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대한 인식론, 그 진화
풍경화의 변화를 살펴보며 ‘환경을 생각하는 미술’의 인식론과 그 전환의 계보를 짚어볼 수 있다.

1 율리우스 슈라더(Julius Schrader), 알렉산더 폰 훔볼트 남작(Baron Alexander von Humboldt), 캔버스에 유화, 158.8×138.1cm, 1859,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환경을 생각하는 미술’은 비교적 최근 현상으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자연환경에 관한 정치적 참여 의식이 싹튼 것은 반백 년 전인 1960년대부터고, 자연환경을 보호의 대상으로 사고하기 시작한 흐름을 반영하자면, 독일 프로이센의 자연과학자이자 탐험가였던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남작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훔볼트적 자연관은 여전히 오늘의 ‘환경을 생각하는 미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혼선을 빚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훔볼트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함으로써 풍경화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열대 자연사 연구에 나선 훔볼트는 정밀한 조사와 측정, 정보를 담은 지도 제작, 초기 낭만주의 풍경화의 퍼스펙티브(perspective)라는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자연을 인식하고 사고하는 새로운 현대적 시스템을 창출했다. 그리고 동시대인들은 그를 통해 현대적 시공의 감각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인류 역사에서 자연의 역사를 분리 연구함으로써, 다시 인류사와 자연사의 연동 관계를 파악할 수 있기를 바랐던 훔볼트 때문에 미술가들은 자연을 고찰할 때 과학적 시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훔볼트의 위업에 자극받은 19세기 초·중반의 화가, 즉 독일의 요한 모리츠 루겐다스(Johann Moritz Rugendas), 페르디난트 벨레르만(Ferdinand Bellermann), 에두아르트 힐데브란트(Eduard Hildebrand) 등은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며 자연사적·민속지적 관점의 풍경화를 그렸다. 후대 사람들은 그러한 그림을 ‘훔볼트식 풍경화(Humboldtian landscape)’라고 칭했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그림은 회화라기보다는 일러스트레이션에 가깝다. 마치 내셔널지오그래픽용 도판을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느껴진다.

2 에두아르트 힐데브란트(Eduard Hildebrand), 흑인이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Black People), 캔버스에 유화, 37×58cm, 1845, 상파울루 피나코테카 박물관 소장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 풍경화의 원형은 루벤스(Peter Paul Rubens)가 말년에 제시한 것이다.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사회적 위상의 측면에서 최고 지위에 오른 화가’가 됐던 루벤스는 죽기 5년 전인 1635년, 고향 안트베르펜의 스테인에 영지를 마련하고 목가적 삶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삶의 가치는 그가 남긴 전원 풍경화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당시 루벤스는 화가로서 전성기가 지났음을 인정할 수밖에 상태였다. 손에 마비 증세가 왔고, 수전증까지 겹쳐 디테일한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특유의 회화적 필치를 계발한 덕분에 퇴조의 기색을 최소화한 뛰어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루벤스의 전원 풍경화를 보면 ‘인간이 개척하고 가꿔놓은 자연을 풍요의 원천으로 응시하는 현대적 인간의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다. 훔볼트적 세계관에 따라 자연 풍경을 인류사와 자연사 시점으로 고찰하는 미술 운동은 유럽에선 독일과 영국 등에서 나타났는데, 어쩔 수 없이 신세계에 대한 동경을 다소간 신비화하고 낭만화하는 몹쓸 경향을 띠었다. 하지만 그와 유사했던 미국 허드슨강 화파(Hudson River School)는 좀 달랐다. 토머스 콜(Thomas Cole)이 창시한 허드슨강 화파는 뉴욕 허드슨강 유역을 따라 광활한 자연을 탐구하며 숭고미를 발하는 자연을 훔볼트식 풍경으로 그려냈다. 한데, 훔볼트를 추종하는 화가들이 자신의 고국이 아닌 신천지를 그린 것과 달리, 미국인들은 자국의 산천을 그리는 것이었으므로 입장은 크게 달랐다. 미국인 화가들은 미국의 장대한 풍경을 주제로 삼아 문명사적 전환을 확신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즉 허드슨강 화파의 그림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미국을 지배했던 고립주의의 산물이었지만, 그를 통해 미국인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당위성까지 예고할 수 있었다.

