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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xt Generation of Sisley

BEAUTY

몇 년 전 시슬리 창업자 위베르 백작이 타계했음에도 시슬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도르나노 가문이 이끄는 이 브랜드는 ‘최고 품질’이라는, 위베르 백작의 굳건한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 한결같은 철학 속에 현재 필립 회장과 함께 시슬리를 이끄는 크리스틴 부회장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브랜드 전면에 나서려 한다. 서울을 방문한 그녀에게 그에 관한 행보를 물었다.

시슬리라는 가족 경영
“시슬리는 제품의 품질과 효과 덕분에 성장했다. 시슬리를 한 번이라도 써본 사람은 즉시 시슬리의 고객이 되었다. 예쁜 포장은 그다음 문제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시슬리 창업자 위베르 도르나노(Hubert d’Ornano) 백작의 자서전 <무한한 아름다움>에 나오는 말이다. 브랜드를 소개할 때 ‘최고 품질’ 같은 수식은 진부할 정도로 흔하고 당연시되는 말이지만, 그것이 시슬리에 대한 이야기일 때는 그 진정성의 깊이가 달라진다. 어떤 제품을 만들 때의 의도와 목적이 매출과 화제성이 아닌 퀄리티일 때 그 제품은 세대를 넘어 사랑받을 자격을 갖췄기에. 일찍이 스킨케어 브랜드를 창립한 아버지 때부터 화장품 세계를 들여다본 위베르 전 회장에겐 최고 퀄리티 외에 화장품을 만들고자 하는 다른 이유가 없었을지 모른다. 사업가의 피를 물려받아 50세에 시슬리를 탄생시킨 위베르 도르나노, 그리고 아내 이자벨 도르나노(Isabelle d’Ornano)에게 시슬리는 여섯 번째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2015년 위베르 백작이 세상을 떠난 뒤 지금은 그들의 다섯 자녀 중 두 자녀가 시슬리를 이끌고 있다. 첫째 아들 필립 도르나노(Phillippe d’Ornano) 시슬리 현 회장과 막내딸 크리스틴 도르나노(Christine d’Ornano) 부회장이다. 재작년 파리 8구에 문을 연 메종 시슬리를 취재하기 위해 파리를 방문했을 때 이자벨 도르나노의 아파트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마담 도르나노의 취향과 시간이 켜켜이 쌓인 자택에서 담소를 나누는데, 때마침 필립 회장이 어머니를 보러 왔다가 먼저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 시슬리 회장이라기보다는 마담 도르나노의 큰아들로서 편안한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날이 그와의 첫 만남은 아니었다. 필립 회장은 브랜드의 대표 얼굴인 만큼 국내에서 시슬리 프레스 행사가 있을 때마다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에디터 입장에서 크리스틴 도르나노는 쉽게 대면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시슬리라는 브랜드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도르나노 가문의 구성원이지만, 오빠 필립에 비해 앞에 나선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 그런 그녀가 지난 4월 초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과 함께 에디터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그동안 시슬리 영국 지사 운영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필립 회장과 함께 시슬리 본사 운영을 책임지며 서서히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필립 회장과 그녀는 형식상 타이틀이 다르지만, 동업자이자 파트너로서 앞으로 시슬리를 책임질 예정이다. 시슬리를 이끌 다음 세대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1 현재 시슬리를 이끌고 있는 도르나노 가족. (왼쪽부터) 손녀 다리아, 이자벨 백작 부인, 크리스틴 부회장, 필립 회장.
2 이자벨 여사와 크리스틴 모녀는 시슬리의 창의성 부분에 특히 많이 관여하고 있다.

