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로서의 소리
판소리와 창극이 어렵다고? 창극 <심청가>를 연출한 손진책은 “소리가 가진 정서로서 헤아려보라”고 말한다.

연극 연출가 손진책은 45년간 수백 편의 연극과 창극을 연출했다. 우리 고유의 연극 기호를 활용해 전통과 현대연극을 넘나들었고, ‘마당놀이’를 창조해 공연계의 새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지난해에는 국립창극단과 함께 창극 <심청가>를 무대에 올렸다. 30년 넘게 <심청가>의 판소리 사설을 연구해온 그가 판소리 본연의 ‘소리’에 집중해 제작한 완전히 새로운 창극이다. 지난해 큰 흥행으로 창극의 새 가능성을 모색하게 한 <심청가>가 오는 6월 5일부터 16일까지 다시 한번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 인터뷰는 국내 거장 연출가의 ‘판소리 예찬’이자 ‘선조에게 물려받은 연극 유산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무대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이기도 하다.
형식적인 질문이지만,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말씀해주세요. 즐겁게 지냅니다. 공연도 보고, 놀기도 하고. 아마 이 인터뷰가 책으로 나올 때쯤이면 영국으로 잠시 여행을 다녀온 후일 것 같아요.
1년 만에 <심청가>가 재공연합니다. 지난해의 흥행으로 올해도 기대하는 이가 많아요. 한편으론 크게 달라진 게 없을 거라는 우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크게 달라진 건 없죠. 같은 사람이 연출하니까요.(웃음) 하지만 ‘이것이 창극이다’라고 하는 이상적인 생각은 여전히 들어 있다고 봐요.
선생님의 이상적인 창극이란, 이번에도 ‘소리’가 중심인 극을 뜻하나요? 소리의 멋과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극이죠. 제 나름대로 창극에 애정과 책임감이 있고, 평소 생각해온 ‘틀’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잘 정리해 대본을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난해보다 조금 더 발효하고 숙성시켰어요.
판소리의 본질인 ‘소리’에 집중했다고 하시니 이런 생각도 듭니다. 지난 몇 년, 현대화 그리고 대중화한 창극으로 관객에게 사랑받은 국립창극단의 기조와는 또 다른 결이겠구나 하는. 창극이 공연 예술의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들어오게 하는 데는 국립창극단의 김성녀 전 예술감독 역할이 컸다고 봐요. 그간 창극은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오히려 전 전통성이 있는 공연을 보여주려는 거예요. 우리 창극의 역사는 100년 남짓 되었습니다. 결코 완성된 장르가 아니에요. 계속 나아가고 있죠. 그래서 완성을 모색해야 하는 장르라고 하는 것이 맞아요.
그런가 하면 창극 <심청가>를 소개하며 ‘뺄셈의 미학’이란 말도 여러 번 하셨습니다. ‘소리의 본질’로 승부하기 때문에 한 얘기죠. 그래서 무대도 심플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로지 공연을 소리로 보고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죠. 연기도 꼭 필요한 것만 시켰고, 부족한 게 있으면 관객이 상상으로 보완하게 하려고요. 창극 <심청가>엔 아름다운 대목이 많습니다. 연출적으로도 요란하지 않고, 판소리의 멋과 맛을 살리는 부분이 있죠.
꼭 판소리를 사랑하게 하는 것이 연출의 포인트라고 말씀 하시는 것 같아요. 네, 맞습니다.
각색도 직접 하신 것으로 압니다.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판소리 원본에서 이음새 대사만 정리하는 수준에서 끝냈어요. 무대에 서는 안숙선 명창과 함께 5시간이 넘는 원작을 핵심 내용만 압축해 2시간여 분량으로 구성했죠. 원작의 맛을, 특히 소리의 맛을 전해주는 눈대목(판소리 중 가장 중요한 대목)은 가능한 한 살렸고, 불필요하다 싶은 건 과감히 쳐냈어요. 판소리에서도 더늠(판소리 명창이 각자의 개성을 발휘해 소리를 바꾸거나 새로 짜서 추가하는 대목)이 있잖아요. 좋은 더늠은 다 살리는 방향으로 대본을 고쳤습니다.

판소리 본연의 소리에 집중해 제작한 창극 <심청가>.
<심청가> 중 특별히 좋아하는 부분이 있나요? ‘범피중류’예요. 심청이를 태운 배가 망망대해로 나아가며 해안의 절경이 펼쳐지는 내용입니다. 인당수에 빠지기 전에요. 보통은 이 대목을 한두 소절만 하고 넘겨요. 하지만 전 이 부분을 10분 넘게 살렸어요.
