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집 Part.2
주인과 눈인사만으로 안부와 상태를 묻는 곳. 속세에 치여 녹초가 됐을 때 찾는 곳.
홀로 누워 있는 저녁 느닷없이 생각나는 곳.



無의 행복, 황소만화방 <노블레스 맨> 에디터 조재국
직장인은 재료가 소진됐어도 문 닫을 수 없다. 고기가 떨어졌으면 해산물로, 그게 없다면 야채만으로 뭔가를 해내야 한다. 그래서 일은 항상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진 직후에 끝난다. 10년 가까이 마감에 치이며 살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언제나 그로기 상태고 항상 조급하다. 그래서 ‘무(無)의 상태’가 얼마나 행복한지 안다. 어떤 약속도 없는 날, 휴대폰을 꺼놓고 누군가에게 답하지 않아도 되는 파업의 희열. 20대엔 마감 직후에 비틀거리며 술자리로 뛰어갔지만 근래엔 입을 꼭 닫고, 휴대폰을 내팽개치고 충무로로 간다. 서울에서 손에 꼽는 도가니탕집 황소집 지하에 있는 만화방에 간다. 오전부터 죽치고 앉아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뒹굴다 나온다. 그동안 출간된 만화책과 주전부리를 잔뜩 앞에 쌓아놓고 소파에 반쯤 누운 자세로 만화책을 본다. 막 넘긴 전 페이지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대충 보지만 그 행위 자체가 안겨주는 소소한 행복이 좋다. 무엇보다 여긴 황소집에서 조리하는 여러 음식을 주문해 맛볼 수 있다. 이토록 편안한 분위기에 맛까지 보장하니 금상첨화다. 멍하니 만화책을 넘기며 이것저것 입에 넣다 보면 어느새 냉장고가 조금씩 찬다. 거기서 얻은 위로로 또 다음 달을 산다. 서울시 중구 충무로길 2 지하 1층 02-2273-0969

사색과 휴식을 위한 맨케이브, 라이즈 호텔 SWYP 대표 이근
남들 다 쉬는 주말이나 휴가도 잘 챙기지 못하고 성격상 일과 휴식이 분리되지 않는다. 나에게 단골집이라면 이런 자극과 생각, 시선, 격식에서 벗어나 잠시 혼자 숨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밀실 같은 곳일 거다. 가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숨을 돌리고 싶을 때면 가까운 부티크 호텔로 숨는다. 멀리 떠나긴 힘들고 그나마 일상 속에서 잠시 비일상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사무실이 강남에 있을 때는 그쪽 호텔을 가끔 이용했다. 올해 초부터는 홍대 앞으로 이사 온 탓에 최근 생긴 라이즈 호텔을 몇 번 찾았다. 예전 서교 호텔 자리를 메리어트 계열 오토그라프 컬렉션에서 리뉴얼한 곳인데, 현대적이면서도 홍대 앞의 젊은 감성을 결합한 새로운 호텔이다. 콘크리트와 볼드한 컬러 블록을 조합한 공간과 객실 인테리어는 비일상적이면서도 이색적인 휴식 경험을 만든다. 체크인과 동시에 전화와 문자, 이메일 등 모든 외부와의 연결 고리를 차단하고 방에서 나가지 않는다. 후드가 달린 가운을 걸치고 가장 편안하고 자유로운 순간을 만끽한다. 매 순간 분주한 나조차 이곳에서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식사도 오직 룸서비스로만 해결할 정도다. 늦잠을 잔 후 체크인 전 1층에 있는 타르틴 베이커리에 들른다. 커피 한잔과 함께 먹는 브런치 토스트는 단 하루뿐인 일탈을 즐겁게 마무리하는 리추얼이다. 지금 지친 자, 머리가 복합한 자, 그러나 멀리 도망 갈 수 없는 자에게 권한다.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130 | 02-330-7700

