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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타인을 공격하는 무기인 한편 자신에게 돌아오는 날 선 부메랑이다.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지금은 분노 시대
“나 요즘 병원 다녀.” 어느 날 친구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상사 때문에 생긴 공황장애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꽉 막힌 회의실에서 내게 소리를 지르는데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숨이 막히더라고. 그 후로는 그녀의 걸음걸이, 숨 쉬는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나.” 친구가 받았을 심리적 고통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왔다.
개인의 분노가 일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흉악한 사건으로 번지고 있다. 순간적으로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해 사람을 죽이거나 때리는 ‘욱 범죄’를 매우 특수하고 예외적인 사건으로 국한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 주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고 있다. 욱하는 충동 심리를 억제하지 못하거나 사회적 규범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인관계에서 비롯된 갈등과 분노를 표출해 문제를 일으키는 현대인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스마트폰 메시지의 폭력도 대두된다. ‘죽는다’, ‘열불 나서 진짜…’, ‘너 땜에 돌아버리겠네’ 같은 표현과 이모티콘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다반사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분노 조절 장애를 ‘간헐성 폭발 장애’로 진단하고 치료가 필요한 병으로 본다. 간헐성 폭발 장애 고위험군은 상습적으로 화를 내거나, 반대로 화를 너무 참는 사람들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건 의료 빅데이터에 따르면, 2017년 분노 조절 장애 등을 포함한 습관 또는 충동 장애로 병원을 찾은 사람은 연간 6000여 명이다. 성별로는 남자 환자의 비율이 83%로 압도적으로 높고 연령별로는 20대가 29%, 30대가 20%, 10대가 19%로 청년층이 70% 가까이 차지했다. 사소한 일에도 습관처럼 화를 내는 경향이 있는지 자신과 주변인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분노는 타인을 공격하는 무기인 한편 자신에게 돌아오는 날 선 부메랑이기도 하다.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분노는 이성적 판단을 가능케 하는 전두엽을 정지시켜 억제 능력을 떨어뜨린다. 전두엽 기능이 상실되면 감정 조절을 못해 우울증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이야기. 즉 분노 치료는 뇌를 보호하는 일이며, 나를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음 감기 치료하기
감기에 걸리면 병원 내과를 찾듯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정신과를 가야 한다. 병원에서는 심한 감정 기복이나 충동적 행동을 개선하는 약물을 처방받는 것과 함께 감정 조절 훈련을 할 수 있다. 직접 경험한 이의 간증에 따르면, 초진 때는 낯선 의사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힘들지만 지속적으로 상담을 하다 보면 ‘라포르(의사와 환자 사이의 교감을 뜻하는 의학 용어)’가 형성되어 편해진다고 한다. 병원마다 설계한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분노를 언어로 표현하고 제때 화를 내지 못한 경험을 공유하며 어떤 상황에서 화가 나는지 분석한다고. 문제는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으면 기록이 남는다는 공포가 여전히 만연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2016년 정신질환실태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 4명 중 1명꼴로 평생 한 번 이상 정신 질환을 겪지만, 정신건강 문제로 전문가와 상의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10명 중 1명으로 9.6%에 불과한 지표를 나타냈다. 미국의 경우 2015년 정신 건강 서비스 1년 이용률이 43.1%에 달했다. 진료를 받지 않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낯선 의사 앞에서 자신의 내면을 속 시원히 털어놓는 어려움보다 ‘정신병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맞서는 것이 더 힘겨운 것은 아닐는지. 흥미로운 사실은, 출판사 편집자 출신인 백세희의 우울증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지난해 화제의 도서였다는 점이다. 이는 정신과 치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서울아산병원은 정신과 진료에 대한 오해와 관련해 그 답변을 공식 홈페이지에 올려두었다. “진료 기록은 남지만 병원 의무 기록지 즉 차트에만 남으며, 건강보험 진료를 받을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자료가 남지만 이 기록도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공개나 조회를 법적으로 금지해 열람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대기업이나 국가 기관에서 언제든 해당 자료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형사 문제로 수사받는 상황이나 재판에 따라 공개를 요청받는 경우, 법률에 근거해 요청하는 경우 외에는 자료를 열람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법
마음속 깊은 분노로 힘들어하는 이에게 마음과마음정신과의원 송형석 원장은 최근에 낸 저서 <나라는 이상한 나라>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고 대화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분노는 약점이 찔린 것을 감추고, 상대의 공격을 중단하려는 최후의 수단이다. 걸핏하면 화를 내는 사람은 정상적 대화로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면,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 그 감정에 몰입하는 것을 스스로 방해해야 한다. 자신을 관찰하는 제2의 자아를 끄집어내야 한다. 예를 들면 ‘너 화가 많이 났구나’, ‘흥분하지 마. 지금은 네가 화낼 때가 아니야. 우리 조금만 더 상황을 살펴보자.’ 이렇게 속으로 분명하게 말을 거는 것이다. 평소에도 자신에게 말을 걸고 대화하는 버릇을 키울 필요가 있다.” 뚜렷하게 형태가 있지 않은 마음을 무게나 넓이 등의 크기로 측정해 파악해보는 방법도 제안한다. 내게 발생한 감정 하나를 기준으로 다른 감정의 크기가 더 큰지, 더 작은지 파악하는 것. 감정의 자세한 분화와 수치화는 자신의 마음을 매우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해 여러 상황에서 더 좋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예를 들면, 오늘 어깨를 짓누른 스트레스의 무게를 10kg의 추로 상상해보는 식. 이는 문제의 해답을 구하기보다 상황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시야를 형성한다.
‘마음 주치의’라 불리는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힐리언스 선마을이라는 힐링 센터를 건립해 자연 속 건강 체험과 명상 치료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매주 마음 챙김에 대해 강의하며 화병의 치유책으로 호흡 명상과 걷기 명상을 권한다. 신경 물질에 이상이 생기면 이를 바로잡기 위해 약물치료를 하지만,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산책과 명상을 하면 감정을 조절하는 뇌 신경 물질인 세로토닌 분비가 활발해져 기분을 가라앉히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 열이 오르고 가슴이 묵직하게 얹힌 듯한 느낌일 땐 복식호흡으로 순간적 분노를 제어하라고 제안한다. 복식호흡이 뇌로 가는 혈액을 맑게 해 생각을 가다듬게 하는 것. 코를 통해 숨을 폐 속 깊숙이 들이쉰 다음 3초 정도 멈췄다가 입을 통해 천천히 뱉어내면서 감정의 격한 파도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자신만의 분노 시그널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눈앞이 하얘지거나 손발이 떨리는 등 신체 변화가 일어나면 마음속으로 1부터 10까지 세는 타임아웃을 해보는 것. 숫자를 셀 때는 이성에 관여하는 ‘좌뇌’를 쓰기 때문에 감정에 관여하는 ‘우뇌’의 작용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어 마인드 컨트롤에 도움이 된다. 급격하게 일어난 분노 호르몬은 15초면 사라지기 때문. 분노로 인한 상처는 상대방은 물론 자신까지 해친다. 욱하는 순간의 감정과 자신을 분리할 줄 아는 통제력을 기르자. 가장 소중한 건 ‘나’ 자신이므로. 단 10초면 된다.

 

에디터 박은아(eunahpark@noblesse.com)
사진 김래영   스타일링 최자현
참고 서적 <나라는 이상한 나라>(송형석 지음, RHK 펴냄), <내 주위에는 왜 욱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오카다 다카시 지음, 세종서적 펴냄), <둔하게 삽시다>(이시형 지음, 한국경제신문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