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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omplicated Voice

LIFESTYLE

스물여섯의 길병민은 복잡함을 노래한다. 무엇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그의 목소리.

이 칼럼을 진행하면서 길병민의 세 가지 표정을 마주했다. 촬영은 언제나 긴장된다며 카메라 앞에 멋쩍은 표정으로 선 청년, 무대 위에서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노련한 성악가 그리고 인터뷰할 때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한 뒤 질문에 신중하게 대답하는 길병민. TPO를 갖추듯, 그는 상황과 장소에 제 모습을 맞췄다. 특히 무대 위에서는 더더욱. 지난 4월에 열린 <길병민 봄내음 콘서트>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오페라 중 ‘알레코의 독백’을 부를 때는 상심에 빠진 중년이었고, 우리 가곡 ‘서툰 고백’을 부를 때는 금세 사랑에 빠진 한 남자로 분했다. ‘투우사의 노래’에서는 작은 손짓으로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조련 실력을 뽐냈다. “원작 소설을 읽고 그 시대 역사 공부도 하면서 맡은 캐릭터를 깊이 공부해요. 그런데 오페라 캐릭터가 거의 서양인이다 보니 한국인으로서 연기하는 데 아쉬움이 있었죠. 캐릭터가 처한 상황을 현재 시점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어요. 시대는 달라도 기쁨, 슬픔, 분노 같은 감정은 여전하니까요. 이 감정을 관객과 나누고 싶어 노래, 제스처, 연기 그리고 의상까지 모든 걸 신경씁니다.” 스물여섯 살이라는 나이를 잊게 할 만큼 그는 참 노련했다.
길병민은 선화예술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했다. 장르를 가리지 않을 만큼 노래 자체를 사랑한다. 재능과 노력을 갖춘 데다 자기 일까지 즐기니 또래, 아니 클래식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이것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사람 ‘길병민’을 잃지 않는 것이 그의 강점이다. “오페라에서 베이스곡은 주제가 엄숙하고 무겁습니다. 삶의 고락을 겪은 50~60대 인물이 많은데, 그에 비하면 제 나이는 어리죠. 저와 캐릭터 간 균형이 중요한데, 너무 몰입하거나 저를 지나치게 드러내면 관객과의 호흡이 깨져요. 여러방법을 시도하다 저를 기준점에 세워봤어요. 제 성격을 객관화해 분류한 뒤 맡은 캐릭터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꺼내어 썼죠. USB에서 필요한 자료만 선택해 쓰듯이 캐릭터와 어울리는 제 모습의 일부를 섞어요. 취사선택이죠.”

ⓒ 크라이스클래식    지휘자 클라우디오 반델리와 악수를 나누는 길병민.

왜 성악을 시작했는지 묻자 “엄마가 예술중학교에 보내서요”라고 말하며 성악가다운 호탕한 목소리로 웃는다. “노래를 참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예술중학교에 가면 실컷 노래할 수 있다는 엄마의 말에 귀가 솔깃했죠. 그때는 노래도 곧잘 불렀고, 스스로 잘 부른다는 확신도 있었기에 입학시험에서 평소처럼 이탈리아 성악 두 곡을 불렀어요. 선생님들이 무척 칭찬하셨죠. 일찌감치 모두에게 주목받았어요.” 한데 그의 답변에서 ‘그때’라는 말이 혀끝에 걸린다. 노래를 곧잘 부르지 못한 때라도 있었던 걸까? “중학생부터 고등학생 때까지가 제 인생의 암흑기였어요.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거든요. 음악은 재능이 중요한데, 타고난 재능을 잃었으니 당연히 자신감, 자존감, 에너지가 하락했죠. 겉으론 여전히 노래를 사랑하는 척했지만, 제 안의 빛은 꺼져가는 기분이었어요. 예술고등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반항하기도 했으니까요.”
곪은 게 터진 건 고등학교 3학년 2학기였다. 선생님 앞에서 “그간 잘못된 길을 걸었지만 이제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5년간 억눌러온 감정을 눈물로 쏟아낸 것. 그는 꾸미지 않고 펑펑 울던 그때가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베이스로 포지션을 바꾼 것도 그즈음이다. 소프라노, 테너 같은 포지션은 성악가가 아닌 목소리에 따라 선택당하는 불가침의 영역.
타고난 목소리가 베이스감은 아니지만, 노래를 계속하기 위해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되레 지독한 성장통을 앓고 나니 쉽게 얻은 건 쉽게 잃는다는 단단한 마음가짐이 생겨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었다. 노력하는 천재는 이길 수 없다. 길병민은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한 뒤 2016년부터 빈틈없이 커리어를 채워나갔다. 프랑스 툴루즈 국제 성악 콩쿠르 베이스 부문 최연소 우승, 모나코 몬테카를로 국제 성악 콩쿠르 우승, 조지아 트빌리시 국제 성악 콩쿠르 초대 우승에 이어 지난 6월에는 러시아 국제 오페라 콩쿠르 우승 그리고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 합류로 방점을 찍었다. “툴루즈 국제 성악 콩쿠르는 클래식의 본고장인 서양에서 제 가능성을 검증받고 싶어 참가했어요. 그런데 단순 콩쿠르가 아닌 오페라 캐스팅 자리라는 걸 그때 알았지요. 한 심사위원이 지금 당장 무대에 올라도 되겠다며 절 지목했거든요. 물론 거절했지만요.(웃음) 그때는 오페라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그 후 2년간 클래식 공부에 매진했는데,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건 결국 오페라 무대임을 깨닫고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 오디션을 치렀고 합격했습니다. 올 8월부터 2년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끝날 즈음이면 실력이 부쩍 향상한다는 이야기가 자자해 기대하고 있어요. 조역으로 무대에 오르며 주역의 기회도 틈틈이 노려보려고요.”
길병민은 복잡한 성악가를 꿈꾼다.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 오디션을 볼 때 지휘자가 그를 ‘Complicate’라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더할나위 없는 칭찬이죠. 예측 불가능한 재미가 있다는 의미니까요. 또 음악인 길병민이 안고 있는 복잡한 감정이 노래에 담겨 있음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어요”라며 쉴 땐 쉬고 노래할 때는 치열해야 큰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길병민은 성장에 대한 욕구가 있다. 2년 후, 자신이 어떤 방향으로 무르익을지 누구보다 궁금해한다. 배울 때 살아 있음을 느끼고, 하이퀄리티의 공연이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고 믿는 그는 공연이 끝날 때 언제나 이 같은 작별 인사를 관객에게 건넨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긍정적 마인드와 도전정신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제가 성장하며 그 부족함을 메우는 모습을 지켜봐주세요.”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