시슬리의 다음 세대
위베르 백작의 자서전을 보면, 크리스틴은 예전부터 시슬리가 세계 무대에 진출하는 데 눈에 띄게 큰 활약을 했다. 그녀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백화점 바이어로 경력을 쌓은 뒤 시슬리에 합류했다. 이후 멕시코 시장에 시슬리를 성공적으로 진출시켰고, 이는 추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남미 전역으로 시슬리를 확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1999년에는 유럽으로 돌아와 영국과 아일랜드에 지사를 설립했으며, 최근까지도 영국 지사를 이끌었다. 시장을 내다볼 줄 아는 사업 수완과 더불어 비주얼을 보는 안목까지 갖춰 시슬리의 크리에이티브 부분에 많은 관여를 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시슬리를 보며 감각적 비주얼과 감성이 더 풍부해졌음을 느꼈다면, 크리스틴의 터치 덕분이라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시슬리에는 중요한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이자벨의 손녀이자 크리스틴의 조카, 다리아 도르나노다. 2세대를 넘어 3세대로 나아가는 시슬리의 현재를 볼 수 있게 하는 인물로,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와 관련한 모든 부분에 관여한다. 여전히 브랜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이자벨 여사와 크리스틴, 다리아까지 취향과 감각이 뛰어난 도르나노 가문의 여성들을 보면 시슬리에 또 다른 기대감이 생긴다. 물론 시슬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품질과 효과 그리고 한결같은 신뢰와 함께.

크리스틴을 만나다
지난 4월 9일, 신사동에 자리한 시슬리코리아 본사에서 크리스틴 도르나노 부회장을 만났다. 한국 시장을 살펴보기 위해 방한한 그녀는 에디터를 보자 인사를 건넸다. 세계적 브랜드를 이끄는 수장답게 그녀에게선 카리스마와 단호함, 에너지가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친 뒤 곧바로 공항에 가야 하는 바쁜 일정임에도 그녀에게선 어머니(이자벨)의 우아함과 제품력을 강조하던 아버지(위베르)의 가치관이 오롯이 느껴졌다.

한국에서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다. 이번 방한 목적은 무엇인가? 만나서 반갑다. 한국은 언제나 흥미로운 나라다. 요즘 한국인들은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지, 한국시장의 상황은 어떤지 두루 살펴보기 위해 방문했다.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아 다섯 남매 중 큰오빠 필립과 함께 시슬리를 이끌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가업을 이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나?어린 시절 온 가족이 둘러앉은 식탁의 주제는 늘 화장품이었다. 내가 태어날 무렵 창업해 시슬리와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가업을 잇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전공 역시 문학이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바로 시슬리에 합류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버지가 우리를 회사에 영입하려는 듯 조용히 설득하셨다. 그 과정이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회사에서 일하게 된 것을 행운이라 생각하고,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본인이 싫으면 거절하기 마련이다. 아버지가 워낙 설득의 달인이셨다.(웃음) 그럼에도 이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합류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은 늘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데 거리낄 게 없었다.

가족 경영의 이점이 있다면?‘몇 년 안에 비즈니스를 몇 프로 이상 성장시켜야 한다’거나 ‘매년 신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없다는 점. 주주 눈치를 보며 어떻게든 빨리 제품을 만들 필요도 없다. 최고 제품을 만들고, 시간이 지난 뒤에도 최상의 퀄리티를 지닌 제품을 만드는 데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이유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출시한 제품을 사람들이 다시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아버지가 세워놓은 기준으로 일한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이 기준이 일종의 압박이라면, 매우 좋은 압박 속에서 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고 품질’은 시슬리 제품을 한 번이라도 사용해본 이에게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은 품질 외에도 다른 부분까지 생각해야 하는 시대다.품질을 우선으로 하면서도 우리는 늘 시대의 변화를 읽는다. 뷰티 컨설턴트를 통해 듣는 고객의 리포트를 살피고,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것처럼 나라별 시장의 요구와 수요를 파악하려 한다. 연구소 역시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에 몰입하고 있다. 탁월한 제품을 만들며 ‘이 시대의’ 니즈에 탁월한 제품인지 늘 생각한다.