앵글만 높여도 휴양지, 파티오 카스텔코리아 지사장 김선욱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거나 방전이 될 때엔 남산에 오른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그랜드 하얏트 서울의 파티오(Patio)에 간다. 고작 벗어난 곳이 하필 서울의 중심이지만, 여긴 꽤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곳이다. 일단 하얏트 특유의 서비스(부담스럽지 않고 친절한)를 제공하고 멋진 뷰와 고요함이 있다. 그리고 비빔밥부터 햄버거까지 다양하고 훌륭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파티오에서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식사하고 책을 읽거나, 한강과 한남대교의 건너편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다다. 그게 꽤 효과가 있다. 주로 연휴나 휴가 기간에 이곳을 애용하는데 언제 가도 북적거리지 않고 준비할 거라곤 책 한 권이 다라 차림도 간편하다. 그렇게 멍 때리다 보면 잊고 있던 사람들, 소홀히 한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에게 전화를 하게 되고 생각지도 못한 자리가 이어진다. 서울시 용산구 소월로 322 | 02-797-1234

현타의 시간, 장충단공원 레오엘 대표 이현호
매일 바쁜 일정으로 목표를 향해 달리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상대에게 귀 기울인다. 휴식은 이러한 일상과 스스로에 대해 ‘왜’라는 물음을 던지며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는지’, ‘나는 어디에 와 있는지’ 같은 질문을 통해 나의 벌거벗은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엔 너무 무방비 상태지만, 그렇기에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장충단공원 일대는 그런 나의 사색 공간이다. 남산 자락 아래 위치한 이 작은 공원은 서울의 1970~1980년대 건축과 문화의 접경지다. 1979년에 지은 신라 호텔과 이희태 건축가의 국립극장, 김수근 건축가의 타워 호텔, 경동교회가 대표적 예다. 지난 50년 이상 서울의 흔적을 자연스레 마주할 때, 지난 시간 속에서 열심히 달려온 이들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이곳에 가기 전 오장동 흥남집에서 혼자 냉면을 시킨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이 어우러진 공간은 혼밥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공기가 감돈다. 입가심 겸 태극당에 들러 찹쌀모나카아이스크림을 사고, 장충단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것이 바로 바쁜 나에게 주는 꿀맛 같은 보상의 시간이다. 이럴 때면 ‘이 맛에 열심히 달리는 거지’란 생각도 든다.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동네 어르신들의 모습도 바라본다. 어디서 오셨는지, 어떻게 사시는지 알 수 없지만 공원의 풍경으로 남는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참 단순하다. 내가 세운 먼 목표에 도달해야 행복할 것 같지만 사실 이렇게 냉면 한 그릇,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고 동네를 산책하는 일상의 기쁨이 가장 크게 와 닿으니 말이다. 서울시 중구 동호로 261 을지지구대


나만의 아지트로 거듭난 뼈대감 골프 선수 조윤지
골프 대회 때문에 제주도에 자주 간다. 아무래도 시합 전에는 완벽한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식사를 거르는 편이다. 대회에 온 힘을 쏟은 다음 날 아침엔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제주도 한림에 있는 뼈대감! 안 올 수는 있지만 한 번만 올 순 없는 진정한 나만의 아지트다. 이곳의 시그너처 메뉴 감자탕은 비주얼만 봐도 압도적이다. 100% 제주산 돼지 등뼈와 사골을 베이스로 만든 육수, 돼지 특유의 비린내가 없는 부드럽고 두툼한 고기 등의 유니크한 요소가 이곳을 계속 찾게 한다. 그 밖에 홍합, 전복, 꽃게, 새우 등 각종 해산물과 등뼈를 섞어 양념과 버무린 해물뼈찜과 찜닭의 닭 대신 등뼈를 넣어 만든 뼈대찜은 제주도에서 뼈대감이 최초로 선보인 특별 메뉴다. 경기에 지친 몸을 이끌고 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이곳에 갈 때면 언제나 발걸음이 가볍다.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이 주는 기쁨과 황홀감을 곧 만날 테니. 제주시 한림읍 한림중앙로 61-2 | 064-796-3356

