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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없는 사람들

LIFESTYLE

문주호와 임지환, 조성현은 분명 건축가지만 건축‘만’ 하진 않는다. 경계가 없다. 기술은 있다. 사람을 향한다.

‘경계없는 작업실’의 임지환, 조성현, 문주호(왼쪽부터).

최근 도심에 집을 짓는 사람 중엔 조금 다른 공간을 찾는 이가 많다. 아파트처럼 획일화되지 않은 공간 말이다. 하지만 단독주택을 지을 여력이 부족해 아래층은 임대하고 자신은 위층에 사는 식의 복합 주거를 짓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렇게 지은 집의 특징? 디자인은 물론 임대 수익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지어 수익률 면에선 꽝이다. 하지만 같은 땅에 수익률과 디자인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집을 지을 수 있다면?
‘경계없는 작업실’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03학번 세 사람이 모여 만든 건축가 그룹이다. 공동대표인 문주호와 임지환, 조성현은 대학을 졸업하고 각각 다른 설계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2013년 함께 창업했고, 지난 10월 서울 논현동과 후암동의 복합 주거 시설과 인공지능 건축설계 등 그간의 포트폴리오로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했다. “부동산 개발 논리에 대응해 상황과 조건을 논리적으로 분석, 완성도 높은 해결 방안과 결과물을 보여줬다”는 게 심사평. 개업 5년 만에 30여 채의 건물을 완성한 이들은 신인치곤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건축주 입장에서 수익률과 미적 가치를 모두 충족시키는 건축 방식으로 호응을 얻은 덕. 사실 이를 가능케 한 비밀 무기는 따로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토지 개발 솔루션 ‘랜드북(www.landbook.net)’이다. 경계없는 작업실이 2013년 소형 건축물 설계 자동화를 위해 만든 랜드북은 2016년 가로 주택 정비 사업을 목적으로 서울주택도시공사에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건축 법규나 도시 현황에 따라 1년에도 수차례 개정되는 부동산 가치를 주목해 부동산 개발 데이터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현재는 토지 데이터와 건축물대장, 인허가 정보, 실거래가 등 공공 데이터에 등기부 등본, 건축·도시 법규, 도시계획 변동 공고는 물론 사용자의 예상 토지 가격까지 빅데이터로 모아 가치 평가가 가능한 상태. 랜드북을 좀 더 발전시키기 위해 최근 스페이스워크(Spacewalk)라는 회사로 분사한 조성현 대표는 “연간 7~8회나 바뀌는 건축법을 일반인이 일일이 추적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국내 3800만 개 필지는 물론 필지 간 조합까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만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랜드북에 접속하면 실제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검색창에 지번을 입력하면 땅과 관련한 온갖 정보가 쏟아진다. 땅의 용도, 법규를 바탕으로 이렇게 지으면 된다는 식의 건축설계 전망, 인근 150m 내 신축 개발 현황 등이 세세히 나온다. 그중 가장 놀라운 점은 집을 짓고 임대했을 때 수익률이 ‘별 평점’으로 뜨는 것. 마치 블루마블 게임을 하는 것 같다. 한 예로, 경계없는 작업실이 지난해 준공한 서울 후암동 복합 주거를 살펴보자. 랜드북 분석에 따르면 이 건물은 별 3개짜리다. ‘건축법에 따른 제한이 보통 수준이고, 꼼꼼한 설계를 통해 추가 면적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런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한 것일까? “특정 필지를 개발할 때 유사한 10개의 필지를 찾아 예상 비용과 수익을 산정하는 시스템이죠.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이 필지의 높이 제한과 용적률, 건폐율, 관련 법규 등을 검토해 3D 모델링을 제작해요. 이를 통해 건물 개발에 필요한 토지 매입비와 건축비를 산정하고 개발 후 원하는 목표 수익금을 입력하면 총수익이 나와요.” 조성현 대표의 말이다.
랜드북을 통해 예상 수익률을 산출한 후엔 이를 바탕으로 경계없는 작업실의 아이디어가 더해진다. 주변 건축물의 층별 단위면적당 임대료를 계산해 ‘비워낼’ 공간을 디자인한다. 아니, 건축을 비운다고? 그렇다. 바로 동네에 건물을 ‘내주기’ 위해. 이에 대해선 문주호 대표가 설명을 덧붙인다. “요즘 원룸 다가구주택은 대부분 1층이 필로티 주차장으로 되어 있잖아요. 비우는 길은 공적인 공간인데, 이것이 사적인 공간과 붙다 보니 보행자 입장에선 거리가 연장되질 않는 거예요. 지나가는 이를 위해 적당히 열어두고 비워두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오래된 동네와 어우러지는 방법이죠.” 후암동 건물을 예로 들면, 이곳은 계산 결과 2층 임대료가 가장 적었다. 그래서 건물의 2층 한가운데를 시원하게 뚫었다. 그 덕에 동네 사람들은 한 번쯤 더 들여다보게 되는 숨구멍 같은 공간을 확보하게 됐고, 건축주는 임대료 수익을 더 알차게 올릴 수 있었다.

