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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작품보다 중요한

LIFESTYLE

같은 그림도 액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지난여름 MoMA PS1에서 개최한 사진가 엘리 페레즈의 전. 뉴욕 MoMA는 작품과 한 몸이 되는 액자를 만드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언젠가 어느 컬렉터의 집을 방문해 다소 생경한 일을 겪었다. 어렵게 손에 넣은 단색화라고 작품을 소개받았는데, 액자가 아주 볼품없었던 것. 유리에 빛이 반사해 어느 지점에서도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고, 그것을 감싼 프레임도 작품을 잡아먹을 듯 붉어 도무지 눈이 가지 않았다. 작품이 3억~4억쯤 한다고 했나? 컬렉터는 뽐내는 듯한 얼굴로 다른 해외 작품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또한 액자가…. 믿기지 않는다고? 실제 일어난 일이다. 우리가 갤러리에서 본 멋진 작품이 일반인의 손에 들어가 그 예술성을 잃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그중 가장 대표적 원인이 이처럼 ‘액자의 선택’ 되시겠다.
사람이 ‘어떤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 평가를 받듯, 작품도 ‘어떤 액자를 사용했느냐’에 따라 작품성이 달라진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도 못생긴 액자에 담으면 결코 근사해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액자 없이 그냥 벽에 거는 게 낫다. 하지만 많은 컬렉터가 이를 거부한다. 이유? 비싼 돈을 들여 샀는데, 혹여 작품이 상하기라도 할까 봐 그렇다. 한데 질문. 갤러리와 작가 입장에선 작품을 팔았으니 뒷일은 그냥 컬렉터가 알아서 할 일 아닌가? 틀린 얘긴 아니다. 하지만 작가 대부분이 자신의 작품이 어디에서든 원형 그대로 보이길 원한다. 만약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입하기 전부터 액자가 포함되어 있다면, 이는 작가가 그 자체를 완성작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서울 청담동 이유진갤러리에서 열린 경현수 작가의 전도 그랬다. 한쪽 벽면에 액자 안에 담긴 작품이 몇 점 걸려 있었다. 평면과 입체를 오가며 기하학적 추상을 표현해온 그는 심플한 블랙 알루미늄 액자에 페인팅 작품을 담았다. 그에게 재미난 얘길 들을 수 있었다. 작품의 완성도 문제로 액자를 씌우기도 했지만, 작품이 팔렸을 때 화방의 못생긴 액자에 들어가는 게 싫어 액자를 따로 제작했다고. 벌써 몇 번이고 컬렉터의 집에서 자신의 작품을 못난이 상태에서 맞닥뜨린 그는 한때 전문적으로 액자를 제작하려는 시도까지 했다. 그는 작품만큼 중요한 게 액자라고 말한다. “액자는 온전히 디자인의 영역이에요. 그래서 순수미술 작가들은 그 부분을 간과하곤 하죠. 작업에 집중하느라 작품이 추후 어떤 액자에 담길지 생각을 못하는 거예요. 액자가 왜 중요한지만 알아도 작품이 더욱 빛날 텐데. 저는 작품과 한 몸으로 보이는 액자를 좋은 액자라고 여깁니다.”

김성윤 작가의 ‘Flowers in a Reine de Dijon jar’와 ‘Clematises in a St. Dalfour jar’. 두 작품은 그림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액자를 작품에 끌어왔다.