고향 생각이 절로 나는 새벽집 카루소 부사장 박성목
단골집은 고향집이다. “엄마, 밥 주세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청담동에 위치한 새벽집은 꽃등심 전문점이지만 식사 메뉴 또한 일품이다. 이곳의 시그너처 메뉴 멸치김치찌개는 단연 최고! 칼칼함과 개운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불고기 역시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맛으로 고기 전문점이라 그런지 소고기의 질이 확연히 다르다. 부드러운 고기를 다 먹은 후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올겨울 한파까지 견뎌낼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만일 누군가를 나만의 공간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한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곳으로 향할 것이다.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101길 6 | 02-546-5739

아침을 깨우는 탁월한 도가니탕, 대성집 올리브TV CP 석정호
독립문 가까이 위치한, 도가니탕과 수육을 내는 오래된 식당이다. 주로 혼자 찾는다. ‘득’하면서 물컹한 도가니, 스지의 식감을 나는 좋아하지만 아내는 싫어해서 아내가 출장 중이거나 일하는 토요일 아침, 혼자 한 그릇 먹으러 가기 딱이다. 주문은 항상 특! 자주 찾을 수 없는 곳이니만큼 건더기를 충분히 즐기고 싶어서다. 대성집의 도가니탕은 도가니, 스지, 사태로 우려낸 국물이 구수한 듯 순해서 건더기와 조화를 이룬다. 무엇보다 이 집은 건더기의 비율이 절묘하다. 도가니와 스지, 살코기가 붙은 스지를 각각 2:1:1로 담아내는데 이 비율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도가니와 스지로만 구성한 일반 도가니탕의 경우 물컹한 식감과 맛에 다 먹지 못하고 질리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탕이 나오면 가장 먼저 건더기 몇 점을 건진 다음 고춧가루 살살 뿌린 양념간장 종지에 옮겨둔다. 콜라겐 덩어리인 도가니와 스지는 종지에 오래 둬도 그 안으로 간장이 깊이 스며들지 않고, 적당히 간장 향만 밸뿐더러 단숨에 입에 넣고 우물거리기 좋은 온도로 식는다. 밥은 반 공기 조금 안 되게 국물에 말아둔다. 셀프 토렴이다. 밥알의 전분이 적당히 국물에 엉겨서 달달하고 걸쭉해진다. 안주도 되고 해장도 되는 도가니탕 완성이다. 찬은 단출하다. 그중 발군은 고추장마늘이다. 마늘을 워낙 좋아하거니와 도가니의 군내를 적절히 잡아줘 아주 궁합이 좋다. 이 집 도가니탕을 즐기는 일련의 순서가 있다. 가장 먼저 소주 한 모금을 넘긴 뒤 그다음 간장에 푹 찍은 도가니 한 점, 고추장마늘 하나 그리고 국물 두 숟가락. 이 과정을 반복할수록 아침 해는 더 높이 떠오르고, 밖은 더 환해진다. 오늘 하루가 아주 많이 남았다는 기쁨은 낮술이 주는 선물이다.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5 | 02-735-4259