3 페테르 파울 루벤스, 이른 아침 스테인의 전경(A View of Het Steen in the Early Morning), 패널에 유채, 131.2×229.2cm, 1636년경, 영국 내셔널 갤러리 소장
4 마틴 존슨 헤드(Martin Johnson Heade), 난초 연구(Study of an Orchid), 캔버스에 유화, 45.7×58.4cm, 1872, 로버트 스튜어트 소장, 마틴 존슨 헤드는 허드슨강 화파의 일원이었지만, 풍경화 기본 구도에 식물지 기록화에 가까운 초근접 세밀 정물화 문법을 결합하는 등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창출했다.
그러한 기이한 세계관을 담은 대표적 그림이 토머스 콜의 연작 회화 ‘제국의 행로(The Course of Empire)’(1833~1836)다. 배경이 되는 자연환경은 분명히 미국인데, 다섯 폭의 캔버스에 제시되는 것은 유럽식 가상 문명의 흥망성쇠다. 허드슨강 화파의 그림을 통해 미국인은 자국의 영토에서 발현되는 숭고미를 애국주의적 가치에 부합하는 이상으로 간주하게 됐는데, 이러한 미국식 숭고미엔 묘한 점이 있었다. 자연에 대한 공포나 공포가 야기하는 경외, 그로 인한 숭고미의 발현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미켈란젤로의 작업을 놓고 ‘공포감이 야기하는 아름다움’이나 ‘극한의 아름다움이 야기하는 공포감’을 처음 논하기 시작하며 ‘테리빌리타(terribilità)’라는 개념을 도출했는데, 말하자면 미국의 훔볼트식 풍경화와 자연관엔 테리빌리타가 결여돼 있었다. 영국 J. M. W.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의 풍경화에도, 독일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풍경화에도 모두 테리빌리타가 구현돼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가치 개념은 신대륙 개척자의 후손인 미국인에겐 통하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허드슨강 화파의 낙관적이고 진취적인 숭고미를 대물림한 주인공은 전후의 추상표현주의자들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인들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나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의 커다란 캔버스 화면에 구현한 숭고미를 미국성(Americanness)의 승리로 받아들였고, 그러한 극적 전환 과정에서 자국 영토로 향하던 과학주의적 시선은 형식주의의 논리를 통해 회화의 존재 양태를 직시하는 방향으로 재조준됐다(비고: 폴록의 대형 캔버스가 미국적 자연 풍경의 대응물로 해석됐다면, 뉴먼의 대형 캔버스는 미국이 개척하는 우주 공간의 대응물로 해석됐다). 미국의 전후 추상미술이 미국 특유의 맥락을 통해 장소성의 감각을 일으키고, 그에 화답하는 아래 세대의 작가들이 대지 미술과 여타 장소 특정적 미술 운동을 전개하게 되는 일련의 역사적 행로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신대륙의 미국인들은 식민지로 향하던 제국주의자들의 시선을 차용해 자국의 자연을 과학적 승리와 역사적 대전환, 그리고 그 모두를 포괄하는 낙관적 경외와 숭고미의 원천으로 인식했고,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대역전극을 가능케 하는 자산이 됐다.