2층 가운데를 비워 전망과 수익성을 잡은 ‘후암동 복합 주거’.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2017년엔 서울 대치동에 땅을 사서 ‘다이얼로그916’이라는 이름의 도시형 생활 주택을 짓고 직접 분양까지 마쳤다. 이 프로젝트는 건축설계와 시공, 시행, 자문까지 함께 하는 공간 개발 회사 제로투엔(Zero To N)으로 최근 분사한 임지환 대표가 맡았다. 그는 땅을 직접 매입해 부동산을 개발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2013년 이후 저금리로 소규모 개발이 크게 늘었어요. 쉽게 말해 우리 같은 건축가들이 신축하기 좋은 환경이 된 거죠. 사실 건축가로서 단순 설계만 하면 건축주가 늘 건축가를 찾아와야 하잖아요. 하지만 건축가가 직접 땅을 사서 이것저것 따지고 건축을 하면 더 다양한 일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죠. 앞으로 이 같은 방법으로 부동산 개발의 수익성뿐 아니라 복합적 개발을 통해 건축주의 삶에 조금이라도 더 기여하는 공간을 만들어갈 계획이에요.”
경계없는 작업실은 이름 그대로 건축과 다른 부동산 영역을 ‘경계 없이’ 넘나들며 활약한다. 기획과 설계, 투자 검토, 토지 매입, 부동산 금융 등 파트너사와 함께 하고, 단지 미적 요소만 고려하는 게 아니라 수익률까지 맞춰 아름다움을 추구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한다. “솔직히 우리끼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보자고 얘기한 적은 없어요. ‘젊은 건축가상’ 심사 발표 때도 우리는 수익률에 관한 얘길 많이 했어요. 심사위원 한 분이 농담으로 ‘업자냐’고 물을 정도였죠. 요샌 건축계도 변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문주호 대표의 말이다.
현재 경계없는 작업실은 올해 말 착공하는 경기도 이천의 거대 프로젝트 준비에 힘을 쏟고 있다. 한 의인이 어린이와 장애인, 노인이 함께 살 수 있는 타운을 개발하라며 이천시에 기부한 16만 5000m²(약 5만 평)의 땅을 개발하는 프로젝트 일부를 맡은 것. “아직 청사진만 나온 상태지만, 우리가 맡은 프로젝트 중 일부는 설계부터 모든 걸 인공지능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이 프로젝트 덕분에 요새 아주 설레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조성현 대표의 말이다.
경계없는 작업실은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현재의 건축’을 한다. 선배 건축가들이 터부시한 임대수익률 등의 자료도 빅데이터를 활용해 똑똑히 제시한다. 기술의 도움으로 수익률은 물론 건축적 디자인에 더 집중해 ‘모두를 위한 건축’을 하는 것이 이들의 철학. 오늘날, 건축은 이렇게 발전하고 있다. 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