이나 도자에서만 사용하던 레진을 회화에 접목했다는 점이겠죠? 레진을 택한 이유는 ‘미술사적으로 생각하지 말자’란 고민의 결과였어요.
작가의 입에서 미술사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니 굉장히 아이러니합니다.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자적 스타일을 만들겠다’는 염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술사를 학습하거나 미술이란 장르에 한정해 아이디어를 구상할수록 이론에 얽매이게 되더라고요. 미술 사조의 도움을 받는 데 그치면 좋지만, 자칫하면 기존에 있는 작품을 답습하고 제 정체성까지 잃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미술로 생각하지 말자’라는 결론을 내리고 지금까지 미술사에서 보여주지 않은 다른 화면을 창조하고자 했죠. 곧 ‘평면에 평면이 아닌 것을 표현할 수 없을까?’라는 의문이 떠올랐고, 이를 위해 투명한 재료를 찾아다녔죠. 투명한 화면을 통해 평면에 공간감을 부여한다는 개념으로 투명한 레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실험 과정에 실패도 많이 했지만 그때의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겠죠?

11Half of It,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102×184×6cm, 2018, 40,000,000
12Half of It, Acrylic on Epoxy Resin, Wooden Frame, 70.5×152×8cm, 2018, 26,000,000
관람객의 자유로운 해석을 원한다는 태도를 꾸준히 내비쳤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가요? 네. 언제나 열린 태도입니다. 제 작품이 관람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장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으면 해요.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신작들은 한층 추상적이고 깊이가 깊어진 만큼 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드네요.
향후 계획을 <노블레스> 독자와 공유해주세요. 10월 4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KIAF 2018’에서 학고재 갤러리를 통해 또 다른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작업에 한해 말하면 먹과 같은 느낌의 무채색 화면을 연출해보고자 합니다. 또한 설치 작업도 생각하고 있어요. 앞서 작업 과정에서 천으로 물감을 닦는다고 했는데, 사실 제가 그 천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놓았습니다. 언젠가 작업에 쓸 요량이었는데 이제 그때가 된 것 같아요.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진행 박소희, 임슬기, 명혜원, 채우리 사진 김잔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