5 알베르트 비류슈타트(Albert Bierstadt),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 캔버스에 유화, 97.8×143.5cm, 1871년경, 레이놀다 하우스 미국 미술관 소장
6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빙해(Das Eismeer), 캔버스에 유화, 96.7×126.9cm, 1823~1824,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소장
전후 추상미술이 한창 전개되는 과정에서 현대미술계는 잠깐 자연관의 업데이트라는 과제를 망각했지만, 그 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형식주의의 논리를 극단으로 밀어붙였던 미니멀리즘 미술은 물성을 탐구하는 조각과 장소가 되는 조각을 통해 다시 과학주의적 자연관으로 되돌아오는 길을 텄다. 형식주의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크게 두 개의 길이 파생됐는데, 하나는 미술이 놓이는 장소를 문제 삼는 제도 비평 미술의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술관을 박차고 나가 인류 문명의 존재 조건이 되는 환경을 문제 삼는 대지 미술(환경 미술)의 길이었다. 후자의 길에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이었다. 1966년 로버트 스미스슨은 ‘엔트로피와 새로운 기념비들(Entropy and the New Monuments)’이라는 평문을 발표하며 물질계의 무질서 정도는 항상 증가한다는 엔트로피 법칙(열역학 제2법칙)을 현대미술의 논리로 받아들였다. 로버트 스미스슨과 그의 동료들은 당시 문화 예술계에 대두했던 사이버네틱스의 세계관을 통해 인류의 기술 문명과 자연을 공진화하는 연속체로 바라봤고, 혼돈과 파괴를 예술적 가치의 귀결로 긍정했다. 문제는 무질서로 회귀하는 질서의 한정적 상태나 그 과정을 예술로 사고하는 환경 미술가들의 경향이 여러 가지 오해와 모순을 야기했다는 점이다. 이미 1960년대에 환경 운동이 시작되고 있었기에, 인간의 탐욕과 지나치게 확장되는 기술 문명으로부터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시민 의식과 환경 미술의 실험은 종종 상충했다. 따라서 대지 미술의 어법과 환경 운동의 문제의식을 물려받은 아래 세대 작가들은 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형식의 작업을 전개하려는 경향을 드러냈다. 그러한 경향을 ‘에코 아트’라고 분류하기도 하는데, 자연풍광 속에서 자연의 재료를 찾아, 자연 속에서 서서히 파괴될 설치미술을 제작하는 것이 기본 패턴이다. 문제는 결과가 신통치 않다는 데 있다. 에코 아트는 자연에서 찾은 재료, 즉 얼음이나 나뭇가지, 돌, 흙으로 일정 기간 유지되는 기하학적 구조체를 만들어 자연 풍광에 대비시키는 것이 일반적인데, 대체로 기록 사진으로나 아름답다. 따라서 누군가 “굳이 그렇게 작업할 거라면 애초에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며 수목원을 운영하는 편이 더 예술적이고 또 환경 친화적이지 않을까?”라고 반문하면 할 말이 없어지고 만다.

7잭슨 폴록, 하나: 제31번, 1950(One: Number 31, 1950) >, 캔버스 천에 유화물감과 에나멜 도료, 269.5×530.8cm, 1950, MoMA 소장
오늘날 현대미술가들은 환경 이슈를 다룰 때 담론적 장소 특정성의 논리를 통해 환경을 재인식하는 기회를 ‘또 하나의 환경’으로 창출, 제공하려는 경향이 있다. 장소 특정성을 추구하던 미술이 결국엔 환경 운동의 담론과 융합하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이다. 2014년 열두 덩어리의 빙하를 코펜하겐 시청 앞에 원형으로 설치해놓고 ‘얼음 시계(Ice Watch: ‘얼음 지켜보기’라는 뜻도 지니는 이중적 의미의 작품명)’라고 이름 붙인 작가는 2015년 같은 프로젝트를 COP21(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기후 보고 행사가 열리는 동안 파리 팡테옹 광장에서 재연했다. 기자들 앞에서 그는 “1만5000년 전의 공기가 당신을 만나러 파리에까지 여행을 왔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말이죠”라고 설명했다. 빙하를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화석연료 소모로 인한 탄소발자국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나름대로 정치적으로 올바른 과정을 거치고자 애를 썼지만, 이러한 비판 행위조차 탄소를 발생시키는 과잉생산 활동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8 로버트 스미스슨의 ‘아스팔트 쏟기 (Asphalt Rundown)’. 1969년 11월 이탈리아 로마 밥 피오리(Bob Fiori)의 기록 영화 스틸 컷.
오늘날 현대미술이 환경문제를 다룰 때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작가들의 업데이트되지 않은 자연관과 환경관이다. 백남준은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의 사이버네틱스 이론과 마셜 매클루언 (Marshall McLuhan)의 미디어 이론을 뒤섞어 특유의 비빔밥 이론을 만들었고, 그를 바탕으로 기술과 사이버네틱한 존재 조건이 비평적 메타 환경으로 제시되는 전시를 시도했다. 1974년 열린 전시 <백남준: 비디아앤비디올로지 1959~1973(Nam June Paik: Videa’n’Videology 1959~1973)>이 그 결과였지만, 미술계는 이 전시를 저평가했다.

