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SURVIVAL
선택이 아닌, 생존과 직면한 환경과 사회를 위한 지속 가능성. 의식 있는 선택과 소비를 권하는 패션업계의 새로운 움직임.

산 채로 털이 뽑히는 거위와 죽은 고래의 뱃속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더미는 물건을 소비하는 즐거움 이면의 탐욕과 무절제를 돌아보게 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착한 소비에 발 맞추기 위한 요즘 패션업계의 화두는 윤리적 태도다. 일찍부터 사회・윤리적 가치에 힘써온 기업과 브랜드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환대받으며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하이패션 브랜드로는 보기 드물게 꽤 오래전부터 가죽과 모피를 사용하지 않은 스텔라 매카트니는 쿨한 취향과 개념 있는 소비를 즐기는 이들의 상징적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재활용 재료를 재구성해 옷을 만드는 크리스토퍼 레이번을 비롯해 버려진 나일론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리사이클 컬렉션을 선보인 투미, 친환경 소재와 공정으로 운동화를 만드는 베자, 사라져가는 농민과 장인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아폴리스 등이 대표적 예다.
현재 소비 주류인 밀레니얼 세대는 건강과 환경을 중시한다. 자연히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쳐 친환경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다. 이런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패턴에 레이더를 곤두세운 하이패션 브랜드들이 더 이상 환경과 공정 무역 같은 전 사회적 이슈를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은 당연지사다. 구찌와 아르마니, 베르사체, 톰 포드를 비롯해 지난 9월 버버리 역시 더 이상 모피 제품을 선보이지 않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영국패션협회 또한 패션 위크 기간 무대에 동물 모피를 금한다고 발표하며 힘을 실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LA는 올해부터 모피 생산과 판매를 도시 전체에서 금지한다. 덕분에 옷이나 가방, 신발을 생산하기 위해 동물을 죽이거나 고통을 주지 않는 비건 소재에 대한 연구와 수요는 더욱 급증할 전망이다. 플라스틱이나 생분해성 섬유로 만든 페이크 퍼가 모피의 자리를 대체하고, 버섯이나 와인 찌꺼기를 가공해 만든 비건 레더처럼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이 없고 인체 유해 성분을 배제한 친환경 소재 역시 주목할 만하다. 패션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지속 가능성을 인큐베이팅하는 업계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매치스패션닷컴은 이노베이터 스튜디오 프로젝트를 통해 케빈 제르마니에(Kevin Germanier), 잉겔라 클레메츠-파라고(Ingela Klemetz-Farago) 등 환경과 패션을 접목한 혁신적 디자이너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지지할 계획이다.

물자와 정보 과잉의 시대, 사람들은 옷을 선택할 때 더 이상 무엇을 살지 고민하거나 어떻게 입어야 할지 생각하지 않는다. 의식적 소비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왜 이 브랜드 혹은 이 옷을 택해야 하는지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생산과 소비에 온전한 친환경은 사실 어려운 이야기지만, 인류와 환경을 배려한 방식으로 창조하고자 하는 브랜드의 사명과 윤리적 태도에 동참하는 것은 소비자로서 의미 있는 일이다. 다만 공정 무역과 리사이클링, 모피 금지 같은 친환경적 문구가 깨어 있는 소비자를 현혹하는 한시적 마케팅의 일환에 그치지 않길 바랄 뿐! 더불어 지속 가능한 패션에 관해 우리가 결국 하이패션 브랜드에 기대하는 바는 오랜 시간 향유할 수 있는 가치 있는 물건인지 모른다.
에디터 정유민(ymjeong@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