덤덤한 이모들이 내는 한결같은 설렁탕, 마포옥 셰프 임정식
언제 가도 같은 맛,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나의 단골집이 주로 그런 곳인 이유다. 40년 전통의 한우 양지 설렁탕집 마포옥은 오랜 전통에 걸맞게 언제 불쑥 찾아가도 동일한 질의 국물을 즐길 수 있다. 뽀얀 국물의 설렁탕과 맑은 국물의 곰탕을 섞은 듯한 독특한 고기 국물이 특징이다. 자타 공인 곰탕 마니아인지라 전국 팔도 곰탕 맛있다는 곳은 거의 다녀봤지만 나의 취향에 딱 맞는 곳은 마포옥이다. 두툼하고 부드러운 고기와 텁텁하지 않고 맑고 깨끗한 국물! 여기에 익은 김치, 겉절이, 파김치, 깍두기까지 네 가지 김치를 곁들여 한 입 뜨는 순간 세상 어느 만찬도 부럽지 않다(겉절이와 깍두기는 기본 반찬이지만 익은 김치와 파김치는 반드시 따로 이야기해야 한다!). 주로 설렁탕 특 사이즈를 시켜 먹는데, 운동을 열심히 하거나 기력이 떨어진 날엔 수육을 추가한다. 파김치를 올린 수육은 또 어찌나 탁월한지. 언제나 덤덤하게 반찬을 툭 내주는 이모님들의 무심한 듯 섬세한 서비스도 맛에 한몫을 더한다.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312 | 02-716-6661

나를 반겨주는 곳, 펍트라이브 타투이스트 독고
건물 외부에 간판이 없어 어딘지도 모를 이곳. 입구의 초인종을 눌러야 하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방식의 펍트라이브는 영감을 떠올리기 좋은 곳이다. 개인 작업실과 비슷한 분위기, 정리가 안 된 듯한 빈티지 가구, 어두운 조명, 오래된 명곡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 지난겨울 수술을 받고 한동안 타투 작업을 못해 우울증에 시달린 적이 있다. 그때 유독 이곳을 자주 찾았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싶은 것이 매번 떠올랐고 취한 채 작업실로 돌아가 그림 하나를 그린 후 잠들곤 했다. 그렇게 모인 그림으로 지난 5월 <장마>라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좋은 곳이지만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서울시 마포구 독막로3길 7 | 02-323-8440
추억이 피어오르는 공간, 커피짚 영화감독 박석영
집 근처에 커피짚이라는 곳이 있다. 품이 넓은 의자와 테이블, 맛있는 커피와 빵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한가로운 그곳의 분위기다. 원체 집중 시간이 짧고 참을성이 없어 시나리오 작업할 때 항상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편이었다. 그러나 여기선 왜인지 진득하니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어려워지는 나로서는 커피짚의 존재가 고맙다. 오랜만에 만나도 서로 애쓸 필요 없는 친구가 생긴 기분이다. 자신의 이야기만 요란하게 떠드는 친구가 아니라, 말없이 앉아 가끔씩 잔을 채워주는 편한 친구 같은 곳. 아마도 그래서 홀로 글을 쓰고 있어도 외로움이 덜한 것 같다.
작년 하순에 연이어 세 편의 영화 작업을 했다. 마지막 영화 <재꽃>도 개봉했고 결과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아 행복해야 했지만, 나는 정신적 자폐 시간에 들어갔다. 세상 모든 사람이 밉고, 그들에게 서운하고, 그렇게 자기 연민에 빠져 매일 술을 마시고 위장된 괴로움을 무기 삼아 최선을 다해 나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 우울을 벗어날 길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모든 연락처를 지우고 집 안에 틀어박혀 몇 달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올해 초가 되어서야 겨우 세상에 나왔다. 노트북을 챙기고 다시 세상에 나가 커피짚에 갔다. 답답함은 여전했지만 하루 이틀 그곳에 가서 앉으니 무언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희미하지만 어쩌면 다음 영화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내게 커피짚은 타임캡슐 같은 존재다. 그곳에 가면 끊긴 시간이, 버려둔 이야기가 이어지는 기분이 든다. 서울시 종로구 경희궁2길 14 | 02-733-0318