한국 시장도 시슬리의 제품 개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물론이다. 한국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한국인은 무엇보다 제품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다소 가격이 비싼데도 시슬리 제품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최고 활성 성분, 최고 포뮬러를 만들 때 한국 고객의 기대는 언제나 좋은 기준이 된다. 또 알다시피 한국 여성의 스킨케어 습관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여러 단계의 레이어링 습관은 분명 포뮬러와 레이어링했을 때의 흡수력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한국 여성의 뷰티 습관은 이제 시슬리를 사용하는 전 세계인의 뷰티 루틴이 되지 않았을까.

오빠이자 현재 시슬리 회장인 필립 도르나노와는 어떻게 경영을 분담하고 있나?비즈니스에는 최종적으로 의사 결정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필립 회장은 그 부분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한 부분은 어머니와 내가 더 많이 관여한다. 우리 가족 각자가 지닌 장점이 시너지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이자벨 도르나노 여사가 심어놓은 시슬리의 감성이 당신에게도 있는가? 시슬리의 감성이란 무엇인가? 시슬리의 한 부분에 예술이 존재한다. 어머니의 아파트와 메종 시슬리에 가보면 알 것이다. 그 공간은 엄청난 창의성과 패턴, 텍스처, 과감함이 공존한다. 그것이 어머니의 취향이고, 내게도 일부 스며 있다. 시슬리 제품 중 특히 메이크업 제품과 향수를 보면 그런 감성이 자연스레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저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제품을 만들려 한다. 그것만으로 우리의 예술적 아이덴티티가 자동으로 제품에 스며든다고 생각한다.

시슬리의 크리에이티브 부분은 이자벨 여사와 크리스틴 그리고 조카인 다리아까지, 도르나노 가문의 여성들이 전담하는 듯하다. 도르나노 가문의 여성들은 어떤 사람들인가?가족 경영에서 여성들이 두드러지긴 한다. 아버지 역시 매우 창의적인 분이었기에 살아계실 때 어머니와 함께 크리에이티브한 부분에 관여하셨다. 지금은 어머니와 나, 다리아까지 크리에이티브 부분에서 여성의 역할이 많아졌다. 독창성에서는 어머니만 한 분이 없고, 나와 다리아 역시 세대가 다르기에 각 세대의 니즈를 파악하기에 유리하다. 상호 보완할 수 있어 감사한 일이다. 의사 결정을 할 때는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아버지가 세운 브랜드 철학과 기준을 먼저 생각한다. 내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확실한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과감함이다.

어머니는 예전 인터뷰에서 ‘잘 늙은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고 하셨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어머니의 말에 동의한다. 어머니 연세가 여든둘인데, 아직도 사람들이 어머니를 한 번 더 돌아본다. 어머니에게 빛이 흐르기 때문이 아닐까. ‘잘 늙는 것’? 우리 어머니가 대표적인 분일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시슬리의 감성이 풍부해진 것을 느낀다. 하지만 시슬리를 선택하는 이유는 여전히 제품력이긴 하다.시슬리 제품력에 대해 간증에 가까운 칭찬을 들을 때면 언제나 기분 좋다. 10대 딸들도 여드름으로 고민하는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시슬리 제품을 전해주곤 한다. 안티에이징에도 탁월하지만, 여드름 등 트러블 피부에도 시슬리의 많은 제품이 효과를 발휘한다. 최고 활성 성분과 포뮬러 덕분이다.

작년에는 헤어리추얼 by 시슬리를 런칭했고, 올 상반기엔 블루 라이트와 공해에 대응하는 시슬리 유스 안티 폴루션을 선보였다. 요란하지 않지만 꾸준한 발전은 시슬리의 내일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앞으로 행보를 간단히 말해준다면? 헤어 리추얼 by 시슬리는 두피도 다른 부위의 피부만큼 노화의 영향을 받는 것을 확인한 뒤 개발했다. 블루 라이트에 대한 연구도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 선보일 제품을 미리 공개할 순 없지만, 새로운 메이크업 제품을 비롯해 흥미로운 제품을 기대해도 좋다.

