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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왕국 국왕 오신 날

LIFESTYLE

3월 25일 벨기에왕국 국왕 내외가 한국가구박물관을 찾았다. 3박 4일의 방한 기간 중 첫 공식 일정. 조선 후기의 전통 가옥을 재현한 그곳에서 한국의 역사와 주거 문화를 체험했다. 감동과 감격이 교차하며 따뜻하고 친근하면서도 품격 있는 집들이 같은 시간 속에 <노블레스>가 함께했다.

벨기에 국왕 필리프 레오폴드루이 마리(오른쪽)와 마틸드 왕비.

“국빈 도착하셨습니다.” 한국가구박물관의 묵직한 나무 문이 열리고 벨기에왕국 국왕 내외가 정중한 환대를 받으며 궁채로 들어섰다. 벨기에왕국 제7대 국왕 필리프 레오폴드 루이 마리(Philippe of Belgium)와 마틸드 벨기에왕국 왕비(Queen Mathilde of Belgium). 연한 분홍빛 넥타이를 맨 국왕과 동양의 산수화가 연상되는 패턴을 수놓은 파스텔 톤 하늘색 코트를 입은 왕비는 이국에서 온 봄의 전령처럼 화사한 모습이었다. 낯선 문화를 맞는 설렘이 내비쳤지만, 이들의 발걸음은 차분하고 침착했다. 연신 미소 짓는 표정에서 왕족 특유의 기품과 여유가 느껴졌다.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긴 불로문을 지나 사대부집 중정에 놓인 실로암 연못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궁채의 지하 층에 자리한, 한국가구박물관의 하이라이트라고 할수 있는 상설 가구 전시장도 빠짐없이 둘러보았다. 신발을 벗고 사대부집 안채 누마루에 앉아 창문으로 보이는 성벽 너머 풍경을 감상하기도 했다. 이어 산수유와 신비디움, 동양과 서양의 노란 봄꽃이 한데 너울거리는 긴 탁자에 앉아 한국의 전통 후식 문화를 경험했다. “It’s Exquisite!(정말 아름다워요!)” 마틸드 왕비가 연신 감탄했다. 한국가구박물관이 보유한 우리네 조선 왕조 시대 유물은 그들에겐 생경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필리프 국왕은 한옥의 재료와 유지.보수방법을 물었고, 전통 가구에 사용한 목재의 수종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미닫이와 여닫이를 한데 접목한 휘가시나무 농과 구조 확장이 가능한 모듈 컨셉의 책합을 보고는 시대를 앞서간 기능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국 전통 가구의 주재료는 소나무, 오동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먹감나무, 은행나무 등 매우 다양하다. 특히 오동나무는 딸을 낳으면 아버지가 심는 ‘혼수목’이었다는 대목에선 두 사람 모두 흥미를 보였다. 실제 엘리자베스와 엘리노어 두 공주를 키우는 부모(에마뉘엘과 가브리엘 왕자까지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이기 때문이리라. 사대부 안채 누마루에서 보낸 시간은 한옥 건축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자리였다. 서양의 건축 문화가 자연을 극복하는 방식인 데 반해 자연을 빌린다는 개념은 말로는 다소 어렵지만 직접 눈으로 보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방 안 가운데를 비우고 가구를 낮게 배치하는 이유가 앉아서 밖을 내다봐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 한국가구박물관에서는 특별히 일월오봉도 병풍을 준비해 국빈을 향한 경외심을 표했다. 한자어 그대로 달과 해 앞 다섯 봉우리를 그린 그림으로 조선시대 편전의 어좌 뒤, 사후에는 빈전에 걸었던 왕의 존엄과 권위의 상징이다. 다과상 역시 임금의 수라를 만들듯 정성이 가득했다. 감잎차를 내며 가구를 만들고 식용으로도 사용하는, 아낌없이 주는 감나무의 실용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연근칩, 개성약과, 누룽지스낵, 호두강정, 대추단자 등 고소하고 달콤한 주전부리를 곁들였다. 마틸드 왕비는 후식 메뉴판을 기념으로 가져가며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진심 어린 찬사를 보냈다.

1 벨기에왕국 국왕 내외가 한국가구박물관 경내로 입장하고 있다.
2 한국가구박물관 정미숙 관장과 환영 인사를 나누는 마틸드 왕비.
3 궁채 지하에 자리한 한국가구박물관의 전통 가구 전시장.

이튿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필리프 국왕은 한국 가구박물관에 대한 인상 깊은 후기를 전했다. 사랑채 문을 하나씩 열고 방으로 들어가며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차례로 펼쳐지는 ‘일보일경’을 경험한 소회였다. “한국의 모든 문은 안으로 들어오라는 초대장과 같다. 그 문으로 들어가 한국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발견하겠다. 우리 마음의 문 또한 그와 같이 열리기를 희망한다. 진정한 우정을 바탕으로 양국의 공동 번영을 기원한다.” 그런 다음 한국어로 “양국의 우정을 위하여”라고 건배사를 했다.
우리의 전통 집과 가구, 사람이 살던 이야기가 4차 산업혁명 분야만큼 크고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한 순간이다. 현재의 기원은 전통이라는 것, 같은 논리로 미래 또한 그 전통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 우리도 가슴 깊이 새겨야 하지 않을까.

 

에디터 이재연(jyeon@noblesse.com)
사진 박우진   취재 협조 한국가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