영감이 춤추는 곳, 이피커피앤바 젠틀몬스터 공간 디자이너 이혜인
주로 상업 공간을 다루는 나는 작고 디테일이 있는 공간 디자인 작업에 대한 갈증이 많다. 이피커피앤바(이하 이피)는 내가 만들고 싶은 공간에 가장 가까운 곳이다. 연남동 끝자락에 조용히 자리한 카페 겸 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새로운 영감이 필요할 때, 그리고 외로운 날에 난 이피로 향한다. 술 한잔 홀짝이며 복잡한 생각은 내려놓고 뇌를 좋은 생각과 영감으로 다시 채운다. 두 이피 사장과의 친분으로 오픈 준비부터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간이 변화하는 모습, 그리고 채워져가는 모습을 촘촘히 지켜봤다. 개성 있는 두 사장이 내는 음료나 요리뿐 아니라 가구, 그릇, 글라스, 작은 소품에도 그들의 성향이 배어 있다. 공간을 채운 모든 것은 우리의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들이 오랜 시간 여행하며 모은 디자인 서적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참 값진데, 그 리스트가 끊임없이 바뀐단 사실도 흥미롭다(한 번에 공개하지 않는 게 나름의 전략이라고!). 주로 건축과 가구 관련 서적이고, 가끔은 사장이 혼자 즐겨 보는 책을 슬쩍 꺼내 보여주기도 한다. 한번은 생일 전날 밤 이피로 향했는데, 바질 향이 짙은 칵테일 위에 붉은 꽃잎을 몇 장 올려주는 거다. 그게 참 예뻤다. 가끔은 생일이라고 소문 내는 것도 썩 나쁘지 않구나, 어여쁜 꽃잎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29길 40-6 070-4791-2926

영감의 저장소, 베를린 J. Rium 대표 조오륜
아무 생각 없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을 때 베를린으로 향한다. 주로 가을이나 겨울에 찾게 되는데, 그 회색빛 도시에서 역설적으로 그들이 갈망하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차가워 보이지만 따뜻하고, 합리적 사고와 실용적 소비가 몸과 머리 곳곳에 배어 있는 독일 사람도 좋아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인생을 향유하는 취미를 한 가지씩 즐기며 그것을 공유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정신적 풍요로움이 나에게 좋은 영감을 준다. 때로 클럽을 찾아 진보적 음악을 듣는다.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베를리너를 접하며 그곳에서 예술적 영감을 굉장히 많이 얻는다. 베를린은 현대 예술을 이끄는 도시 중 하나다. 다양한 문화 공간과 갤러리가 넘쳐난다. 업스케일의 갤러리에 전시되는 고가의 작품부터 거리 예술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그렇기에 베를린은 나에게 늘 행복한 에피소드이며 영감의 원천이다.

엉킨 실타래 같은 이야기를 풀 수 있는 곳, 진부와 횡계 영화감독 곽재용
단골집은 제2의 집이라고 생각한다. 집과 같은 편안함이 있고, 집에서처럼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집에서처럼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의 단골집은 특정한 한 장소가 아니라 강원도 진부와 횡계의 여러 장소다. 우선 해마다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머무르는 나만의 공간이 있고, 진부에는 아침을 먹는 감미옥과 부일식당이 있다. 용평에는 원칼국수집이 있고 오삼불고기를 먹는 흥일회관도 있다. 산책을 하거나 등산을 할 수 있는 오대산과 계방산, 발왕산 역시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시나리오를 쓸 때 난 언제나 집을 떠나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 어느 정도 감금(?)이 되는, 사색하기 좋은 그런 곳 말이다. 음식 역시 중요해 쉽게 질리지 않는 식당이어야 한다. 지난 30년간 작업을 위해 우리나라의 여러 장소를 다녀봤지만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곳은 강원도 횡계와 진부 일대뿐이었다. 그중에 가장 좋은 곳은 율곡 이이가 한양으로 갈 때 넘었다는 대관령 옛길. 가파르지 않고 더운 여름날에도 햇빛이 들지 않아 트레킹을 하기에 제격이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그 길을 걸으며 사색에 잠기곤 했다. 타인의 단골집도 좋지만 보다 많은 사람이 엉킨 실타래 같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 수 있는 단골집을 만들길 바란다.
에디터 <노블레스 맨>
일러스트 최익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