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한 용이 꿈틀댈 때
지난 1월 국제 미술계의 이목을 모은 제1회 ‘타이베이 당다이 2019’의 현지 분위기를 전한다.

난강 전람회장에서 열린 제1회 ‘타이베이 당다이 2019’는 ‘아트 홍콩’을 시작한 매그너스 렌프루가 만든 아트 페어다.
타이베이를 슬쩍 보면 낡고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오래된 건물에는 작은 상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서울보다 혼잡스럽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물은 관리가 잘되어 있고, 거리는 매우 깨끗하며, 수많은 스쿠터가 얼마나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는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내진 규정이 강화되면서 오래된 건물의 재건축 비용이 천정부지로 뛴 까닭에 대만인은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기보다 내실을 다지는 데 더 많은 돈과 신경을 쓴다.
아트 홍콩(Art HK)에서 시작해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으로 변모한 아트 페어를 성공적으로 이끈 매그너스 렌프루(Magnus Renfrew)가 야심차게 준비한 제1회 ‘타이베이 당다이 2019(Taipei Dangdai 2019)’는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속이 옹골찬 이런 대만의 면모를 띠고 있었다. 페어는 시내의 타이베이 세계무역센터(Taipei 101) 대신 도심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난강 전람회장(Nangang Exhibition Hall)에서 열렸다. 다행히 길이 많이 막히지 않고 교통이 편리해 페어를 오가는 데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교통대란을 겪어야 하는 홍콩과 달리, 줄지어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를 보며 페어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은 “홍콩에서는 맛보기 힘든 호사”라며 좋아했다. 행사장 내부 부스 배치도 여유롭고 한적했다. 아트 컬렉터층이 꽤 두꺼운 대만에서 열리는 세계적 규모의 페어인 데다, 가까운 중화권 컬렉터가 대거 참여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편안한 느낌을 추구한 듯했다.

타이베이 당다이 2019의 행사 전경.
행사장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주치게 되는 나무 설치 작품은 존 유이(John Yuyi)의 ‘I Tree to Call You’다. 대만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그녀는 스티커 문신을 이용한 작업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작가다. 자연 생태계와 미술과의 조우를 모색한 타이베이 비엔날레를 막 보고 온 이후였고, 비교적 온난한 기후의 타이베이에서 우거진 녹음을 만끽한 끝에 만난 작품이라 왠지 지역성을 반영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최근 들어 국제 아트 페어에서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대형 설치 작품 전시를, 타이베이 당다이에서는 과감하게 존 유이같이 비교적 젊은 작가의 작품을 주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많은 갤러리에서 아트 바젤 홍콩과는 다른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며 차별화를 꾀했다.
오랜 시간 페어를 준비하며 매그너스 렌프루는 엄정한 심사를 거친 갤러리 90곳이 참여한다고 공언해왔다. 실제로 가고시안, 데이비드 즈워너, 페이스, 리손 등 유명 대형 갤러리가 참여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아라리오갤러리, 갤러리현대, 학고재, 조현화랑, 원앤제이 등 내로라하는 갤러리가 좋은 작품을 들고 타이베이를 찾았다. 중화권의 펄램, 탕 컨템퍼러리, 한아트 TZ는 물론 다카이시를 비롯한 일본 갤러리도 널찍한 부스에서 흥미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아트 페어 성격상 상업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탓에 아트 페어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젊은 작가들의 신선하고 실험적인 작품이 많은 것은 분명 화려한 아트 바젤 홍콩에서는 느끼기 힘든 재미였다.
한쪽 코너에 ‘Solos’라는 섹션을 마련해 한 작가의 작품만 집중적으로 들고 온 갤러리들을 포진시킨 점도 독특했다. 동선상 수많은 부스를 둘러본 후 마지막으로 도착하게 되는 곳이어서 몸은 녹초 상태였지만 여러 작가의 개인전을 만나는 새로운 기분으로 부스를 둘러보게 된 점은 관람객 입장에서 매우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다(사려 깊게도 ‘Solos’ 섹션 가장 안쪽에는 샴페인 바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많은 갤러리에서 아트 바젤 홍콩과는 다른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며 차별화를 꾀했다.
타이베이 당다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이미 이름에서 ‘당대(當代)’를 내세운 것이 무색하지 않도록 훌륭한 컨템퍼러리 작품을 가져온 갤러리들의 노력이었다. 부스에서 만난 한 유명 갤러리의 디렉터는 “홍콩 아트 페어에 처음 참가하면서 어떤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을지 판단이 서지 않아 최고의 작품 대신 무난한 작품을 들고 오는 실수를 범했다. 결국 홍콩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면서 “처음 참가하는 타이베이 당다이에서는 멋진 모습으로 시작하기 위해 갤러리가 보유한 최고의 작품들을 들고 왔다”고 했다. 이 외에도 참가한 많은 갤러리가 여타 페어에서 흔히 선보인 작품이 아닌, 작품성이 훌륭한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물론 VIP 프리뷰에서 작품이 완판되기도 하는 아트 바젤 홍콩과 달리 많은 갤러리가 수익성 면에서는 약간 미진한 부분이 있었으나,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하고 자신들과 자신들이 믿고 소개하는 작가와 작품을 더 많은 이의 뇌리에 각인시켰다는 점에서는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지금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대만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소개할 수 있게 된 대만 갤러리들은 타이베이 당다이와 갤러리 전시를 연계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타이베이의 수많은 미술 문화 공간 또한 VIP 프로그램 운영에 적극 동참하면서 대만의 미술이 지닌 매력을 맘껏 발산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과거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홍콩, 싱가포르, 대만과 우리나라였다. 요란하게 날아오르는 홍콩과 싱가포르에 비해 다소 얌전하던 대만도 이제 세계적 아트 페어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대미술계에서 절대 실력이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도 세계적 수준의 아트 페어를 키울 방법을 다시금 고민할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글 이지현(OCI미술관 관장) 사진 제공 타이베이 당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