4 파리 8구에 자리한 메종 시슬리 정문.
5 이자벨 여사의 감성으로 큐레이션한 메종 시슬리 내부 전경.

시슬리의 시간을 채운 베스트 아이템
1976년 위베르 도르나노가 아내 이자벨과 함께 시작한 이후 시슬리의 시간을 채운 건 고품질 제품이다. 단순히 ‘고급스러운’ 패키지와 포뮬러가 아니라 ‘신뢰가 가고’, ‘정말 효과가 있는’ 제품. 시슬리 하우스의 대표 제품 스토리를 정리했다.

6 에뮐씨옹 에꼴로지끄
1980년 출시 이래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랑받은 시슬리의 대표 제품. 지금처럼 공해나 오염 물질에 의한 피부 손상을 생각하지 않던 시절, 이를 일찌감치 간파한 시슬리는 외부 유해 환경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이 에멀션을 탄생시켰다. 에멀션이지만 에센스 같은 효과로 ‘에센스 로션’이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하다. 지난해 아티스트 엘즈비에타 라지비우의 일러스트를 담아 선보인 2018년 에디션은 크리스틴의 진두지휘 아래 이루어진 프로젝트다.

7 올데이 올이어
시슬리라는 브랜드를 세세하게 알지 못하는 이에게도 에뮐씨옹 에꼴로지끄만큼 잘 알려진 제품. 덧바르지 않아도 8시간 자외선 차단 효과를 발휘하며, 도심 속 유해 환경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패키지는 지극히 시슬리다운 디자인으로, 제품의 신뢰를 더하는 요소다.

8 시슬리유스 안티 폴루션
시슬리의 2019년 신제품. 실내의 정체된 공기와 외부 공해 물질, 블루 라이트 같은 디지털 공해까지, 모든 형태의 유해 환경에 종합적으로 대응하는 제품. 블루 라이트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피부 노화가 가속화한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블루라이트로부터 발생하는 프리래디컬의 공격에 맞설 수 있도록 피부를 지켜준다.

9 시슬리아 랭테그랄 앙티 아쥬
1999년 시슬리는 10년의 긴 연구 끝에 안티에 이징 기능의 시슬리아 라인을 런칭했다. 25만원 상당의, 당시엔 엄청 고가였음에도 이 크림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수백만 개가 팔렸다. 그로부터 17년 후인 2016년 업그레이드해 선보인 지금의 제품은 더욱 탁월한 효과로 과연 시슬리임을 증명하고 있다.

10 오 뒤 스와르 오 드 빠르퓸
유럽에서 여러 해 동안 ‘가장 우수한 여성’으로 선정된 이자벨 도르나노 백작 부인이 자신만을 위해 만든 향기. 그녀의 향기에 많은 사람이 매료되어 세상에 나오게 된 향수다. 스페인 세비야의 한 정원에서 영감을 얻은 향으로 우아하고 귀족적인 느낌을 발산한다. 용기 뚜껑은 폴란드 조각가 브로니슬라프 크시슈토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브로니슬라프는 메종 시슬리의 인테리어에도 참여했다.

11 르 휘또 루즈
우아한 컬러와 롱래스팅 수분 포뮬러, 부드러운 텍스처로 사랑받는 립스틱. 지브라 무늬는 이자벨 여사가 좋아하는 패턴 중 하나로 메종 시슬리의 인테리어에도 반영했다. 앞으로 시슬리는 이자벨 여사에서 크리스틴과 다리아로 이어지는 다음 세대를 통해 이 같은 감성 부분에도 무게를 실을 예정이다.

12 수프리미아 보므
시슬리의 최고가 라인임에도 확실한 효과로 안티에이징 분야의 슈퍼스타가 된 제품. 낮 동안 발생한 피부 손상을 케어하는 나이트 크림으로, 1999년 처음 선보인 수프리미아 앳 나이트보다 무너진 피부 재건에 효과적이다. 특히 건성 피부 타입에 적합하다.

 

에디터 이혜진(hjlee@noblesse.com)
사진 제공 시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