9 로버트 라우션버그(Robert Rauschenberg)의 ‘프리모 칼레 / 로치 베네수엘라(Primo Calle / Roci Venezuela)’(1985). 라우션버그 해외 문화 교류 프로그램 베네수엘라 지부의 활동을 위해 로버트 라우션버그가 제작한 연작 회화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통해 기술과 예술과 인간 사이의 복잡계(complex system)를 포착해 가시화하고자 한 백남준의 시도엔 탁월한 면이 있었다. 예를 들면, 1976년 발간된 리처드 도킨스 (Richard Dawkins)의 문제작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는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실은 진화생물학 버전의 사이버네틱스 이론에 불과했다. 실제로 리처드 도킨스는 조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가 <적응과 자연선택(Replication and Reproduction)>에서 유전자를 ‘사이버네틱 개요(cybernetic abstractions)’로 지칭한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노버트 위너의 텍스트를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사이버네틱스 이론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 붐이 일어난 이후 잠시 휴지기를 맞았다가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 포스트 휴먼 담론이라는 업데이트된 버전으로 재등장했다. 기술 환경과 인간을 연동하는 연속체로 사고하는 이 유행은 미술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이버 펑크 하위문화와 결합할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1990년대 중·후반 실제로 인터넷이 일반에 보급되자 이러한 망상의 흐름은 모두 사라졌다. 따라서 포스트 휴먼 시각에 의한 자연관과 환경관의 업데이트도 잠시 유행에 그치게 됐다. 건축 이론가이자 역사가인 베아트리츠 콜로미나(Beatriz Colomina)는 근년에 슈퍼 휴먼 담론을 제시하면서 자연관과 환경관의 업데이트를 시도했지만 반향은 미미했다.

10 앤디 골즈워디(Andy Goldsworthy), 얼음별(스코틀랜드 덤프리셔군 펜폰트 마을의 스카우어워터 강변)(Ice Star(Scaur Water, Penpont, Dumfriesshire)), 컬러 사진, 77×75.5cm, 1987, 영국 정부 소장
자연환경을 보호하자는 메시지는 언제 어떻게 들어도 그럴듯하다. 하지만 어떤 자연환경을 어떻게 보호하자는 말인지 따지고 들면 대개의 메시지는 공염불로 그치고 만다. 오늘날 인간의 기술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한 자연 체계는 사실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환경에서 창출된 기술 환경이 다시 한번 자연환경을 변화시키는 오늘날 시점에서 현대미술가들이 인류세(Anthropocene) 운운하며 인공적으로 조절한 자연환경을 작업으로 제시할 때, 그것은 일종의 자기 풍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1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얼음 시계’(2014년). 2015년 파리 팡테옹 광장에 설치한 작품으로 제작 과정에서 30톤의 탄소를 발생시켰다.
인류세란 인류가 지구의 지리와 환경 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이후의 지질시대를 일컫는다. 시대순으로는 신생대 제4기의 홍적세와 지질시대의 마지막 단계, 즉 현세인 충적세에 이어진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이 2000년에 처음 제안했는데, 사람들마다 기준점을 달리 잡고 있기 때문에 아직 공인된 개념은 아니다. 1만2000~1만5000년 전, 즉 인류가 농업 혁명을 거쳐 농목 사회를 건설하던 때를 기점으로 삼기도 하고, 1945년 트리니티 핵실험을 기점으로 삼기도 한다.

12 백남준, TV 정원(TV Garden), 식물 화분과 모니터, 싱글 채널 비디오(컬러, 사운드), 1974, 1982년 휘트니 미술관 회고전 설치 작품으로, 백남준은 기술과 자연이 하나로 연동하는 환경을 다루는 작업을, 역시 하나의 기술·자연 환경으로 구축하고 싶어 했다.
13 차이궈창(Cai Guo-Qiang), 버섯구름의 시대: 20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네바다의 핵실험 지구)(The Century with Mushroom Clouds: Project for the 20th Century [Nuclear Test Site Nevada]), 폭발 이벤트 일시·장소: 1996년 2월 14일, 네바다의 핵실험 지구에서 1초간, 화약(10g)과 원형 종이 통
기준점이 어디든 간에 인류세라는 새로운 관점을 전제로 하는 자연사적, 인류학적 현대미술은 자연환경과 기술 환경을 분리된 체제로 바라보지 않는다. 말하자면, 인류세를 논하는 오늘의 현대미술도 결국엔 일종의 루벤스의 전원 풍경화 같은 것이다. 다만, 풍요로운 번영의 전원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인류세 지구의 풍경을 포착해 제시할 따름이다. 그러나 인류세의 환경 미술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인류세의 총체성을 드러내는 새로운 미술은 과연 실현 가능할까?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글 ·사진 제공 임근준(미술·디자인 이론, 역사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