사실 경현수 작가는 공정의 복잡함 때문에 결국 자신의 작품과 꼭 맞는 액자를 직접 제작하는 건 포기했다. 하지만 미술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생각보다 많은 거장이 작품만큼 액자에 신경 쓴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로, 살바도르 달리는 ‘머리에 구름을 가득 담고 있는 한 쌍’이란 작품에 맞는 액자를 직접 디자인했다. 또 몬드리안은 ‘구성 B’에서, 드가는 ‘판화 수집가’라는 작품에서, 조르주 쇠라는 ‘포즈를 취한 여인들’에서 각각 직접 디자인한 액자에 작품을 담았다.
디자인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직접 액자를 제작한 작가도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집안은 금세공업을 했는데, 동생이 그의 작품에 맞는 액자를 만들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유디트 1’. 그림과 액자가 일체형인 이 작품은 지금도 큰 사랑을 받는다. 반 고흐의 유명한 ‘과일 정물’도 마찬가지다. 동생 테오를 위해 그린 작품을 위해 고흐는 직접 도면을 그리고 액자를 만들었다. 그가 제작한 다른 액자는 전부 소장자의 무지나 화재로 사라졌지만, 이 작품은 유일하게 액자와 함께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액자의 중요성은 이처럼 거장들의 예를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액자는 그림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보다 중요한 지점에 있다. 하지만 이를 그냥 모른 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한데 어쩌면 이는 미술사적 측면에서 액자의 중요성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액자의 중요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와 관련한 좋은 책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예로, 액자 전문가 W. H. 베일리가 쓴 <그림보다 액자가 좋다(Defining Edges)>가 그렇다. 뉴욕 MoMA에서 세잔과 피카소, 반 고흐의 작품에 끼울 액자를 새로 디자인한 그는 책에서 “액자의 기능 중 가장 의미 있는 건 관람자와 작품 사이의 중재자 역할”이라고 말한다. “중재자로서 액자의 역할은 그림 속으로 관람자를 초대하고, 일단 경계 안으로 빠져들면 쉽게 나가지 못하게 시선을 그림 안에 묶어둘 수 있어야 한다”고. 그 결과? “액자는 관람자의 눈과 마음이 그림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한다”고 그는 말한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1’은 작품과 액자가 일체형이다.

미국 액자 전문가의 설명이 다소 추상적으로 들렸다면, 국내 액자 전문가의 조언도 들어보자. 30여 년째 기업 미술관과 국내 유명 갤러리, 까다로운 작가들을 상대해온 준액자의 김기수 대표는 작품을 끌어안는 좋은 액자 고르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너무 크거나 장식이 과도한 건 그림을 압도해 초라하게 전락시킵니다. 반대로 왜소하고 장식이 지나친 액자도 그림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죠. 크기도 크기지만, 액자에서 가장 중요한 건 톤이에요. 액자는 작품의 톤에 따라 고르되 작품보다 튀지 않아야 합니다. 그림이 어둡다면 검정도 어울리지만, 짙은 갈색이나 색감이 화려한 작품은 주된 색이 뭔지 살피고 그보다 한 톤 짙거나 옅은 색을 선택하는 게 좋죠.”
이렇게 설명해도 잘 모르겠다면, 이미 검증된 액자업체를 찾아가 상담받는 방법도 있다. 서울 서교동의 송이화방은 단색화 1세대 작가 정창섭과 주태석, 서승원 작가의 단골 가게로 원목 액자 제작 기술이 뛰어나고, 서교동의 청호화방은 국제갤러리의 단골, 신사동 가로수길의 대명화방은 예화랑 등이 자주 거래한다. 또 다른 방법으론 해외 유명 미술관이 어떻게 명작을 액자에 넣는지 참고하는 것이다. 뉴욕 MoMA의 경우 작품에 관한 액자 프레임의 간섭과 어울림을 예술로 구현, 이 분야 최고의 실력을 엿볼 수 있다. 작품이 아닌 액자에 관심을 갖는 이는 드물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작품보다 액자에 관해 이야기하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나? 불가능하다. 그간 액자를 단순한 장식 요소로, 작품의 부수적 존재로 여겨왔기 때문. 하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 주변의 작품을 감싸고 있는 액자를 자세히 살펴보자. 또 그것을 장식이 아닌 의미 전달을 위한 매개로 보고 초점을 맞춰보자. 아마 작품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