언젠가 창극 <심청가>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우리식 공연’이란 단어를 쓰며 “중국에 경극, 일본에 가부키가 있다면 한국엔 판소리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한국엔 판소리와 가면극, 인형극 등의 민속극이 있어요. 이 중 가장 예술성이 높고 호소력 짙은 것이 판소리예요. 국제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극이죠. 사람들은 판소리와 창극을 구분하기 어려워하는데, 판소리가 ‘현대 무대’에 오르면 ‘창극’이 되는 거예요. 초창기엔 우리도 서구 리얼리즘 액자 무대(오늘날 일반 극장에서 채택하는 무대 형식)에서 대사 대신 판소리를 넣는 창극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이게 제대로 됐을까요? 갓 쓰고 자전거 타는 거나 다름없었죠. 그래서 점점 우리 고유한 연극 기호를 활용해야 한다고 얘기하기 시작한 거예요. 저는 우리의 연극 기호를 통해 판소리를 현대 무대 예술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동양의 연극은 서양처럼 대화를 통해 판타지를 주는 게 아니라, ‘약속’을 통해 상상력을 갖게 하고 이해하게 하죠. 그런 기능을 살리는 방법이 뭘까 하는 것이 제 창극의 가장 큰 고민이에요. 창극 <심청가>에도 그런 고민의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심청가>의 중심 주제는 ‘효’입니다. 이는 지금도 중요한 가치지만, 누군가는 눈먼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심청이를 공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음, <심청가>가 다루는 ‘효’는 복합적이에요. 전통적이면서도 유교적이고, 불교적인 모습도 있죠. 어떤 면에선 심청이가 무지막지하게 효를 실현하는 걸 두고 “이런 게 효야?” 하는 역설적인 시대의 반항으로 비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 작품에서 ‘효’는 아버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희생을 통한 구원의 의미가 더 커요.
솔직히 판소리를 잘 알진 못하지만, 종종 국악 방송을 들으며 흥미롭다고 느낀 적은 많습니다. 이전엔 판소리를 그저 기존 음악과는 결이 다른 ‘초현대적인 것’이라고 여겼는데, 그 또한 자세히 들으니 들리더라고요. 서사와 얼 같은 게 느껴졌어요. 판소리의 사설(판소리의 대본)이 어렵다고 하는데, 그럴 땐 소리가 가진 정서로서도 충분히 그것을 헤아릴 수 있어요. 판소리 자체가 지닌, 가슴을 ‘터치’하는 뭔가가 있죠.
하지만 한국 사람도 이렇게 노력해야 겨우 정서를 느끼는 수준인데, 외국인 관객에게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도 않아요. 언젠가 유럽에서 심청을 소재로 한 작품을 공연한 적이 있어요. 아니리(판소리 사설에서 음률과 장단 없이 일상적 어조로 말하는 부분)를 다소 리듬감 있게 변주해 공연했죠.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아세요? 연극학자들이 줄거리를 보지 않았는데도 소리로 이야기가 전달되었다며 연기론을 다시 써야겠다고 칭찬하더군요.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해서 그렇지, 판소리와 창극은 미학과 힘이 있는 장르예요.
판소리와 창극이 익숙지 않은 이들이 창극 <심청가>를 보러 온다고 할 때 가장 주목해야 할 것, 아니 ‘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사실 그런 관객이야말로 어떤 선입견도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어요. <심청가>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잖아요. 이것이 판소리를 통해 어떻게 감동을 전달하느냐, 캐릭터의 상황을 어떻게 설득시키느냐, 극에서 소리가 어느 정도 힘을 갖느냐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죠.
오랫동안 연극과 창극 등 다양한 공연을 연출하셨습니다. 1981년엔 ‘마당놀이’를 창작해 수십 년간 이어오기도 하셨죠. 지난 45년간 연출가로 활동할 수 있게 한 원동력과 정신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 연출의 평생 화두는 ‘전통 연극의 현대화’예요. 분명 나이를 먹으며 그것을 보는 시각과 깊이가 달라지는 지점도 있었겠죠. 하지만 이 작업은 일관되게 해 왔어요. 물론 누군가는 “전통은 전통으로 두라”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전통을 계승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통을 창조적으로 파괴해 새로운 전통을 만들죠. 전통을 계승하는 건 인간문화재분들이 하면 됩니다. 제 연극의 기본 정신은 ‘마당 정신’이에요. 흔히 마당은 멍석 펴고 북 치고 장구 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생각하는 마당은 두 발을 디딘 ‘여기’를 말해요. 공간적으론 ‘여기’, 시간적으론 ‘지금’, 정신적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죠. 즉 ‘지금 여기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 마당 정신이에요. 그게 제 연극의 기본 정신입니다. 이를 통해 서구적 관점이 아닌, 우리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 즉 ‘우리가 선조에게 물려받은 연극 유산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무대화할 것인가’와 집합시키고 조화시키는 것이 제 작품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