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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제 반려동물에게 양보하세요

LIFESTYLE

내가 아는 한 시턴은 동물 세계에 관한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꾼이다. 내게 <파브르 곤충기>가 초등학생 시절 잡은 잠자리를 뒷산으로 돌려보내게 한 회개의 책이라면, <시턴 동물기>는 길에서 만난 도둑고양이에게 급식으로 받은 우유를 기부하게 하는 마법 같은 책이었다(물론 그땐 사람이 마시는 우유가 고양이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화가이자 박물학자인 어니스트 톰프슨 시턴은 1899년에 출간한 <내가 만난 야생동물들>을 비롯한 40여 편의 작품을 통해 많은 어린이에게 동물에게도 살 권리가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그 깨달음의 정점에 이르게 한 건 그의 단편소설 ‘샌드 힐의 수사슴’으로, 젊음으로 끓는 피를 이기지 못하고 겨울마다 사슴 사냥에 나서는 ‘얀’의 이야기를 다룬다. 얀은 허구한 날 눈밭을 뒹굴지만 사슴을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슴을 따라잡은 그는 바로 눈앞에서 총을 겨눈다. 하지만 사슴의 맑고 고운 눈망울에 결국 총을 쏘지 못하고 자연의 관대함과 무상함을 배운다는 이야기.
갑자기 오래전 읽은 시턴의 소설을 떠올리다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얀이, 그리고 시턴이 만약 2019년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사슴을 사냥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다 다시 한번 그 눈망울에 매혹돼 무릎을 꿇을까? 아니, 우연히 서울 시내의 어느 산자락 아래 자리한 사슴고깃집을 발견하고 그곳의 별미를 맛보며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까? 물론 두 번째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시턴 동물기>는 분명 이전보다는 덜 읽히지만, 반려동물에 관한 의식은 이전보다 훨씬 더 진화했고 그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 콘텐츠 또한 쏟아지듯 나와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 문학의 고전으로 통하는 <내가 만난 야생동물들>에 담긴 시턴의 삽화.

1 ‘동물권’을 깊이 있게 다룬 <동물들의 인간 심판>.
2 출간한 지 1년이 지나도록 사랑받는 <거실의 사자>.

실제로 지금 출판계에는 실용서부터 인문, 에세이까지 반려동물과 관련한 다양한 책이 출간되고 있다. 2017년 대비 반려동물 관련 도서 판매량이 약 33%나 증가했다는 지난해 교보문고 집계는 이를 방증한다. 과거엔 애완동물을 키우는 방법에 관한 취미나 실용 분야 서적이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반려동물의 건강이나 놀이, 그들이 죽은 뒤 인간이 경험하는 상실감과 우울증에 대처하는 문학작품이 다양해졌다. 특히 동물을 주제로 한 소설과 에세이가 크게 늘었고, 이런 책 대부분은 반려동물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로 최근 출간한 소설집 <무민은 채식주의자>에 실린 위수정 소설가의 ‘검은 개의 희미함’도 그렇다. 이 소설은 동물구조협회에서 일하는 실무자인 ‘나’의 시선을 따라간다. 누군가의 장난 때문에 생사가 갈린 약자, 즉 유기 동물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낸다. 이 책에선 위수정 작가 외에 구병모와 김봄, 정세랑 등 활발히 활동 중인 소설가 16인이 동물의 권리인 ‘동물권’에 대해 말한다. 동물에 대한 우리 안의 야만성과 잔혹성 등 폭력성이 소설의 문법으로 탄생한 셈.
또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는 아동문학가로 유명한 김중미 작가의 책으로 출간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인기 있다. 재개발 때문에 삶이 무너진 아이, 엄마를 잃고 세상이 싫어진 아이에게 고양이가 다가오고 그들을 통해 아이들이 구원받는다는 내용이다. 스페인의 사상가이자 사회분석가 호세 안토니오·에두아르도 하루레기 부자의 <동물들의 인간 심판>도 근래에 자주 언급된다. 동물을 학대하고, 대학살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인간이 재판장에 선다는 내용인데, 현대판 <시턴 동물기>가 따로 없다. 더불어 <거실의 사자>는 제목 대신 고양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진으로 표지를 디자인한 파격적 에세이로 출간한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출판사 마티의 오새날 디자이너는 이 책의 표지 디자인에 대해 “호기심을 자아내는 사진을 전면에 사용해 기존 고양이 관련 책과는 다른 시각을 제공 할 것으로 봤다”고 답했는데, 이는 현재 반려동물을 주제로 한 출판 시장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고 대담한지 보여준다.

소설 <베일리 어게인>은 2017년 영화로 제작돼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그런가 하면 소설을 벗어나 반려동물 최초의 전문 문예지도 등장했다. 동물을 사랑하는 소설가 박섭이 창간한 < petz >. 이제까지 반려동물 관련 신문이나 매체가 소비재 광고나 건강, 의료 등 정보에 중점을 뒀다면 이 잡지는 반려동물을 중심으로 그들과 함께 살면서 느낀 기쁨과 슬픔, 감정과 추억, 사연 등을 녹여냈다. 물론 이런 출판계의 반려동물 트렌드는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지난겨울 개봉한 <베일리 어게인>은 <길버트 그레이프>의 명감독 라세 할스트롬이 제작한 영화로 ‘환생하는 반려견’을 다루는데, 동명의 원작 소설이 미국에서 52주 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또 여기에 따로 적진 않지만, 미국처럼 반려동물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유럽이나 일본에선 이런 시류가 이미 몇 해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독서를 하지 않는 이 시대에 반려동물 콘텐츠가 출판계로 몰리는 이유’. 13년 동안 동물 책을 전문으로 출간해온 책공장더불어 김보경 대표는 “반려동물과 사는 사람이 늘고, 반려동물과 사는 작가가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답한다. 그녀는 “자연스레 자신의 반려동물과 사는 모습을 기록한 에세이부터 그림책, 소설, 르포 등으로 분야가 확장되는 건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는 의미고, 그런 과정을 거쳐 인간과 동물의 관계 맺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성찰하기 때문”이라고 지금의 현상을 진단했다. 또 “굳이 반려동물과 살지 않더라도 자본주의사회에서 동물은 최약자로, 여러 목적으로 인간의 폭력에 노출돼 있으니, 펜을 쥔 작가들이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반려동물은 이미 인간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또 대중이 그와 관련한 책을 찾는 이유가 ‘나의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살려는 이유’라면 답은 지금 서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고양이와 강아지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다룬 실용서가 대부분이던 서가엔 이제 그들과 관련한 소설과 철학 그리고 미술책이 등장하고, 곧 그들의 생로병사를 다룬 책 또한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지금 우리 앞에 등장한 반려동물 관련 작품은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나보다 약한 존재인 ‘타자’의 개념까지 다루기에, 언어의 힘을 빌려 감정의 층위를 건드리는 ‘문학’의 본질과도 맞아떨어진다. 앞으로 반려동물과 관련한 작품은 어디까지 진화할까? <시턴 동물기>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명작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